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28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내년 605조원가량의 ‘슈퍼예산’을 편성하고 이 중 20조원을 청년에 지원하기로 했다. 취업·부동산·저출산 등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에게 힘을 싣겠다는 취지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당정은 무이자 전·월세 지원, 군 장병 전역시 목돈 지급, 반값 등록금, 구직 수당은 물론 월세 20만원 1년 한시 지원 카드까지 꺼냈다. 청년들의 인생 설계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아닌 현금성 지원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현 청년층은 60대 이상과 더불어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가 가장 낮은 세대인 만큼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퍼 주기’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기성세대, 자영업자 등도 세금만 내고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쏟고 있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특별대책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 605조원 ‘슈퍼예산’에 청년 지원만 20조원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올해 예산 604조9,000억원보다 증가한 규모의 예산을 요청했다”며 “정부도 604조원 전후로 (내년 예산안을) 편성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 이상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6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당정은 특히 내년 예산에서 20~30대 등 청년층을 겨냥한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합의했다. 세부적으로는 청년 전용 보증부 월세 대출 신청 자격 요건을 연소득 2,000만원 이하에서 5,000만 원이하로 대폭 완화했다. 대출 대상 월세 한도도 6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늘렸다. 특히 월 20만원까지는 무이자로 대출을 지원하고 월 2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1%의 초저금리 대출을 적용한다. 또 장병 봉급을 병장기준 60만9,000원에서 67만원으로 인상하고 급식 단가도 올리기로 했다. 전역 시 최대 1,000만 원의 목돈을 지급하는 사회 복귀 준비금도 신설한다.
정부 역시 민주당에서 이미 흘린, 같은 맥락의 정책을 26일 ‘청년특별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26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는 무려 87개에 달하는 대책을 쏟았다. 우선 청년 고용 1인당 중소기업에 연 최대 96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청년일자리 도약 장려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대상자만 14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정부는 또 가구 소득 중위 100% 이하이면서 본인 소득이 중위 60% 이하인 청년에게 1년간 월세를 최대 2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내년 청년 주택 5만4,000가구도 공급한다. 구직단계에서 30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주는 국민취업지원제도 대상도 15만명에서 17만명으로 2만명 늘렸다.
청년의 자산 형성을 위해서는 3대 패키지가 도입된다. 연소득 2,400만원 이하의 청년에겐 ‘청년내일저축계좌’를 도입해 저축액의 1~3배를 정부가 매칭한다. 이에 따라 연 120만원씩 총 3년간 납입하면 최종 720만~1,440만원을 받게 된다. 또 연소득 3,600만원 이하 청년에게는 ‘저축희망적금’, 5,000만원 이하 청년에게는 ‘청년형 소득공제 장기펀드’를 통해 정부 장려금과 소득공제를 각각 제공한다. 중소기업 산업단지에 취업한 청년에게 매달 5만원씩 교통비도 준다.
文 “반값 등록금 가까워져...대기업 청년 정규직 채용 협력 강화”
문재인 대통령 역시 24일 청와대에서 청년특별대책을 보고받고 만족한 반응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 대책을 보니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그간 지역 순회 간담회, 연석회의, 관계부처 정책협의 등을 통해 청년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고자 노력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내년부터 5∼8구간의 장학금 지원 금액을 인상하도록 한 대책에 대해 “총액 차원에서는 반값 등록금이었지만, 중산층은 반값 등록금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계획으로 인해 개인 차원에서도 실질적인 반값 등록금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기초·차상위 가구 대학생의 장학금 지원을 대폭 인상하는 것, ‘중위소득 200% 이하’ 다자녀 가구의 셋째 이상 대학생과 기초·차상위 가구의 둘째 이상 대학생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라며 “향후 예산 편성을 필요로 하거나 법령 개정이 요구되는 정책과 달리 이는 2022년 정부예산안에 이미 반영되어 있어 청년들이 바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청와대 참모들과 정부 부처에 “코로나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청년세대 내 격차에 주목해 ‘더 넓게, 더 두텁게’ 지원해 청년 정책의 체감과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대기업·금융기관·공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확대하도록 민·관 협력을 강화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6일 청년특별대책을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으로 ‘N포세대’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우리 청년의 수식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날 국민의힘 강민국 원내대변인은 “3월 대선 직전에 엄청난 돈이 청년층에 등록금과 월세 지원 등으로 추가로 뿌려질 것”이라며 “청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 같은 노골적인 매표 행위에 2030들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20대 文 대통령 지지율은 아직도 노년층보다 아래
당정이 이처럼 청년들을 향한 대규모 예산을 편성한 것은 정부·여당에 대한 이들의 민심 이반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를 실시해 23일 발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고작 32.8%을 기록했다. 전체 지지율(41.6%)를 크게 밑돈 수준이다. 더욱이 20대 지지율은 40대(55.0%), 30대(45.6%), 50대(42.6%), 70대 이상(35.7%), 60대(34.9%) 등 다른 모든 연령보다 더 낮았다. 이것도 30·50·60대 지지율은 떨어지고 20대는 이전 조사보다 2.0%포인트 오른 결과였다.
