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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집 (09)] 굿즈 제작 요청부터 방정환 금연 요구까지…어린이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직접 답한 ‘어린이’ 잡지의 독자관리 비법
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365일 중 364일이 어른의 날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됐고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이 참여한 잡지 <어린이> 창간 100주년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잡지 <어린이>에 대한 전시를 개최한다. 미디어오늘은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100년전 ‘어린이’의 모습을 <어린이>를 통해 조명해보려 한다. - 편집자주
한 세기 전에도 굿즈를 만들어달라는 어린이들의 요구가 있었다.
100년 전 <어린이> 잡지 독자들은 편집자에게 “우리 <어린이> 독자의 마크를 만들어서 우리 10만 명 독자가 가슴에 차고 다니면 좋지 않겠습니까? 네? 방 선생님 꼭 만들어 주십시오”(태천 선우만연 어린이)라는 글을 남겼다.
‘독자 마크’에 대한 글이 실리자 “우리 <어린이> 독자 마크를 만들어서 실비로 팔아 주십시오. 소년은 모자에 소녀는 치마끈에 붙이고 다니게요”(의령 손주환 어린이), “방 선생님 제발 우리 <어린이> 독자의 마크를 만들어 팔아 주십시오”(군산 김금동 어린이)라고 하며 독자 굿즈를 직접 사겠다는 어린이들의 의견도 빗발쳤다. 지금 시대의 아이돌 그룹·팬덤을 상징하는 상품을 말하는 ‘굿즈’와 거의 일치하는 개념이다. 편집자는 굿즈 제작 요청에 “만들도록 연구 중이다”라고 답을 해주기도 했다.
▲ ‘어린이’ 잡지 표지
굿즈를 가지고 다니며 ‘우리는 <어린이> 독자’라는 것을 내보이고 싶을 정도로, <어린이>는 인기있는 잡지였다. 1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한 <어린이>의 주 독자층은 10대 중후반이었는데, 그 당시 막 시작한 어린이 인권운동과 이를 주도한 방정환에 대한 인기, 어린이 잡지를 만든 천도교소년회라는 독자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신문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며 오랜 기간 발행했다.
그중에서도 창간 직후부터 이어온 탄탄한 ‘독자 관리 시스템’과 ‘서비스 저널리즘 정신’은 <어린이> 잡지의 주요 인기 비결이었다.
지금의 SNS 역할을 담당한 ‘독자담화실’ 코너는 독자와 편집자가 소통할 수 있는 대표적 공간이었다. “<어린이>에 대하여 잘잘못도 말씀하시고, 잡지에 글 쓴 사람에게 할 말씀이 있거나 누구에게든지 하실 말씀이 있으면 엽서에든지 봉투에든지 적어 넣어 보내주십시오. 누구의 편지든지 모두 책에 내어드리겠습니다”라는 첫 공지로 문을 연 독자담화실에서 어린이들은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누구에게나 하고싶은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 있었다.
▲ ‘어린이’ 독자담화실 표지
어린이들이 편집자에게 질문하고, 편집자가 직접 질문에 답하는 일도 많았다. “저는 부모도 없고 동생도 없는 불쌍한 소년입니다. 암만해도 이곳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려운데 경성 지방으로 가서 취직을 하였으면 합니다. 여러 선생님의 주선으로 취직할 수가 있을까요?”라는 백승현 어린이의 취직 고민 질문에 기자가 “취직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아마 그곳보다 더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특히, 방정환의 ‘금연’은 어린이 독자들의 중대한 요구 사안이었다. 어린이 독자들은 방정환의 흡연에 대해 우려했다.
