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대간남진 15차(피재~화방재) 산 행 일 : 2013. 06. 08.(토) 산행코스 : 피재~매봉산~금대봉~싸리재(두문동재)~은대봉~중함백산~함백산~만항재~화방재 (거리 21.5km) 산행참가 : 21명.
<산행코스>
대간산행 준비를 하여 삼수령(피재) 표석 앞에서 인증을 남기고는, 35번 국도를 가로질러 태백시 고랭지 채소단지로 향하는 도로로 들어서며, 열다섯 번째 대간남진 산행을 시작한다.
<삼수령(三水嶺)/피재(避峙)> 전란을 피해 태백으로 피난(避亂) 가던 고개에서 유래된 '피재'라는 명칭은, 이제 공식지명이 삼수령으로 바뀌어 머지않아 피재라는 지명은 우리에게서 잊혀 갈 것이다. 이곳 삼수령은 세 강의 물줄기(한강, 낙동강, 오십천)가 분수(分水)하는 곳이라서 삼수령이라 한다. '피재'의 어원은 삼척 사람들이 난리(전쟁)를 피해 적각동은 넘어 황지지방으로 피난(避難)한 고개라 하여 피재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삼척 사람들이 난리(전쟁)를 그리 많이 격었을 리는 없는데' 라고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난리는 왜구들의 침입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피재라는 지명이 붙기 전에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고독한 산이란 뜻에서 고적령(孤跡嶺)이라 불렀다고 한다.
삼수령에서 고랭지채소단지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좌측 숲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나타나고 대간 표지기들이 어지러이 붙어 있다.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서서는 몇 해 전 낙동정맥을 시작하며 걸었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며, 오름길 등로를 따라 매봉산을 향한다.
낙동정맥 분기점을 지나는데, 모두들 지나쳐 가버려서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웬만하면 이곳에서 인증사진이라도 남기련만, 그런 것에는 무관심한 백두들이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는가 싶더니, 어두운 숲길을 벗어나며 태백시 고랭지 채소단지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는데,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아 그 전모가 뚜렷하지는 않다.
등로 한켠의 표지판이 채소단지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대간길이 양대강(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 탐방길과 겹쳐 있음을 알려 준다.
매봉산 오름길에 돌아본 피재 방향의 지나온 대간능선.
채소단지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서서 잠시 오르면, 매봉산 직전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이내 신새벽의 매봉산 정산 전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매봉산(鷹峰山, 1,303m)>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과 삼수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하늘 봉우리'라는 뜻의 천의봉(天儀峯)이라 부르던 산이다. 이 산은 백두대간 줄기가 힘차게 뻗어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방향을 틀며 갈라져 서쪽으로는 금대봉·함백산(1,573m)·태백산(1,567m)을 지나 지리산으로 이어져 백두대간을 잇고, 동쪽 갈래는 아래로 뻗어 부산의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낙동정맥을 이룬다. 또 삼척시 하장면 쪽에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오면 제일 높은 산이 천의봉이다. 그래서 과거 하장(下長)과 상장(上長)을 나눌 때 이 산이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이 산봉우리는 남쪽 산록의 연일 정씨 묘에서 바라보면 매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알을 품을 때 수리가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는 풍수이치 때문에 매봉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씨일가에 의해서 천의봉이 작위적으로 매봉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정상의 정상석 앞면에는 매봉산, 뒷면에는 천의봉이라 적혀 있다. 매봉상 정상에는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 유선방송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전망이 매우 좋아 금대봉(1,418m)·함백산·태백산으로 이어지는 줄기와 북쪽으로 피재(920m)를 넘어 덕항산(1,070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도 잘 보인다. 동북쪽 산록에 있는 피재는 낙동강, 한강, 오십천이 발원하는 곳이라 하여 삼수령이라고도 한다. 또 2003년부터 해발 1303m에 태백풍력단지를 조성하여 850kw급 발전기가 설치되었다. 산 대부분에는 2만㎡의 산지를 개간하여 만든 고랭지 채소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매봉산만의 산행은 시종 배추밭 길만 따라 걸어야 하므로 단조로워서, 대부분 피재에서 남서 방향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거나 싸리재에서 북쪽 금대봉 방향으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오르는 코스가 선호된다.
