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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들..
 
 
 
카페 게시글
서원이야기 스크랩 구양서원 이야기
아라 추천 0 조회 67 14.09.07 16: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명 칭 :  구양서원(龜陽書院)
소 재 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24
(원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24)
건 축 주 :  원주변씨 종중
건축시기 :  1914년
중건시기 :  1924년/ 1984년
소 유 자 :  원주변씨 종중(관리자 : 원주변씨 종중)

건축 이야기
서원 공간은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서원 영역이다. 그 서쪽으로는 주사 영역이 있고, 그 동북쪽으로 산기슭 위에 올라앉아서 사당 영역이 있다. 건물들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서원 영역은 좁은 골짜기 전체를 이용하여 자리 잡고 있다. 분지는 작은 고구마 하나가 낮은 산들 사이에 들어앉은 것처럼 좁다. 그 분지의 길쭉한 부분을 축으로 삼아 앞쪽으로는 바깥마당, 뒤쪽으로는 건물 영역이 펼쳐져 있다.

건축 구성
서원 정문채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로 가운데 솟을대문에는 진덕문(進德門) 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은 중앙 2칸은 마루, 좌·우의 각 1칸씩은 방으로 되어 있다. 강당의 마루 앞쪽 처마 밑으로는 ‘구양서원’ 현판이 붙어 있고, 강당의 마루 뒤쪽 지붕 아래로는 ‘염수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염수당의 앞, 작은 안마당 양쪽에는 동재와 서재가 벌려 세워져 있다. 동재는 ‘온습재’, 서재는 ‘무민재’이다.

온습재의 뒤편, 염수당의 동편으로는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길고, 조금은 가파르다고 느껴지는 화강암 계단길이 마련되어 있다. 사당 영역으로 올라가는 18계단의 좁은 길이다.

사당 영역은 서원 건물의 지붕보다 높은 지점에 역시 길쭉한 평지를 만들어서 들어앉았다. 사당은 그 공간의 동북쪽 끝에 있다.

사당은 대문채와 사당 건물이 2선으로 늘어서 있는 구조이다. 대문채는 담으로 연결되며, 이 담은 사당 영역 전체를 빈틈없이 둘러싼다. 사당의 대문채는 3칸 규모이다. 3개의 나무 대문이 늘어서 있고, 대문마다에는 태극 문양이 크게 그려져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크기이다. 앞으로 반 칸 규모의 뜰이 만들어져 있는 구조이다. 사당의 처마 밑에는 ‘숭절사(崇節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대문의 한가운데에는 ‘유정문(由正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서원과 사당 사이에는 북쪽 편으로 3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에는 ‘장서각(藏書閣)’, ‘전사청(典社廳)’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 건물의 반대편, 남쪽 평지에는 ‘불굴가’를 써 넣은 비석이 있고, 그 영역의 서원 쪽 경계면에는 은행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현판
구양서원(龜陽書院)
구양서원 현판은 서원 강당건물 처마 중심 부분에 게시되어 있다.
진덕문(進德門)
진덕문 현판은 서원 정문채의 가운데 솟을대문에 게시되어 있다.
염수당(念修堂)
염수당 현판은 강당의 마루 뒤쪽 지붕 아래에 게시되어 있다.
구양서원기(龜陽書院記)
구양서원에 보관 중인 몇 가지 기문들?구양서원기? 기문은 1984년에 순천김씨 김철희(金喆熙)가 문장을 짓고, 진성이씨 이복원(李福源)이 글씨를 쓴 것이다. 서원 강당 안에 게시되어 있다. 봉화 동쪽 10리에 거수촌(巨樹村)이 있고, 거수촌의 남쪽 2리쯤 되는 곳에 구양서원이 있는데, 이것은 거수에 사는 원주변씨들이 선조 세 분에게 제향을 올리는 곳이라는 문장으로 기문이 시작된다.
염수당기(念修堂記)
염수당기 역시 서원 강당 안에 게시되어 있는 현판이다. 염수당은 이 강당의 이름이다. 진성이씨 이가원(李家源)이 문장을 지었다.

