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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말씀/ 디모데전서 4:1-16 요절/ 디모데전서 4:7 | 2017. 1. 1 |
신 년 제 1 강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돋이를 보러 산과 바닷가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디모데전서 말씀과 함께 새해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총선과 촛불시위가 있었습니다. 경주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또한 세계선교보고회와 선교사수양회가 있었습니다. 질병의 소식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소식도 많았는데 사랑하는 분들과의 이별은 우리의 마음에 슬픔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고 진마리아 선교사님의 친구요 전도의 열매인 모니카박 선교사님도 지난 주 금요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와 영숙 사모님은 국립의료원 장례식장를 찾아 선교사님의 영정 앞에서 기도하고 피터박 선교사님과 세 자녀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들은 군대에서 휴가 받아 나왔습니다. 선교사님과 아들과 두 딸은 환한 얼굴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부활과 생명의 주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 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유산을 믿음의 동역자들과 가족들에게 남겨주고 간 모니카 선교사님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리브가 사모님이 생각났습니다. 호흡하기조차 힘든 가운데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계시는 이리브가 사모님으로 인해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고 귀한 종의 믿음을 본받아 새해에는 더욱 충성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섬기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오늘 말씀은 영적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영적 지도자의 자질을 배우고 새해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악령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들은 양심의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이들은 양심이 사탄의 지배 아래 있어서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은 것은 그리스도로 인침 받은 것과 대조가 됩니다. 이들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입니다. 금욕주의는 이원론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이들은 정신은 선하고 육체와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금욕을 통하여 거룩하게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혼인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셨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독신주의를 거룩하고 고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들은 육식을 금했고 채식만 강조했습니다. 특정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한 레위기 11장의 규정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우리 믿는 자들은 감사함으로 먹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먹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 금욕주의에서는 음식법을 지키고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면 깨끗해진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따르게 되면 자기 의가 쌓여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악되고 부패하여서 금욕과 고행으로 깨끗하게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의롭게 되고 깨끗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디모데가 예수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하고 형제들을 제대로 깨우쳐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깨우친다’는 것은 형제들의 믿음을 위해 진리의 기초를 잘 놓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할 때 디모데 자신과 형제들이 피차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게 됩니다. 견고한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중요하듯이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복음 진리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개척할 때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잘 깨우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의 지도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데 힘써야 합니다. 복음 진리의 기초가 잘 놓인 자들은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고 영적 성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와 함께 성경선생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선생의 직분을 잘 감당해 왔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이단들과 거짓선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쾌락주의, 율법주의, 금욕주의, 인본주의로 양들을 미혹합니다. 복음 진리의 기초가 놓여있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우리는 양들에게 복음 진리를 잘 가르쳐서 양들을 깨우치고 양육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가 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반복하여 복음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1월과 2월에 믿음의 기초를 다지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봄학기 양들을 먹일 수 있는 양식을 잘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성경선생이요 그리스도의 일꾼은 먼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사악하다, 경건치 않다는 것입니다. ‘허탄하다’는 것은 허풍스럽다는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과 대조가 됩니다.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것은 영적 성장에 해가 되기 때문에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내적인 경건보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은사주의 운동에 관심을 갖습니다. 기도원파들은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통한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이야기와 이적들을 말하여 성도들의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도 무당기질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성경보다도 이런 은사주의, 신비주의에 말려들면 복음에서 멀어지게 되고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경건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경건의 원어의 뜻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경건은 율법적이고 금욕적인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등지는 은둔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 지을 수 없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자기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자로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정말 관심을 갖고 투쟁해야 할 것은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단하다’는 것은 훈련하다의 뜻입니다. 당시 헬라와 로마에는 운동시합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위한 연습과 훈련의 중요성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건을 위해서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형입니다. 계속하여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지만 경건과 성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자세를 갖추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합니까? 수백 번, 수천 번 스윙과 피칭 연습, 구보훈련,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을 합니다. 경건을 위한 연습도 꾸준히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되어야 합니다. 금욕주의자나 율법주의자와 같이 인간의 의지로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경견에 이르도록 무엇을 훈련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6절에 언급된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훈련된 성경묵상은 그리스도인의 건강과 경건의 성장에 필수적이며 모든 세대에 걸친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망령된 신화와 달리 성경은 지금까지 쓰여진 책 중에서 가장 경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에 대해 쓰신 책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은 성경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성경읽기, 묵상, 성경공부, 일용할 양식, 소감쓰기, 메시지훈련, 말씀에 기초한 전도와 기도생활을 통해 자신을 연단할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바울이 말한 대로 성경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때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이를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꾸준히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딤후3:17).
