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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동영상들이 참 많네요.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이라는 검색어로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좋은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3. 11. 14. 날짜의 SBSCNBC 인문학 강의 [Who am I] "최진석 :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이라는 강연인데, 47분 남짓의 분량입니다. 조회수가 52만건에 육박하는 인기 동영상입니다. 먼저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소개문을 옮겨봅니다.
[강연소개] 창의력, 삶의 기품, 인격적 성숙 등은 모든 지적활동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지점인 동시에, 자신이 확보해야만 하는 '길'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은 이러한 목표지점을 자신이 직접 본 후에, 그곳에 일직선으로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 힘은 다름 아닌 인문학에서 나온다. 과연, 최진석 교수가 알려주는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강연자 소개] 최진석 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북경대학교 철학박사,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토론토 대학교 동아시아학과 방문교수.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역서)장자철학 外 다수 집필
유튜브 주소는 https://www.youtube.com/watch?v=_khfDbhitZw
이 동영상에서 최진석 교수는 자기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생산자"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주체력"이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언제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 내가 나로 사는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성인들의 말씀이나 사회의 보편적 기준 그리고 이념 등의 수행자가 아니라, 내적 자발성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읽기와 쓰기, 배우기와 표현하기, 듣기와 말하기 등을 예로 들면서, 삶 전체를 배우는데 바치고, 정리하는데 바치고, 듣는데 바친다면 자기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내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며 읽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이유는 내가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이고, 배우고 공부하는 이유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읽기와 쓰기의 중간지점, 듣기와 말하기의 중간지점, 배우기와 표현하기의 중간지점을 "경계"라고 지칭하면서, "자기활동은 경계에 위치해야 한다. 그 지점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삶의 궁극적인 동력의 출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욕망의 주인, 욕망의 실행자, 자신의 말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자기자신으로 사는 것, 즉 기준의 생산자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개인의 자발성, 독립성, 주체성, 주체력만이 사회의 변혁, 발전, 품격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설명하면서, "혁명하는 개별자들이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을 하고 있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죽기 전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2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충고하기, 둘째, 남의 충고듣기. 이 2가지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은 남의 충고에 대해서 "내가 알아서 하면 안 되?"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절대 버려서는 안되는 2가지도 말합니다. 첫째, 자기자신에 대한 무한신뢰, 둘째, 자기자신에 대한 무한사랑. 이 2가지를 절대 버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최진석 교수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내적 자발성에서 생산되는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밖에서 이미 생산된 기준에 견주어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우리는 욕망의 담당자, 경계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요즈음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동영상과 책들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제 삶은 정상궤도에서 이탈했습니다. 2년 전에 저는 25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쫓겨났고, 함께 지내던 동료들로부터 외면 당했습니다. 30년을 함께 살았던 아내와는 현재 별거 중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갚지못한 빚이 잔뜩 남았지만 당분간은 파산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삶이 송두리채 바뀌었고, 향후의 길은 불투명합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 건지? 종종 혼란스럽습니다. 제 삶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하고 재조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지식과 삶의 방식만으로는 역부족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인문학 공부, 좀 더 정확하게는 잡학입니다. 그때 그때 관심가는 대로 이런저런 동영상과 책들을 접하고 있는데, 저 자신이 지금까지 참 폭이 좁게 공부하고, 폭이 좁게 살아왔다고 느낍니다. 제가 몰랐던 얘기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종종 감탄하곤 합니다.
저는 상당수 조현-조울-우울 당사자와 가족들도 저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의문과 막막함 속에 답답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현-조울-우울이 처음 발병했을 때에는, 비록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병원 잘 다니고, 의사와 전문가들이 시키는 대로 믿고 따르다 보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년내에 병세가 상당한 정도로 잡히고, 사회생활이 정상궤도로 진입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5년 또는 10년 세월 동안 나름대로 애를 써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거나, 사회생활이 정상궤도로 진입하지 못하면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이대로 사회로부터 영영 낙오하는 것은 아닐지? 인생이 별 볼 일 없이 끝나게 되지나 않을지? 노후생계는 어찌될 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비록 인생이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 원인은 다르다 해도, 이들의 고민은 지금의 제 고민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을 것이라 느껴집니다.
