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의 보혈
<보혈의 가치를 알자>
히브10,22절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일 때, 내 양심은 즉시 깨끗이 되고 죄책감도 제거되며,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의 양심은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믿는 마음과 아무런 참소가 없는 마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서로가 상호보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양심에 불안을 느낄 때마다 우리의 믿음은 새어나가고 즉시로 우리는 하느님을 대면하여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교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피의 가치를 새롭게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기록하시기 때문에, 오직 보혈로 말미암아야 매일, 매시간, 매분, 하느님을 가까이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보혈을 의지하고 보혈을 하느님을 가까이하는 근거로 삼는다면, 영원히 이 보혈의 효능은 상실되지 않는다. 보혈 외에는 무엇으로도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참으로 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가? 아니면 다른 것으로 인하여 나아 가는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오래전 어느 수도원 피정 중 피정 교사의 마리아 중보 사상과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강론에 너무 실망하여, 피정 후 그분의 무지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토론하고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애석하게도 가톨릭은 이미 복음을 떠났고, 의식과 형식의 종교로 변질 되어 버렸다.
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내가 내 죄를 시인하고 정결케 함과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인하기 때문에, 주 예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힘입어 하느님 앞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업적이 아닌 그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선하게 살았든 악하게 살았든 혹은 범죄했든지 범죄하지 않았든지 우리가 하느님을 가까이 할 수있는 근거는 영원히 오직 하나, 곧 그리스도의 피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근거이다(에페2,13; 히브10,19, 22).
그러나 많은 믿는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이 복음의 기초를 떠난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시작할 때 피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가까이한 것 같이, 종착지에 이르러서도 우리의 근거는 오직 한 가지, 곧 이 보혈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 보혈을 떠나서는 양심은 영영 깨끗케 될 수 없다.
오직 이 피만이 우리를 두려움 없고 담대하게 한다. 히브10,2절은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4,8)”라는 바울의 말에 반향할 수 있다.
<참소자를 이긴다>
이제 방향을 돌려서 마귀와 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피에는 사탄을 향한 방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안에서 사탄의 가장 맹렬한 활동은 바로 형제들을 참소하는 일이다(요한묵시12,10). 그러나 우리 주님은 대제사장의 특별한 직분 안에서 그분의 피(히브9,12)로 말미암아 사탄을 대적하신다.
이 피가 어떻게 사탄을 처리하는가? 이 피는 하느님을 능히 사람 편에 서시게 함으로써 사탄을 처리한다. 타락과 죄는 사람 속에 무언가를 가져와서 사탄에게 사람 속에 설 발판을 갖게 하였다. 인간이 저지른 일로 인하여 사람 속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지금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멀리 떠나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로마3,23).
이것이 제거되기 전에는 하느님은 이치(理致)나 원칙(原則)에 맞게 사람을 보호하실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피가 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했다.
1요한1,7절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종류의 죄(every sin)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다. 요한은 총괄적으로 “모든 죄”라고 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죄, 모든 항목의 죄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하느님은 빛이시다.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모든 것이 빛 아래 드러나게 되어, 모든 것을 보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의 피는 우리의 모든 종류의 죄를 능히 깨끗케 할 수 있으시다. 이것은 내가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거나, 하느님이 나를 온전히 알지 못하거나, 또는 내가 어떤 것을 숨기거나, 하느님이 어떤 것들을 소홀히 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빛 가운데 계시고, 나도 빛 가운데 있을 때, 보혈이 나의 모든 종류의 죄를 씻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분의 보혈로 족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약함에 억눌리거나, 심지어 시험을 받음으로 어떤 죄는 결코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죄(every sin)란 큰 죄, 작은 죄, 아주 검은 죄, 우리 생각에 용서받을 수 있는 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의식하는 죄, 의식하지 못하는 죄, 기억하는 죄, 이미 잊어버린 죄 등 모든 죄를 포함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종류의 죄(every sin)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피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이미 하느님을 만족케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빛 가운데서 우리의 모든 죄를 보셨고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죄들을 용서하셨는데 사탄이 무엇을 근거로 우리를 참소할 수 있겠는가?
로마8,31-34절은 “31 만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3-34 누가 능히 하느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느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느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혈이 절대적으로 하느님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히브9,11-12절은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한다. 그분은 오직 한 번 속죄자가 되셨지만, 그분이 대제사장과 중보가 되신 것은 거의 이천년 동안이나 되었다.
그분은 하느님 앞에 서신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1요한2,2)”이시다. 히브9,14절은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느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는 말씀을 주의하라. 이 말씀은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피는 충분한 것임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사탄을 대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탄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참소할 뿐 아니라 또한 양심 안에서 우리를 참소하기 때문이다. 사탄이 우리와 다투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마귀는 ‘너는 이미 범죄하였고 계속 죄를 범할 것이다. 너는 연약한 자이며 하느님은 더 이상 너에게 어떠한 것도 하실 수 없다’라고 참소한다.
이 참소 때문에 우리는 우리 속을 살피게 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 안에서나 느낌 안에서 혹은 자신의 행위에서 사탄이 틀렸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생각한다. 혹은 이와는 달리 우리는 미혹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다른 극단에 빠져 침체와 절망에 굴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소는 사탄의 가장 흉악하고 효력 있는 무기이다. 사탄은 우리 죄들을 지적해 내어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참소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참소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즉시 넘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사탄의 참소를 받아들이는가? 이는 우리가 여전히 우리 자신의 의(義)를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이 방면에서 사탄은 항상 성공적으로 우리를 틀린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이로써 사탄은 승리하여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면, 육체의 본성은 범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범하여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내 말의 뜻을 이해하겠는가? 우리가 육체의 참 본성을 모르고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 대한 한 가닥의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를 참소할 때마다 우리는 넘어지고 만다. 하느님께서 능히 우리 죄를 처리하여 주실 수 있지만, 그분은 결코 참소 아래 있는 사람을 처리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보혈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피가 그를 위하여 유리한 말을 할지라도 그는 돌이켜 사탄의 말을 듣는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변호자이시지만, 참소를 받는 우리는 참소하는 자 편에 서 있다. 참으로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쓸모가 없는 자임을 모른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서 죽기에만 합당한 존재임을 깨닫는가? 우리는 오직 하느님만이 참소자인 마귀에게 응수하실 수 있고, 그분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마귀에게 응수하신 것을 아직 모른다.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주 예수를 바라보고, 어린양의 피가 각종 죄로 얼룩진 상황에 응수하시고, 그분이 이미 그 죄들에 응수하셨다는 데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서야 할 믿을 만한 기초이다. 절대로 우리의 선한 행실로 사탄에게 응수하지 말고 항상 보혈로 그에게 응수하라. 우리는 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피가 우리의 모든 종류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 하느님은 이 피를 보셨고, 그의 아들은 이 피로 말미암아 사탄의 참소에 응수하셨기 때문에, 사탄에게는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할 근거가 없다.
오직 이 피를 신뢰하고 얻은 바 위치를 떠나지 않은 사람만이 사탄의 참소를 그치게 하고 그를 달아나게 한다(로마8,33-34). 이 체험은 끝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묵시12,11). 하느님께서 아들의 피로 만족하셨듯이, 우리도 보혈의 가치를 믿게 될 때, 우리는 사탄으로부터 해방 받게 될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참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