8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육체의 연단도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하루에 1시간씩 꾸준히 하는 운동은 영육간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금생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립니다. 시편 1편 말씀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도 영생을 누립니다. 경건이 범사에 유익하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한 가치있는 말입니다. 이를 위하여 수고하고 힘써야 합니다. 육체의 연단을 위해 선수들이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정말 눈물겹습니다. 어떤 골프선수는 매일 7천개씩 볼을 칩니다. 하루라도 쉬면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경건을 위한 훈련을 힘써 하지 않으면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지고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먹는 분들, 성경을 읽고 필사하고 암송하는 분들은 영성이 깊어지고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과거 학생 때, 풀타임 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했다고 해서 그 영성이 현재도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훈련하지 않으면 경건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지속적으로 훈련하는 자만이 어떤 힘든 사람도 감당하고, 어떤 힘든 일도 해내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볼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가 보던 보지 않던 꾸준히 경건훈련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누가 훈련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자기 훈련을 합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좋은 직장과 자녀들과 성공에 두는 자들은 점점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명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의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나이가 어려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12b절을 보십시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예수님께서 양 무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바울도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정도로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도 말, 행실, 사랑, 믿음, 정절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는 말에 있어서도 양들의 좋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제가 말로 동역자들과 양들에게 상처 준 적이 많았습니다. 저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새해에는 사람들을 살리는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목자는 행동과 삶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말만 잘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양들은 그 목자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목자의 권위가 세워지고 양들은 그 목자를 따르게 됩니다. 또한 목자는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양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목자는 정절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양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읽는 것’은 성경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권하는 것’은 preaching으로 진리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살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여 지도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공부와 메시지 선포에 해당됩니다. 말씀을 열심히 읽고 가르치고 확신있게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적당히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목자가 먼저 말씀에 전념함으로 영적 파워를 덧입을 때 그 영성과 열정이 성도들에게도 전염됩니다.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아갑니다. 세상에 뻗은 잔가지들이 많고 즐길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 잔재미들과 잔가지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때 말씀의 진액을 공급 받아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고 양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무엇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디모데는 목자로 안수 받을 때 말씀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인해 감사하고 이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은사가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계속하여 말씀을 연구하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할 때 말씀의 은사가 발휘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성숙을 나타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 부단히 투쟁하고 양무리의 본이 되고 말씀 가르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때 성숙이 드러나게 되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퇴보해서는 안 됩니다. 날이 갈수록 영적 성숙과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불태워서 영적 진보를 이루면 다른 사람에게 불이 옮겨 붙습니다. 성숙을 향한 전진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성장이 멈추어 버릴 때 매너리즘에 빠지고 신앙생활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때 교회의 생명력도 사그라들고 생명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지속적으로 자신을 가르치고 성장할 때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의 성장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원동력입니다.
2017년 춘천UBF교회의 요절은 골로새서 1:28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새해 우리의 표어는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해”입니다. 영적 방향은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 2. 예수님을 닮은 제자 3. 캠퍼스와 세계를 품는 지도자 4.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성경선생 5. 다음 세대를 키우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기도제목은 1. 2명 선교사 파송 2. 100명 주일예배 3. 춘천 4개 대학 개척과 열 두 제자 양성 4. 합심동역과 공동체성 강화 5.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입니다.
새해에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각자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고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