매봉산 정상의 백두대간 안내판.
매봉산 정상 남쪽 편에 전에 없던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매봉산 전망대에서는 태백산 방향의 백두대간 능선 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단봉에 이어 금대봉, 은대봉, 함백산까지의 윤곽이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음에도 선명하다.
함백산 방향 파노라마. 중앙의 높은 산이 함백산, 우측으로 중함백, 은대봉(상함백), 금대봉이 이어져 있다.
은대봉과 금대봉 사이로 뚫린 두개의 두문동 터널로 이어진 가로등 불빛이 멋지다.
가야 할 대간능선이 풍력단지와 비단봉으로 이어져 있다.
남쪽 태백시 방향. 좌측으로 연화산(1,171m)이 멀리 보이고, 중앙 지능선이 1054봉이 있는 능선이다.
함백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들고,
매봉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는 비단봉을 향한다.
매봉산 정상에서 갈림길로 돌아나와 풍력단지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다시 시야가 트이고, '쇡쇡'하는 굉음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많던 바람도 잦아들어 조용히 쉬고 있는 풍력발전기들.
숲길을 빠져나오니 고랭지 채소단지가 펼쳐지며,
채소단지 가장자리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력발전단지가 나온다.
2006년 대간길을 걸어 이곳을 처음 지날 때에는 풍력발전기가 서너 기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숫자를 헤아릴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숫자도 늘어나 근처를 공원처럼 꾸며,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도 붙여 놓았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본 함백산 방향 파노라마.
비단봉(1,279m)으로 이어지는 대간능선을 따라 늘어선 발전기들이 대간꾼의 길안내를 맡고 있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무척 많이 올라와 있는데,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담으려 이리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도 또한 많다.
'매봉산 풍력발전단지'라 명명하였음을 알리는 비석 앞을 지난다.
매봉산풍력발전단지 조감도.
지난 구간에 걸었던 대덕산 방향에서, 드리워진 아침 안개를 뚫고 솟아오르는 해가 적발되었다!
멀리 올록볼록한 산이 삼척 도계읍에 있는 대덕산(697m) 쯤이다.
이슬 머금은 민들레 홀씨 다발과 일출의 협연!
이곳도 매봉산 이기는 하지만, 매봉산 자락에 세워진 표석에서 아침해를 배경으로!
풍력단지를 뒤로하고, 비단봉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숲길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가야 할 비단봉(우)과 금대봉(좌 1,418m) 조망되고,
다시 채소단지로 나와 늦통목이로 내려간다.
가야 할 비단봉 방향.
피어난 민들레 홀씨들이 아침 햇살에 이슬이 마르면, 곧바로 바람의 언덕 위로 날아오를 만반의 준비를 완료하고 있다.
나도 찍혔다.
아침 햇살을 쬐며, 민들레 홀씨들의 환영도 받으며, 늦통목이재로 향하는 백두들!
채소단지 보호를 위해 세워 놓은 바람막이 목책이 적의 침입에 대비한 목책인 듯 보인다.
민들레 꽃밭을 가로질러 늦통목이재로 내려서는데,
멀리 비단봉 오름길에는 벌써 백두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다.
늦통목이재로 내려서니 예전에는 없던 이정표도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늦통목이를 지나 비단봉 오름길에 돌아본 매봉산 방향.
채소밭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민들레 꽃길에는,
영롱한 이슬로 장식된 민들레 홀씨가 날아오를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 북진할 때는 이 광활한 채소밭에 이르러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키 어려 왔었는데, 이제는 등로가 정비되어 있고 이정표도 세워져 있어서 알바의 염려는 없을 듯하다.
