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통신 8 ] 바다 호수길ㅡ푸른 동해와 우주를 끌어안으며 걷는 길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의 바우길 통신 8 ] 바다 호수길ㅡ푸른 동해와 우주를 끌어안으며 걷는 길

• 입력 : 2010.12.20 10:05

사천진리 해안공원~경포호~허균 허난설헌 유적지~죽도봉~남항진

지난 봄의 일입니다. 봄에도 무슨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던지, 아무튼 3월 한중간에도 대관령 동쪽은 온통 눈세상이었습니다. 바다에 눈이 내리는 모습은 참 기가 막힙니다.
산에 내리는 눈은 나무에 쌓이고, 바다에 내리는 눈은 백사장 위에 그대로 쌓입니다.

▲ 순포해변 백사장을 걷다가 만나는 개울.

바다와 백사장의 경계를 파도가 그 사이에 좁은 길을 내듯 눈을 핥습니다. 이러면 도시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딱 붙어 서서 움직일 줄 모릅니다.

좌우지간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허리 높이까지 쌓인 바닷길을 사람들이 걷는 풍경 또한 눈 풍경만큼이나 장관입니다. 걷는 길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혼자 걷는 길, 호젓한 길을 많이 얘기합니다. 고수들의 걸음걸이죠. 그런데, 눈 쌓인 바닷길은 여럿이 걸어도 참 운치 있습니다. 지난해 눈길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온 여름과 온 가을 동안 한국산악회 강원지부 이기호 대장과 함께 대관령 동쪽의 산과 들을 누벼 바우길이라는 것을 탐사해 놓고 세상에 알리자 금방 그 길에 단풍이 들어버리고, 이내 눈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 위) 겨울 경포 호수길의 풍경. 아래) 5구간 중간쯤 가면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에 도착한다.

처음엔 둘이 걷다가, 넷이 걷고, 열이 걷고, 강릉 시민들이 참여하고, 멀리서 이 길을 걸으러 오겠다고 사람들이 연락하고, 아무튼 그렇게 진행된 가운데 첫 단체손님이 눈 속에 버스 한 대로 바우길 제 5구간 ‘바다 호수길’을 찾아왔습니다. 눈이 내리는 길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산에는 어깨 높이까지, 바닷가엔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는 길을 찾아왔던 것이지요. 처음엔 바다 옆의 산길을 걸으려고 했는데, 바람도 많이 불어 이들의 안내를 맡은 최순각 선생이 급하게 길을 바꾸어 ‘바다 호수길’로 이들을 안내했습니다.

강릉 북쪽 사천 바닷가에서 해변을 따라 죽 내려와 경포해변에서 방향을 틀어 경포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동안 경포대에도 올라가 보고, 경포 호수 옆의 초당마을에 들러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도 들러보고, 그리고 다시 동양최대의 해송 숲길을 따라 남항진까지 가는 길입니다.

▲ 송정 해송 숲길의 겨울 풍경.

배낭 메고 바닷가 걷는 사람들 보고 의아해했던 주민들

요즘은 바다 옆길을 걷거나 시장 한가운데에 배낭을 메고 들어와도 강릉 주민들이 으레 그렇거니 하고 바라보지만, 사실 지난해 겨울만 해도 한겨울에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산길도 아니고 바다 옆길을 걷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의아해했습니다. 한두 명이 걸어도 의아해하고, 버스 한 대나 두 대 많은 사람들이 와 걸어도 그 모습을 아주 별일처럼 의아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배낭이라는 물건이 참 이상합니다. 요즘은 그것도 패션이어서 울긋불긋 하기도 하지만, 가방을 든 모습과는 달리 배낭을 메고 걸으면 저마다 또 한 사람을 등에 업고 있는 것처럼 확실히 더 많은 사람이 길을 걷는 것처럼 보입니다. 열 사람이 배낭을 메고 걸으면 열 사람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열다섯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 걷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철지난 바닷가에, 그리고 겨울 바닷가에, 운이 좋게도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인 흰 해변가를 데이트 족이 아니라 배낭 여행객들이 지나갑니다. 여행객들은 겨울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하고, 바닷가 사람들은 별일처럼 산이 아니라 바닷가 모랫길이나 눈길을 걷는 외지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것이 지난겨울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바우길 위에서도 이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얼마 전 광화문 현판이 갈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아직 진위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 현판을 우리나라의 소나무인 금강소나무로 만들어야 했는데, 육송으로 만들어서 그렇다, 아니다, 여러 얘기가 나왔습니다.

중국의 그 넓은 땅에도 나무 기둥도 붉고 속살도 붉은 금강소나무는 없습니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둥도 붉고 속살도 붉은 금강소나무를 ‘조선소나무’라고 부르다가 ‘조선’이라는 말조차 빼버리고 ‘적송’이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 모든 땅에 금강소나무가 울울창창한 것은 아닙니다. 경북지역과 강원도 지역으로 띠처럼 군락지어 자랍니다.

강릉은 확실히 소나무 동네입니다. 그래서 도시의 네임브랜드까지 ‘솔향강릉’이라는 말을 쓰는데, 바닷가와 바로 붙은 초당 마을의 그 유명한 ‘초당 솔밭’의 소나무도 해송이 아니라 기둥도 붉고 속살도 붉은 금강소나무숲입니다. 그리고 이곳 바다 호수길에는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큰 해송군락지가 있습니다. 바닷가를 걸으면서도 모랫길을 걸을 수도 있고, 흙처럼 푹신푹신한 재질로 포장한 인도를 걷을 수도 있고(물론 소나무 숲속으로 난 도로 옆의 인도입니다),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와 맨땅을 밟으면서 걸을 수도 있습니다.

