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여전하십니다” 히 1:10-12
https://youtu.be/lT-HVJPIbeg
1. 당신은 주님이 궁금하십니까?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랫동안 역사를 거쳐 세계와 우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웃 일본은 지진을 알지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설마 내가 지은 집이 무너지겠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알겠지만 우크라니아 같은 전쟁이 일어나 내가 쌓은 것들이 잿더미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슬쩍 들어온 어둠의 마음이 하나 있습니다. ‘아픔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점점 더 확대되어져서 ‘난 이게 힘들고, 난 이런 어려움이 있고’라는 말이 계속 흘러나옵니다.
2-1.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는 ‘주는 여전하시다’는 영원성입니다. 주님의 영원성입니다. 천사는 물론 우리는 낡아서 바뀌어지는 옷처럼 유한합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의 영원하심이란 것을 어떻게 내 신앙되게 할 수 있을까요 – 고난입니다. 고통은 주님의 영원성을 배울 필드입니다. 시편 102편은 살이 뼈에 붙는 것 같은 고통을 토로합니다. 그런데 그 시는 뭇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도하는 시로 바뀝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잃고, 아들도 잃은 야곱에게 요셉이 보낸 수레가 도착합니다. 부서진 인생의 자리에 ‘내가 드릴 경배’의 수레가 그를 다르게 만듭니다.
2-2. 주님의 영원성은 성경적 증거를 가집니다. 제사만큼은 영원하리라 생각했지만 레위계열의 제사장직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멜리세덱 계열의 제사장직을 통하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영원히 남겨질 자리입니다. 제사장되신 주님은 휘장안으로(복음서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는) 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성취이십니다.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시고는 스스로 성취하시며 약속의 영원성을 이루어 내십니다.
3. 미국의 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나오는데 ‘목사님 일년마다 와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 받은 자들의 특징은 거의 한결같습니다. ‘또 듣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고단한 이민생활, 아픈 결혼, 경제적 고통, 스스로도 실망스러운 자신의 모습 가운데서도 영원하신 주님이 계시면 ‘내일이 궁금해 집니다.’ 주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실지가 사모되어집니다. 안정성이 일어납니다.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영원하심이 우리를 고해의 바다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