한국갤럽이 27일 내놓은 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추세는 비슷했다. 이 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31%로 전체 지지율(38%)에 크게 못미쳤다. 30대(41%), 40대(57%), 50대(37%)보다는 오차범위 이상으로 낮았고 60대 이상(30%)과 엇비슷했다.
현 정권에 대한 청년 지지율이 바닥을 친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미 2019년 ‘조국 사태’ 때부터 급격히 이탈하기 시작해 지난해 하반기에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60~70대 노년층을 추월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결과는 여론조사 상으로만 머물던 청년 민심이 실제 선거에서 처음 표출된 장이 됐다. 4월7일 KBS·MBC·SBS가 진행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동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유권자(만 18세 이상 포함)는 오 후보에게 55.3%의 지지를 던졌다. 박 후보가 이 세대에서 얻은 표는 고작 34.1%에 불과했다. ‘젊은이=진보·개혁=민주당’이라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특히 20대 이하 남성의 오 후보 지지율(72.5%)은 충격적인 수준으로 높았다. 20대 이하 남성 가운데 박 후보를 뽑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겨우 22.2%에 불과했다.
▲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 연합뉴스
현금 살포보다 일자리 , 부동산 안정, 보육 대책 등 장기 계획이 우선
이번 당정 대책 발표로 청년층의 민심이 민주당 쪽으로 다시 돌아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래를 보장할 근본 대책 없이 매번 나오는 ‘불우이웃 돕기’ 식 정책에 국민들도 이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년간 월세 최대 20만원 지원’ 같은 정책은 말 그대로 선거를 의식한 듯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처럼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면 이런 지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청년을 위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경기 활성화, 민간 주도 신산업 육성,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일자리부터 늘리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일자리만 있으면 굳이 기성세대에게 세금을 걷어 청년들에게 푼돈을 살포할 유인도 없어진다. 최근 유수 대기업들이 신입 공개채용을 잇따라 폐지하면서 이제는 4년제 대학을 나와도 미래의 밑그림을 그릴 수 없다. 이는 단순히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 등과 엮여 국가·민족 소멸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아무리 월급을 모아도 넘볼 수 없게 된 부동산 문제 해결도 시급하다. 정부가 이를 애초부터 안정화시켰다면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권하거나 월셋방을 지원해 주겠다고 나설 필요도 없다. 집값은 이미 5년 간 오를대로 올라 지금부터 가격 상승이 멈추더라도 청년들에겐 여전히 ‘남의 세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기자회견 이후 부동산 언급을 일절 삼가고 있다. 저출산 국면인데도 현금성 지원 외에 무엇이 나아졌는지 잘 체감할 수 없는 보육 정책도 청년들이 미래를 포기하게 만드는 문제다.
청년층 민심을 잡겠다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할 경우 기성세대의 역차별 불만도 점점 커질 수 있다. 또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국면에서는 자영업자 등 방역의 직격탄을 맞은 집단의 고통을 더 자극할 수 있다. 이번 청년특별대책이 여권 대선주자들에게 큰 호재로 작용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