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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와 메추라기
탈출 16,8-18
시작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 함께 하시겠습니다.
교황님 회칙 Laudato Si' 맨 마지막 항에 나오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은 잘 모르더라도 그 사람이 그린 그림이나 작곡한 음악을 보거나 들으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구나..라고 알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알아 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하느님이 만드신 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세상은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을 잘 감상하는 방법도 있고 그렇지 않은 방법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보면 "손대지 마시오" 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느님의 작품을 우리한테 맡기셨는데 우리들이 그것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너무 제 맘대로 너무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잘 돌보고 그 세상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고 알아 볼수 있는 그런 하느님으 모습을 묵상하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이 그리스도 공동체의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마지막에
탈출 16,6-7 에서 '보다' 와 '알다'을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인지 너희들이 알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봄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때도 맨 첫날 빛이 있어라.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볼수 있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빛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고 알 수 있게 되는 것.
어떻게 보면 어느 성서에 어느 구절을 보던지 결국은 그 대목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첫날 빛이 있어라." 하셨다. 우리가 그것을 보고 알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가 피조물을 보호해야 하는 여러가지 신학적이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한가지 이유는 그 피조물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는 하느님의 모습들. 피조물이 우리들에게 드러내는 하느님의 영광, 그것을 잘 알아보고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생태계 피조물들을 잘 보호하는 어떤 생태계와의 연대 의식을 가져야 된다는 그런 의미로 "찬미 받으소서" 라는 회칙을 알아 들을 수가 있겠습니다.
탈출 16,8
모세가 다시 말하였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저녁에는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주님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냐? 너희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 불평하는 것이다."
성경 번역하시는 분이 굉장히 알아듣기 쉽게 번역하셨는데 문제는? 본문을 보면 굉장히 알아 듣기 어려운 문장이 써있는 겁니다.
탈출 16,8a 라는 것은 어떤 절이 있든지 히브리 말 성경은 둘로 나눌수가 있습니다.성경 구절에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그 표시한 부분을 기준으로 그 앞에 부분은 a 이고, 그 뒤에 부분은 b입니다.
그런데 그 전반부만 번역해 보자면,
탈출 16,8 A 직역
그리고 모세가 말했다. "야훼가 너희들에게 줌으로써 무엇을 주었느냐?"
저녁에는 고기를 먹을 (저녁에는 먹을 고기를)
빵을 아침에는 배불릴( 아침에는 배불릴 빵을)
어순 자체가 우리가 기대하는 어순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먹을 고기를, 아침에는 빵을 배불릴 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어순인데, 그런 어순이 아니라 어순을 뒤틀어났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말로는 번역하기 어려운 그런 어떤 운율이 있습니다. 이런 운율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번째 파트에서
탈출 16,8 A 직역
"야훼의 들음으로써 너희와 불평들을, 너희들이 그에 대한 불평한
그런 너희들의 불평들을 야훼의 들음으로써"
따라서 문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기 전치사 구가 있는 겁니다. 야훼가 너희들에게 줌으로써 야훼의 들음으로써 이와 같은 일들이 생긴다. 어떤 일인가가 생긴다. 라는 건데 이 문장 자체에 중심이 되는 동사가 없다 보니까, 이것를 이해하는 것이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것은 완결된 문장이 아니니까 완결된 문장을 이 앞 부분으로 보느냐? 또는 뒷 부분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이것의 문장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탈출 16,8 A 부분을 그 앞선 탈출 16,6-7절과 연결시켜서 해석한다면 그 전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탈출 16,8 A를 6-7 연결 직역
"야훼가 너희들의 불평을 듣고서, 야훼가 너희들에게 고기와 빵을 줄 때
너희들은 야훼를 알게 될 것이고, 야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방법 한가지가 있고,
반면에 그 뒷부분과 연결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그 탈출 16,8 B도 문장 자체는 짧은데,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탈출 16,8 B 직역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가? 우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너희들의 불평들 야훼에 대해서"
탈출 16,8 B에는 동사가 아무것도 안나옵니다. 그냥 명사절입니다.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예를 들어 "저는, 나는 사제입니다.' 라고 얘기하면은 "입니다" 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문장이 성립이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 문장에서는 '입니다' 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히브리말에서 전치사도 없으니까,"나, 사제" 라고 쓰고 명사문이 됩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무엇인가?
