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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노트07 - 아브라함의 믿음
메타주석?
메타피직스,-형이상학
구약에 대한 신약의 해석이 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차이는? 유대인들은 성경을 해석한 성경이 없다. 미쉬나를 경전을 받아들이지만,
신약의 해석중에 창세기와 관련된 대표적인 구절이 히11장이다.
창-인물들에 대한 해석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해석해 놓은 것이 무슨 뜻인지를 다시 해석하는 것을 메타주석이라 한다. 해석에 대한 해석을 말한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히11장의 구조를 이해하라.
“믿음으로 아벨은 ...(히 11:4)
“믿음으로 에녹은 ...”(히 11:5)
“믿음으로 노아는 ...”(히 1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히 11:8)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
아벨도 한번
에녹도 한번
노아도 한번- 인류의 조상인 노아도 한번만 언급했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3번 언급한다.
8, 9, 11, 12-16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 11:17)
원문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맨앞으로 가야한다. 다른 본문과 같은 구조이다.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번역한 것이 아쉽다.
주석, 강해설교를 하는 목사는 성경본문이 무엇이 있을 때, 무엇이 없을 때 주목해야 본문의 의미가 깊어진다.
왜 아브라함의 믿음은 3번이나 강조할까?
다시 주제를 구분하면
① 8-16절 : 땅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8-10)
② 17-19절 : 독생자를 드리심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의 믿음을 주제로는 크게 둘로 나눈다.
1) 땅에 대한 믿음:
2) 아들이라는 주제: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메시야의 약속은 2개로 나타난다.: 땅+아들, 땅을 얻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땅 팔아서 땅 없는 자가 나온다.
땅 없는 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 제도가 희년이다. 땅은 기업이다. 기업을 무르는 제도, 보아스
① 땅이 없는자 없도록 만든 제도: 희년, 기업무를 자
② 아들없는 자 없도록 만든 제도: 형사취수, 오난의 죄
2가지 주제로 전체를 압축설명해 준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2가지 주제로 설명한다.
히11장에서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둘로
1) 땅으로 나가는 것 8절
2) 땅에 거하는 게 믿음이다.
③ 복을 못 누리는 자가 없도록 주신제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갈 바를 알지 못하고
1) 목적지를 모르고 떠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2) 방향을 모르고 갔다는 것이 아니라 가라고 하는 땅의 상황을 모르고 갔다는 뜻이다.
메타주석이다. 흥미롭고 새롭다.
구약을 해석하는 신약을 근거로 구약의 의미가 진짜 무엇인지를 다시 찾아내는 것이다.
제대로 해석하는 검증자료가 있어서 안전하다.
화잇의 글을 통해서 다시 검증된다. 반가운 감동이 생긴다.
[오늘의 본문 ]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
외방=타향
약속의 땅에 와서 타향에 있는 것 같이 하였다.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
주신 땅에 와서 내 집처럼 산 것이 아니고,
1)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도 믿음이고
2) 갈대아 우르처럼 살지 않고 타향처럼 살았다. 그 증거가 장막에 산 것이다.
아브라함이 정말 탠트에서 살았나? 창세기에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
메타주석을 근거로, 철저하게 찾아낸 내용들이다. 책에서 찾아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낸 나의 발견을 증언에서 확인하니 내 기별이 된다. 설교가 논문이 된다.
내가 발견한 내용이 된다.
성경을 어떻게 새롭게 끊임없이 새롭게 발굴해내는 가? 찾아내는 방법론이다. 고고학적발굴처럼, 성경의 밭을 깊이 파헤치는 경험이다. 보배를 찾아라.
바벨탑이 아니고 바벨성이다. 의미가 깊어지고 확실해 진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
땅으로 나가라.
주신 땅에 대한 확인?
2약속: 땅+아들
땅의 주제로 아브라함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개정)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지시할”로 하면- 오해?
그곳에 가면 구체적으로 보여줄게.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5)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창 12:7)
가나안 여기를 주리라.
3번째 땅약속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 13:14)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5)
창 12:1 보여줄-지시할 과 같다.
