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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노르만족의 대이동 -
유럽의 지도가 변하다
바이킹- 노르만족
동물이든 인간이든 위기에 봉착하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본능이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인간인 이상 남을 해하면서까지,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까지는 차마 못할 짓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모진 목숨 끊을 수 없어, 아무리 돌아봐도 벗어날 구멍이 보이질 않자 영웅으로, 전사로 새롭게 태어나 무기를 든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찬양하는 게 아니다. 다만 당시에는 만연했던, 역사를 거슬러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현장에 서있다면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인간이 가장 치열하다. 왜냐하면 약탈의 본능을 제어할 이성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어서다.
8세기 유럽 북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은 그들을 오달지게 담금질 했다. 일 년 중 절반 이상이 우리네 오동지섣달이라고 생각해보라. 당연하게도 이들이 살던 곳은 농사를 지을 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름이면 남쪽으로 이동해 가을걷이가 끝난 남쪽의 수확물을 약탈해 돌아가거나, 가을이 끝날 무렵에 내려와 추운 한겨울을 따뜻한 남쪽에서 보낸 후 다시 돌아가는 계절에 따라 선택적 이동을 이어간 부족도 있었다. 이들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항해술의 발달을 가져왔고, 거친 바다에서도 항해하기 알맞은 배를 창안했다. 뼛속깊이 약탈의 본능이 박힌 이들을 사람들은 바이킹이라 불렀다. 노르만족, 즉 바이킹족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롱십(longship)이란 배를 이용해 번개처럼 들려들어 노략질한 후 바람처럼 사라지는 이들은 그야말로 천하무적 해적이자, 유럽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르만’의 어원은 북방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주로 유럽의 북부 현재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인근에서 살아가던 사람들로서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에도 악착같이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다. 바이킹의 어원을 비잔티움제국 용병 ‘바랑인 근위대’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르만족의 위용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뜻이다. 바랑인 근위대와 관련해 조금만 알고 넘어가자.
‘바랑인 근위대’ 노르만인
결론부터 말하면 ‘바랑인 근위대’는 노르만인으로 구성된 비잔티움 황제의 근위병이다. 비잔티움제국 황제의 명령에만 따르는 노르만족 용병이란 뜻이다. 비잔티움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재위 1081~1118)의 딸이자, 역사가, 저술가인 안나 콤네나(Anna Comnena)의 표현을 옮기자면 바랑인 근위대는 제국의 황제만을 향한 무한충성과 그 목적만을 위한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가족처럼 보호했다. 황제만을 위해 충성을 바쳤고, 이들의 신성한 믿음은 대를 거듭하면서 전해졌다. 이 충성스러운 자들은 그야말로 순수함을 유지했으며 배신의 사소한 징후마저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 - 안나 콤네나 -
이들 바랑인은 8세기 노르만족이 남하하기 훨씬 이전인 6세기부터 내려왔는데 비잔티움제국의 근위병이 된 자들은 선구자에 속한다. ‘바랑기안’은 스칸디나비아지방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9세기 본격적으로 남하하면서 우크라이나 남부에 정착한 노르만족의 일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바랑기안’은 그 옛날 노르만어로 맹세를 뜻하는 ‘바르’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이들 역시 노략질로 잔뼈가 굵은, 뼛속 깊이 해적의 DNA가 들어찬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용맹하고 우직했다. 비잔티움제국의 황제로서 자신만을 믿고 따르는 데는 이만한 용병이 없었다. 이들은 주로 북유럽식 전투방식을 고수했다. 바랑인 근위대는 방패와 도끼를 들었는데 필요에 따라 말을 이용하기도 한다. 전투에 임했을 때 항상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용맹한 병사들이었다. 함성과 함께 이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마주하는 상대는 저승사자를 만난 듯 심장이 얼어붙었을 것이다. 얼핏 황제를 제거하려는 음모라도 엿보이면 곧바로 응징을 가해 황궁 내에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로지 한 목적만을 위해 직진하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 된다.
바실리오스 2세(재위 976~1025) 당시 이들의 활약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비잔티움제국의 귀족 바르다그 포카스란 인물이 바실리오스 2세의 불가리아 침략의 실패를 빌미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스스로 바실리우스, 즉 황제라 칭하며 비잔티움을 향해 진격했다. 급기야 반란군에 의해 비잔티움제국이 함락될 지경에 이른다. 다급해진 바실리오스 2세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공국 블라디미르 1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키예프에서 바랑인 용병 6천 명이 달려왔다. 비잔티움제국은 용맹한 이들의 도움으로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었다. 바실리오스 2세는 이 용병들의 용맹과 충성심에 충격을 받았다. 무한신뢰, 바랑인 용병은 귀족 출신의 근위병보다 훨씬 믿음이 갔다. 툭 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 이민족으로 구성된 근위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유럽에 용병모집 열풍이 불었다. 스웨덴에서 용병들의 유산을 처리하는 특별법이 생겨날 정도였다니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용병 중 볼리 볼라슨이란 인물을 소개한다. 그는 1006년에 그의 동료들을 이끌고 비잔티움제국 용병에 합세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말 그대로 금의환향, 아니 자의환향紫衣還鄕했다. 그는 황제가 하사한 자줏빛 망토를 걸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볼리 볼라슨은 고향에서 일약 스타가 된다. 그동안 겪었던 전쟁의 비화를 비롯해 비잔티움 무기와 전술까지 입에 거품을 물고 화재에 올렸다. 볼리 볼라슨 아직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의 후일담을 함께 전해주기도 했다. 갑이란 놈은 황제에 충성을 다하다 전사했고, 또 을이란 병사는 그곳 여인을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둥의 이야기가 퍼진다. 이 후일담이 모여 바이킹 사가私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르만족 뿐 아니라 켈트인, 앵글인 등 북유럽의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켈트친위대’로 불리기도 했다. 반드시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제에 따라 사건에 따라 이들의 운명이 좌우됐다. 특히 제4차 십자군전쟁 당시 황궁을 지키던 바랑인 근위대가 원정군에게 궤멸을 면치 못했던 뼈아픈 사건도 있다. 이후 재건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15세기까지 존속된다.
