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를 찾아서...>
맨발에 느껴지는 빳빳한 풀잎의 감촉, 바람을 가르는 목
검의 소리, 두칸 남짓한 작은 불당안에서 들려오는 노스님
의 목탁소리, 산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 내 뺨
에 살포시 내려 앉는 햇살과 향긋한 아카시아 냄새.... 이
모든 것들을 난 사랑한다. 질리게 반복되는 일상일지라도
이 모든 것은 내게 오히려 새로운 감각을 선사해준다.
'타앗.... 타앗....타앗...' 목검이 허공을 내리긋는 소
리를 들으며 짧은 기합소리를 내지른다.
'핫! 핫! 핫!'
언제 부터였지? 아마도 내가 7살 때였던 거 같다. 3년전
까지만 해도 겨울이 오면, 겨울 동안 지내기 위해 '덕암
사'에 계시는 '지인 스님'이 찾아 오시곤 하셨다. 다른 암
자도 많은데.. 그 스님은 가장 추운 겨울 2개월간 이곳 암
자에서 지내다 가신곤 했다. 그때, 목검을 다루는 법을 그
스님께 배웠다.
스님은 뼛 속까지 얼려 버릴것 같은 추위에도 아
랑곳 하지않고, 늘 아침 공양을 하고 불경을 외신뒤에는
맨발로 암자 뜰로 나와 이렇게 목검을 휘두르곤 하셨다.
어느날, 눈이 무릎 팍까지 내려 앞조차 볼 수 없는 날에도
여전히 목검을 휘두르는 '지인 스님'께 난 물었다.
"스님, 발이 시렵지 않으세요?"
두꺼운 털 고무신을 신은 나에게도 눈이 쌓인 땅의 한기는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스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그래, 발이 아주 시렵구나." 하셨다.
"그런데, 왜 이러구 계세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난 스님의 팔목을 붙잡고, 암자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
다. 그러자 스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이것도 고행이란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힘들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지.. 그것이 나를
위해서든..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든 말이다."
그 당시, 그 말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사실 지
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어렴풋이 윤곽만을 잡을 뿐..
'지인 스님'은 3년 전, 그러니까 내가 14살 되던 해, 커다
람 불길과 함께 사라지셨다.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
지 몰랐던 내게, 커다란 불꽃은 아름다운 火舞와 같았다.
노스님의 손에 이끌려, 큰절에서 보았던 불꽃은 '지인스
님'의 육신을 불태워 간 것이다. 그 아름다운 불꽃은 그
렇게 내게 죽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아픔으로......
"수하야.."
노스님의 음성에 깜짝 놀라,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노스
님이 옆에서 걱정스러운듯이 내 손목을 잡으며 황망한 눈
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네..스님"
*****************
어두운 동굴 안,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행렬이 좁고 음
침한 동굴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그 행렬이 멈춘 곳은
좁았던 길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넓은 석실이다. 양 쪽으로
천장까지 닿게 늘어선 기둥들은 저마다 각기 이상한 문자
들로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행렬은 둘로 나누어져 그 기둥
을 따라 커다란 제단이 있는 곳에 이른다. 제단의 위로 커
다란 황금빛의 태양이 걸려있고, 그 앞으로는 새하얀 로브
에 제단 위에 걸린 황금빛 태양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가운을 입은 한 사람이 서있었다.
"자! 이제 때가 왔도다!"
하얀 가운을 입은 자가 입을 열자, 앞줄에 늘어서있던,
사람들이 한 입이 되어 외친다.
"라센!!"
"자, 여기 우리 '라센'의 자식들이 모였다.
진정한 '라센'의 자식으로 우리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힘이 있고, 우리는 신의 대리인으로 책
임을 져야할 자들이다."
"오! 라센이여"
또다시 검은 로브의 무리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자.
하얀 로브를 입은 자가 앞으로 걸어나온다. 그자는 로브
속에 손을 넣어 팔뚝길이 정도의 반짝이는 검을 꺼내든다.
"이제 시작한다. 불새를...
'라센'의 사생아인 불새를 '라센'의 뜻에 따라 소멸로
이끌 의식을..."
하얀 로브의 말이 끝내고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들어
제단위에 내리꽂았다. 이와 동시에 양 쪽으로 서 있던 검
은 로브의 사람들이 일제히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문을 외는 자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을 즘, 제단 위로 희미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싶더니, 작은 구가 형성되면서 점차 사람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형상이 뚜렷해지자 하얀 로브가 차가운 미소
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제..찾았군"
하얀 로브가 다가가 제단 위로 생겨난 사람을 잡으려 할
때 갑자기 다른 사람의 손이 나타나 그자를 낚아채갔다.
"아!...이게...이게 어찌 된건가?"
석실안의 사람들은 하얀 로브의 목소리에 놀라 모두 주문
을 멈추고 제단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분노에 이를 가는
하얀로브의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
"스님?.... 왜 그러세요?"
'이런...이 아이가....'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 어느날 밤, 유난히 산이 시끄럽
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예전에 없던 기이한 현상에 나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뭔가 일어날 듯이
마치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별들이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어디선가 붉은 줄기가 그어지며, 그것이 산으로 떨어졌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그것이 떨어진 곳으로 어두운 숲길
을 달빛에 의지해 다가갔다.
얼마나 갔을까? 나무가지 사이로 건너편에서 붉은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불빛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
다.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찼지만, 내 몸은 내 의지
를 거스르며, 그 붉은 빛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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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들군요...^^;
이거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아무도 관심 없는데, 나만 혼자서 속이 타서
새까매지는지....아~~ 걱정입니다.
(이거 쓰다가 학교 선배한테 들켰답니다.^^;
한마디 하더군요. "너 왜그러니? 정신차려"
카페 게시글
자유 기고란
<'불새'를 찾아서..> 3화
ca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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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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