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아는 것도 지혜이련만
진정한 슬기란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자 힘이 있겠지만
자신을 이겨야만 진정한 강자이다.
(33장)
흔히 공부라면 늘 채우려 들지만
실제 공부는 매일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내어야 한다.
(48장)
공부란 무엇인가. 실상은 나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하면서, 나 아닌 것들에 헛된 관심과 흥미만 기울이며 공부한답시고 앉아있진 않는가.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 실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무감어수 감어인, 물에 나를 비춰보지 말고, 사람에 나를 비춰보라(묵자)”라는 말이 또 떠오른다. 진짜 공부는 책 읽고, 책에 있는 지식을 머리에 옮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 나를 보고, 내 헛된 욕망과 작위를 매일 떨쳐버리는 것 아닐까.
천재들은 도를 들으면 힘써 실천하려 하고,
중간치들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며,
천치들은 도를 들으면 오히려 비웃는다.
(41장)
공부하면서도 왜 삶은 쉬이 달라지지 않는가? 겉으로는 공부했다 말하고 속으로도 그렇게 되뇌며 그리 믿고선, 실제 속마음은 긴가민가했거나 비웃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진정 도를 안다면, 진정 배웠다면 힘써 실천해도 모자란 것이거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여린 것이 늘 가장 억센 것보다 앞서 달린다.
(...)
말 없는 가르침과 작위 없는 유익함,
이를 잘 실천하는 이 드물다.
(43장)
아주 곧은 것은 오히려 굽은 듯이 보이고,
뛰어난 기술은 되레 서툴게 보이며,
큰 웅변은 어눌하다.
(45장)
얼마 전 읽은 김훈 작가의 에세이가 생각났다. 강력한 태풍이 지나가는데, 나뭇가지와 동물들의 털로 만든 새 둥지는 멀쩡하고, 인간이 굳게 세운 건축물은 쓰러지는 사실을 관찰하고 쓴 글이었다. 그 둘 사이에 있는 과학적인 이유에 대해선 무지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들, 이름 붙여진 것들에 쉽게 현혹되고 허상을 근거 삼아 쉽게 판단하는 편견에 대해선 생각해봐야겠다.
바지런히 움직이면 추위가 달아나고,
조용히 가만있으면 더위가 수그러든다.
맑고 고요한 것이 하늘의 바른 이치이다.
(45장)
하늘의 바른 이치가 머릿속 관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가 우리 삶 곳곳에 깃들어있다. 그 이치를 바로 알고, 그대로 사는 건 오늘의 선택에 달렸다.
아침-밤 기온 쌀쌀한 계절이 왔다. 아침을 깨우는 건 힘들고, 깨지 않는 몸 일으켜 운동하긴 더더욱 힘들다. 그렇게 일어나 운동하는 것이 몸과 정신에 더 유익한 일임을 때때로 고백하면서 말이다. 하늘의 이치는 맑고 고요하며 간명하다. 흐린 건 내 약함이고, 관성에 젖어 사는 내 옛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