지시-갈바를 알지 못하고 한 게 된다.
가나안 지시한 땅- 가면 보여줄게, 구체적인 상황
창14장 조카를 위한 전쟁, 롯을 구출,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남의 땅에 와서 전쟁한 것이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창15장
네 번째 약속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창 15:7)
왜 또가 있는가? 약속을 확증,
아들약속을 확증하시고, 생각해 봐야할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땅을 먼저+ 2절 아들
15장에서 아들을 보챔, 땅 약속을 다시 확인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 15:17)
*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이 지나가셨다. 아브라함은 지나갔는가? 안 지나갔는가?
화잇주석: 아브라함+하나님
쌍방언약이 아니라 일방적 언약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땅 약속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8)
여섯 번째 땅 약속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
6번 반복되는 땅의 약속이다.
창세기를 보면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받았나? 못 받았나?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창 12:5-6) )
12:6 하나님이 주겠다는 약속이 빈 땅이 아니라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은 좋은 곳, 나쁜 곳, 가나안 사람 죄의 상징, 땅은 좋은데 사람은 나쁘다.
히)원어로 읽으면 같다. 땅은 좋은데, 사람은 몰아내야 하기에 나쁘다. 빈 곳이 아니다.
독자들에게 주신다고는 하는데, 그냥 되는 일은 아니겠구나!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아브라함은 땅을 받았는가? 23장 사건이다.
성경전권에서 여자의 수명이 기록된 유일한 구절이다. 이 구절 때문에 사라를 부조사라는 표현 그대로, 모조사라고 한다.
“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창 23:1)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창 23:2)
창-여호수아를 설명할 때 헤브론 곧 기랴아르바가 나온다.
한양 곧 서울 , 같은 지명을 달리 불려지는 것을 설명해 주는 의도이다.
사라가 죽었는데 사라를 묻을 땅이 없었다. 그래서 매장지를 산다. 아비멜렉이 그냥 가지라고 선대하지만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창 23:6)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 성경전권에서 선지자라는 호칭을 제일 먼저들은 사람은?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창 20:7)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누이라 한다. 기록상 첫 선지자는 아브라함
□하나님의 방백= 하나님의 왕자 the prince of God
공짜로 줄께하는데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하기를 원하노라”(창 23:9)
개역개정: 충분한 대가
“so he will sell me the cave of Machpelah, which belongs to him and is at the end of his field. Ask him to sell it to me for the full price as a burial site among you.””(Gn 23:9, NIV11)
왜 충분한 대가를 주었을까?
성지중의 성지가 된다. 헤브론/ 유대인 군인이 총을 들고 서 있어, 군인과 얘기를 하는데, 나는 크리스챤, 나는 어드벤티스트다. 안식일인데 왜 돌아다니냐? 유대인다운 질문을 하더라. 너는 안식일인데 왜 총들고 있냐?
우리는 안식일에도 총을 들고 조국을 지키는게 안식일이다. 여리고를 돌 때 7일중에 하루는 안식일이야 그래서 돌아다녀
막벨라 굴을 왜 준가를 주고 샀나? 막벨라
행7장 스데반의 설교를 참고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행 7:5)
6번이나 약속을 했는데, 유대인들은 땅을 안 받았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은 안 주셨다.
* 다시는 물을 수 없는 가격을 주고 샀다. 부인의 무덤이라고 산다.
히브리서는 철저하게 유대인들에 성소를 설명하는 기자가,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봉사에서 위대한 진리를 가르친 다음에 히 11장에서 뭐라고 설명한다. 외방에 있는 것같이 거하였다. 믿음으로 외방에 있는 것처럼 장막에 거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했는지를 찾아보라?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 12:8)
롯과 헤어진 다음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창 13:18)
“[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 18:1-2)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창 18:3)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창 18:4)
19장에서 롯이 대접하는 것의 차이
히) 기자에 의해 그 차이를 발견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발견하는 엄청난 차이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창 19:1)
성문에 앉았다가- 그 도시의 유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재판에서 장로, 신발을 벗는 곳, 성문
아브라함은 장막에서
롯은 성문에 앉았다가 손님을 맞이함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창 19:2)
히11:9에 꽂혀서 “장막”의 의미로 다시 읽어보니 장막에 거했던 아브라함과 집에 거하는 롯이 차이가 있다.
