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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5 일요가족법회 지안큰스님 법문 전문
오늘이 2021년도 마지막 일요가족법회입니다. 며칠 전에 제 방에 있는 달력을 넘기다 보니 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이 문득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의 잎새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입니다. 계절로는 겨울이 다가와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금년도 일을 잘 돌아보시고 일상생활을 잘 해 나가시면서 신행생활을 더욱 더 착실히 해 나갔으면 합니다.
사람 사는 것이 참으로 묘합니다. 무엇이 묘한가 예를 들면...
반야암에 며칠 전에 공양간 단청을 새로 하면서 그동안 심어놓았던 나무를 다 베어 정리하였습니다. 여러 날 동안 설파거사가 일하는 사람들을 오게 하여 베어냈습니다. 나무를 베어내고 나니 다들 “시원해서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신경 상좌도 “나무를 베어내고 나니 시원해서 좋다.”고 하였습니다. 반야암은 1999년에 짓기 시작하여 올해로 만 22년이 되었는데 해마다 나무를 부지런히 사다가 심었습니다. 나무를 사다가 심는 비용이 오랜 기간 거쳐서 약 2,000 여 만원이 들었는데 나무를 베어내는 데에도 비용이 약 200 여 만원이 들었습니다. 한 때 열심히 사다가 심었는데 때가 되니 또 베어내야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다 심는데에도 비용이 들고 베어내는 데에도 소액이지만 비용이 들었으나 분위기를 바꿔보니 저도 오히려 ‘나무를 잘 베어 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이렇듯 한 때는 열심히 모으다가 한 때는 또 덜어내는 일도 인생살이의 미묘한 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이 일상생활은 누구나 다 자기 마음 쓰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을 쓰고 산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쓰고 사는 겁니다. 불교는 마음을 쓸 때 세 가지의 마음 쓰는 비법을 일러 줍니다.
첫째는 深心(심심)입니다. 깊은 마음을 쓰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쓰고 살아갈 때 이 마음 씀씀이를 좀 더 깊게 쓰라는 것입니다. 5~6년 전 제가 직지사에서 한문 불전 대학원 강의를 3년 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저께 그 때 공부하던 신도님 한 분이 찾아오셔서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별 것 아닌 말을 듣고 감동을 받고 이 분이 참으로 마음을 깊게 쓰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반야암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신도분 자제나 주위 고등학생을 상대로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번 울산 사는 학생이 받았는데 그 학생 부모님들도 절에 열심히 오시는 분들로 그 학생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하여 지금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여 제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온 일이 있었고, 첫 월급을 받아서 어머니 편으로 제게 얼마간의 돈을 보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엽서에 적어서 신문상좌에게 주었더니 신문상좌가 신도분께 엽서를 부쳐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 때 그 신도분께서 『法華經(법화경)』 경전 책 속에 그 엽서를 넣어 놓고 부치는 것을 깜빡 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2년 후 『法華經(법화경)』 책을 보다가 부쳐달라고 부탁받은 엽서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고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아들과 함께 김천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갔다고 합니다. 엽서를 직접 전하며 늦게 전해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과대학을 직접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경비에게 엽서를 전해 주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며 엽서를 받았다면 받았다고 전화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엽서를 잘 받았다는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엽서 한 장 부처달라고 부탁을 받고 잊어버렸다가 그 엽서를 전해 주려고 엽서를 들고 서울까지 가서 늦게 전해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려고 간 마음! 그 이야기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전에 서울의 봉은사에 법문을 해달라는 청을 받고 갔습니다. 주지스님을 잘 알고 있어서 『維摩經(유마경)』이 나왔던 때라 상좌에게 부탁하여 책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주지스님께서 “스님 책이 나와서 사봐야 겠습니다.”라고 하시었습니다. “제가 책을 보내드렸는데 못받으셨는지요?”라 하니 “못받았습니다.”라 하시었습니다. 몇 달 뒤에 보니 구석에 제가 부치라던 책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부치라던 말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엽서 한 장 전해주려고 김천에서 서울대학교까지 찾아간 분은 얼마나 깊은 마음을 쓰신 것입니까? 일상 생활에 이런 마음을 지니고 살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智心(지심)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쓰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밝은 마음입니다. 남이 나한테 못하고 서운하게 하더라도 기분 나쁜 마음, 속상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밝은 마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잘난 체 하지 말고 항상 남에게 친화력을 발휘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얼굴 표정이 남에게 좋게 전달되면 좋은 것처럼 ‘얼굴이 좋아보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안 좋아 보인다’는 것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밝은 마음에서 친화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悲心(비심)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을 쓰라는 것입니다. 남의 처지를 이해해주라는 것입니다. 남이 내 뜻과 다르게 생각하고 어긋나는 행동을 하더라도 남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서 동정하고 이해해주는 마음을 悲心(비심)이라 합니다.