‘도끼를 진 야만인’ 바랑인 근위대의 특징은 황제 개인에게 존속된 것이 아니었다. 황제라는 제위, 즉 직제에 소속감을 나타냈다. 반란이 일어나면 황제를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러나 도중에 황제가 죽으면 곧바로 지금까지 맞서 싸웠던 찬탈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제국의 황제를 위한 이들의 순수한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들에겐 결속력이 필수였으며, 역사상 이들에 의해 반란이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이들이 바로 바이킹족이라 불리는 노르만족이었다.
노르만족의 대이동
사설이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르만족의 이동의 과정과 이동이 가져온 유럽의 일대 변혁을 살펴보자.
4세기 훈족에 이어 2차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는 노르만족은 어떤 원인으로 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다만 기후의 변화로 인한 절박함과 인구의 증가로 농사지을 땅이 턱없이 부족해졌고, 더는 그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오래전부터 해왔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이르자 이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동을 결정한다. 한 날 한시에 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옆 부족이 이동하면서 함께 결단을 내렸을 수도 있었고, 성공적인 이동을 보면서 용기를 낼 수도 있었으며, 부족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이를 따르는 민족도 있었다.
이들의 이동경로는 보면 어느 한 곳으로 집중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나누어 골고루 퍼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남부에 나폴리 왕국을, 프랑스 북부에 노르망디 공국을 세우고,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건설하면서 스코틀랜드·아일랜드·웨일스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 무리는 대서양을 항해한 끝에 오늘날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정착한다. 또 한 무리는 이베리아반도 끄트머리 지브롤터해협을 통과해 지중해로 들어가는 긴긴 항해 끝에 시칠리아왕국과 나폴리왕국을 세운다. 특히 동쪽으로 이동한 무리는 노브고로드 공국과 더불어 러시아의 전신인 키에프공국을 건설하면서 이전에 이곳에서 살던 슬라브민족을 발칸반도로 밀어내 그곳에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동을 거듭하면서 나라를 세운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들 역시 본래의 종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믿으면서 유럽 역사의 하나로 흡수되고 유럽의 봉건사회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르만족이 남하를 시작할 당시 유럽은 동프랑크와 서프랑크왕국, 그리고 비잔티움제국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때에도 유럽은 평탄하지만 않았다. 북쪽에서 밀려오는 노르만족뿐만이 아니라 남쪽의 이슬람과 동쪽의 마자르, 즉 훈족의 후예인 헝가리인들의 공격을 온 몸으로 지켜내야 했다. 물론 노르만족이 본격적으로 남하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은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미 동프랑크는 마자르족을 맞아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슬람으로부터 가톨릭교권의 서유럽을 지켜내는 비잔티움제국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노르만족이 짠! 하고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그들 특유의 방식대로 평소 배를 머리에 이고 다니다가 강을 만나면 배를 물에 띄우고 항해하면서 유럽 내륙 깊은 곳까지 침략을 이어갔다.
점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10세기가 들어서면서 서프랑크의 수도 파리를 포위한다. 노르만족의 한 부족장이었던 롤로는 서프랑크왕국의 샤를 3세에게 자신들이 살아갈 땅을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샤를 3세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북서부 바닷가 지역을 이들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롤로는 그곳에 나라를 세우는데 바로 노르만족의 이름을 딴 ‘노르망디공국’이다. 공국이라 함은 제후의 나라, 즉 공작 작위를 가진 인물이 독자적으로 다스리는 땅을 뜻한다. 서프랑크왕국의 공국이 되었단 뜻이다.(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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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인 ‘신성 로마 제국’ 《이탈리아사》, 2005. 3. 1., 위키미디어 커먼즈
* pmg 지식엔진연구소, 2017. 12. 05., 박문각,
첫댓글 그동안 입안에 거미줄 걷어내느라 정신없는 날들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슬금슬금 시동을 걸어볼까 하는데...
이거 뭐 너무 멀리 왓다리갓다리 하다보니 내도 햇갈려서^*^
그래도 무한반복, 중구난방, 좌충우돌, 오락가락, 즁언부언, 동가식서가숙 스탈은 계속됩니다.
바이킹의 역사로...
여긴 거의 접하지 못한 부분이라 아주 재미있음. ^^*
개인적으로 솔찍히 별 관심없는 분야인데
마치 연애소설 처럼 한번에 쭉 읽어지는 뭔가 특별하네요
2편이 기대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