명사문 ⇒ 우리 / 무엇
이것을 가지고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탈출 16,8 직역
"우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너희들의 불평들 야훼에 대해서"
명사문 ⇒ 너희들의 불평들 / 우리에 대해서 / 야훼에 대해서
문장의 단문과 단문을 가지고 동사가 사라진 상태에서 의미를 만들어야 되는, 따라서 고대어에서 이런 동사가 등장하지 않는 명사문들이 번역한다는 것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 성경에서는
"나는 야훼 너희들에 엘로힘이다.", "나는 주님, 너희들의 하느님이다." 라고 번역된 문장이 있는데, 그걸 꼭 그렇게 번역하기 어렸습니다. 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 기억??? 안날수도 있지ㅡ
히브리말 문장에는 어떤 것만 나오냐 하면,
나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 을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이다
▶ 나 야훼는 너희들의 엘로힘이다
▶ 너희들의 엘로힘은 바로 나 야훼이다
우리 눈에는 그 문장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은 문장의 3~4가지 가능성을 놓고 많은 신학자들이 싸웁니다. 왜 싸우냐 하면 각각의 그 의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신학적인 방점이 어디 찍히느냐가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명사문들이 등장할 때마다 신학자들은 조금 이렇게 토론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 문장 안에서 분명하거나 확실하지 않으니까 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더 많이 연구하고 공부하시는 겁니다.
여기서는 분명히 우리가 무엇인가? 너희들의 불평들은 우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야훼에 대해서야 한다. 라는 문장으로 이해하면서 탈출 16,8 A를 좀전에 그 앞에 부분과 연결했다면, 이제는 탈출 16,8 A 뒷부분과 연결한다면 어떤 의미냐? 하면,
탈출 16,8A 와 B의 연결 직역
'야훼가 너희들의 불평들을 듣고서 야훼가 너희들에게 고기와 빵을 주기에
너희들의 불평들은 우리가 아니라 야훼에 대해서이다." 라는 의미로 16,8 A와 B와 연결해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느님께서 그들의 불평들을 듣고서 그들에게 고기와 빵을 줌으로써 "너희는 야훼를 알게 될 것이고, 야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첫번째 해석과
하느님께서 그들의 불평들을 듣고 그들에게 고기와 빵을 주기때문에,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너희의 불평들은 우리(모세와 아론이)가 아니라 야훼에 대해서 행해야 합니다.가 두번째인데,
일반적으로 의미도 잘 통하는 첫번째를 고릅니다. 그런데 문법적으로는 여기써있는 히브리 말 쭈욱 써놓고 보면은 두번째가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애매합니다.
의미론적으로는 앞것과 문법적으로는 뒷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신부님이 갖고 계신 의견입니다.
이 애매함은 의도된 것이라는 겁니다.
탈출 16,8 해석 ⇒ 애매함은 의도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구를 놓고 앞과 뒤 모두를 연결할 수 있게 함, 그래서 그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게 됨. 하지만 뒷 부분에 그들의 그와 같은 불평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것이다.라는 의미도 살아있게 만듭니다. |
약간은 애매하지만 그것이 의도된 애매함일 때,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중에서도 어떤 아이가 엄마가 시장을 보러 간 사이에 방에서 혼자 놀다가 엄마가 아끼는 그릇을 깨요. 그리고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와서, 아이가 엄마에게 그릇을 깼다는 얘기를 하고 "엄마! 그릇이 깨졌어요."
정확한 문장은 "엄마, 제가 그릇를 깼어요." 라고 해야하는데,아이는 모호하게 말하는 상황으로 주어를 감추는 거고 엄마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습니다.
