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렌시아 주에 들어서다
25.5Km / 7H 30M
까스뜨로헤리스의 출구는 오르막길인 모스뗄라레스 언덕으로 이어집니다. 이 언덕은 까스뜨로헤리스에서 멀지만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겁에 질리게 합니다. 자전거 순례자들은 해발 940미터의 가파른 오르막을 피하려면 까스뜨리요 마따후디오스(Castrillo Matajudíos)로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까스뜨리요 마따후디오스라는 지명은 ‘유태인들을 죽인 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오르막길만 무사히 잘 넘는다면 열일곱 번째 날의 여정은 목적지인 프로미스따까지 평탄한 길이므로 26킬로미터의 거리도 큰 무리를 주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 루트는 산띠아고로 향하는 까미노와 까스띠야의 운하가 합쳐지는 곳이며 부르고스에서 빨렌시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모스뗄라레스 언덕을 내려 가다보면
삐오호 샘터를 만납니다. 이곳에서 시원한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부르고스와 빨렌시아를 구분 지어주는 삐수에르가 강 주위의 뿌엔떼 이떼로에 가기 전 순례자는 성 니꼴라스 성당을 들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에는 이탈리아 수도회인 성 야고보 형제회가 있는데 이들은 산띠아고 순례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세시대의 전통을 지켜가며 순례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접대합니다. 띠에라 데 깜뽀스는 외로움과 호젓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거대한 밀밭의 평원입니다. 또한 이떼로 데 라 베가에서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8킬로미터가 넘게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의 지평선을 감상 할 수 있습니다.
< 까스띠야 운하 >
까스띠야 운하를 만나면
띠에라 데 깜뽀스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중세의 도시인 프로미스따에 도착한 것입니다. 까스뜨로헤리스를 나오기 위해서는 산 후안 성당을 지나, 두 개의 도로를 건너야 합니다. 이어서 밭 사이로 흐르는 오드리야 강을 건너기 위해서 나무다리를 건넙니다. 바로 뒤에 짧지만 경사가 지고 돌이 많으며 큰 고랑이 있는 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 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열일곱 번째 여정의 가장 힘든 구간인 모스뗄라레스 언덕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언덕의 정상까지는 오드리야 강의 다리에서 약 1.5킬로미터 정도지만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충분히 체력을 안배하며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발 940미터의 모스떼라레스 언덕 정상은 나무가 거의 없는 메세타 지역입니다. 약 500미터 정도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십자가상이 보이며 조금 더 가면 까미노의 왼쪽에 차가운 샘물로 순례자의 피로를 씻겨줄 삐오호 샘을 만나게 됩니다. 샘터에서 휴식을 가진 뒤 오른쪽으로 돌아 약 1킬로미터 정도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뿌엔떼 피떼로로 가는 까미노가 보입니다.
이탈리아 페루자의 성 야고보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성 니꼴라스 성당을 지나면
‘시작하는 사람들의 다리’라고도 알려진 돌다리를 넘게 됩니다. 그리고 버드나무 숲 사이를 흐르는 삐수에르가 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제 순례자는 감춰진 보물들의 지방 빨렌시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다리를 건너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이떼로 데 라 베가에 다다릅니다. 마을을 관통하는 마르께스 데 에스뜨레야 거리를 지나면 마을 끝자락의 오른쪽에 샘터가 나오고 여기에서 순례자는 조심해서 자동차 도로를 건너야 합니다.
이제 눈앞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밀밭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순례자는 인적 없는 조그만 마을인 뽐뻬드라사를 지나 삐수에르가 운하를 만나게 됩니다. 운하를 지나 광활한 띠에라 데 깜뽀스를 지나다 보면 멀리 보아디야 델 까미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작은 구릉들과 언덕의 굴곡이 끝나고 마침내 지평선까지 멀리 뻗어있는 평원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레온까지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은 한겨울의 세찬 눈보라와 여름의 지독한 태양의 뜨거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13세기에는 3개의 성당과 2개의 병원이 있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마을인 보아디야 델 까미노는 현재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성모 승천 성당과 같은 시대 플랑드르 양식을 보여주는 ‘심판의 기둥’으로 불리는 원주탑이 유명합니다. 마을을 나서면 길게 뻗어있는 까스띠야 운하를 따라 걷게 됩니다. 이 길은 검정 버드나무가 아름다우며 5킬로미터 정도 걷다보면 다른 여행기에서 많이 보았던 시원한 수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열일곱 번째 여정의 목적지인 프로미스따에 도착한 것입니다.