본 동영상에서 최진석 교수가 말하는 요지는 그 답은 누구도 대신 찾아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성인의 말씀도, 어떠한 학술적 이론도, 어떠한 지식이나 이념도, 어떠한 조언이나 충고도 그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밖에서 생산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내부로부터 생성된 자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지난 주에 읽었던 "분열병과 인류"라는 책을 떠올렸습니다. 나카이 히사오라는 분이 쓴 책인데, 일본에서는 1982년에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에 번역출판되었습니다. 한중일 출판업자들이 선정한 "동아시아 인문서적 100선"에 선정된 책입니다. 이 책에 의하면, 17세기에 철학자와 의학자 중 누가 정신질환을 담당할 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오늘 최진석 교수의 동영상을 보면서, 저는 철학자들도 문제해결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현-조울-우울의 문제가 의학적 관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의학적 관점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요. 특히 약물치료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의학적 관점, 즉 질병이라고 보는 관점만으로는 조현-조울-우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의학적 관점, 즉 질병이라고 보는 관점을 고수하는 한, 조현-조울-우울 당사자는 사회 속에서 삼류시민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의학적 모형은 조현-조울-우울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합니다. 결함이 있는 것, 고장난 것, 열등한 것, 고쳐야 할 것으로 규정합니다. 고치는 방법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그리고 이런저런 서비스입니다. 물론 서비스 제공의 주체는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입니다. 완치가 된다면 몰라도, 완치가 되지 않는 한 당사자와 가족들은 평생동안 이런저런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며, "비정상"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제 주장은 이렇습니다. 약물치료를 비롯한 의료서비스를 받기는 하되,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복지서비스가 꼭 필요합니다. 당연히 추가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의료서비스는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복지서비스는 "장애"라는 낙인을 동반합니다. 즉 불이익이 있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낙인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당사자들은 사회 속에서 삼류시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삼류시민이라고 느낄 것이고, 상당수 일반인들도 그들을 삼류시민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원인은 다르겠지만 저도 지금 비슷한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제 스스로 저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인생"으로 생각할 위험성, 남들로부터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할 위험성에 처해 있습니다. 삼류시민이 될 위기. 그것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질병관점과 복지관점으로는 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기존의 제 지식 속에서는 답을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요즈음 인문학 내지는 잡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당사자들도 저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모형과 복지모형은 고통을 많이 경감시켜 주기는 하지만, 그 모형만으로는 삼류시민의 딱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동영상에서 최진석 교수는 함석헌 선생님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인용했습니다.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지려면 혁명하려는 개별자들이 자기자신부터 먼저 혁명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즉 당사자의 자발성, 독립성, 주체성, 주체력이 갖춰져야 하며, 이것만이 사회 변혁, 발전, 품격의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자기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 것, 달리 말하자면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존엄한 존재"로서 존엄하게 사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상이 최진석 교수의 설명입니다. 또한 그와 관련된 제 생각과 이야기입니다.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내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즉 읽기와 쓰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경계지점에 있어야 한다. 그 경계에 자기활동이 존재할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글을 읽을 때도 그냥 읽지 마시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으라는 말씀으로 풀이됩니다. 최진석 교수의 이 동영상은 제게는 참신하고 산뜻했습니다. 조회수가 52만건에 육박합니다. 47분 분량이지만, 시간투자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영상은 다음에 보도록 하겟습니다.
동영상도 보니 매우 감명이 깊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또 다시 볼렵니다.
에효 촛불님...빨강글씨가 넘 눈이 아파요
보라색 은 어떨지
제가 두달동안 빨강글씨로 메모하다고 그만,.,,,
수정했습니다. 보라색이 훨씬 더 낫네요. 의견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항상 정상이라는 줄에서 벗어날까 줄타기하는 조마조마한 삶...저같은 경우 주위에 병명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ㅠㅠ
주말에 함 보겠습니다. 감사.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의 글은 논리 가운데 따뜻함이 있네요. 신기하게도...
동영상도 잘 보겠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어보니
"당사자의 투병방식의 변화"라는 저의 화두에도 잘 부합될듯합니다.
최진석 강의: 한 주일 일끝나고 금요일 저녁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듣고 있는데 좀 어렵네요. 중요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알겠지만...몇 번은 들어야 할 것 같아요...제 자신이 좀 부족한듯...지식인들과 대학생은 좋을 듯...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듯해서. 좋은 강의 추전해 주어 감사합니다.
인문학에서 삶의 빛과 생명수를 얻고 있는 저로서는
촛불님의 구절구절에 절대 공감이 듭니다.
제가 깨닫고 노력하고 있는 것들을 요약해 놓으셔서 너무 반갑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렇듯 친절하고 자상하게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