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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잘못된 선택의 결과. 민14:1-10
서론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선택이란 자기 인생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선택한 일이 그 사람의 한평생을 고민과 슬픔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 그 사람의 사람됨을 보지 않고 명예와 돈과 외모를 보았다면 얼마 안가 그 사람의 인생은 그 배우자로 말미암아 비참한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들의 생활 중에서도 때때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이 선택에서 잘못된 길을 택함으로 온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죄 값인 사망을 안겨 주게 되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느냐?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느냐? 의 기로에서 사자 굴에 들어가기로 결단하고 기도를 계속한 다니엘의 선택은 다니엘의 생애에 놀라운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간을 광야에서 해 매이며 애굽에서 나온 1세들은 다 죽고 2세들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이 비극은 단 한 가지 문제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선택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솔 아래 애굽에서 나온 후, 가나안으로 가기 위한 행진에서 바란 광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행진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모세는 한 지파에서 한 명씩 이스라엘의 12 지파에서 12명을 선발하여 가나안으로 보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유다 지파의 대표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로 눈의 아들 여호수아도 들어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들에게 가나안 땅에 몰래 잠입하여 그 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수효와 그들의 강· 약 여부를 알아보고 그 땅이 과연 얼마나 기름졌는가의 여부와 그곳에서 생산된 실과를 한가지만 가져오라고 명했습니다.
이들은 40일간에 걸쳐 정탐 활동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서 모세 앞에서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에서 두 가지 의견이 나와 이 의견의 대립으로 백성들 간에 큰 소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 중, 여호수아와 갈랩만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하여 대단히 두렵게 보고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그 키가 얼마나 큰지 자기들은 그들에 비하여 마치 메뚜기처럼 보였다는 보고로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두려움과 낙담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보고하기를 ‘우리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그들에 의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자기들 중에서 한 장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결의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친히 바라보신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진노 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결단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땅을 정탐한 40일간의 하루를 1년으로 잡아 40년간 그들의 죄악의 짐을 지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보는 눈이 열려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선발된 10명의 족장들은 직접 가나안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밟았지만 아낙 자손들의 두려움 때문에 그 축복이 자신들이 것이 될 것이라고 믿지 못했든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눈이 감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축복의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약속한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그 약속을 이룰 수 있는 과정에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의 창고에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같은 축복보다 오히려 11조라고 하는 그 축복의 땅에 이르는 길을 두려워하므로 약속은 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고생을 하는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 있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메마른 광야 생활만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곤욕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감겨지는 것입니까?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눈앞에 갔다 놓아도 믿지를 못합니다. 재물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재물이 사라질 때 사랑도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뜨거운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요일 4:10절 말씀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일에 대하여 마음이 뜨겁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② 다음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면 아무리 교회 생활을 오래 하고 성경을 줄줄이 왼다고 해도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의 생활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어디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말씀이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허망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는 표준을 인간적인 상식이나 경험이나 생각에 두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히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에게는 이 같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키가 장대하고 두렵게 보이는 것만 보고 무서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이들 아낙 자손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만 같은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 언약의 축복을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을 따를 때 우리에게는 그 믿음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반드시 증거가 따르는데 그 증거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이 곧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3. 실패한 이유
그러면 이들 열 명의 정탐꾼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에 살고 있는 거대한 주민들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이들이 모세 앞에서 보고하는 말 중에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그곳에서 본 아낙 자손에 대하여 이처럼 표현했습니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을 경영할 때 사람을 바라보면 실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아낙 자손들을 바라보았을 때 가슴이 성큼 했습니다. 자기들이 그 땅에 들어가 그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나안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아낙 자손처럼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하는 존재들이 우리의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철벽같은 장애물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을 보면 두려운 마음 때문에 믿음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여리고 성만 쳐다보면 그 성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친히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② 다음에 그들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자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아낙 자손의 강대함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낙 자손을 두려워한 그들은 결국 그 땅의 주인은 아낙 자손이지 자기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두려운 존재도 하나님의 두려우심에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두려워할 때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의뢰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의 목적지에 이르기까지는 두렵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우리들 앞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그 같은 존재를 두렵게 여기게 되며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발걸음이 가든 길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 같은 두려움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까?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버렸습니다. 그 소망은 아낙 자손이라고 하는 두려운 존재 앞에 맥을 못 추고 꺾였습니다. 그들의 눈은 두려운 존재 앞에 압도되어 그곳의 아름다운 소산도 기름진 땅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담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4. 축복의 땅은 담대한 사람이 얻는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다고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① 믿음에 담대한 사람이 약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고 달려가는 길에 사정이 좀 변했다고 마음의 자세가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의심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는 일에는 담대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일에는 너무나도 허약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도 좀 어려운 일이 가로막힐 때 담대한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방 낙심하고 좌절해 버리는 것입니다.
② 순종에 담대해야 약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그의 약속을 보장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뾰족한 수도 없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없습니다. 순종하는 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황된 생각으로 복을 받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서 순리적인 방법으로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③ 다음에 우리는 환경에 담대해야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언제 믿음이 약해지는가 하면 환경이 변해졌을 때 바로 그때 약해지는 것입니다. 자기는 순종하는 생활을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 떨어졌을 때 사람은 약해지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직까지 순종하는 생활을 해 왔지만 자신의 형편이 이전보다 더 나빠졌을 때, 믿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얼마간 했지만 응답이 없을 때 마음이 흔들리면서 믿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때 사람들은 순종의 길에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에 어떤 변화가 찾아와도, 시련이 가중되고 어려움이 더욱 심해져도 조금도 요동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족장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의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에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서 죽이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쳤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에 들어가 바라본 것은 키가 장대한 아낙 자손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주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강대한 아낙 자손들도 보았지만 그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낙심을 안겨 주고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게 만든 열 명의 족장들과 이스라엘에게 담대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고 외침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4:36절 말씀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할,
결론 :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는 열 명의 정탐꾼들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대하여 믿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고 만족하며 세상 것으로 소망을 삼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 길은 분명 잘못 선택한 길입니다. 그 길에서 발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망하는 길이요, 파탄의 길이요, 황폐의 길입니다. 여호수아처럼, 갈렙처럼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날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담대한 믿음으로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그의 백성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축복의 길을 선택하시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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