프로미스따는 매력적인 중세의 유적들과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살아있는 도시입니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드넓은 밀밭으로 인해 중세부터 스페인 농경의 중심지였으며 도시의 이름도 곡식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미스따는 11세기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빛나는 건축물인 성 마르띤 성당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또한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고딕양식의 성당인 성 뻬드로 성당과 순례자 병원이 있는 광장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느긋이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빨렌시아 PALENCIA
프랑스 출신의 낭만주의 여행가 다빌리에 남작은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경로에 포함이 안 되어 있을뿐더러 감춰진 보물들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이 있다. 빨렌시아는 그런 지방 중 하나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빨렌시아는 스페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 중 하나로 다른 지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빨렌시아와 이웃해 있는 깐따브리아(Cantabria) 경계에는 높은 산이 있습니다. 이곳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삐꼬스 데 에우로빠(Picos de Europa) 산을 바라보는 삐에드라슬루엔가의 전망대, 푸엔떼스 데 까리온(Fuentes de Carrion) 주위의 해발 2,400미터가 넘는 산들, 오래된 송백나무 숲이 있는 떼헤다 데 또산데(Tejeda de Tosande) 등 자연의 박진감 넘치는 매력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라스 뚜에르세스와 꼬발라구아처럼 변덕스럽게 오르내리는 석회암 지대에는 사슴, 노루, 여우, 늑대, 살쾡이, 독수리, 황갈색 곰 등이 살고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뻬르니아 계곡에는 띠에라 데 깜뽀스 방향으로 조금씩 물이 흐르는 저수지들도 많습니다. 띠에라 데 깜뽀스는 곡식을 재배하는 넓은 평원입니다. 마을의 교회와 수도원의 늘씬한 탑만이 이곳의 단조로운 풍경에 변화를 줄 뿐입니다. 이 광대한 황무지엔 라 나바 호수 같은 생태학적 보물과 18세기의 놀라운 토목공사가 이뤄낸 까스띠야 수로의 지류가 있습니다.
<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의 블랑까 성모 성당 >
빨렌시아의 까미노를 지나다 보면 수많은 역사적 유물과 오랜 시간에 걸쳐 생성된 다양한 예술 양식을 만나게 됩니다. 비야 데 라 올메아다에는 아낄레스의 황홀한 모자이크가 남아 로마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데, 이 모자이크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모자이크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지방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변천된 건축물들도 풍성하게 남아 있습니다. 프로미스따의 성 마르띤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선과 정교한 부조,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의 산따 마리아 라 블랑까 성당의 아름다운 아치, 비야 무리엘의 산따 마리아 라 마요르 성당 등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양식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건축의 진짜 보물들은 평범한 마을에 숨어 있습니다. 특이한 모양의 비둘기 집, 굴을 파서 만든 포도주 창고, 목동들의 오두막, 아케이드가 있는 길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벽돌로 쌓은 벽과 목재로 만든 발코니가 예쁘게 꾸며진 가정집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마요르 길, 마요르 광장의 모퉁이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여러 성당들과 ‘미지의 아름다움’(La Bella Desconocida)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대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 까리온의 만떼까다 >
빨렌시아 또한 스페인 지방의 멋들어진 맛집을 그냥 지나칠 순 없습니다. 까스띠야 지방의 가장 좋은 채소는 빨렌시아의 농장에서 재배된다고 할 정도로 신선한 채소가 넘쳐납니다. 또르께마다의 고추, 세르베라의 고기, 양념한 메추리와 새끼비둘기 고기, 엘 세라또의 양젖 치즈, 까리온의 만떼까다(Mantecadas; 버터 과자), 비욜도의 아마르기요(Amarguillos; 씁쓸한 맛이 나는 과자), 프레치야의 보요(Bollos; 크로아상 같은 빵), 아길라르 데 깜뽀의 비스킷과 봉봉이 빨렌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