불교를 수행할 때에는 三心(삼심 - 深心·智心·悲心)을 개발해야 합니다. 세 가지 마음 - 깊은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 즉 친화력을 가지는 밝은 마음과 남을 이해해주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세 가지 마음이 개발되는 것을 ‘삼심개발(三心 開發)’이라 말합니다.
柳眉風動心搖樹(류미풍동심요수)하니
버들 눈썹 바람 부니 마음 가지 흔들리고
谷谷雲生性起塵(곡곡운생성기진)이로다
골마다 구름 생겨 마음 거울 먼지 앉네
莫把頭頭看外事(막파두두간외사)하고
이것 저것 붙잡아 밖에 일로 보지 말게
須知萬像屬眞人(수지만상속진인)이로다
삼라만상 낱낱이 내 얼굴 그대로세
이 시는 조선조 후기 화엄대가로 알려진 묵암최눌(默菴最訥: 1717~1790)스님이 지은 시입니다. 이 게송이 마음에 들어서 반야암 카페에 올렸다가 오늘 한 번 소개해 드립니다.
柳眉風動心搖樹(류미풍동심요수)하니
겨울이 되어도 버드나무도 있고 매화도 벌써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매화는 겨울의 시작과 동시에 가지에 움이 트는 식물입니다. 겨울 바람이 불어오니 柳眉 -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린다는 말입니다. 내가 눈으로 나뭇가지를 보니 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의미는 - 육조스님 법문에 나오듯이 -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단풍이 들어 빨간 색이 보인다는 것은 내 마음이 빨갛게 물든 것입니다.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보이는 것은 내 마음이 노랗게 물든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이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보고 보여지는 대상이 이렇다 저렇다 분별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불교 공부가 깊어질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느껴져야 합니다.
谷谷雲生性起塵(곡곡운생성기진)이로다
谷谷(곡곡)은 마음 골짜기입니다. 谷谷雲生(곡곡운생)은 마음 골짜기에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자성 깊은 자리에 먼지가 앉게 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자체가 나의 본래 청정한 마음에 먼지가 앉는다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유하면 거울이 본래 깨끗한데 오래 되면 먼지가 끼듯이 마음 거울에 영상이 비춰지는 것을 먼지가 앉는다 했습니다. 이 시가 마음에 든다고 느꼈던 구절입니다.
莫把頭頭看外事(막파두두간외사)하고
頭頭(두두)는 이 세상 삼라만상을 가르키는 頭頭物物(두두물물)의 頭頭(두두)입니다. 즉 외부 경계에 나타난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경계를 말합니다. 頭頭(두두)를 밖에 있는 일이라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객관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관이 없는데 객관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내 마음 속의 일인데 내 마음 속에 나와는 관계없이 별도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화엄 대의가 녹아있는 법문입니다.
