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고사
향로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한 북고사(北固寺)는 고려 말경에 경월사(慶月寺)로 설립되었으며, 창건연대와 설립자는 미상이다. 이후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북고사로 개칭하였는데,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위해 새 도읍지를 찾던 무학대사는 무주를 방문하여 지세를 살핀 뒤 복지(福地)라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남쪽에는 명산 적상산이 있어 튼튼하지만 북쪽의 향로산은 산세가 너무 허약하다’고 하여 고을 현감에게 절에다 탑을 세우고, 북쪽을 튼튼히 한다는 의미에서 ‘北固’로 절이름을 바꾸게 하였다.
무학스님 이후 조선 전기까지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에 발행된 『여지도서』ㆍ『가람고』ㆍ『범우고』 등에는 ‘부(俯)로부터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다’고 하여 향로산의 사찰 중 북고사가 등장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도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98년 조병유(趙秉瑜)가 간행한 『적성지(赤誠誌)』 사찰조(寺刹條)에는 ‘북고사는 향로산에 있으며, 무주부로부터 북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있다. 옛 이름은 경월사(慶月寺)로 약 700년 된 고찰이다’라고 하여 고려조에 창건된 절임을 시사하고 있으며, 산왕당 앞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역시 창건내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후 1831년 신중탱화를 비롯하여 1899년에 칠성탱화를 봉안하는 등 19세기 말기에 소규모 불사가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의 30본사 체제에서는 보석사(寶石寺)의 말사로 사격을 유지하면서 1928년 극락전 후불탱화와 산신탱화의 불사를 하였고, 근래에는 1968년부터 1976년까지 도상(道常) 스님이 주석한 후 관주(觀住) 스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현재의 법당인 극락전ㆍ산왕당ㆍ칠성각의 3동은 모두 1976년에 관주스님이 중건한 것이다. 이후 도상ㆍ관주 스님이 주지 직을 번갈아 맡으면서 불사를 일으켜, 1978년에 법당을 보수하고 1993년에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는 극락전을 해체하면서 남은 목재를 이용해 요사를 짓고 진입도로를 보수하였으며, 1996년에는 도상스님이 미륵불을 조성ㆍ봉안하여 가람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자료출처:전통사찰관광안내

북고사 관세음보살상

북고사 삼층석탑

북고사 요사

북고사 요사

북고사 극락전

북고사 미륵불

북고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83호
북고사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은 1657년 화원 승일ㆍ처영ㆍ도잠 등이 조성한 것으로, 17세기 후반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앉은 키 70㎝, 무릎 폭 56㎝의 중형 불상으로 장방형의 얼굴에서 근엄함을 느낄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천의자락 등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크고, 무릎 폭에 비해 어깨 폭이 좁은 단아한 모습에 전반적으로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수인은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고 있다.
네모지고 평평한 얼굴, 당당한 체구에 움츠린 어깨, 경직된 양감의 표현 등에서 조선후기 불상양식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17세기 중ㆍ후반 수다사 아미타불과 진도 쌍계사 대웅전 석가불상의 정형화된 양상과 그 맥을 함께 한다.

극락전내 독성탱

북고사 극락전 신중탱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
극락전 신중탱은 1831년 전계인(田啓仁)과 그의 아내 김씨(金氏)가 아들 얻기를 기원하며 발원한 불화로, 화원 장순(莊旬)ㆍ윤관(允寬) 외 2인이 조성한 것이다.
가로 96㎝, 세로 126㎝의 장방형의 화폭에 2단구도이고, 상단에는 보살형의 범천과 제석천 및 여러 권속들이 표현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검은 칼을 든 위태천이 서 있다. 그 주위에는 용왕과 사천왕 등 여러 수호신장들이 합장하거나, 칼ㆍ금강저 등 다양한 지물을 들고 서 있다.
그림의 구도와 채색이 안정되고, 작은 화면에 간단하게 묘사한 인물 표현은 단조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준다. 현재 극락전신중탱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액자 속에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내 지장탱

북고사 산왕각

북고사 산신탱

북고사 석탑

북고사 칠성각

북고사 칠성탱

북고사 부도

북고사 지장전

북고사 지장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