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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시작된 문호리리버마켓은 1년도 채 안 돼 100여명의 판매자와 관광객이 찾는 지역명소가 되었다. |
프리마켓은 자유시장이다. 종종 안 쓰는 물건을 교환하거나 판매하는 벼룩시장인 플리마켓(Flea Market)과 혼동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자유롭다는 뜻의 프리마켓(Free Market)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리마켓이 벼룩시장과 전혀 무관하달 수는 없다. 이젠 프리마켓의 대명사가 된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본격화되기 전 홍대 앞에는 헌옷이나 재활용품, 집에서 쓰던 물건을 들고 나올 수 있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프리마켓에서 예술작품이나 수공예품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가격도 만만치 않고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도 적어졌다며 오히려 예전의 소박한 벼룩시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대앞 프리마켓은 1990년대 일부 작가들이 길가에서 창작품을 팔면서 시작된 자생적 노점상에서 출발했다. 2001년까지는 벼룩시장과 예술시장의 성격이 혼합된 이벤트성 축제행사가 열리다 2002년 6월 월드컵문화행사 일환으로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열렸다. 그해 9월에 프리마켓기획단이 만들어지면서 토요 상설장이 되었다. 이후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유명세를 타며 전국의 생활창작시장, 대안시장의 기획과 운영에 많은 영향을 주어왔다.
프리마켓은 이제 전국적인 문화현상이 됐다. 서울의 경우엔 홍대, 광화문, 강남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프리마켓이 열린다. 프리마켓마다 특성도 뚜렷해지고 있다.
서초구에서 열리는 ‘토요문화벼룩시장’은 벼룩시장 성격이 강하다. 1998년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아나바다’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돼 지난해 말까지 800회 넘게 열린 유서 깊은 벼룩시장이다. 전문상인 참가로 점점 시장이 무질서해지고 살거리와 볼거리가 미약하다는 지역민들의 불만이 제기돼 공연존, 휴카페, 우리동네 별난장터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벼룩시장인 만큼 여전히 신상품, 재고상품, 먹을거리는 판매하지 못한다.
마포구에서 열리는 ‘늘장’은 2013년 시작된 상설시장으로 수~일요일 열린다. 특이하게도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들이 함께 여는 주민공유시장이다. 쇼설마켓, 체험, 강연, 전시, 토크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토요일엔 생태·역사·환경 등을 공부하는 어린이토요체험학교 ‘동네에서 놀자’가 열린다.
이밖에도 서울시와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벼룩시장인 ‘뚝섬 아름다운나눔장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세종예술시장 소소’, 애니메이션창작집단 ‘매시즘’이 주최하는 ‘일러스트마켓’,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장터 ‘마르쉐@’ 등 주체도 파는 물건도 다양하다.
양평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매달 셋째주 토요일 서종면 문호강변에서 ‘문호리리버마켓’이 열리고 있다. 양평의 자연을 배경으로 열리는 리버마켓은 유명세를 타며 지난 11월에는 광화문에서 초청 프리마켓을 열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토록 프리마켓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마켓 운영진이나 판매자, 참가자 모두 자유로움을 첫 번째로 꼽는다. 문턱이 낮아 어떤 물건이나 창작물도 판매·전시·공연이 가능하다. 수공예품, 음식, 농산물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품을 만든 주인과 직접 대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소비자 건 판매자 건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축제의 대상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우러지고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양평에도 프리마켓… 정보·친목 목마름에서 시작
리버마켓‧양사모벼룩시장 매달 열려
지난해 봄 양평에는 벼룩시장과 프리마켓이 세 개 생겼다. 온라인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벼룩시장과 문호4리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문호리리버마켓’이다.
제일 먼저 벼룩시장을 연 것은 젊은 엄마들의 온라인카페모임인 ‘양평 맘’S 전원스토리(양평맘)’다. 양평에서 육아와 관련된 제품을 구하기 힘들어 회원끼리 나눠쓰자는 취지로 지난해 3월 벼룩시장을 열었다. 양평읍 보니타운에서 열린 첫 벼룩시장에 회원과 주부 2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다음 달인 4월에는 온라인카페 ‘양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양사모)’ 회원들이 용문면 양평군종합사회복지관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다. 회원 26명이 판매자로 참여했는데 회원 및 주민 500여명이 다녀갔다. 본격적인 프리마켓은 4월 서종면 문호강변에서 시작됐다.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던 몇몇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연 ‘문호리리버마켓’은 참여자가 늘면서 두 달 만에 판매자가 100여명이 넘어서고 공연이 어우러진 유명 프리마켓으로 발전했다.
프리마켓을 연 사람들은 대부분 양평으로 이사와 사는 이주민들이었다. 지역 사정에 어둡고, 지역민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은 정보와 친목을 나눌 수 있는 장이 절실했다. 양평에 이사 온 젊은 주부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육아나 쇼핑정보,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나이가 들어 이주해온 사람들에겐 노인회·부녀회·청년회 등이 주축이 된 지역문화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생소한 것이었다.
리버마켓 운영진인 ‘캐논아빠’ 안완배씨는 “이사 와서 군과 면에서 하는 행사를 지켜봤지만 이주민들이 낄만한 문화가 없었다”며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교류하며 함께 즐기면 분명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에 프리마켓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벼룩시장이나 프리마켓은 판매와 운영, 행사진행 등 제반 사항을 참여자들이 직접 꾸려나간다. 지난해까지 매달 20일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을 열어온 양사모는 온라인카페를 통해 매달 판매자를 모집했다. 회원들은 자녀들이 입던 의류와 물품, 집에서 만든 음식과 수공예품을 가지고나왔고, 소상공인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물품을 가져왔다. 복지관도 기증된 물품을 판매하는 참여부스를 운영했다.
하지만 판매가격 결정과정, 역할분담 등에서 재능나눔과 친목도모라는 원래의 취지가 훼손된다는 우려도 나왔다. 양사모 매니저인 호박씨는 초심으로 돌아가 프리마켓보다는 재능나눔과 물물교환 위주의 벼룩시장인 플리마켓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진행하던 벼룩시장은 올해부터는 회원이나 회원단체가 주최가 되어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형식으로 연다. 3월 벼룩시장은 맥케이펄스 주최로 양서역 인근에서 공연을 겸해 열었고, 4월 벼룩시장은 숲속나무교육예술원 주최로 강상면에서 수공예품프리마켓과 함께 연다.
문호리리버마켓도 온라인카페를 통해 매달 판매자를 모집한다. 3월에는 기존판매자 70팀, 신규예비판매자 10팀, 초청판매자 10팀을 선정했다. 카페활동, 가족단위 참여, 간판 준비 등이 선정 기준이고, 식음료는 품평회 과정을 거쳐야 한다. 판매자의 80% 정도가 양평 지역민이라고 한다. 행사 후에는 판매자들이 참여하는 끝장토론을 연다. 끝장토론에는 50~60여 명이 참여하는데 참여자들 반응, 개선점, 새로운 아이디어 등이 논의된다.
판매자들이 벼룩시장이나 프리마켓에 열심인 이유는 경제적 이득보다는 성취감, 소통하는 문화 때문이다. 몇 명이 참여했느냐, 얼마가 팔렸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판매자들은 자신이 만든 물건이나 식음료를 판매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자신감도 얻는다. 한 주부 판매자는 “세상을 다시 살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런 긍정적 에너지는 현장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함께 꿈꾸고, 만들고, 놀고’ 프리마켓을 여는 사람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