須知萬像屬眞人(수지만상속진인)이로다
萬像(만상), 즉 이 세상 모든 것이 眞人(진인) - 참사람에 속해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깨달은 마음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의 ‘我(아)’가 眞人(진인)입니다. 임제선사가 말씀하신 ‘無位眞人(무위진인)’의 眞人(진인)입니다. 眞人(진인)은 ‘너’‘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이 서로 나누어 있을 때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하여 自他(자타)가 분리되지만 萬像(만상)이 전부 眞人(진인)에 속하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인 줄 알게 되는데 이를 ‘大我(대아)’라 하는데 요즘 말로 ‘宇宙我(우주아)’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 근본 자리가 眞我(진아)인데 이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萬物(만물)이 전부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또는 歸(귀) -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묵암최눌(默菴最訥: 1717~1790)스님이 『華嚴經(화엄경)』 대의를 여섯 자로 간추려 내어서 ‘統萬法歸一心(통만법귀일심)’이라 하셨습니다. 歸 대신 明을 쓰기도 합니다. 만법을 통합하여 한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깊은 법문을 통해서 내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절에 오는 것은 좋은 시간과 좋은 장소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인연입니다. 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정지역이고 공기가 제일 맑은 지역입니다. 절에 와있는 시간에는 잡다한 번뇌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절에 오면 참배도 하고 염불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천황사의 두 스님께서 오시어 염불해주시는데 천황사 주지스님 염불은 문화재급 염불입니다. 앞으로 천황사 주지스님은 염불로써 문화재가 되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도님 집에 초상이 났을 때 염불해주러 가는 것을‘시다림(屍多林)’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풍습으로 사람이 돌아가셨을 때, 혹은 임종 시에 염불을 해주면 좋다고 하여 생긴 것이 시다림(屍多林)’입니다. 『往生集(왕생집)』 등의 설화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염불 들으면 좋은 것입니다. ‘시다림(屍多林)’은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에서 유래된 말로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숲에다 버렸기 때문에 그 숲 속에 시체가 많이 버려져 있다는 뜻으로 ‘시다림(屍多林)’이 된 것으로 이것을 ‘風葬(풍장)’이라고도 합니다. 보통은 ‘埋葬(매장 – 시신을 땅에 묻는 것)’을 많이 하는데 이는 ‘土葬(토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水葬(수장 – 시신을 물에 묻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도 신라 문무대왕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져서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風葬(풍장)’은 시체를 밖에 두어 저절로 썩게 하는 것으로 티벳불교에서 많아 행해졌습니다. ‘風葬(풍장)’과 비슷한 것으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산의 바위에 시신을 두면 새들이 와서 시신을 먹습니다. 이것을 ‘鳥葬(조장)’이라 합니다. 시신을 태우는 것을 ‘火葬(화장)’이라 합니다.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에도 地水火風(지수화풍)의 사대에 따라 ‘土葬(토장)’도 있고, 水葬(수장 )’도 있고, ‘火葬(화장)’도 있고, ‘風葬(풍장)’도 있으며 ‘鳥葬(조장)’도 있습니다. ‘시다림(屍多林)’ 염불을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이 큰 공부요, 수행입니다. 알음알이 가지고 교리 공부도 물론 해야 하지만 마음이 맑아지도록 하고 고요해지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수행이고 공부입니다. 절에 와서 절도 하고, 염불도 듣고, 식견을 넓히기 위해서 법문을 듣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 인생에 대해 새롭게 생각 해보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이 불자들이 일상의 신행경계가 모범적으로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어깨를 다친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인생 교훈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아파도 살아있는 것이 좋습니다. “스님 다행이십니다. 다리가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오른쪽이 아니고 왼쪽이니 다행이십니다.”라고 위로를 하십니다. 아파도 나을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워도 살아있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죽었다고 해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서 괴로워 하던 사람은 죽어도 괴로워 합니다. 불교를 깊이 공부해야 이해되는 겁니다. 자살해 죽으면 더 괴로워집니다. 靈駕(영가)를 意生身(의생신)이라 하는데 살아있을 때 통증이 심해져 죽은 영가는 육체적으로 감각상 통증은 사라지지만 意生身(의생신)에게 그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죽어서도 별 볼 일 없고, 살아서 별 볼 일 있는 사람은 죽어서도 별 볼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농담 같지만 다 뜻이 있는 말이니까 괴로워도 너무 탄식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自虐(자학)하지 말고 항상 밝은 마음 쓰고, 깊은 마음 쓰고,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쓰면서 좀 더 이 세상을 친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저주가 아닌 세상은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이웃도 되도록 친하게 협동정신을 발휘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듯이 친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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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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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알음알이를 통해 지각이 생기니 알음알이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소홀히 하면 안됨니다.
기복 신행도 꼭 필요한 수행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성불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_()()()_
잘 새기겠습니다 _()_
깊어가는 겨울에 향기로운 법문 잘 들었습니다.
深心·智心·悲心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뭇잎 떨어지고 실상본체가 적나라하고 깨끗하게
드러나는 겨울철 오전에 마음거울을 수정같이 닦고 싶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꼼꼼히 읽고 깊은 울림을 전해주시는 보살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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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복습 ㅋ 땡큐 입니다.()
하하
늘 유퇘하게 해주시는 보살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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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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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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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