관련인물
- 제사 인물

변안렬(邊安烈),변경회(邊慶會),변극태(邊克泰)
- 의리를 다한 사람들


변안렬(邊安烈, 1334~1390)은 자는 충가(忠可), 호는 대은(大隱)이다. 조부 변순(邊順)은 고려에서 중국 선양(瀋陽)으로 옮겨 거주하였고, 선양허우(瀋陽侯)가 되었다. 변안렬은 변순의 아들인 변양(邊諒)의 2남으로 선양에서 출생하였다. 18세 때 원나라에서 무과에 장원하여 벼슬이 형부 상서에 이르렀고,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혼인하여 환국할 때 대장으로 배행하였다. 지조가 높고 국량이 넓었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무예도 출중하였다.
왕이 인척인 추밀원사 원의(元?)의 딸과 혼인시켜 원주를 관향으로 내려 주었으니, 원주변씨의 시조이다. 변안렬은 고려조에서 홍건적을 평정하였고, 최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파하였다. 특히 1380년에는 도체찰사로 운봉(雲峰) 인월(引月)에서 왜구를 대파, 황산대첩의 큰 공을 세워 훈적에 오르고, 벼슬이 도원사(都元師), 판삼사사(判三司事), 영삼사사(領三司事)에 이르렀으며, 원주 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이후 고려 말 역성혁명의 모의에 불굴가(不屈歌)로 항거하다가 1390년에 유배지인 한양에서 타계하였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추도사에서 “선생의 충절은 추상같고, 절의는 백일 같다.” 하였고, 목은 이색 선생은 “고금천지의 규범이 될 신하의 도리를 지켰다.”고 하였으며, 야은 길재 선생은 “의리는 웅대하고 공로는 위대하다.”고 하였다.
백산공(栢山公) 변경회(邊慶會)는 자가 군우(君遇)이고 1549년(명종 4)에 출생하였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탁월한 지절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으며, 가산을 모두 팔아 군량미를 조달하였고, 왜란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공신록에 등재되었다. 벼슬이 통정대부 부호군에 이르렀으며, 충성과 효성의 도리를 겸비하였다고 칭송된다.
봉은공(鳳隱公) 변극태(克泰)는 자가 여화(汝和)이고 백산공의 현손이다. 1654년(효종 5)에 출생하였다. 하늘이 낸 큰 효자로 18세 때 강도가 침입하여 부친(통덕랑공)을 칼로 해치려고 함에 공이 몸을 던져 막다가 수 십 군데의 상처를 입고 사경을 헤맬 지경에 이르렀다. 부친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용뇌(龍腦)를 투약하라는 계시를 내려 소생시킬 수 있었다. 평생 동안 부모에 대한 효성과 공경을 다하였다.


봉화 > 봉화읍 > 거촌리
- 낮은 산 사이사이의 마을, 거촌리
봉화와 안동 사이를 잇는 915번 도로는 2차선 지방도이다. 이 길은 신기와 거촌 사이에 여러 굽이로 구불구불 휘돈다. 한번은 이쪽으로 굽고, 또 한 번은 저쪽으로 굽고, 길은 작은 산 사이를 여러 번 굽어 돌며 천천히 나아간다. 주변의 산들은 나지막하고, 골짜기도 다들 좁게 펼쳐진다. 거촌리 주변의 산은 낮지만, 조밀하게 잇닿아 있다. 그러므로 마을은 산들 사이의 틈을 찾아 들어가 만들어지고, 길은 산을 돌아나가 마을과 마을 사이를 어렵게 이어준다.
봉화읍의 남동쪽, 거촌리는 중앙에 조밀하게 밀집한 산들을 두고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거촌리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산들은 이름이 없다. 그러나 산들의 영역은 상당히 범위가 넓다. 915번 도로가 봉화를 향하여 돌아나가는 곳은 남쪽 부분의 거촌리이다.
915번 도로가 건너편의 농공단지 들어가는 길과 만나는 지점, 길 가에 커다란 바위군과 그 바위들에 어울릴만하다고 여겨지는 노거수, 그리고 정자와 연못을 거느리고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안동 쪽에서 오는 방향에서 본다면 오른편, 봉화 쪽에서 나오는 입장에서 말한다면 왼쪽이다. 이곳에 연못을 앞에 두고 자리 잡고 있는 정자의 이름은 도암정, 이 마을의 이름은 황전촌이다.
황전마을이 앞쪽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자와 연못, 바위와 커다란 나무뿐이다. 그러나 정자와 바위 사이로 난 마을길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황전마을은 고대광실들이 이어있는 고풍스런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 안쪽, 마을의 서북쪽 끝 부분 쯤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은 경암헌고택, 이 마을 의성김씨 일문의 종택이다.
황전마을에서 915번 도로를 따라 상운 쪽으로, 다시 말해 안동 쪽으로 한 굽이 나아가면 학동마을이고, 학동마을의 위쪽으로 길 가에 붙은 작은 골짜기 안에 숨어 있는 것이 봉산리사이다. 봉산리사를 넘어 한 굽이 더 돌아가면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골짜기이다. 거촌마을의 중심지는 915번 도로와 면한 쪽에 있지 않다.
거촌역이 자리 잡고 있는 큰 마을이 거촌리의 중심지인데, 그것은 산줄기의 북쪽에 위치한다. 거촌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봉화로 들어가서 봉화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 옛 봉화군청 건물의 서쪽 담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길은 북행을 하다가 철도를 만나고, 철도를 따라서 오래 동행한다.
거촌역이 있는 마을에 이르면, 그곳에는 쌍벽당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쌍벽당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앞쪽으로 휘돌아 나가서 은행나무 가로수가 심겨져 있는 좁은 길을 타고 오르면, 그 안쪽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구양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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