□롯은 처음부터 장막에 거했는가?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창 13:5)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 13:12)
소돔에 갈 때까지는 장막에 거하였는데 19장에서는 집, 대문, 식탁
아브라함은 나무 아래에서 쉬라고 손님을 대접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아브라함과 롯의 비교
롯보다 더 부요함을 가지고도 장막에서 계속 거하는 아브라함의 삶, 믿음의 증거라고 얘기한다.
이삭은 끝까지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창 24:6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창 25:27)
왜 약속이 부도났다고 하지 않고 받아들였는가?
히) 기자의 설명이 놀랍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
그렇게 한 이유? 10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아브라함이 이미 그때에 가나안의 땅의 의미를 문자적으로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터가 있는 성, 하늘을 사모했다. 히)가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준 땅이라고 생각하고 그들과 지금도 싸운다. 히)서를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지금도 하마스와 싸운다.
문자적인 가나안을 약속하지 않으니
논문으로 설교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서가 없기에 문자적 땅으로만 이해했다.
히브리서 기자의 이해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문자적인 땅에 머물렀다. 신약의 개념을 유대인들은 당연히 받아들여야할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성경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가!
신약에 없으면 예수를 죽인다. 유대인의 모습
[2강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 11:17)
□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언제 믿음의 조상이 되었나? 언제부터 믿음의 조상인가요?
땅+아들의 약속이 겹쳐서 나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민족은 고사하고 아들하나 없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3)
저주하는 자와 저주- 히) 단어가 다르다.
너를 저주하는 자 =우섭게 보는자, 가볍게, 무시하는 자, 너를 무시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아들약속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 15:3)
13장 롯과 헤어짐
14장 4왕과 5왕의 전쟁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 14:12)
15장의 배경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두려워하는 아브라함, 왜 너의 방패라고 하시나?
창 맞아 칼 맞아 죽는 경우에 어느 약속이 급한가? 땅과 아들 중 아들이 중요해진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창 15:2)
자기가 집착하는 문제가 자식임을 드러낸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창 15:4)
네 몸에서 날 자가- 사라가 낳아줄 아들이라고 했으면 16장 사건이 없었을텐데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창 18:10)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창 18:11)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 18:12)
사라의 웃음, 생리적을 불가능합니다. 월경을 안 합니다.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적나라하게 하면 늙었으니 안되거든요. 안서요.
낙-성적관계를 말한다. 근본적으로 성관계가 안되거든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
이정도 되면 믿어야 하는데
19장 소돔사건
20장에 가면 / 이 정도 되었으면
16장 하갈사건
창 12장 아브람이 사라로 인해 받는 후대, 노비는 사람이다.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창 12:16)
“바로는 그 여인을 생각해서 아브람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에게 양과 소와 나귀와 남녀 종들과 낙타를 주었다.”(창 12:16)현대인
노비=남녀종들
16장에서 하갈이 애굽여인임이 금방전달된다.
그 때 애굽에 들어가서 사라를 누이라고 얻은 덕분에 하갈사건이 생기는 구나. 근원을 알게 된다.
네 몸에서 날자-16장 애굽여인 하갈사건이 생긴다.
17장 사라가
18장 기한이 이를 때에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창 18:10)개정
배부른 아내를 두고- 자기 누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것을 믿은 거예요 안 믿은 거예요?
믿긴 믿었는데 제대로 안 믿었다.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창 12:18-19)
어찌- 아브라함의 부족한 믿음 때문에 이방인에게서 받는 조롱
너 왜 이런 짓했어? 마!
조롱당하는 이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
흔들리는 믿음
“[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창 21:1-2)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믿기도 하고, 때로 흔들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3번 질문 받은 것에 답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한대로 아들줬어, 3번 반복한다.
