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천애인(막 12:28-34)
*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살 때 해마다 5월 둘째 일요일이 어머니날(mother's day)이다. 이날 수많은 식당에는 모든 어머니들이 요리를 하지 않도록 외식하려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물론 그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살다 개척교회 전도사가 된 처지에 세 자녀의 아빠가 되어 경제 사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날은 몰라도 가족들 생일과 ‘마더스데이’에는 외식을 했다.
* 그런데 정작 ‘파더스데이’가 되면 아무것도 얻어먹지를 못했다. 6월 셋째 일요일이 아버지날(Father's day)인데 이날을 기념하는 사람들도 거의 보지를 못했다. 7월의 셋째 일요일인 어버이날(Parents' day)도 마찬가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더스데이’에 비해 ‘파더스데이’나 ‘패어런츠 데이’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4년에 법률안에 서명하면서 제정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날이 있는지도 모르며 지나간다.
* 미국에서 "어머니날"은 앤 자비스(Ann R. Jarvis)을 기억하려고 그녀의 딸(안나)이 시작한 모임에서 유래했다. 1914년 토마스 윌슨 대통령은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고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날짜를 어머니날로 정해 기념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영향 때문인지 84개국이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기념하고 있다. 영국은 부활절을 3주 앞둔 3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을 '마더링 선데이(Mothering Sunday)'로 기념하고 있다.
* 가톨릭 국가들은 '성모 마리아의 날'을 어머니날로 기념하고, 베트남, 라오스,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 등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어머니날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2년이 조금 지난 혼란의 시기였다. 인구 2,300만 명 중 상이군경이 100만 명이고, 전쟁미망인이 30만 명, 전쟁고아는 그 수를 파악하기조차 힘들었다.
*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날이 제정됐고, 창경궁에서 전국에서 선발된 장한 어머니 137명 광목 한필씩을 선물로 받았다. 이후 왜 아버지날은 없느냐는 여론 때문에 1973년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함께 기념하는 어버이날이 제정됐는데 약간은 억지춘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문제로 논란이 많다. 아시는 대로 어버이날은 법정기념일로 분류돼 있을 뿐 단 한 번도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적은 없다.
* 그런데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기에 "국민들이 5월의 중요한 날로 어버이날을 꼽지만 쉬지 못하는 직장인들에게 어버이날은 죄송한 날이 되고 있다"며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겠다"고 공약했다. 인사혁신처가 국민 의사 수렴을 거쳐 관련 수정안을 내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법제처 심사 등을 통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관보에 게재하면 바로 공휴일로 적용된다.
* 그러나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다. 반대하는 쪽은 양가를 방문해야 하는 부담감 등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고 취업준비생, 독거노인, 영세업자 등은 효도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 같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최근 잡코리아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8.8%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기념일로 어버이날을 꼽았다. 어버이날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선물과 용돈 등 경제적 지출이 크기 때문이다.
* 80년대 초엽까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가장 부러운 것이 대가족 제도로 한 울타리 안에서 3~4대가 어울려 사는 모습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미 그때부터 서구의 노인들은 양로원의 뜰이나 거닐고 공원 의자에서 무료한 날을 보내는 것을 보던 그들에게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천국을 연상시킬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도 산업화, 핵가족화 등의 영향을 받아 농경사회시대의 훈훈한 인심이 사라지고 각박한 현실을 쫓아 살아가다보니 어느새 우리에게는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던 대가족이 해체된 지 오래다. 그리고 어버이날의 공휴일 지정 논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효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세태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너무 각박하게 변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물론 효라는 것은 억지로 강요될 수 없는 문제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기는 하지만, 각종 기념일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듯이 효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보는 날이(공휴일이던 아니던)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부활절이나 주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아무 생각 없이 보내면 무의미한 날이지만, 그 정신을 생각하며 뜻 깊게 보내면 의미 있는 날이 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 그런 의미에서 어버이날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겠다. 20세기 들어 어머니날이 지정되기 전에도 이미 서구 사회에는 그에 준하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영국과 그리스에는 사순절의 첫날부터 4번째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풍습이 존재했다. 결국 어머니날은 기독교 정신과 연결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공식적인 어머니날은 아니지만 이미 그 정신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졌다.
