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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스나이더( Gary Snyder) - 서부의 방랑시인
시선사 출판: [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 에서
序(prelude)
1930년 5월 8일 해럴드 스나이더와 로이스 사이에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곧 태평양의 북쪽으로 이주하여 위싱턴 주 시애틀 북쪽에서 작은 목장을 시작했다. 1945년 게리는 세인트 헬렌 산을 등정하였으며 1년후 등산클럽 마자마스(Mazamas)에 가입한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등산을 계속하고, 장거리 하이킹을 해왔다.
1947년 그는 링컨 고교를 졸업하고 리드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의 문학잡지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한다. 리드에 있는 동안 그는 동료 시인 필립 훼일런이나 류 웰치를 만난다. 1951년 스나이더는 영문학과 인류학의 학사학위를 받으며 졸업한다.
1951년 여름을 오리건 폭포의 동측에 있는 원 스프링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벌목공으로 일한다. 그 여름 작업을 마치고 그는 인디에나 대학까지 히치하이킹으로 가서는 거기서 인류학 대학원 과정을 공부한다.
1952년 봄까지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립 웨일런과 함께 살면서 생계를 위하여 잡다한 일을 했다. 1950년대 초반 동안 스나이더는 태평양 북부 연안의 숲과 산들을 자주 방문했다. 웜 스프링 목재 회사의 용원이나 산불 감시원으로 일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1953년에서 55년까지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동양어 학과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캠커스 곁의 작은 오두막에 살았다. 스나이더가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와 잭 캐루악(Jack Kerouac)을 만난 것은 버클리에 체류하고 있을 때였다.
1955년 10월 그는 긴즈버그와 생프란시스코의 식스 갤러리에서 시낭송회를 주최했다. 스나이더, 긴즈버그, 필립 레이먼셔(Philip Lamantia), 마이클 맥클루어(Michael McClure), 그리고 필립 훼일런이 있었고, 케니스 랙스롯(Kenneth Rexroth)이 행사의 마스터로서 공연을 했다. 1956년 초반기에 스나이더는 밀 벨리의 작은 오두막으로 은거하고 케루악도 나중에 여기 합류했다. 스나이더는 이 집을 일본말로 ‘말 오두막’(Horse Grove Hermitage)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풀뜯는 말이 있는 근처의 목초지 때문이었다.
1956년 5월 스나이더는 일본으로 떠나는데 불교사찰 쇼코쿠지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957년에서 1958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유조선의 엔진룸 청소부로 취직을 하게된다. 그리고 9개월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보낸 후 59년 초 교토의 대덕사로 오다 셋소 노사 밑에서 선을 공부하러 떠난다. 이 기간 동안 스나이더의 첫 시집이 교토에서 출판되어 배포된다.
1960년 존 카이거(Joanne Kyger)와 결혼한다. 1961년부터 62년초까지 이 부부는 스리랑카, 인도, 네팔을 여행한다. 그들은 뉴델리에서 앨런 긴즈버그와 합류하며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난 후 1964년 5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다. 1965년 스나이더와 카이거는 이혼을 하고 그해 10월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1967년 8월 6일 마사 우에하라와 결혼한다. 1968년 4월 스나이더의 첫아들 카이가 태어난다. 가족은 1968년 12월 일본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는다. 둘째 아들 겐이 1969년에 태어나고 스나이더는 두 아들, 아내, 친구들과 함께 네바다 시티 근처의 시에라내바다의 발치에 자리 잡는다. 학생들과 친구들과 함께 집을 지어 커킷디즈(Kirkitidizze)라고 이름 붙인다. 1989년 스나이더와 우에하라는 이혼한다.
그의 집 근처에서 마하야나 승가를 연다. 1970년대 스나이더의 집헛간에서 처음으로 집회가 열렸으며 1982년에 법당(zendo)이 지어지고 그리로 옮긴다. 키커디즈를 그의 기지로 삼고 스나이더는 낭송하고 토론하면서 넓게 여행을 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많은 여행을 했고 그의 강연여행은 1981년 호주에서도 있었다. 1982년에는 잉글랜드, 스웨덴, 스코틀랜드에도 갔다. 1990년에는 대만, 1992년에 스페인, 1995년 아일랜드, 1998년 그리스와 체코, 2000년 일본과 한국, 2002년 일본과 프랑스, 2003년 다시 일본으로 다녔다.