▲ 1 바우길 5구간 출발지인 사천항에서 그물 손질 중인 아주머니들 2 강문 앞바다에서 해풍으로 건조시키는 생선. 3 바우길 게스트하우스. 1박2식에 1인당 2만 원으로 실속이 있어 인기가 높다. 바우길 구간별 교통편도 안내해준다.

이 길을 걷다가 어디에서든 좋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걷는 길인데, 이 길 어느 중간에서든 몸을 동쪽으로 틀고 영화 타이타닉의 여자 주인공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면 푸른 동해가 그대로 여러분 가슴에 와 안깁니다. 저는 그것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뻥을 좀 쳐서 ‘내가 태평양을 안고 우주를 안는다’고 말합니다. 올겨울엔 또 얼마나 눈이 내릴지 모르지만,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태고의 신비를 안고, 그런 신비한 풍경 속에 길을 걷다가 몸을 틀어 바다를 향해 우주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휠체어 장애우들도 함께 할 수 있어

아, 이 길은 온 가족이 나들이처럼 와서 걸어도 좋습니다. 함께 걷다가 아이가 힘들어하면 좀 더 격려하여 걸어도 되고, 길 중간 어디에서든지 탈출해 가족만의 바다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 호수길은 이 길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보호자만 있다면 휠체어 장애우들도 함께 트레킹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사단법인 바우길은 바우길 전 구간에 이렇게 휠체어 트레킹과 자연 속에 어린 아이와 자연의 풍경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유모차 나들이가 가능한 구간들은 바우길 홈페이지와 바우길 공시카페에 친절하게 표시해 나가려고 합니다. 실제로 봄 가을로 두 번 강릉지역에 있는 장애우 시설단체와 함께 이 길 걷기 행사를 하는데, 이제까지는 그런 행사에 저희가 보조역할로 따라 걷는 정도였지만, 앞으로는 이 좋은 길에 더 많은 장애우들이 함께 트레킹할 수 있도록 더 홍보하고, 더 연구하고자 합니다. 이제 누구든 동해를 끌어안고, 태평양을 끌어안고, 우주를 끌어안으러 이 길로 오시기 바랍니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색다른 풍경도 반갑고 즐겁지만, 길 위에서 먹는 즐거움 또한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 길의 특별한 먹거리는 그걸 하나하나 설명하기가 벅찰 정도로 너무 많습니다. 겨울 사천항에 나는 양미리 즉석구이와 도루묵찌개를 건너 뛸 수 없습니다. 길을 시작하자마자 그것부터 먹을 수는 없겠지만, 길을 다 걸으신 다음 꼭 빼놓지 마십시오.

사천 하평리 해변공원에서부터 시작해 점심때면 정확하게 초당마을에 들어옵니다. 초당마을은 전국에 잘 알려진 두부마을이고, 이곳의 순두부요리와 청국장요리도 먼 길 걷는 손님들에게는 참 든든하고도 소박하고 또 반가운 음식들입니다.

저는 길을 걷기 전에 먹는 아침과 길을 걷는 중간에 먹는 점심은 좀 소박하게 먹자는 주의입니다. 길을 떠날 때는 농담처럼 “차비가 없어서 걷는 사람들이 아침과 점심을 거하게 먹으면 되겠나?” 하고 말하고, 다 걷고 나서 저녁을 먹을 때는 태도를 바꾸어 “차비도 아꼈는데 잘 먹어야지” 하고 말합니다.

바우길 종합안내소 겸 게스트하우스도 아침식사는 소박하게 강릉초당순두부로 대접하고, 하루 종일 길을 걷고 온 저녁 나그네들에게는 약간의 육식(강릉시 옥천동 왕숯불구이집 주방장이 특별한 비법으로 내놓는 제육볶음)을 제공합니다.

남은 지면을 이용해 바우길 게스트하우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바우길은 산길과 숲길 구간이 많다 보니 길이 끝난 지점 가까이 편하게 잠을 잘 곳이 부족합니다. 길을 걷고 나서 이상한 조명의 모텔에 가서 잠을 자기도 좀 꺼려지고요. 또 배낭 속에 점심을 준비해 걸어야 하는 산길 구간과 숲길 구간도 몇 곳 있습니다. 그래서 바우길에 대해 전체적으로 안내도 하고, 1박2일이든 2박3일이든, 혹은 일주일 묵으며 걸을 여행객이든 좀 더 마음 편한 잠자리와 산길 구간의 점심을 동시에 해결해 줄 시설이 필요해 지난가을 종합안내소(033-645-0990) 겸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바우길 홈페이지와 바우길 공식카페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바우길 보도여행이 한결 편해지고 즐거워질 것입니다.

■  구간정보

출발지-사천진리 하평해수욕장 해안공원에서 출발
하평해수욕장-사천해변 솔밭-순포해변 솔밭(백사장)-사근진 인공폭포-경포해변-경포호수-허균 허난설헌 유적지-강문-송정 휴게소-안목-죽도봉-남항진

 교통

■  자가용·전세버스

서울 방향  영동고속도로-강릉분기점(강릉·주문진 방향)-주문진 방향-북강릉 톨게이트-7번국도 우회전-약 1.5km 사천교 직전 사거리에서 좌회전-사천천을 따라 직진(좌측은 논)-약 2.5km 지점 사거리에서 직진-150m에 사천항 옆.

삼척방향  
①동해고속도로-강릉IC 통과-강릉분기점(서울·주문진 방향)-주문진 방향-이하 서울 방향 오는 길과 동일.
②동해고속도로-강릉톨게이트-경포해수욕장-주문진 방향 해안도로-사천해수욕장-사천항 (해안드라이브길)


/ 글 이순원  바우길 탐사단장  사진 이기호 바우길 사무처장

[진센(울보)]

장애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이라서 더 아름다운 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