채소단지를 지나 비단봉 오름 숲길 입구에 도착한다.
돌아본 매봉산 방향. 좌측 봉우리 쪽이 늦통목이재이고, 매봉산은 우측 봉우리 뒤쪽에 있다.
싱그러운 숲의 향기에 휩싸여 비단봉 오름길을 오른다.
고통? 아니면 희열?
비단봉 정상부에서 비박하는 분들의 단잠을 깨워 놓고,
모른척하며 비단봉 내림길로 접어든다.
비단봉 등로 주변에는 이런 쉼터를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1000m를 넘는 고지라 한여름에 피서지로 제격이지 싶다.
비단봉 정상석이 있는 비단봉 전망대에 도착하니, 앞쪽 함백산 방향으로 조망이 멋질듯 보이는데, 지금은 박무로 시야가 흐려서 아싶기만 하다.
아침 안개로 희미한 가야 할 대간 능선을 배경으로.
몇 컷의 사진만 남기고 비단봉 정망대를 뒤로한다.
우측부터 금대봉, 은대봉. 그리고 함백산이 아침 안개로 인해 멀게 보인다.
비단봉 내림길 조차도 비단길이고,
양강탐방길을 걷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릿대 지역 등로 조차도 신장로처럼 잘 뚫려 있다.
이 양강탐방로를 따라가면 한강발원지인 검룡소에 이르게 된다는 표지판이 군데군데 보이고,
숲에 정신을 빼앗겨 걷다 보니 수아밭령에 도착한다.
<수아밭령(水禾田嶺·수화전령)> 수아밭령은 한강 최상류 마을 창죽과 낙동강 최상류 마을인 화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다. 옛날 화전에서 벼를 재배한 관계로 수화전(水禾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가 다시 줄여서 화전(禾田)이 됐다. 지역민들은 ‘쑤아밭’이라고 불렀다고 안내문에 소개되어 있다.
수아밭령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에 닿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산객들이 쉬려고 만들었지 생각했는데 비슷한 쉼터가 수없이 나온다. 아마도 태백시에서 숲길을 조성하며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육산이라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어 걷기 힘들까봐 바닥에 돌도 깔아 놓았다.
연이어 나타나는 이름 쉼터를 보며, 좀 더 느긋한 사람들과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검룡소 갈림길을 지나는데,
아마도 생태보전을 위해 검룡소 방향의 등로를 폐쇄해 놓은 듯하다.
힘든 오르내림 조차 숲의 상쾌함에 묻혀 버릴 정도로 끝없이 걷고만 싶은 숲길이 계속된다.
대덕산은 금대봉 북쪽에 있는 산이며, 검룡소는 금대봉과 대덕산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분주령 갈림길을 지나는데, 이곳도 검룡소 가는 길은 폐쇄되어 있다.
누군가랑 쉬어가고 싶은데...!
참나무 숲이 극상을 이룬 숲길이 이어지더니,
금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금대봉(金臺峰, 1,418m)> 금대봉은 두문동 동쪽으로 태백산 화전동과 장전동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샘을 안고 있는 의미 깊은 산으로, 금대(金臺)란 말은 신이 사는 검대(劍帶)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나, 일설에는 산속 깊이 금이 묻혀 있어서 나온 말이라는 예기도 있다. 금대봉은 우리나라에서 지명과 광산이 일치하는 예 중의 하나로, 예전부터 광산업자가 몰려들던 곳이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산 이름이 금대인 까닭으로 황소만한 금덩어리가 묻혀 있다고 해 많은 광산업자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금대봉의 북쪽 골짜기에는 한강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가 있다. 몇 해 전 백두들과 함께 찾았던 검룡소는 그야말로 바위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는 게 보이는, 작은 샘이 아니라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치는 소(沼)였다.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가 자연경관 보전지역이라는 안내판.