1991에 역시 일본계 이민 2세 캐럴 코다(Carole Koda)와 결혼하는데 키컷디즈의 형식대로 결혼했다. 그녀는 작가였고 이미 두 딸 미카(Mika)와 로빈(Robin)을 가지고 있었다. 1968년 스나이더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빗 캠퍼스의 교수가 된다. <자연과 문화>라는 프로그램을 창시하는데 한 몫을 하며 야생과 창작을 위한 모임인 <야생의 기술>이라는 조직을 주도했다. 학술원에서 스나이더를 데이빗캠퍼스의 최고 영예인 2,000 교수 연구 강사로 임명된다. 2,002년에 은퇴한다.
(1) 숲에서 얻은 영감
자연과 문학의 관계를 무어라고 정의 내려야 할까? 시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고대원시 사회의 제사와 관계된다. 그 사회의 우두머리는 바로 제사장이었고 제사의식을 더욱 엄숙히 하기 위하여 주술적인 시가 필요했고 노래가 필요했고 춤이 필요했다. 그 주술은 바로 무서운 자연, 즉 우주를 달래고 그 경외심을 표현하고 은혜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함으로 시의 시작은 바로 자연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옛 시나 중국, 일본에 있어서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바로 동양화에 표현된 자연이 그것인데 깊은 산과 굽이치는 물이 있고 거기에 한적하게 어우러진 노인이나 농부는 바로 자연 동화된 인간이다. 그들은 결코 자연에 적대적이지 않고 자연에 포근히 감싸인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거기에 반하여 19세기 서양에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연파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문명의 정신적 뿌리인 기독교 사상의 기본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이용할 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인간의 문명이 일어난 이래 자연은 끊임없이 파괴되어 왔으며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들은 인간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식탁을 풍성하게 해왔다. 원시시대의 그 무섭던 자연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에게 정복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그 속도가 가속화된 것은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다음부터이다. 사람들은 그 뛰어난 두뇌로 기계를 만들어내어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의술의 발달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인구는 자연에게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숲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그 속에 살던 무수한 생명체는 몰살되었다. 동화 [헨젤과 그래탤]에 나오는 무서운 숲은 이제 사라졌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던 풍성한 생명의 보고였으나 백인들이 상륙한 이후부터 파괴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반부터 그 속도가 가속화되었고 지금은 복구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가. 자연과 친숙하게 살아가던 원주민들은 수천만이 학살당했고 그것은 지금 그들의 원죄의식으로 남아 있다. 시이튼의 동물기, 헤밍웨이의 단편이나 쿠퍼의 소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소설 등에서 아메리카의 자연은 참으로 장엄하게 그려져 있으나 이제 그것은 거의 원형을 잃었다. 이 지역의 자연을 포함하여 지구상의 모든 자연이 회복불능의 지경이 되어서야 자연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고 문학에서는 생태문학이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고 되었다. 게리 스나이더는 이런 면에서 하나의 선각자요 실천가인 셈이다.
게리 스나이더는 1930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나 곧 이주하여 시애틀 북쪽 레이크 시티 근교의 농장에서 가난하면서도 자연에 있어서는 풍성한 소년기를 보냈다.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에 걸친 치열한 선 수행을 했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 중부 네바다시티 근처의 시애라네바다 산록에서 은거하고 있다. 그는 일생을 유랑자처럼 떠돌았고 그것은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그 영혼의 갈증에서 비롯된다. 대학을 마치고는 한때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매료되었고 그것은 뒤에 동양의 선불교에 깊이 몰두하는 한 계기가 된다. 이러한 시도는 서구의 물질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동양의 신비사상에 심취하여 티벳으로 네팔로 발길을 돌렸었던 1950년대 비트제너레이션의 움직임이다. 텁수륵한 얼굴과 긴 머리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허무한 표정으로 유랑하는 젋은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스나이더는 당시 미국 서부의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시인이였다.
