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컨디션이 안좋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부엇다. 기차에서부터 잔기침이 났는데 감기가 찾아들었다. 윤스리는 사나흘전부터 감기에 걸렸는데도 내색없이 일정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중국에 올 때 마다 잔병치레를 하는 것 같다. 감기에 식중독까지 늘 한 번은 꼭 거쳐야 하는 것 같다. 작년 겨울 인도에서는 3주간 다녔어도 크게 그런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는 중국체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신강에서 둔황으로 넘어 와서는 인터넷의 속도도 조금 빨라지고 접속이 되지 않던 한국 앱들이 접속이 된다. 그만큼 신강지역의 감시와 통제가 심하다는 뜻이리라.
08:30 둔황박물관
도착하니 이미 긴 줄이 서 있다. 시급 박물관임에도 오픈런을 하는 중국인들의 박물관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박물관을 오는 이유가 무료라서 그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중국의 박물관은 급에 상관없이 무료이다. 만약 박물관이 유료이면 답사비가 아주 많이 들 듯 하다.
일부 출토 유물이 있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열심히 살핀 곳은 막고굴 45호굴 모형이다. 기념으로 막고굴 도록을 한권 샀다. 도록값이 아주 비싼 편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가 어제 특굴로 신청하여 답사한 45호굴의 모형이다. 아쉬움에 올려본다.
청나라 종인데 한문과 티베트어가 함께 쓰여져 있고 하대에 꽃무늬가 모두 다르다. 팔괘가 새겨져 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숙소를 나와서 아점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 왔는데 주문이 부페식이다. 히메와 윤스리가 열심히 의사 소통을 해서 또 한끼를 해결한다.
먼 곳으로 가야해서 차량을 대절했다. 차량이 먼곳에서 잡혀서 30분 정도 강제휴식에 돌입한다. 그늘에 있으니 더운 것을 느끼지 못한다. 오랜 만에 조금 여유로운 시간이다. 식당이 호텔과 붙어 있는데 호텔 손님들에게 장사를 하려는 과일 노점들이 여러 대 있다. 잠시동안 지켜봤는데 손님들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 틈새에 히메가 사탕을 준다. 지난 인도답사에서는 간식 봉지를 들고 갔어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아 들고만 다닌 날이 많았는데 히메가 있으니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 달리 조왕신이 아니다.
어제 막고굴에서 가이드투어에서 함께 한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길거리에서 이렇게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반갑게 인사하고 또 각자의 갈길을 간다.
부른 택시가 일반 택시에 비해 조금 큰 중형이라 뒷자리가 조금 넓다. 여자기사분이 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하고 있다. 햇볕이 강렬하니 여자들 입장에서는 완전무장을 해야 될 듯 하다.
12:00 서천불동
박물관에서 구입한 책때문에 가방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 가방속에 여권이 있었는데 가지고 오지 않아 택시까지 600m정도를 갔다왔다. 잠시 중국이라는 것을 잊었다. 계속 매고 다니다 오늘 두고 왔는데 이런 일이 생긴다. 강변을 따라 석굴이 있으며 석굴의 건너편은 사막이다.
이곳도 가이드투어를 하는데 가이드가 QR코드를 찍으면 설명과 사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찍어보니 둔황연구원 홈페이지에 연결되고 필요한 사진을 다 다운받을 수 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오늘 방문한 석굴과 그 사진들이다.
18호굴
관무량수경변(觀無量壽經變), 동방약사경변(東方藥師經變), 항마변(降魔變), 관음경변(觀音經變) 등이 그려져 있다.
천장 경사면에는 설법도 등이 그려져 있고 당나라 시기의 석굴이다.
16호굴
천장은 천불로 되어 있고 본존은 윤왕좌이며 우측벽에는 화염보주를 든 불상이 있다. 동쪽 벽에는 위구르가한의 공양상, 서쪽벽에는 왕비의 공양상이 그려져 있다.
11호굴
측면과 천장은 천불이 그려져 있으며 천불의 대의가 여러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다. 통로의 동쪽과 서쪽 양 벽에는 위구르 시대에 그려진 공양보살이 각 3신(총 6신) 남아 있다. 이 공양보살들은 당나라의 유풍을 계승하여 보관을 쓰고,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을 착용하고 있다. 얼굴은 버들잎 같은 눈썹(柳叶眉)에 양 볼이 둥글고 풍만하며, 입술 위에는 '올챙이 모양(蝌蚪形)'의 콧수염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4호굴
전실은 종방향의 얕은 아치형 천장(纵浅拱顶)으로 되어 있으며, 동쪽에 문이 나 있어 이 문을 통해 제5호굴로 연결된다. 통로는 평평한 평정(平顶) 구조이며, 위구르 시기에 그려진 보개(宝盖) 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주실의 천장은 위구르 시기에 그려진 조이(藻井, 우물천장 장식)가 있으며, 네 면의 경사면(四披)에는 휘장(垂幔)이 둘러져 있다. 동·남·서쪽 경사면에는 둥근 꽃 무늬(团花)가 그려져 있다.
5호굴
당나라 초기에 처음 개착되었고 이후 위구르 시기에 대규모로 중수되었다고 한다. 횡인자파정(横人字坡顶, 옆으로 누운 '人'자 모양의 경사 천장) 구조를 하고 있으며, 동쪽 벽면에 감실(龕)이 파여 있다.
14:00 양관
이전 답사지에서 약 40여분을 달려야 한다.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흉노의 침입을 막고 서역으로 통하는 길을 통제하기 위해 북쪽의 옥문관(玉門關)과 함께 설치되었다. 장안을 출발해 서역으로 향하던 사절단, 상인, 승려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국경이자 관문었다고 한다. 둔황을 떠난 실크로드는 양관과 옥문관에서 갈라져서 북쪽 길은 옥문관을 통과하고, 남쪽 길은 양관을 통과하여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을 따라 서역과 인도 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주로 모래 언덕 위에 남겨진 고대 봉수대(봉화대) 유적과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느 관광지든 갈 때 마다 기념품 가게는 꼭 들른다. 도록을 구입하기 위해서인데 원하는 사진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해서 생각보다는 시간이 걸린다. 답사객의 도록욕심은 말릴 수가 없다.
16:40 옥문관
양관에서 옥문관까지 거의 1시간을 이동했다. 사막으로 가운데로 난 직선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옥문관은 실크로드 북로의 핵심 관문이며 중앙아시아, 유럽, 그리고 몽골 초원 방면으로 향하는 상인들과 사신들이 거쳐 가던 곳이다. 서역에서 중원으로 들어올 때 이 관문을 통해 옥이 수입되었기 때문에 '옥문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옥문관 인근에는 한나라 시대에 쌓은 고대 장성의 흔적과 적의 움직임을 봉화로 알리던 봉수대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관광버스를 타야만 볼 수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시간에 쫒겨서 저녁을 먹지 않더라도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구름이 해를 가려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아주 시원하다.
둔황역에서 짧게 기차를 타고 과주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하루종일 열심히 다녔다. 오늘 답사기는 여기까지다.
첫댓글 히메님 셀카의 달인이십니다
모두 건강해보이시는 표정들 보기 좋습니다
채색벽화의 노마드선생님 설명으로 충분히 현장감 전달됩니다
좋은자료 많이 보여주셔서 덕분에 잘 보고있습니다
계속 응원보냅니다
오늘 둔황연구소 홈페이지를 찾아서 사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