함백산과 그 주변 금대봉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은 한국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로 꼽힌다. 금대봉과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자연생태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구간은 백두대간 종주와 관련된 등산 통제구역은 없으나, 금대봉~대덕산 구간만은 생태경관보존구역으로 태백시에 예약을 통해서만 등산할 수 있다고 한다. 언제 금대봉~대덕산 구간을 꼭 와봐야겠는데..ㅉㅉ
금대봉 정상 증명.
일찍 산행을 시작해서 그런지 시장기가 돈다며, 선두팀이 앞서가고 있는 상태에서도 아침식사를 시작한다.
식사하는 분들을 두고, 선두팀들이 혹시 식당에서 기다릴까 염려되어 서둘러 금대봉을 뒤로한다.
금대봉 내림길의 쉼터를 지나고,
운동 갔다가 돌아오는 손 총무님과 마주치는데, 이미 은대봉을 찍고 돌아오는 길이란다.
가야 할 은대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돌아본 금대봉 갈림길. 좌측 큰길이 대덕산 방향으로 금대봉을 우회하는 길이고, 우측 길이 금대봉에서 내려온 길이다.
좌측으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 헬기장을 지난다. 야생화에 대한 지식이 없어 알아보지를 못하니 그냥 지나칠 밖에는...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호젓한 수레길은 적당하게 하늘도 보이며 뜨거운 햇볕 또한 피할 수 있어서 산객들의 피로를 말끔이 씻어준다.
나들이 나온듯한 한 가족이 야생화를 관찰하며 마주 오고 있고,
이내 두문동재(싸리재)에 도착한다.
<두문동재/싸리재(1,268m)> 태백시로 들어가는 길 중 으뜸이 두문동재다. 1,400m급 금대봉과 은대봉 사이 가장 낮은 안부로, 그 높이가 1,268m다. 함백산 북사면에 있는 한국의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 유래했다는데, 금대봉과 은대봉 사이에 자리한 두문동재(싸리재)는 고려말 유신들이 새 조정인 조선에 반대해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해 살며 두문불출하던 곳이라고 해서 ‘두문동’이라 이름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두문동재의 다른 이름은 싸리재다.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엄청난 비에 산이 무너지고 싸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떠내려가다가 구문소 바위 절벽에 부딪혀 절벽을 뚫었다는 전설에 나오는 싸리나무가 바로 이곳, 싸리재에 있었다.
남한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재인 만항재(1,33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재가 바로 이곳 두문동재(1,268m)이다. 두문동재 서쪽에 휴게소가 있었는데, 두문동재 터널이 뚫리면서 차량 통행이 뜸해져 지금은 문을 닫은 듯하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을 지나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하루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며 야생화 천국이 되었고, 두문동재에서 은대봉 쪽으로 시작된 산길은 함백산을 지나 천상의 화원이라고 알려진 만항재로 이어진다.
두문동재 전경.
두문동재 표석 앞에 선 용현 형 !
돌아본 두문동재. 뒤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금대봉이다.
두문동재에서 부터 이어온 수래길을 두고, 우측 오솔길로 들어서서 함백산 방향 표지목을 따라 은대봉을 향하는데,
만항재까지의 거리가 적힌 표지목이 이어진다.
희미한 임도의 흔적이 지나는 공터에서 은대봉 오름길은 직진 방향이고, 주변에 큰 나무들이 없는 곳은 온통 야생화 화단으로 변해 있다.
예전에 산불이 낫던 곳인 듯, 어린 나무들과 함께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그대의 이름을 몰라 그냥 야생화라고만 불러서 미안하네!
은대봉 오름길에 지나온 매봉산 방향을 배경으로.
신새벽 매봉산에서 금대봉으로 걸어온 대간능선이 한눈에 가늠된다. 좌측이 금대봉이고 우측으로 풍력발전기들이 있는 매봉산으로 대간이 이어져 있다.