히브리어를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 문장은 굉장히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고 무언가를 밝혀서 설명할 수 없는 좀 복잡한 애매한 문장 구조를 갖고있습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보면 나쁜 문장인데(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지 않기때문에) 여기선 의도된 애매함입니다.
9절,이번에는 모세가 아론에게 말합니다.
탈출기 앞 부분에서 하느님께서 아론을 모세에게 보낼때,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하고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고(모세는 말을 잘 못한다고 하니), 아론이 그것을 듣고서 백성에게 연결하는,
"모세 너는 아론에게 하느님이 될 것이다. "라는 조금은 이상한 문장도 탈출기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앞선 대목에서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고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는데,
아론이 전해야 될 그 언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공동체에게,
탈출 16,9
'주님께서 너희의 불평을 들으셨으니, 그분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하고 말하십시오."
조금더 직역한다면
탈출 16,9 직역
"야훼의 면전으로 너희들은 가까이 다가오너라." 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야훼의 면전이라면 야훼가 어디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좀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성전이 있다면 '성전 쪽으로 가까이 와라." 또는 여기 호렙(시나이)산이 있다면 '그 산 앞으로 와라.' 라고 이해하겠는데,
여기서는 장소적으로 어느 위치인지 광야인데 시나이 산에서 보면 '신 광야에 이르렀다' 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탈출 16,1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야훼의 면전 ⇒ 장소적 위치가 애매함
따라서 광야에서 하느님의 면전으로 온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라는 것이 애매합니다. 10절에 가서야 그것이 밝혀지는데,
탈출 16,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쪽을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구름이 있었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 구름이 아마도 하얗게 밝은 빛을 나타내는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앞의 일반적인 탈출기의 흐름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내지는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어떤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의 표징인,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단지 구름을 이야기 합니다. 사실은 이것도 역시 성경전반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징입니다. 구름이라는 것도,
요즘도 사제들이 큰 미사를 하면서 향을 씁니다. 이곳은 하느님이 있는 곳이라는, 하느님의 현존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은 특별히 표시할 때 두 가지 상징적이고 전례적인 표징들이 있는데,
첫째는 불입니다. 감실의 등, 미사할 때 제대위에 촛불켜두는 것.사실 본당안에서 다른 불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두번째는 연기를 냄으로써 이곳이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다. 장례 미사때 사제들이 고인이 관과 함께 입장을 하는데, ㅡ 그리고 그 관을 모시고 나중에 고별식때 사제가 그 관 주위를 향을 치면서 한 바퀴를 돕니다.
이 분은 이제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라는 의미이고 그분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면서 마지막 작별을 하는 그와 같은 고별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지상이 아니라 천상에 속한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구름, 그런데 우리가 익숙한 표징이라면 구름 기둥이 나왔으면 그냥 앞선 대목과 익숙하게 넘어갈 텐데, 구름이다.
따라서 탈출기의 흐름 안에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하지만 본래의 원시적인, 내지는 본래의 고전적인 의미에서 신적 표상이 구름임을 알 수있습니다.
탈출 16,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새로운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아론에게 얘기하고 아론이 이제 백성에게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얘기했다고 가정하고 그 다음에 이제 새로운 명령이 드러나는데,
이제부터는 조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그와 같은 명령입니다.
탈출 16,11-1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첫째는 이것이 갖고 있는 중요함 때문에, 영어에도 말한다는 동사가 say, tell, speak 있습니다. 히브리 말에도 말한다는 동사가 아마르(אמר),다바르(דבר)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아마르, 라는 동사는 영어로 애기하면 say 의 의미이고 다바르, 라는 동사는 말씀이 무슨 마치 패키지처럼 입에서 덜커덕 무언가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입을 떠나서 나오는 것과 같은, 따라서 다바르(דבר)라는 말은 말씀 또는 사건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탈출 16,11-12)는 say 동사가 쓰이지 않고 다바르, 영어로 번역한다면 speak 이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따라서 무언가 하느님께서 판결을 내리듯이 아니면 무언가 메시지 자체가 하느님의 입으로부터 덜커덕 하고 나오는 겁니다.
