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아, 이 나이에 ‘막춤’까지 추랴!? / 이원우
네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쯤 안다. 그러니 여태껏 나는 너를 너무 푸대접하지 않았지 뭐야. 그러나 오늘 낮 외출했다가 핀잔을 먹었으니, 널 원망 좀 해야겠다 이거야. 옛 애인(들)이 뭐라 했는지 알아? 나더러 얼굴이 부었다더군.
오랜만인데 보기 좋을 만큼 살이 붙었다면 이렇게 내가 좌절하지 않았을 거야. 아무튼 오늘 내가 네게 맹꽁징꽁 지껄여도 고깝게 생각하지는 말아, 내 오늘 희한한 결심을 했으니, 네가 못마땅하여 구시렁거려도 난 초지일관 내 목소리를 낼 거야.
02년도 내가 메리놀 병원에서 먹지도 못한 채 보름 입원해 있다가 와 보니, 네가 가리키는 저울의 바늘이 63이었단다. 그러다가 내가 퇴원 후 갑자기 증가하는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게검스럽게 먹었잖니? 삽시간에 78! 나는 저울에서 내려와서도 한참이나 어리둥절한 채였지.
네가 그렇게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리라곤 예전엔 미처 생각도 못했었지. 너는 십 년 넘게 내가 통제하는 그대로 66킬로그램 이쪽저쪽에서 머물러 있었으니 말이야. 그래 오랫동안 다소곳이 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 때론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 남들에게.
오늘 나는 네게 푸념을 좀 늘어놓아야겠다. 다섯 자 다섯 치의 단구에 73킬로그램, 그게 허울 좋은 너와 나의 현주소다. 주치의 김순철 부민 병원 의무원장의 전언을 여기 옮기면서 창피를 느낀다. 나더러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려거든 너의 10분의 1은 깎아내야 하겠다는 거야.
너 기억하니? 68킬로그램만 되어도 흔히 이런 표현을 쓰면서까지 너를 탓했다, 아니 탄했다. 땀을 발바닥을 통해 땅으로 쏟아내야 할 ‘비계’가 2킬로그램이 넘는다고----.
근래까지 그런대로 운동이라는 이상적인 처방으로 70의 숫자에 만족하면서 체중계를 오르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69.5-70.5, 그러다가 외형부터 남의 눈을 속이지 못한다는 건 나는 절감했어. 근래 만나는 이마다 살이 쪘다는 거야. 개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인 학생도 있어. 밖에 나가면 그래서 낙담하고 돌아오기 일쑤지. 오늘 아침에 드디어 73을 돌파, 한숨이 절로 나오더구나.
두 가지 장애 요건이 생겼다는 걸 너도 알지 않니?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메리놀에 입원해 있을 때, 너 기억하니? 외출을 해서 태종대로 나갔는데, 그 비싼 복국을 시켜 놓고 국물 한 숟가락 못 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만 주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나는 속으로 한탄했지, 아니 소리는 못 냈지만 나는 부르짖었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사체인들 이보다 못하랴!
그로부터 겨우(?) 8년인데 나는 분명 살아 있으니 기적이랄 수밖에. 그리고 서글프게도 식탐(食貪)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 나이 겨우 초로에 접어들었는데, 생존이란 환희와 음식과의 전쟁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다니 너무 버거워. 가톨릭 신자로서 늘 기도야 하지. 특히 ‘식사 전 기도’는 절대 빼먹지 않는 건 너도 알지 않아? 은혜로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내가 나를 너를 원망하게 된 이유 중 또 하나는 운동 부족이란 거야. 하루 40분 빠르게 걷기는 내 생활의 일부분인데 언제부터인가 그 약속이 파기되어 버린 점, 실로 통탄해야 될 지경이야. 발톱이 빠질 정도로 열성을 보여 오다, 어쩌다 한번 쉬고 보니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게 아니겠니? 그 며칠 동안의 절망감을 내 글재주가 모자라 여기서 나타낼 수 없다는 걸 너도 알 거야.