그의 시를 특징짓는 첫 번쩨 요소는 숲에 대한 애착이다. 그가 성장했던 당시 시애틀 근처는 한창 사람들이 원시림들을 벌목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미국 태평양연안은 강수량이 풍부하여 숲이 생성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울창한 원시림이 한창 벌목되는 시기가 게리 스나이더의 소년기였고 아이러니칼하게 그 역시 나중에 벌목공, 산림감시원 등의 직업을 호구하며 숲의 생태를 더욱 잘 파악하게 된다. 그의 숲에 대한 애착은 태생적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는 부모가 허락하는 한 숲에 들어가 있기를 즐겨 했고 숲 속의 온갖 생명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를 즐겨했다. 말하자면 성자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에 흐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유랑 취미이다. 그는 젊은 시기에 거의 대부분을 유랑으로 보내고 지금은 시에라네바다산록에 은거하면서 틈만 나면 여행을 훌적 떠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그는 여행과 돈의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유조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패르시아 만까지 왕복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어쩔 수 없는 호기심과 유랑벽으로 모든 것을 떨치고 자신의 본능이 부르는 대로 살아 나갔던 그의 삶은 어떻게 생각하면 시인이 되기 위한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시선집 [무자연](No Nature)의 처음을 장식하는 [사워도 산의 전방대에서 8월 중순](“Mid-August at Sourdough Mountain Lookout”)에서 시인은 유랑자의 본색을 이렇게 드려낸다.
저 아래 골짝엔 자욱한 연기
닷새동안 장마 뒤, 무더위 사흘
전나무 솔방울에 송진은 빛나고
바위와 풀밭너머엔
새로운 파리 떼.
옛날에 읽었던 것들 생각나지 않고
몇 안 되는 친구들, 모두 도시에 있네.
양철 컵에 차가운 눈 마시며
높고 고요한 대기를 뚫고
저 아래 수 마일을 굽어보네.
Down valleys a smoke haze
Three days heat, after five days rain
Pitch glows on the fir-cornes
Across rocks and meadows
Swarms of new flies.
I cannot remember things I once read
A few friends, but they are in cities,
Drinking cold snow – water from a tin cup
Looking down for miles
Through high still air.
시애틀 근교에 있는 사워도 라는 이름의 산에서 시인은 아래를 내리다보고 있는데 그 정경이 우리에게도 몹시 낯익어 보인다. 옛날에 읽었던 책들이나 몇 되지 않는 친구들의 기억은 가마득한데 눈 녹인 물을 마시면서 고요한,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속진을 떨치고 산속에 사는 동양적인 은둔자의 모습이 아닌가. 이 시는 그가 살림 감시원으로 일하던 1950년대에 씌어진 것인데 한창 젊었을 그가 숲속을 뚫고 다니며 어느 산봉오리의 정상에서 허무한 표정으로 아래를 굽어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유랑 및 여행이 이 시인의 본능적 욕구라면 그것은 아마 야성에 대한 끝없는 동경 때문일 것이다. 스나이더는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농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북미의 북서태평양 연안에 있는 한 작은 농장에서 성장했는데 그 집 근처에는 연어가 가득한 퍼젯 사운드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시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은 유사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큰 숲 가운데 하나였던 숲에서 나무들이 목재용으로 끊임없이 잘려나가는 일이었다. 그 지역의 광대한 온대 우림은 가히 엄청난 규모의 생태학적, 식물학적 현상으로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해안에 있는 미국 삼나무들과 함께, 이 숲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들의 산지였다.
어린 스나이더는 당시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노동을 시작했고 그의 집안은 다른 농가의 집들보다 더 가난했다. 그리고 농장근처의 숲 속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았을 스나이더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어 했었던 어머니의 인도로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 했다. 문학과 자연세계를 동시에 접할 수 있었던 그의 유년기는 그의 문학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시기였던 것이다. 시애틀 근교에는 아직도 그 원시림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숲에 있는 것을 좋아하여 밤늦게까지 머물려 있고는 했다. 숲은 신선한 공기와 많은 시내와 온갖 생명체들을 품고 있는 생명의 보고이다. 다음의 시에서도 이 시인의 순박하고 천진한 일면이 보인다.
경사진 암반 위 햇살의 압력에 밀려
어질어질 껑충 껑충 뛰어내린다.
조약돌 깔린 물웅덩이가 노간주 그림자 속에서 소곤거리며
올해의 방울뱀 가는 혀를 날름거리는데
나는 돌 빛 조그만 또아리를 보고 깔깔대며 뛰었다 –
더위에 얻어맞고 팽팽한 암반에서 개울로 달려 내려오다
둥그런 벽 아래로 깊숲이 굴러 떨어져
머리와 어깨를 물속에 쳐밖았다.
자갈 위에 사지를 뻗었는데 – 귀가 울리고
추위로 몸이 쑤셔 눈을 뜨니, 눈앞에 송어 한 마리.
