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 내로남불을 넘어서는 길
며칠 전 좁은 길을 산책하다 승용차의 요란한 클랙션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짜증이 나서 지나가는 차량을 눈흘기며 바라보니, 목에 문신을 새긴 덩치 큰 운전자와 동승자들이 쏘아보아 두 번 놀랐다. 그런데 문득 내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어떠했던가를 생각해보니 이내 씁쓸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남에게 자주 요구하기도 한다.
운전중 본인이 끼어들어야 할 때는 양보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하다가, 정작 자신은 결사적으로 남의 끼어들기를 용인하거나 양보하지 않는다. 보행자일 때는 무례한 운전자를 비난하지만, 운전자가 되면 느린 보행자를 향해 경적을 울린다. 운전자가 보행자가 되고 보행자가 운전자가 되는데, 내 잘못인지 상대의 무례함인지 헷갈리는 상황은 흔히 발생한다.
이런 내로남불의 사례는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청렴을 외치던 공직자가 뒷돈을 받고, 정의를 부르짖던 시민운동가가 성추행으로 고발당한다. 자녀 사교육을 비판하던 교육 전문가가 자기 자식은 고액 과외로 명문대 입학시키려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비난만 해대던 나라로 유학을 보낸다. 사회봉사 불우 이웃 돕기를 주장하면서도 자신은 말만 하고 동참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들켰을 때의 태도다. 자신의 변칙과 위법은 "특수한 사정"이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변명하면서 남의 허물은 가차 없이 비난해 댄다. 이런 이중 잣대가 만연한 사회에선 신뢰는 무너지고 냉소만 커지게 된다.
자기가 당했을 때의 마음으로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건물을 실수로 파손한 택시운전사를 오히려 돌보아 주었던 유명인사, 가난한 청년운전자에게 값비싼 차를 훼손당하고도 용서해주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들은 역지사지를 실천한 것이다.
다름이 존재하고 생각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사회 통합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급한 마음에 속도를 내다가, 깜빡하고 신호를 어기다가 단속 카메라에 찍혀 범칙금 통지서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처음엔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며 핑게를 늘어놓다가, 이내 부끄러워진 사례가 있다.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역지사지는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다.
남을 아는 것은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인 것이다. 내로남불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바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경적 울린 차량에 비난의 눈총을 주고 나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날이다.
역지사지 표리부동을 생각하다 몇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