인간은 본래 간사한 것 같아. 운동을 하다가 쉬다가 하는, 이번과 같은 악순환이 여러 번 계속되다 보니, 이제 만성이라는 질환으로 변해진 것인지도 몰라. 그래 잠정적 포기, 언제 다시 운동장으로 나설지가 미지수라 하염없이 한숨만 쉬고 있구먼, 체중, 네가 알다시피. 어디서든 한 마디 빌어다 써야 하겠는데, 아 참 ‘도래떡이 안팎 없다.’가 안성맞춤이겠네. 변명 하나 그럴싸하고 두루뭉술하게 하네. 내일 운동화 끈을 매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아.
여전히 나는 눈 코 뜰 새가 없어. 오늘 낮에도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인 금곡동 1단지 공창 종합 복지 회관에서, 함흥이 고향인 아흔 살이 다 된 할머니를 중심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느라 목이 터질 뻔했잖니? 4시 반부터는 종빈이 어린이집에 상담하러 가야 하고. 내일은 요크셔테리어인 손녀 후로다 2세의 장례를 치러 주었었던 애견 장례식장 파트라슈를 방문 예정. 아 참 12시부터 이아리스에서 결혼식 주례를 맡았으니 거기 두어 시간 매여야 하지 않겠어? 모레는 초량 시각 장애인 복지관 설립 기념일이라서 11부터 오후 늦게까지 사회든지 심부름이든지 맡아야 하고 말이야---.도무지 틈을 찾을 수 있어야 말이지.
이쯤에서 정답게 너를 부른다. 체중아! 너 ‘막춤’이라고 알지? 오래 전, 어느 방송국의 ‘파랑새는 있다’는 인기 무술 드라마가 있었지. 나는 말이야. 나이트클럽인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무대 위에서 여급이 마구 흔들어대는 그 몸짓이 참 좋더라. 매료? 아니 그 정도로써는 안 되겠고. 섹스어필 혹은 거의 환상이라고 하자꾸나. 그 여자 탤런트를 화면에서 못 본 지 오래라, 섭섭하기 이를 데 없다. 내 격(格)은 그 정보밖에 안 된다.
이왕 버린 몸, 내 건강을 막춤에 맡기고 싶단 말이야. 나는 막춤과 27년여 동안 더불어 살아 왔으니, 일가견이 있는 셈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노인 학교에서 학생들과 어울려 추던 그게 바로 그거야. 관광 춤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오십보백보’! 좀 고급스럽게 표현해서 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지, 막춤 아니면 관광 춤에서.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점찍어 놓은 메들리가 있어. 30분짜리인데, 거의 다 아는 노래고, 템포도 2/4박자 폴카 혹은 폭스트로트더라.
얘, 체중(體重)아. 오늘 밤 이슥해서 내가 불조차 꺼놓고 저급(低級)의, 하지만 찬란한 그 막춤의 진수를 보일 참이야. 도와주려무나. 땅바닥이 아닌 방바닥을 통해 네 스스로의 그 쓸모없는 덩치를 줄여 주는 계기나 시발이 되었으면 해. 자, 너와 내가 반려가 될 운명인 걸 어쩌겠나, 체중아. (2010년 10월 22일) 18장
<창작 후기>
나는 막춤을 출 의무가 있다? 아니 이건 어쩌면 숙명인지 모른다. 앞뒤 정황으로 가늠해 보건대 피할 수 없어서 하는 말이다.
누가 물으리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아니면 창피도 모르느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 내 무대이기 때문이다. 내 방에서 아주 가벼운 차림으로 양말도 벗은 채 막춤에 빠져 들 것이다.
오랜만에 인프라라는 외래어를 한 번 옮겨 써 봤다. 역시 우리말이 좋다는 느낌이다. 막춤 인프라? 현실적으로 그게 존재하니 어쩌랴! 막춤의 대가가 되고 싶다.
이원우(84년 <한국수필>추천/ 97년<한글문학> 소설 신인상/ 전 초등학교장/ 노인 학교장 18년/ 황조근정훈장, 자랑스런 부산 시민상 봉사 본상, KNN 부산 방송 대상/지은 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