Pressure of sun on the rockside
Whirled me in dizzy hop-and-step descent,
Pool of pebbles buzzed in a Juni;per shadow,
Tiny tongue of a this-year rattlesnake flicked,
I leaped, laughing for little boulder-color coil-
Pounded by heat raced down the slabs to the creek
Deep tumbling under arching walls and stuck
Whole head and shoulders in the water;
Stretched full on cobble-ears roaring
Eyes open aching from the cold and faced a trout.
-[물](“Water”) 부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개구쟁이 시골 아이들처럼 어린 스나이더 역시 숲 속을 뛰어다니며 이러한 장난을 즐겼을 것이다. 햇살 뜨거운 여름날 더위에 지쳐 바위가 많은 계곡의 시냇가에서 놀다가 방울뱀을 만나고 놀란 아이는 뛰어 달아나다가 물속에 거꾸로 쳐박히고 한참후에 깨어난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스나이더라는 장인을 만나 얼마나 감칠맛 나게 변화하는지. 그의 시는 매우 사실적이다. 이 시에서 무슨 의미나 상징을 찾거나 하면 그 맛이 사라져 버린다. 오직 어린 시절의 경험을 그대로 씌어진 [산책](“A walk”) 이라는 시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요일, 우리가 일하지 않는 유일한 날;
노새는 풀밭에서 방귀를 뀌고
머피는 낚시를 하고
탠트는 따뜻한 아침 태양 아래
펄럭인다; 아침도 먹었으니
벤슨 호수까지
산보나 해야지. 점심을 꾸리고,
굿바이하고, 냇물의 바닥에 솟은 둥근 돌 위를
껑충거리며 암반 위를 3마일을 걸어
파유트 크릭에 도착했다 –
가파른 골짝, 방울뱀이 들끊는 빙하가 훓고 간 지역을
펄쩍 뛰어서, 웅덩이 곁에 착지하는데, 송어가 잽싸게 헤엄친다.
투명한 하늘. 사슴의 길
폭포 곁의 재수없는 곳, 집채처럼 큰 바위들,
점심을 허리끈에 묶고,
위틈을 버티고 오르다가 거의 떨어질 뻔 하지만
바위 선반에 안전하게 굴러 내려
천천히 기어오른다.
매추리 새끼들아 내 발밑에 돌 빛으로, 어어붙어 있다가
삐악거리며 달아난다! 멀리서 어미 매추리가 호들갑이다.
Sunday the only day we don’t work
Mules farting around the meadow,
Murphy fishing,
The tent flaps in the warm
Early sun : I’ve eaten breakfast and I’ll
take a walk
To Benson Lake, Packed a lunch,
Good bye. Hopping on creeked boulders
Up the rock throat three miles
Piute creek –
In steep gorge glacier – slick rattle snake country
Jump, land by a pool, trout skitter,
The clear sky. Deer tracks.
Bad place by a falls, boulders big as houses,
Lunch tied to belt,
I stemmed up a crack and almost fell
But rolled out sage on a ledge
and ambled on.
Quail chicks freeze underfoot, color of stone
Then run cheep! away, hen quail fussing.
<부분>
이 시에서도 스나이더는 자신의 경험을 그냥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그 장난기와 기쁨이다. 숲에 동화된 그에게 모든 자연물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어서 그는 자신의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방귀를 뀌는 노새조차, 찬 눈길로 어루만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 묘사된 스나이더는 얼마나 발길 가벼운 건강한 청년인가. 앞의 시에서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참으로 건강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스나이더는 1947년 포틀랜드의 리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되는데 이 무렾인 열일곱 살에 미국야생지협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오리건 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마자마스라는 이름의 산악회에 가입했다. 앞의 시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그는 산악인이 되어 미국 서부의 험악한 산들을 거의 대부분 오르내리며 대자연을 호흡하게 된다. 대학을 마친 1952년부터는 또 철따라 일하며 가끔은 벌목작업도 하는 삼림 관리인이 되었다. 즉 야생지의 보호가 되어 몇 년 동안 산과 숲에서 일하며, 미 서부의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것은 그가 50년 말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의 경험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에게 있어 자연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였으며 자연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갔다.
화강암 산등성이나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충분하리라.
아니면 바위나 작은 시내,
웅덩이 안에 잠긴 나무껍질의 조각만으로도,
첩첩이 표개어져 꿈틀거리는 산 너머 산
가는 돌 사이로
단단한 나무들 밀집해 있고
그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이 너무 밝다.
