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2월 18일, 화) 우리는 세계제일의 관광도시 로마를 둘러보았다. 사실 로마는 시가지 전체가 유적과 유물, 그리고 예술작품으로 꽉 찼기 때문에 일주일을 보아도 다 볼 수는 없는데, 우리는 약식으로 성베드로 대성당과 바울 성당, 콜로세움, 지하묘지(까타꼼베) 그리고 티볼리의 정원과 폼페이 등을 보기로 했다. 황 가이드 말에 의하면 로마는 삼 일 만에 다 볼 수도 있고 석 달 동안 보아도 부족할 수도 있다고 한다. 로마시는 2천 년 전 전성기 때의 인구가 150만이었는데, 현재 350만이니까 인구증가가 매우 완만하다고 볼 수 있다. 인구가 늘어나도 천천히 늘어났기 때문에 도시문제를 천천히 해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는 빠르기 때문에 생겨나고, 그 문제의 해결 역시 빨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밥을 빨리 먹으면 체하고, 학생이 벼락공부를 하면 성적이 좋을 리 없고, 성수대교도 공기를 단축하여 빨리 건설했기 때문에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장관이 바뀌면 1년도 안 되는 재임기간 내에 빨리 빨리 뭔가 그럴듯한 업적을 남기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정책이 자주 바뀌고, 아랫사람들은 그전 것을 다시 바꾸느라고 일만 많아지고, 국민들은 새로이 발표되는 정책을 항상 의구심과 불신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다. 오죽하면 농부들은 정부에서 올해에 권장하는 작물은 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역설적인 지혜를 터득하였을까?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개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개발하더라도 천천히 개발한다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천천히 미칠 것이고, 자연은 원래 자정능력이 있으니까 회복불능의 환경파괴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환경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아야할 구절은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 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천천히 하라’ 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뜰에 있는 장미가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꽃피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조금씩 변하면서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으며, 매일 매일 조금씩 공부하는 학생은 시험이 발표되고서 벼락 공부하는 일이 없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신임장관이 1년 내에 뭔가 보여주겠다고 장담한다면 우리는 일단 그러한 주장의 실현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좋은 것은 그렇게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로마시는 환경보전의 측면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로마의 차들은 대개가 소형으로서 대기오염방지에 일조를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소나타급 중형차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껏해야 프라이드 정도의 차가 대부분이었고 티코급의 차도 많이 눈에 띄었다. 또한 놀랍게도 로마에서는 아직도 전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전차를 없애는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개발논자들은 멋지고 빠른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주장했고 환경주의자들은 대기보전 차원에서 전차를 지지하였는데, 시민들은 투표를 통하여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을 채택하였다고 한다. 원자력에 대해서도 이탈리아 국민은 과감한 조치를 선택하였다.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여론이 나빠져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전면 중지하고서, 모자라는 전기는 현재 프랑스와 동구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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