살짝 당겨본 매봉산 방향. 아래쪽에 보이는 도로는 태백 추전역에서 두문동재로 오르는 도깨비도로다.
아까 마주쳤던 아낙들이 다시 돌아온다. 차림으로 보아 배낭도 없이 이런 깊은 산속에 있는 게 이상타 싶다.
은대봉 오름길은 싱그러운 야생의 숲에 인간의 발자국이 그어놓은 천상의 길이다.
떨궈진 꽃잎들로 단장된 대간길 !
모진 바람에 맞서 싸운 흔적일까!
은대봉 직전 숲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선두팀을 따라잡고,
이내 은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은대봉(銀臺峰, 1,442m)> 함백산의 봉우리인 상함백산, 중함백산(1,505m), 하함백산(1,527.9m), 창옥봉(1,380m) 중 금대봉과 함께 상함백산에 속해 있고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다.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金臺峰)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웃에 있는 금대봉을 이어주는 두문동재에서 은대봉 정상까지는 1㎞ 거리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금대봉·비단봉·천의봉, 동쪽으로태백시와 백병산·면산·묘봉으로 이어진 낙동정맥, 남쪽으로 중함백산, 서쪽으로 백운산·두위봉 등이 보인다. 낙동강의 원류 발생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천의봉의 동쪽계곡에 자리한 너덜계곡으로공식 인정되었지만,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산자락에는 태백광업소와 한국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부근에 정암사, 용연동굴이 있다.
급한 일이 많으신 분들의 은대봉 정상 증명.
은대봉을 뒤로하니, 대간길에 온통 꽃잎이 흩날리고 있다.
흩날리는 꽃잎에 내 가슴도 함께 두근거리는데, ~~~
숲길이라 부르려는데, 주변의 야생화가 꽃길이라 불러달라고 아우성이다.
은대봉 내림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함백산 정상 방향.
우측 운탄고도가 이어지는 백운산과 두위봉 방향.
전망바위 옆 이정표.
검은색 꽃봉오리 ?
옛적에는 두 분이서 꽃길을 걸으셨는데, 그때의 꽃은 감춰 두고 새로운 꽃을 찾아 대간길에 나섰지만,
함백 꽃밭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옛적의 꽃만큼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이 뵈지를 않네!
우측 적조암과 좌측 샘물쉼터 방향 갈림길에 도착하니 2개의 작은 텐트가 있고, 배낭도 없이 은대봉을 오르내리던 아낙들을 여기서 다시 만난다. 정암사 갈림길을 찾고 있었다는데 아마도 옛 지도에 나오던 정암사 갈림길이 이제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흔적이 희미해져 찾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좌측 태백 방향 800m쯤에 '샘물쉼터'거 있다는 이정표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함백산 등산 안내를 보고, 만항재가 태백과 고한을 잇는 고갯길임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적조암과 샘물쉼터 사거리 갈림길에서 10여분 이상을 쉬다가, 다시금 중함백을 향하니,
한백산 오름 숲길은 오래된 숲의 분위기가 한층 짙어지며,
싱그러운 숲이 함백산 오름길 조차도 여유롭게 느껴지게 한다.
중함백 오름길의 백두들 뒤로 고한읍이 내려다 보인다.
당겨본 정선 고한읍의 강원랜드 조망.
중함백산 오름길 우측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은대봉 너머로, 금대봉과 동쪽 매봉산으로 이어진 대간능선도 한눈에 들어오고,
정선 고한읍 방향으로 하이원스키장 슬로프가 선명히 드러나 보인다.
전망바위 더하기 돌아이!
북쪽 금대봉 방향 파노라마.
중함백 직전의 전망바위에서 본 함백산과 태백산 방향.
서쪽 영월 매봉산 방향.