그 말씀에 내용은 조금 이상합니다. 앞선 4-5절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탈출 16,4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하늘에서 내려 준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6,4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
탈출 16,12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따라서 앞선 4-5절의 내용과 먹을 것을 준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디테일이 다릅니다. 4-5절에서는 하늘에서 뭔가를 내려줄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데 12절에서는 메뉴가 좀 다릅니다.
저녁에는 고기를, 아침에는 양식을 ....
라는 조식과 석식이 메뉴가 다양해 집니다. 따라서 이것을 보면은 하나는 만나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 그 이야기의 흐름이 있고, 우리는 여기서 적어도 두가지 얘기가 섞여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탈출 16,4 ⇒ 만나
탈출 16,12 ⇒ 만나와 메추라기
한가지는 만나에 집중하고 있고 다른 한가지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를 함께 전하고 있다.
4절에서는 하늘에서 뭔가를 내려준다고 했는데
12절에서는메추라기는 고기로 / 만나는 빵으로,
빵 '레헴' (לחם 히브리어) ⇒ 빵 또는 양식으로 번역
우리말 성경에서는 어떤때는 빵, 어떤 때는 양식이라고 번역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어느 도시의 이름도 ? 베들레헴
벹레헴(벹,בית 집+ 레헴, לחם 빵) 으로 빵집 입니다.
신부님께서 이런 강의를 하시면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어느분이 오셔서 '저는 경쟁업체에 있습니다.' 라고 하셔서 궁금했는데 '파리 ***' 하시는 분이 ...셨습니다.
벹레헴(בית לחם)에서 예수님과 다윗이 태어났고,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다. 그런 예수님의 메시아 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빵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일생 안에서도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이 빵을 떼어서 나누어 주시는 빵의 기적(오병이어의 기적)도 나오고 요한 복음에 가면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8)
하시면서 그 빵자체가 생명의 의미를 상징한다는 그런 체계를 복음 안에서 보게되고 나중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 에서도 제자들이 맨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다가 빵을 떼어 나눠주실 때 알아봅니다.
예수님의 삶전체를 생각하면서 빵이라는 표상을 가지고 예수님의 삶 전체를 한번 꿰뚫어서, 또는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을 묵상 거리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특별한 것은, 여기 탈춝 16,12절에서 저녁 어스름에는 (저녁 6-9시)
아주 좋은 번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직역하면은
탈출 16,12 직역은
두 저녁들 사이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 말로 두 저녁들 사이에서,
첫번째 저녁은 일몰입니다. 두번째 저녁은, 일몰이 6시라면 과거 사람들 계산 법으로 완전히 깜깜해 지는 시간은 9시 정도입니다.
첫번째 저녁 : 일몰
두번째 저녁 : 완전히 깜깜한 밤
따라서 해는 지고 아직 완전히 깜깜해 지는 그 시기에 (황혼에는) 고기를 먹고
그다음에도 '아침에는' 이라고 했는데 이 아침은 앞에 있는 것과 연결해 보면,
아침에는 ⇒ 동이 텄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아침(새벽 3-6시)
탈출 16,12 직역
"그 시기에는 양식을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나 야훼가 너희들의 엘로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충 6-9시까지, 그다음 새벽 3-6시까지라고 기억합니다.
탈출 16,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이것도 어쩔 수 없이 우리말 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이 된거구요, 히브리말에서는
탈출 16,13 직역
메추라기 떼가 올라왔다.
마치 땅에 있다가 명령을 받고 하늘로 부웅 올라가듯이 메추라기 떼가 땅에서 올라오는 그와 같은 그림입니다.
