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감독은 비난 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하고 신중하며 예의 바르고 대접하기에 힘쓰며, 가르치기를 잘하고(디모데전서 3:2)
본문에서는 감독의 정의는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입니다. 목회서신인 디도서에서도 장로는 분명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디도서 1:5~6) 이것은 여자목사를 안수하는 교단도 여자 장로가 없다는 점 이기도합니다. 성경에서 목사는 교회의 감독이면서 장로입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위치는 가르치는 장로인(디모데전서 5:17) 성경교사이며(에베소서 4:11) 양무리를 치는 장로이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5:1~3)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같은 직분입니다.
자기 집안을 다스려서 온전한 위엄으로 자기 자녀들을 순종케하는 사람이어야 하리라. 사람이 자기 집안을 다스릴 줄 모르면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디모데전서 3:4~5)
목사와 집사의 안수의 조건은 바로 가장인 남편입니다. 오늘날 여권시장으로 여자가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가 많은데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은 남자인 남편입니다. 아내는 자식을 다스릴 수 있어도 남편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나왕있기 때문입니다.(골로새서 3:18)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5:23) 그러므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고린도전서 11:3) 이것은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된 것은(에베소서 11:8~9)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된 것을 예표합니다.(사도행전 20:28) 또한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을 따르듯이(에베소서 5:26) 여자도 남자에게 가르치거나 권위를 행사하지 말아야하며(2:11~12) 교회에서 조용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자녀와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
(디모데전서 3:13)
한편 여자목사를 안수하지 않는 교단 중에서 여자집사를 세우는 교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도 분명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논쟁할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집사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은 사도행전 6장에서 집사들을 세울때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여 훌륭한 평판을 듣는 일곱사람을 찾아서 택하여 일을 맡기고(사도행전 6:3) 여기에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소위 보수적인 교단들은 왜 이것을 간과합니까? 여자목사가 비성경적이듯이 여자집사도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라피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을 재판하니(재판관기 4:4)
여자목사를 지지하는 소위 페미신학자들은 드보라를 예로 들면서 여자목사가 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구약시대의 여선지자로서 재판관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잔타르크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약교회시대의 성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카나안 정착시절과 지금 교회시대를 동일선상에서 놓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도와 선지자들은 구약이 끝나고 사도들이 신약성경을 기록하던 사도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히브리서 1:1, 2:4) 바울의 초기서신인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도와 선지자가 나오지만(고린도전서 12:28) 옥중서신인 에베소서에는 목사와 교사가 나오기 시작하며(에베소서 4:11)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사도와 선지자가 사라지고 장로와 집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칭 선지자들은 거짓선지자들이며 자칭 사도라 하는 사람들은 거짓사도들입니다.(고린도전서 11:13, 요한계시록 2:2)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가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이란 여자를 용납함으로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이라.(요한계시록 2:19)
아담이 먼저 속아서 범죄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죄한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사제와 여신숭배는 밀접하다는 점입니다. 고린도지역의 이방종교의 여사제들은 종교창녀들로서 머리를 짧게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이방종교의 여사제 출신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서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음욕이 불타올랐으며 심지어 황홀경으로 예수는 저주받은 자라는 망언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에서는 우상숭배에 참여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여자는 머리에 두건을 쓰든지 머리를 기르라고 했으며 여자는 조용히 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배교의 과정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니콜라당의 교리에서(요한계시록 2:6) ‘니콜라’란 말은 ‘지배하다’란 뜻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목사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골로새서 1:18) 그런데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는 성직자주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제에게 고해성사가 되는 것이며 평신도가 제사장이면이 교황이 대제사장이 되는 교황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발라암의 교리를 지키는 것은 종교혼합주의로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카톨릭 공인르로 바빌론의 종교의식을 가져와서 태양신의 생일인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변경해서 성경에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라면서 이방의 나무우상인 아세라를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삼일 후에 부활했지만 부활절은 춘분이후 첫 번째 일요일인 세미라미스를 기념하는 이스터이며 세미라미스가 태어난 알인 부활절 달걀을 교회에서 먹는 것입니다. 종교혼합주의는 오늘날 WCC와 WEA로서 종교간 대화와 종교다원주의와 더불어 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음녀 바벨론은 로마 카톨릭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예레미야44:15~19) 오늘날 현대신학은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입니다. 페미신학자들은 기독교계의 배교에 대해서 침묵할 뿐입니다.
불경스럽고 늙은 부녀자들의 꾸며 낸 이야기들을 버리고 오히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디모데전서 4:7)
그러면 소위 페미니스트 기독교들은 “남자 목사들은 얼마나 잘났냐? 여자성도들을 차별하고 간통하고 성폭행도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고고한 척을 하는가? 그런데 왜 남자들만 목사 할 수가 있다고 말하느냐 이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느냐? 꼭 성경에 기록된대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신학적 관념으로 보아야하지 않느냐?”
그러면 저는 이렇데 대답하겠습니다. ‘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 무식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베드로후서 3:16)’성경에 분명히 적혀 있는 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스스로 새로운 신신학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께 속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과연 여자목사가 남자목사보다 더 도덕적인지 묻고 싶습니다. 신옥주 목사는 아내가 있는 남자성도를 소위 타작마당이라는 미명아래 뺨을 때리고 강제노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치기준은 전쟁나냐 안나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입니다, 그런데 서사라목사의 2차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성도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안식일교의 엘렌 지 화이트여사는 어떻습니까? 율법주의와 행위구원을 말하지 않습니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사제와 여신숭배는 상당히 밀접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수녀는 마리아숭배를 위하여 평생 독신으로서 서약을 맺지 않습니까? 여사제를 신격화를 하면 살아있는 여신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안상홍증인회(하나님의 교회)의 장길자는 어머니 하나님이라 하지 않습니까? 동방번개단(전능신교)의 양향빈은 여자로 재림한 예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에서 남자성도보다 여자성도가 많고 남자성도보다 여자성도가 더 믿음에 순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자목사가 남자목사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독교가 부패해지는 것은 중세 로마 카톨릭부터 오늘날 라오디케아시대의 교회까지의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여자목사를 지지한다면 남자가 담배 피는데 여자도 왜 담배피우면 안되냐와 같은 논리입니다. 당신도 소위 성직자가 되고 싶습니까?
내가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에 동참하게 될 자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전서 5:1~3)
우리는 목사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직분입니다. 나는 목사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양입니까? 목자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양이면서 목자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 목자는 바로 누구입니까? 참목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한복음 10:11) 양들의 세계에서는 양몰이개가 목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양들을 이끕니다. 목사는 교회에서 제일 큰 어르신인 장로이며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하며 교회를 치리하는 감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양몰이개란 사실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양무리의 본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자매들은 뭐를 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안하고 왔다갔다하는 구경꾼입니까?
아닙니다. 자매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자매를 가르치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역할입니다.
나이 많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 되게 하여 행실이 거룩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절제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