중함백산(1,506m) 도착. 옛날 대간북진 때 화방재에서 출발하여 추위에 떨며 멋진 일출을 맞이했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어느새 백두들은 모두 떠나고 권 선생님만 남아, 중함백에 우리가 다녀 갔음을 증거해 놓는다.
중함백에서 당겨본 함백산 정상 모습.
동쪽 사면 아래로 오투리조트 스키 슬로프가 내려다 보이며, 좌측의 봉우리가 천의봉(매봉산)이고, 천의봉에서 우측 멀리로 뻗은 줄기가 낙동정맥이다.
동쪽 방향 파노라마.
옛날 저 바위에서 담았던 장면을 추억하며, 그때 함께 했던 분들을 떠올리니 다시금 뵙고 싶은 맘 더욱더 샘솟는다.
살짝 당겨본 천의봉 방향.
정선 백운산 방향. 저 능선 너머에 운탄고도가 있다는데...
가야 할 함백산 방향 파노라마를 남기고, 중함백을 뒤로한다.
꽃내음 그윽한 주목나무 쉼터에서 잠시 여유를 부려보는데, 그것도 잠시, 우리가 맨 꼴찌라며 내가 도착하자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바쁘지 않은 분들..ㅋㅋ
커다란 주목나무를 바라보며 역사(歷史)를 논하고,
너덜지대를 걸으며 현실도 논하며,
조우하는 커다란 주목나무를 만나서는 앞날을 예기한다.
너는 도대체 몇살쯤이냐 물어도 보는 사이에,
만항재 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 오름길이 함백산 정상 방향이고, 우측 사면을 따라 만항재로 바로 가면 30분쯤은 당길 수 있겠지만, 가진 게 시간밖에 없는 우리들은 함백산 정상을 향한다.
함백산표 야생화!
사면을 따르던 등로가 다시금 주능선 위로 이어지고,
함백산 정상이 지척으로 다가오며, 주목군락지로 접어든다.
죽은 듯, 산 듯 !
남동쪽 방향.
한 가족이 주목나무 군락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있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주목나무에는 담겨진 예기들도 많을 텐데...
제법 가팔라지는 능선 오름길을 따라 함백산 정상을 향한다.
돌아본 태백 매봉산(천의봉) 방향.
우측 뒤편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백병산 쯤일까..
주목군락지에 핀 야생화도 담아 본다.
오늘 까마득히 걸어온 대간길을 뒤로하니,
함백산 정상이 지척으로 다가서고,
환영객이 있으려나 했던 기대는 그냥 기대로 끝나게 됨을 당연하게 받아 안고, 함백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두들이 떠나버린 쓸쓸한 함백산 정상석!
<함백산(咸白山, 1,573m)>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황지의 진산(鎭山)이다. 『척주지』에 "대박산 서쪽은 정암(淨岩) 육천인데, 육천의 물은 영월에 이르러 큰 강에 흘러들어 간다. 대박산은 태백산 동쪽에 있는데, 아래 위로 본적(本寂) • 심적(深寂) • 묘적(妙寂) • 은적(隱寂) 등의 암자가 있다. 대박산에는 만생백(蔓生栢)과 오엽송(五葉松)이 많이 자란다. 대박산 동쪽은 황지이고, 황지 동쪽에는 연화산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에서 대박산의 위치는 물론 그것이 지금의 함백산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척주부에 "근대봉 남쪽에 상함백산(지금의 은대봉) • 중함백산(본적산) • 하함백산(지금의 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함백산은 세 산을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자장 법사는 처음 오대산에 이르러 진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모옥을 짓고 살았으나 7일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묘범산(妙梵山)으로 가서 정암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묘범산은 함백산을 지칭한다. 이러한 고문헌을 통해서 산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대산(大山)이자 신산(神山)이며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대박산이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대박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함백산이라고 적혀 있다. 남한에서 한라산(1,947), 지리산(1,915), 설악산(1,708), 덕유산(1,614), 계방산(1,577)에 이어 여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 함백산(1,573m)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금대봉(1,418m), 남쪽으로는 태백산(1,567m)이 버티고 있다.
