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와 달
해와 달의 이야기는 동·서양의 가장 매력 있는 테마다. 이 테마는 바로 천지 창조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주역》에서는 “하늘(乾)을 위대한 창조력이라고 생각하여 그 힘을 받아서 만물이 시작되고, 땅(坤)은 고요하고 움직이지 아니하나 그 생성력을 받아 모든 생명을 기른다”고 인식했다. 원래 신화의 인물 거인 반고(盤古)가 있기 전에는 천지가 분화되지 않았다가 비로소 그에 의해 카오스(Chaos) 상태인 천지가 처음 열리게 되면서 하늘(乾)과 땅(坤)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유학고사경림(幼學故事瓊林)》에는 “기(氣) 중에 가볍고 맑은 것은 떠올라 하늘이 되었고, 기 중에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뭉쳐 땅이 되었다. 해와 달 그리고 금, 목, 수, 화, 토, 오성(五星)을 칠정(七政)이라고 하며, 하늘과 땅, 사람을 삼재(三才)라고 하는데 해는 모든 양(陽)의 기운이 다 모인 것이요, 달은 모든 음(陰) 중에 가장 원초적인 상(象)이다” 라고 했다. 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큰 천체이다. 해에서 나오는 빛과 열이 없으면 만물의 생장은 멈춘다. 그래서 고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와 달을 숭배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해 속에는 세발 까마귀가 살고 달 속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산다고 믿었다.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의하면, “토끼의 ‘兎’자는 토할 ‘토(吐)’와 음이 같기 때문에 달은 햇빛을 받아서 정기(精氣)를 토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달 속에는 섬여가 사는데 곧 두꺼비이다. 이 두꺼비는 서왕모(西王母)의 불사약인 선도(仙桃)를 훔쳐 먹고 달로 달아나 변신한 항아(姮娥)라고 한다”. 그래서 월궁항아(月宮姮娥)라는 말이 생겼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한창 드라마로 유명세를 탔던 주몽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구려>조에 의하면, ‘해모수와 사통(私通)한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柳花)는 따라오는 햇빛을 받아 임신이 되어 크기가 다섯 되나 된 알을 하나 낳았다. 왕이 이 알을 버렸지만 짐승이나 새도 이를 보호하여 끝내 깨뜨리지 못해 탄생한 아이가 바로 동명성제(東明聖帝)이다’. 고려의 시인 이규보(李奎報)는 <동명왕편(東明王篇)>에서 “금와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유화를 별궁에 두었네/가슴에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그 해가 바로 계해년(B.C. 58)이었지/생김새가 참으로 기이하고/우는 소리마저 크기도 해라/처음 됫박만한 알을 낳으니/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랐다네/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왕도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 목동을 시켜 마굿간에 두었지만/여러 말들이 있어도 밟지도 않네/ 깊은 산 중에 버렸지만/온갖 짐승 찾아와 보호해 주었다네” 라고 칭송한다.
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간 신라의 해신과 달신으로 회자된다. 이 두 사람이 일본으로 간 순간부터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가지고 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다시 신라의 해와 달이 전과 같이 빛났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해는 최고의 신의 하위신으로 생각되지만, 일본에서는 최고의 신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들의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쓰이는 것으로 보아 동북아 일대에 까마귀와 해신의 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해와 달의 도상 1972년 마왕퇴(馬王堆) 1호묘에서 발굴된 T자형 명정(銘旌)은 서한(西漢) 초기 장사국(長沙國)의 승상이었던 대후(侯) 이창(利倉)의 부인 신추(辛追)의 묘에서 나왔다. 이 비단 그림은 기원전 2세기 가량 된 한나라의 회화로서 매우 진귀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비단 그림 상단에 좌우로 해 속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고, 초생달 속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이런 그림들은 이후 6세기 즙안 5괴분군 5호무덤에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다. 그러나 고분벽화에 해신과 달신이 등장하지만 사람의 몸에 용의 꼬리(人神龍尾)를 하여 동그란 해와 달을 머리 위로 받쳐 들고 있는 것이 한대(漢代)의 그림과는 다르다. 그리고 남자신이 받쳐 든 해 속의 세발 까마귀(三足烏)는 한대의 두발 까마귀가 고구려 식으로 변형된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제주에도 창조신화가 있다
제주에《성경》의 <창세기>와도 같은 <천지왕본풀이>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밤과 낮이 왁왁하여 지부왕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뜨게 하자 사람들이 낮엔 더워 죽고, 밤엔 추워 죽으니 대별왕, 소별왕이 달과 해를 하나씩 쏘아 떨어뜨려 지금의 해와 달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고대 힌두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에는 “어디로부터 창조가 일어났는지, 세상이 저절로 생겨났는지 그렇지 않은지, 최고의 천상에서 굽어보는 그이, 그이만이 아노라, 어쩌면 모를지도...... ”로 끝을 맺는 <無有讚歌(Nasadiya)>가 있다. 그리스의 창조 신화에는 “태초에는 가이아(땅)와 광대한 혼돈의 바다(카오스) 밖에 없었고, 그 카오스에서 에레보스(어둠)가 나왔고, 다시 어둠에서 하늘과 낮이 나왔다. 이집트의 창조신화에는 “위대한 태양신 라가 존재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인 물의 심연이 있었고, 라는 물의 심연에서 나타났다. 그 후 모든 것이 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는 “태초에는 광활하고 기름기 많은 혼돈의 바다밖에 없었다. 바다를 바라보던 하늘의 신령들이 세상을 창조하기로 하여 ‘이자나기(불러내는 남자), 이자나미(불러내는 여자)를 비롯해 많은 남녀신들을 만들어 내었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하늘에서 내려와 일본의 섬과 산, 폭포들을 낳았다” 어느 나라든 혼돈은 창조의 모태인 것이 분명하다.<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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