이미 탈출기에서 한 번 나왔던 표현입니다. 열 가지 재앙에서 메뚜기 떼가 땅에 있다가 올라왔다. 라는 식으로 표현이 됩니다.
따라서 메추라기 떼도 어딘가 있다가 올라오고, 메뚜기 떼도 어딘가 있다가 올라오는,
탈출 16,13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히브리 말로 표현은 이슬이 내렸다 ⇒ 이슬 내림
메추라기는 올라오고, 이슬은 내려옴.
열 가지 재앙에서도 어둠이 내려왔습니다. 열가지 재앙에서 메뚜기는 올라오고 어둠은 내려오는 데 둘다 부정적인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먹을 것들이, 메추라기는 올라오고, 이슬 내림은 내려오는, 긍정적인 표징이 양방향에서 이루어 집니다.
탈출 16,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여기서 이슬이 걷히 뒤에, 라는 표현은 우리가 히브리 말에서 그냥 직역하자면
탈출 16,14 직역
그리고 이슬 내림이 올라갔다.
따라서 이슬 내림이라는 것이 일종의 물기로 이루어진 막 같은 겁니다. 그 막같은 것이 만나를 싸갖고 땅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땅의 날씨가 3시가 지나면서 점점점 더워지면서 그 이슬 내림이 다시 올라가는 겁니다. 만나는 남겨두고, 무언가 캐리어가 있어서 하늘로 부터 내려온 다음에 그 캐리어는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만나입니다.
그렇게 이슬 내림이 올라간 뒤에 보니,
탈출 16,14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탈출 16,14 직역하자면,
그리고 보라, 그 광야의 표면 위에, 작은 알갱이 작은 서리 그 땅 위에
따라서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아주 즐겨쓰는 표현입니다.
장소와 대상 A ⇔ B 광야에는 작은 알갱이 서리에는 땅 위 |
따라서 장소와 대상이 A⇒B ⇒A 로, 연결지어 교차된 표현입니다.
여기서 '알갱이' 라는 것이 정확히 무슨 표현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히브리말로 알갱이와 비슷하게 발음이 되는 것이 있는데, 알갱이(히브리어) - 독(그릇)
알갱이라는 것은 독(그릇) 이 부서지면 파편같은게 생기는데 그런 어떤 알갱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주석가들은 짐작을 합니다.
탈출 16,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라는 말이
히브리말로 만후(מן הוא)입니다.
만은 영어로 what?, 후는 this
생활 중에 활용하시면 좋습니다. ^^
탈출 16,15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15절 전반부가 이렇게 번역이 되었는데, 15절 전체를 신부님께서 직역을 하신것은,
탈출 16,15 직역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형제에게 말했다.
만후,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만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그 빵이다. 아훼가 주는 너희들이 먹기 위해
만후, ⇒ 같은 문장의 반복은 강조하는 의미
그러면 만후(מן הוא),라는 말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그 의문문이, 여기서는 그런 의미로 분명하게 설명하여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만후, 라는 의문문을 두번 쓰는 사람이 의도하는 것은 그 만후, 라는 의문문에서 만나 라는 이름이 나온 원인담으로서 전체를 설명하고 있는겁니다.
히브리 말로는 하늘에서 온 그 빵을 만나, 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만나 라는 이름은?
빵 - 만나 (μάννα, 그리스어) / 만 (מן,히브리어)
따라서 만후(מן הוא)라는 의문문에서 후(הוא)가 빠지면 만(מן)이라는 이름이 남는겁니다.
히브리어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언어들은 마, 또는 만, 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바로 이 만나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설명하는 원인담적인 기능을 15절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탈출16,16은 그 빵, 만나에 관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그 명령에 내용은 직역하면,
탈출 16,16 직역
"모아라 그로부터 각자 그의 먹을 입에 따라, 오메르 머리에 따라 너희들의 목숨의 수, 각자 그의 천막에 있는 이에 따라 가져라."
탈출 16,16은 명령형 동사로 시작해서 명령형 동사로 끝납니다. 모아라, 가져라.
