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 상 )
제 1 장 :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1. 인사말 ( 1: 1-2 )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 1: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 짧은 서신에 '기뻐하라'는 말이 여덟 번, '기쁨'이라는 말도 다섯 번 사용되고 있다.
에베소서나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디모데후서 같은 서신들은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아마 로마 옥중에서, 쓴 편지들이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본문의 인사말 속에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당시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에 잘 알려진 지도자였으며(Kent),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낼 계획이었기(2:19, Martin) 때문이다.
바울이 다른 서신과는 달리, '사도'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종'으로만 표현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 롬 1: 1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딛 1: 1 -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1) 바울이 빌립보에서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도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옹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2) 그곳 신자들과의 깊은 사랑의 결속력 때문에 사도라는 호칭을 쓸 필요가 없었다(Kent).
'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이'(*)는 문자적으로 '노예'라는 말이다. 바울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죄의 공포(恐怖)로부터 해방된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시사한다.
* 롬 6: 18, 22 -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종[종들]'이라는 말은 바울 자신과 디모데를 지칭하는 말로 항상 주님께 순종하는 사역자의 위치를 잘 보이고 있다.
'주님께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다.
말씀의 봉사자들이나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처신해야 할 것이다.
종은 자기를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주님의 명령하신 바를 받들면 되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고 할 때 마음의 상함을 가질 수 있으나, 자기라는 것이 부정되면 마음이 상할 경우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오늘날 신구약 성경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살고 성경 말씀에 죽으며, 성경의 교훈이 무엇인가에 유념하여야 한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많이 배우려 하고, 많이 읽고 여기 조금 저기 조금 하지 않고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꿰뚫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고 다독(多讀)하고 통독하고 또 정독하고 그것을 깊이 연구하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여주신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본 절은 수신자에 대한 언급이다.
(1) 성도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이스'(*)는 히브리어 '카다쉬'(*, '분리하다')와 같은 의미이다.
'카다쉬'는 구약의 제사에서 정결 의식을 통해 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죄로 부터의 분리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Martin).
'분리된 자'에 해당하는 '하기오스'는 신약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한 백성 즉 교회를 가리킨다.
이 서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에게 보내졌다. 빌립보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었다.
그 수가 많든지 적든지 주의 피 뿌림을 받아 구원받은 한 명 한 명의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보배롭고 귀하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일차적으로 성도들을 위한 책이다. 그것은 성도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성경은 일차적으로 목사들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다.
옛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생각처럼, 성직자들이나 그것을 연구하고 교인들은 그것을 연구하거나 읽지도 말아야 할 그런 책이 아니다.
성경은 바로 성도들을 위하여 써진 책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표현대로, 모든 성도들은 마땅히 성경책을 날마다 열심히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심령과 삶 속에 풍성하게 거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용어도 그렇게 어려운 용어로 되어 있지 않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를 '코이네'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당시의 일반 서민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면서 사용할 수 있는 통속적 언어를 가리킨다.
성경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은 일반 모든 신자들이 마땅히 읽고 깨닫고, 그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많이 갖고, 그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해서 큰 위로와 힘과 평강과 용기를 가지고, 소망 충만 확신 충만한 삶의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책이다.
(2) 감독과
이것은 '장로'라는 말과 거의 같이 사용되었다.(presiding elders, JB).
* 딤전 5: 1 -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 딛 1: 5-7 -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 벧전 5: 1-2 -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여기서 '감독'은 하나님의 백성을 주관하도록 선택된 목사와 장로들과 기타의 사역자들을 포함한다(Calvin).
이들의 책임은 하나님 교회 교인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 것이었다(Martin).
신약 성경에서 감독들은 또한 장로라고 불린다.
* 행 20: 17, 28 -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어떤 사본에, 주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오늘날 장로교회에서 장로라는 말은, 장로교 헌법에 의하면, 목사와 장로를 다 포함한다.
목사는 강도(講道) 장로 즉 설교하는 장로라고 부르고 일반 장로들은 치리장로라고 부른다.
감독이라는 말은 엄하게 들리지만 본래 양들을 보살피고 보호한다는 뜻이다.
즉 양들 곧 신도(信徒)들이 하나님의 바른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그 진리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참된 믿음과 소망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을 말한다.
불신앙이나 이단 사설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들어오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도 뜻한다.
이를 위해, 장로들은 교인들을 많이 접촉하여 그들이 잘 믿고 있는지, 혹은 잘못된 사상을 받아들이지나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3) 집사들에게
'집사들'은 안수 받은 남자 집사들을 가리킨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이스'(*)는 공동체(共同體)를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나 여기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서로 돕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Easton).
바울이 감독들과 집사들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빌립보 교회의 감독이었던 에바브로디도가 편지를 가지고 빌립보에 갈 때 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고, 빌립보 교회에서 감독들과 집사들이 헌금을 모아서 바울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Meyer, Chrysostom).
'감독들과 집사들에게'라는 말은 빌립보 교회에 여러 명의 감독들과 여러 명의 집사들이 있었음을 보인다.
이렇게 수신자들을 구별한 것은 계시록 1장 3절 말씀(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을 통하여 살펴보자.
3-1) 말씀의 축복 : 이 예언의 말씀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에 대한 영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은 본서가 예언서임을 나타내는 것으로(10: 11. 22: 6-7, 10, 18-19) 본서의 말씀이 예언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영적, 윤리적 권면과 권고를 포함한 현재적 경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Johnson).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과 관련하여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이 있음을 기술한다.
(1) 구약의 복.
* 창 1: 22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 창 9: 1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창 12: 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2) 신약의 복 - 예수님의 가르치심.
* 마 5:3-12 -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3) 말세의 복 - 계시록의 7복
* 계 1: 3 -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의 복.
* 계 14: 13 -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
* 계 16: 15 -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자들.
* 계 19: 9 -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
* 계 20: 6 -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
* 계 22: 7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
* 계 22: 14 -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