고흥의 신을식 어린이가 “방 선생님, 담배를 잡수지 말아 주십시오. 11월 호 방 선생님 미행기에 보니 선생님 입에 담배가 떠날 새가 없으시다 하오니 저희들 마음에 대단히 염려됩니다. 학교 선생님께 듣든지 우리 소년 단장에게 듣든지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은 머리에 크게 해롭다고 합니다”라고 글을 올리자, “나도 찬성합니다. 새해부터는 선생님, 담배를 끊어 주십시오”(원산 송희재, 경산 김동광)라는 등의 답글이 줄줄이 실리기도 했다.
▲ 어린이 제3권 제3호 독자사진첩
“나도 방 선생님께 말씀할 터입니다”라는 편집자의 답이 온 후 진남포의 윤성 어린이는 “여보 담화실지기, 당신이 신년호 때 신을식씨 말씀에 대답하기를 방 선생님께 담배를 끊으시라고 말씀드리겠다더니 그 후 어찌 되었습니까? 항복을 받았습니까?”라며 독자담화실을 통해 방정환의 금연 경과를 물었다.
그러자 편집자는 “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방 선생님은 담배를 잡수되 맛도 모르고 피우시고 또 연기를 삼키지 않고 그냥 도로 뱉으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흡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만 손 끝이 심심하고 원고 쓰실 때나 동화를 꾸미다가 생각이 안 날 때 심심풀이로 피우시는 것이니 그리 해독이 있지는 않을 것 같으나 그러나 여러분이 하도 염려를 하시니까 일절 피우지 않겠다 하십니다”라며 방정환의 금연 성공 소식을 전했다.
“<어린이>에 라이온 약 광고는 요금을 얼마나 받고 내십니까?”라고 묻는 장봉빈 어린이의 질문에 “그런 것은 알 필요 업습니다 만약 당신이 무슨 광고를 내시려고 뭇는 것이면 개벽사 광고부로 무러보십시오”라고 답하거나, “저는 눈병으로 몹시 고생 중이오니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운파생 어린이의 질문에 대한 “저는 안과 의사가 아니니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은 의사에게 물어보아야지 담화실지기가 어떻게 압니까?”라는 대답도 웃음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 어린이 제3권 제8호 독자사진첩
이밖에도, <어린이>는 독자사진첩을 게재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했다. 잡지에 사진이 게재된 독자는 총 456명으로, ‘우리학교의 귀염둥이’라는 이름으로 독자 친구들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었다.
▲ 어린이 제11권 제6호(왼쪽), 어린이 제7권 제5호 우리학교의 귀염둥이
다양한 응모 이벤트와 상품들도 독자들의 인기를 얻는 데 한몫했다. ‘대현상’은 ‘독자참여 이벤트’를 뜻하는 말인데, <어린이>에는 ‘팔뚝시계 주는 애독자 권유 경쟁 대현상’, ‘시계 한 개 거저 주는 대현상’, ‘여름 양복 한 벌 주는 대현상’, ‘일년 동안 장학금 주는 대현상’ 등 문제를 풀면 상품을 주는 형식의 다양한 독자 참여 이벤트들이 있었다.
▲ 어린이 제10권 제10호 대현상(독자 참여 이벤트)
▲ 어린이 제5권 제2호 대현상(독자 참여 이벤트)
이벤트에 당첨된 독자들에게 준 선물 목록 기록을 보면, 1925년에는 학생시계, 학생모자, 메달, 1928년에는 월사금(장학금), 만년필, 양복, 1932년에는 시계, 망원경, 꽃수첩, 1933년에는 망원경, 특제 지구의, 꽃수첩, 탁상시계, 하모니카, 만년필, 장난감 요요, 동시집 등을 상품으로 지급했다. 상품 중 ‘메달’을 7개 모으면 금메달로 바꿔주기도 했다. 실제로 금메달을 받은 독자는 딱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이 동요 <봄편지>를 쓴 서덕출이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를 통해 독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답하며 더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설 수 있었다. 어린이란 개념조차 희박했을 당시 어린이를 공적영역인 미디어에서 독자로서 정중하게 대우한 것은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어린이를 대할 때 필요한 태도다.
윤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