그런데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가질 것인가? 라는 것이 그 중간에서 설명이 됩니다.
탈출 16,16 직역
"그로부터 각자 그의 먹을 입에 따라"
먹을 입에 따라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갑니다. 설렁탕 집에 두명이 가서 설렁탕 두개 주세여!! 아니면 세 명이 가서 두개 주세여! 그러면 설렁탕 집에서 안좋아 하겠죠? 따라서 그때는 세개를.
▶ "그로부터 각자 그의 먹을 입에 따라"는⇒ 먹을 사람 수에 따라, 라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부페에 갔습니다. 먹을 입에 따라는?
▶ "그로부터 각자 그의 먹을 입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양만큼 입니다.
그래서 그 둘째 줄은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각자 그의 먹을 입에 따라"
⇒ 오메르 머리에 따라 너희들의 목숨들의 수 따라서 여기는 부페가 아니라 설렁탕 집입니다. 부페는 먹을 만큼 담아라, 인데 여기는 머리 수에 따라..입니다
사람수에 따라 오메르의 숫자가 정해져 있는 겁니다.
한 오메르 : 1-2 리터( 페트 병, 하나)
따라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담는데, 페트병을 갖고가서 5인가족이라면 페트병 5개 갖고가서 담아오면 됩니다.
여기서 '각자' 라고 했는데 그 뒤에 연결해 보면
탈출 16,16 직역
그의 천막 안에 있는 이에 따라
따라서 천막이라는 것은 일종의 하나의 가정인데 그게 노예의 수까지도 포함이 되는 겁니다.
천막은? 가정이고, 성인 남자에 속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천막은? 본래의 히브리어의 일반적인 표현은 집안을 의미합니다.
야곱 집안, 야곱의 열두 아들, 그리고 그의 아내들 12 포함해서 24명+ 야곱과 그의 아내 합치면 26명 그의 딸린 종까지 합쳐지면 70명 혹은 72명까지로 늘어납니다.
(벹 야곱, 야곱의 집안)
비슷한 여기는 아직 집을 안지었으니까 천막 단위로 모으는데, 누가 와서 '우리 천막에는 일곱 명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페트병 일곱개를 갖고가서..
탈출 16,16 직역
"모아라 그리고 가져라."
⇒ 모아서 가지고 가라는 의미
17절이랑 18절이 재밌습니다.
탈출 16,17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게 하였다. 더러는 더 많이, 더러는 더 적게 거두어 들였다.
누구는 일인당 페트병 하나인데, 누구는 조금 더 담은 거에요. 또 누구는 좀 덜 담은 거에요. 그것을 18절에서 다시 한번 설명하는데,
탈출 16,18
그러나 오메르로 되어 보자,
더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
더 적게 거둔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요??? 부페가서 각각의 음식을 담은 거에요 그런데 다 똑같이 담아왔더라. 이런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거잖아여?
그래서 이 문장을 많은 주석학자들이 조금 이상하게 봤습니다. 두 가지로 해석이 나오는데
▶ 탈출 16,18 주석학자들의 해석 1⇒ 하느님의 개입
그들이 오메르로 재어보았더니 지나치게 많이 가진 사람도 없었고 지나치게 적게 가진 사람도 없었다.
이것은 행간에 어떤 사람은 많이 모았고 어떤 사람은 적게 가지고 갔는데 하느님이 개입하신 겁니다.
그래서 떡 5개 가져가라고 했는데 일곱개 가져간 사람은 집에 가서보니 5개 있더라. 세개만 집어온 사람은 집에서 보니 5개
▶ 탈출 16,18 주석학자들의 해석 2⇒ 신적개입이 아니라 인간적인 개입
그들이 오메르로 재어서, 지나치게 많이 가진 사람도 없게 하였고, 지나치게 적게 가진 사람도 없게 하였다.
지도자들이 개입해서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강의를 듣고 적을 수 있다는건 더 없는 기쁨이고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