마음이 방황하는 이,
백만 번 반복되는
여름, 밤공기는 고요하고
바위는 따뜻하다. 산을 덮고 있는 가없는 하늘,
인간 세상의 모든 잡념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바위 흔들린다
이 무거운 순간도 가슴의 거품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말과 책들은
건조한 공기 속으로 증발하는,
절벽 끝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 같다.
One granite ridge
A tree, would be enough
Or even a rock, a small creek,
A bark shred in a pool.
Hill beyond hill, folded and twisted
Tough trees crammed
In thin stone fractures
A huge moon on it all, is too much.
the mind wanders. A million
Summers, night air still and the rocks
Warm. Sky over endless mountains.
all the junk that goes with being human
Drops away, hard rock wavers
Even the heavy present seems to fail
This bubbled of a heart.
Words a small creek off a high ledge
Gone in the dry air.
-[파유트 크맄](“Piute Creek”) 부분
자연은 무언의 스승이다. 이것은 높고 장엄한 산봉오리를 보거나 적요한 호수를 바라볼 때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격동이다. 산의 한 자락에서 그는 지금 바위와 달과 계곡물을 보고 있는데 그 자연은 영원불변의 생명체여서 수벡 만년 밤공기는 고요하고 한낮의 햇살에 데워진 따스한 상태로 존재해 있다. 그리고 그 무한한 산들을 덮고 있는 것은 역시 광대무변한 하늘이다. 그리고 그는 이 무한한 자연에 비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목숨을 ‘거품 같은 생명’ 이라고 표현한다. 이 영원무변한 자연속을 거닐며 그는 생각에 잠겨있다. 인간의 하찮은 지식이나 언변이 이 영원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슨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들이 영겁을 놓고 볼 때 사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이러한 시들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천성이 동양적인것에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앞의 시에서 그가 원한 보름달에 감탄한 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에서 인류하을 공부하며 인디언 문화에 관심을 집중했던 점이나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선불교에 깊이 탐닉했던 점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그의 천성이 동양적임을 말해준다. 자연물에 대한 경외와 감탄은 [페이드 벨리 위에서](“Above Pate Valley”)라는 시에서도 보인다. 여기서의 스나이더는 벌목공 겸 산림감시인의 신분이다. 정오쯤에 산길을 따라 산의 시내를 따라 2천마일을 걸었다. 그것은 그의 생업이다. 그리고 작은 소나무의 숲을 지난 뒤 스나이더는 눈 녹은 물에 의해 유지되는 초록색 초원을 만나고 거기서 태양이 곧게 떠서 반짝이고 그러나 공기는 차가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거기서 그는 무릎을 꿇고 작은 광석 하나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여름 외에는 늘 눈으로 덮인 이 고산지대에서 흩어져 있는 보잘것 없는 돌이다. 그러나 이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을 지탱하고 우주의 균형을 맞추지 않는가.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취’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의 자취와 사슴의 자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리들의 자취, 스나이더는 자신의 자취를 따라온 것이다. 드릴과 곡갱이를 집어 드는 것은 생화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수 만년동안 여러 생을 거듭하면서 습관적으로 해온,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벌목공의 몸으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전생의 무수한 인연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성을 추구하던 그에게 있어 인락하지만 바쁘고 경쟁적인 도회지 생활이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숲 속에서의 한적한 생활의 단면은 [늑색 벨리](“Nooksack Valley”)란 시에서 볼 수 있다.
북으로 가는 여정의 저 끝에
딸기 따는 이들의 초막에서
숲과 구름 덮인 산맥까지 뻗어 있는
넓은 진흙의 들판 가장자리에서,
오후 내내 전나무 삭정이로 스토브를 지퍼며,
어두운 하늘이 더 어두워지는 것과, 황새가 퍼덕이며 지나는 것을 본다.
몸집 큰 사냥개는 먼지투성이 움막에서 낮잠이 들었다.
두 번째 자셍힌 슾의 높이 서서 썩어가는 그루터기들
눅색 강의 계곡에 납작하게 흩어진 농가들.
At the far end of a trip north
In a berry-pickers cabin
At the ridge of a wide muddy field
Stretching to the woods and cloudy mountains,
Feeding the stove all afternoon with cedar,
Watching the dark sky darken, a heron flap by,
A huge setter pup nap on the dusty cot.
High rotten stumps in the second-crowth woods
Flat scattered farms in the bends of the Nooksack
Ri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