함백산 남쪽으로 태백산이 터~억 버티고 있다.
함백산 중계소 방향.
남쪽 방향 파노라마.
당겨본 태백산 방향.
할 일 많으신 분들의 함백산 정상 증명.
할일 적은 사람들의 함백산 증명.
남쪽에서 올려다본 함백산 정상 전경.
만항재와 태백산 방향.
북쪽 금대봉 방향.
오늘 걸어온 대간 능선도 돌아보고,
낙동정맥 분기점인 매봉산에서 이어져 갔을 낙동길의 흔적도 가늠해 본다.
스키 슬로프 흔적이 선명한 저기쯤이 백운산 일듯.
함백산 정상석 뒷모습.
(고한읍정목회)
함백산 정상의 삼각점과 돌탑.
다음 구간 가야 할 태백산을 다시 한번 가늠해 보고,
만항재를 향하는 백두들의 족적을 쫓아,
함백산을 뒤로한다.
함백산 정상 남사면에 위치한 태백선수촌 모습.
돌아본 함백산. 나중에 또 봐!
급경사의 함백산 내림길 돌계단으로 들어서니,
옛날 신새벽에 이곳을 힘겹게 올랐던 기억이 되살아나,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내림길을 이어가자,
시멘트포장 자동차 도로를 만나는데, 아마도 함백산 정상의 통신중계소로 이어지는 도로인 듯하다.
도로에 내려서서 돌아본 정상 방향.
시멘트 포장 도로를 100여 미터 내려서니, 함백산 대표선수 훈련소로 이어지는 도로와 만나게 되고, 더운 날씨에도 훈련하는 선수들이 보인다.
돌아본 함백산 방향.
대간길은 선수촌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컨테이너 초소 뒤편 숲으로 이어진다.
초소 좌측 뒤쪽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며 함백산 기원단이 자리하고 있다.
함백산 기원단 모습.
기원단에서 돌아본 함백산 정상 방향.
기원단에는 조약돌 탑이 제물로 올려져 있다.
함백산 기원단이란!
기원단을 뒤로하면, 이내 만항재로 이어지는 도로와 잠시 다시 만나고,
도로에서 다시 좌측 숲길로 접어들면,
더운 날씨에도 등산객 틈을 날쌘돌이처럼 뛰어다니는 국가대표선수들을 만난다. 지금의 땀방울이 하나하나 영글어 열매 맺기를 ~~~!
만항재가 건너다 보이고,
이내 만항재 날머리로 내려선다.
길 건너편으로 "산상의 화원"이란 팻말이 보이며 숲길 주변에서 시화전이 열리고 있는 듯하다.
남한에서 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고갯길인 만항재(1,330m)에 도착한다.
<만항재(晩項嶺, 1,330m)>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줄기가 태백산(해발 1,567m)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다. 지방도 제414호선을 이용해 정선과 태백 사이를 이동할 때 이 고개를 넘어가게 되는데, 태백과 정선을 잇는 두문동재 아래로 터널이 뚫려 시간이 단축되면서 길고 험한 만항재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물다. 만항재 아래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晩項) 마을이 있고, 고개 중턱에는 만항소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로도 손꼽히며,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있고, 야생화들은 만항재의 운치를 더한다. 계절에 따라 야생화 구경과 피서, 단풍놀이, 그리고 함백산의 설경을 즐기러 찾아가기에 좋다.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의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만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만항재에서는 남한 최대의 야생화 축제가 열리는데, 만항재 인근에는 산상의 화원, 하늘숲 정원, 바람길 정원, 야생화공원 등 수만가지 야생화가 만발한 정원이 곳곳에 널려 있다. 눈만 돌리면 아름다운 야생화를 사시사철 볼 수 있다.
만항재 휴게소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만항재 표석.
