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상하다. 지하철 안, 맞은편에 앉은 젊은이들이 이상하다. 옆자리 중년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저씨도 아줌마도 아이도 어른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잠든 척 눈을 감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노약자석의 어르신 몇 분만 무심한 낯빛으로 고개를 들고 계신다. 목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로 세상이 꽉 찼는지 요즘 부쩍 이런 풍경을 자주 본다.
얼마 전 어느 식당에 갔다. 한 쌍의 연인이 들어와 우리가 앉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녀는 마주 앉아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고 주문을 했다. 그러고 나서부터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끝내고 갈 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눈빛 한 번 나누지 않았다. 조금 전 나누던 말투로 보아 싸운 것 같지는 않고 단지 좀 오래된 연인 같았다. 그들이 들어와서 한 일이라고는 밥을 먹고 반찬을 먹는 중에 오로지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넘기고 두드릴 뿐이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도 매한가지다. 이야기 도중에도 동물 맞추기 빙고 게임이 팡팡 터지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린다. 눈은 스마트폰을 향하고 대답은 건성으로 해댄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맥이 빠져 꽥하고 소리를 지르며 경고장을 날리면 하던 것만 마저 하자며 실실거린다. 다음 모임에는 업그레이드된 게임을 들고 오거나 가슴에 코를 박고 졸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밤 2시에 커피를 내렸다나 뭐라나....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했더니 가상세계에서 커피가게를 차려 오밤중에 커피를 드립했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고개 숙인 사람 중에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모범생을 만난 듯 감탄한다. 흉내라도 내어보려 하지만 당장 속이 메스꺼워지고 어지러워져서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앉아서 건너편 사람의 얼굴이나 옷차림, 신발, 가방 같은 걸 보며 그 사람의 이력을 유추해 보는 재미를 즐겼다.
‘단정한 불라우스에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쇼퍼백을 든 아가씨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 같다. 저 백은 홈쇼핑에서 지갑과 함께 팔던 것이네. 백 팩의 한쪽 끈을 어깨에 걸친 저 남자는 건설현장 노동자인가 보다. 작업복은 턴다고 털었지만, 머리에 뿌옇게 먼지가 덜 털렸구나. 저 중년 여자는 왜 울상일까. 가만히 있어도 입이 아래로 축 처져서 미워 보인다. 저 여학생 다리 좀 모으든지 가방으로 가리고 앉지.’
이런저런 속 참견을 하는 재미가 볶은 깨 맛이었다. 아이라도 타면 눈길을 맞추고 어르고 달래며 손이라도 잡아주면 까르륵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슬쩍 곁눈질해서 보아도 민폐인가 싶고 더구나 아이 몸에 손을 함부로 대었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하릴없이 나도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눈 맞춤을 피하고 고개 숙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낯선 사람들끼리 있으면 증상이 심해져서 오지도 않은 메시지를 다시 훌고 지나간 카톡을 뒤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서 오는 메시지가 그리운 걸까. 버스, 지하철, 승강기 안에서는 물론 카페에서도 담소를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며 보이지 않는 네모세상에 빠져있다. 저럴 양이면 왜 만날까, 의문이 들지만, 유행병처럼 걷잡을 수 없다. 길을 걸을 때도 고개 숙이고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느라 아는 사람이 지나가도 인사조차 제대로 못 한다. 게다가 이어폰까지 끼고 고개를 숙이고 가면 지나가는 차가 경적을 울려도 잘 듣지 못해 위험하다.
스마트폰의 기능에 한계는 있기나 한 것일까. 손안의 기계 하나로 각종 뉴스를 검색하고 정보를 얻고 각종 오락을 즐기고 쇼핑도 한다.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앱도 있다. 뭐니 해도 SNS의 기능(Social Network Service) 사회관계망 서비스)이 스마트폰의 기능 중 가장 활발한 기능이 아닐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친구가 될 수 있고 여론을 모을 수 있고 같은 취미나 뜻을 가진 사람과 공유의 장까지 마련되니 인간 친화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스마트하다. 아이러니라면 먼 곳의 사람들과는 가까이 소통하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멀어진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의 장점은 많다. 하지만 순기능을 넘어 가까이 마주한 사람에게 집중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역기능이 범람한다.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자고 만든 사회관계망이 마주한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허무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본다.
맛집 사진, 여행 사진, 가족 행사 사진을 속속들이 올리며 먼 곳의,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자랑하듯 일상을 올리고 댓글을 달면 행복할까. 가끔 가는 고급음식점, 장기할부로 구매한 명품가방, 해외여행 사진을 올리는 것을 일상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괜스레 상대적 박탈감을 자초하지는 않을까.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저러다 군중 속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더욱 외로워질 텐데.
세상이 고개 숙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무도 고개 들어, 나와 눈 맞춤하지 않는다. 그들처럼 고개를 숙여 밴드를 열어 본다. 친구는 놀러 가서 마음껏 즐겼나 보다. 갖가지 음식 사진이 여러 컷 올라와 있다. ‘맛있겠다, 나도 먹고 싶다.’ 하고서 최고라는 엄지손가락 이모티콘 하나를 얹어 보낸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는다면 친구가 얼마나 무안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빠르게 스치는 지하철 창으로 반대편에 앉아 있는 눈빛 공허한 여자와 일순간 눈이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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