약속의 확실성이다. 믿음의 느낌에 대한 확실성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확실성이다.
흔들리면 목회하는 우리들에게 적용해야할 부분이다.
우리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목회자의 2가지- 그렇게 살면 되겠어, 그래서 살아야 하는거야!
약속의 아들로 출생하고
21장 후반부에 보면 이스마엘이 떠나고 아비멜렉이야기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 22:1)
21장의 사건이 지난 후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까?
화잇의 설명 부조 147- 아브라함의 나이 120세 였다. 이삭은 20세
20년의 세월이 지났을 때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3번 반복하는 아들
이삭-웃음, 기쁨
모리아산-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3)
일찍이 일어나(샤캄) - 새벽에 일어나다
밤새도록 고민하다가도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4)
제3일 신학, 셋째날, 제3일에 -
출애굽기 시내산에 임재한 날, 3째날,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2)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3동사: 가서+경배하고+돌아오리라
주어: 아이와 함께
이 구절의 히브리어 동사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니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개정)
“He said to his servants, “Stay here with the donkey while I and the boy go over there. We will worship and then we will come back to you.””(Gn 22:5, NIV11)
우리 둘이 같이 가서+같이 예배 드리고+ 같이 올 것이다.
아브라함의 속생각을 히브리서 기자는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 11:17)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히 11:18)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아브라함의 생각:창22장의 아브라함의 생각을 주석한다.
이삭으로 말미암아 약속+죽이라 모순되는 명령에 고민하다가 3일에 답을 찾았다. 그 답을 히브리서 기자가 밝힌다.
죽이라면 죽이자. 하나님이 살리시겠구나!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창 22:1 시험하시려고 – 하나님의 입장
아브라함의 입장 : 이틀의 번민과 3째날 발견한 믿음의 해답, 마침내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된다.
유대인들은 부활의 신앙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부활개념이 없다. 유대인들은 부활개념이 없다.
창3:15을 유대민족에 대한 예언으로 본다. 고난받다가 위대한 민족이 된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창 22:9)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10)
아케다. aqeda
창 22:9 아케다. 고유명사 아케다 스토리로 불린다.
기독교인도, 유대인들도, 이슬람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강제로 묶었을까?
감동적인 화잇의 설명
“이삭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더라면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격렬했던 삼 일간의 투쟁에 지쳐서 비탄에 빠진 노인은 혈기 왕성한 청년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유년 시절부터 즉시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이 자신에게 알려졌을 때 그는 자원해서 순종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 드리려고 애쓰며 그의 활기 없는 손을 북돋아 자신을 제단에 붙들어매는 줄을 매게 했다.”(부조, 152)
이삭의 믿음을 함께 읽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별명
창 20장 선지자
창 21장 황태자
하나님의 벗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하나님의 친구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대하 20:7)
언제부터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표현했는지 설명을 발견할 수 없다. 기원은 언제인가?
이 별칭의 기원을 야고보서에 나온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 2:21-23)
의로 여기셨다=창 15:7
별을 보여주시고
그 믿음의 성취가 22장의 이삭을 드림
야고보 사도의 설명: 하나님의 벗이라는 별칭을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서 이다.
화잇의 설명
*구속의 경륜 아브라함
복음을 인상 깊게
창 22장을 통해 독생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아브라함에게 이해시킴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을 실제로 독자를 드림으로 체험적으로 심정을 안 사람은 아브라함
아브라함 너는 내 마음 알겠지, 너는 내 친구하자.
내 심정이 통하는 친구이다.
히 11:17-19절의 의미이다. 그 모든 핵심은 2가지 명령이 충돌되지 아니한다는 것을
논리의 세계를 넘어서는 믿음,
본고사에 실패하고 재수에 합격했다.
땅+아들
메타주석/화잇의 글- 어떻게 해석했을까? 왜?
제 것을 나누어보는 것입니다.
예고)
12-22장 사이에 삽화처럼 들어가 있는 롯의 이야기, 24-26장 이삭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