만항재에서 돌아다 보이는 함백산을 한 번 더 담아두고,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화방재로 향한다.
만항재에서도 백두들의 흔적을 찾을 길 없어서, 걸음 느린 자신을 한탄하며 쓸쓸히 화방재를 향해 능선길로 들어선다.
만항재 차도에서 능선 군부대로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르자, 좌측에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만항재에서 화방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등산로가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잠시 포장도로를 따르자 군부대 울타리가 앞을 막아서고, 화방재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군부대 좌측 울타리를 따라 이어진다.
야생화?
군부대를 좌회 하여 잠시 능선길을 따르자, 좌측으로 조림지가 나타나고,
화방재로 이어지는 대간길.
혼자 뒤처졌다는 느낌에 느려 터진 나의 걸음걸이를 원망하던 차에, 앞서간 줄 알고 있던 백두들이 뒤에서 쫓아온다. 만항재에서 백운산 방향의 두위지맥 능선을 잠시 둘러보고 오는 길이란다. 바쁘신 분들이 가끔은 쓸데없는 일을 하기도 하나보다!
야생화.
향기에 둔감한 나조차도 향기에 취하게 한~~
싱그러운 여름날의 숲길이 오늘의 산행도 막바지라는 마음과 어울려, 대간꾼들의 지친 발걸음에 생기를 북돋운다.
삼각점이 있는 창옥봉(1238봉)을 지나고,
수리봉(1,214m) 정상에 도착한다.
현 위치가 해발 1,214m인 것으로 보아 수리봉쯤인 듯.
만항재에서 백운산 방향의 두위지맥을 잠시 둘러보고 오신 분들과 함께 수리봉 인증을 남긴다.
수리봉을 지나 잠시 내려서니, 우측으로 만항재로 이어지는 414번 지방도가 내려다 보인다.
지난해 무릎 인공관절을 하시고도 오뚝 일어나 피땀 어린 재활훈련을 거쳐, 긴 산행도 함께 할 정도로 대단한 의지를 가지신 백두의 표상 김영임 여사님도 함백산 내림길이 부담스럽다는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화방재가 내려다 보이고,
화방재 직전 편백나무숲 그늘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오늘의 산행을 정리한다.
짧지 않은 산행이었음에도,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 듯한 기세다.
산행을 마감하러, 화방재 어평휴계소로 내려선다.
<화방재(花房嶺, 936m)> 태백시 문곡소도동 혈리에서 혈동 어평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31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흔히 어평재라고 부르는 이 고개는 500여 년 전 태백산 산신이 됐다던 단종(端宗)의 혼령이 '이곳부터는 내땅(御坪·어평)'이라고 한 데서 지명이 유래됐다. 고개 아래 마을도 어평 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 다른 설은 고갯마루 부근에 진달래, 철쭉 등이 무성하기에 화방재(花房峙)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화방재를 정거리재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화방재 날머리.
화방재 다음 구간 태백산 방향 들머리.
화방재 서쪽 방향. 좌측 길이 영월로 이어지는 31번 국도이고, 우측의 오름길이 만항재를 거처 고한으로 이어지는 414번 지방도다.
마지막으로 후미팀들이 도착하고,
태백시 소도골에 있는 훼미리보석 사우나에서 땀을 닦고,
보석사우나에서 바라본 태백산 제당골 방향.
다시 버스에 올라 뒤풀이 장소로 향한다.
여러 번 갔었던 태백한우골 식당에서,
허리띠 풀고 먹는다! 남자들은 혁대 구멍이 뚫린 만큼밖에 못 풀었는데, 여자분들은 바지에 고무줄이 있어서..ㅋㅋ
원 없는 표정!
양재 치와와네 가계에서,
행사가 일상이 되는 시절이기에 사람들은 모른다. 오늘이 얼마나 설레며 기다리던 바로 그날 인지를... 어제도 오늘 같았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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