* 공식적인 어머니날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인 1930년 무렵부터 구세군의 가정단이라는 단체에서 ‘어머니 주일’을 지키기 시작했다. 1932년에는 감리교 연합회에서 5월 둘째 주일을 ‘부모님 주일’로 지킬 것을 결의했다. 한국의 어머니/부모 주일은 단순히 기독교 정신만이 아니라 유교적 가치관이 결합해 지켜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거의 전세계에서 어머니날을 기념하고 있을 만큼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동서양을 초월하는 것이다.
* 실제로 기독교는 물론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소위 4대 종교가 모두 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덕분인지 다른 여러 덕목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거나 변하기도 했지만 효는 수천 년이라는 시대의 간극을 넘어 현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경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전처럼 효가 강조되지 않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다. 따라서 효는 통교(通敎)적이면서 통시(通時)적이다.
* 오늘이 석탄일이기도 해 불교 동네 얘기를 잠깐 하자면 불교에서 효를 다룬 경전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어느 경전인지는 모르겠지만 효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첫째, 정성을 다하여 부모님을 받들어야 하며 둘째, 음식이나 의복을 잘 해드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고 셋째, 부모의 말씀과 명령을 어기지 말아야 하며 넷째, 부모님이 잘못 생각하고 계실 때는 고개 숙여 바로 잡아들이는 것이 효도의 길이다.”
* 유교 경전에는 효에 대한 구절이 너무 많아 인용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아무래도 유교가 효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효는 행인의 근본이라고 했으며 효경에서는 효가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가르쳤다. 그 영향을 받은 우리 조상들은 효로써 사람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효경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필수과목이었고, 조선시대의 이황 선생은 이를 배움의 입문으로 삼았다.
* 성서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구절이 꽤 존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십계명이다.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은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출 20:12)라고 명시하면서 효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윤리 중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인 것이다. 이외에도 부모공경에 대한 율법이 다수 기록되어 있는데 일부는 엽기적이다.
* “자기 부모를 때린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출21:15), 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신 27:16) 등 불효자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는 구절도 많이 있다. 심지어 “아버지를 조롱하며 어머니를 멸시하여,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새끼 독수리에게 먹힐 것이다”(잠 30:17)라는 살벌한 구절도 있는데 지난주 언급한 것처럼 고대사회의 지혜문학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 이처럼 주요 종교들이 모두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중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유교와 기독교의 효를 조금 비교해보면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유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심과 더불어 그에 합당한 예를 중시하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육신의 부모는 물론 우주만물의 부모인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다. 이것이 기독교식 효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유교식 효나 기독교식 효 모두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알아야 조금이라도 그 길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객쩍은 느낌이 들면서도 조금 더 설명을 하겠다. 유교나 기독교는 자연법과 사회법의 측면에서 효를 중시한다. 두 종교는 효를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인간됨의 척도로 간주한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부모공경만을 강조하지는 않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더불어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두 종교는 효와 관련해 공통점이 많다.
* 그렇지만 유교에서는 효를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효의 기원을 하나님께 둠으로써 신앙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유교의 효는 인본주의에 기초하는 반면, 기독교의 효는 신본주의에 기초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비신앙적이 되고, 신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광신적이 될 수 있으므로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다.
* 어쨌든 이런 기독교적 효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예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효자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석 유영모 선생은 효 기독론(孝 基督論)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는 수 세기 동안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았던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오자마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다수가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그 원인을 단 한 가지에서 찾는다.
* 바로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이 조선인들에게 “아버지”로 소개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하신 그야말로 지상최고의 효자로 여겨졌다. 다시 말해 당시 조선인들에게 하나님은 신이라기보다 아버지로 먼저 인식됐고, 신-인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런 이해에 기반할 때 예수의 순종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효였다고 말할 수 있다.
* 예수는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하던 시절에 “아바”라는 친근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받들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순종했다는 점에서 효의 모범을 보인 분이다. 그래서 류영모의 제자 김흥호는 “유교의 핵심이 효(孝) 사상이고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유교의 전부”라고 말하면서 기독교를 부자유친의 완성태라고 주장한다. 지극히 합당하다고 여겨지지만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 기독교의 핵심은 동학 용어이지만 “경천애인”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부자유친은 경천에 해당하기 때문에 애인이 추가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셨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라고 단언한다. 이는 신명기 6:5에 기록된 내용(“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을 인용한 것이다.
* 이 계명은 분명히 기독교식 ‘부자유친’의 완성태이다. 그러나 예수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이 역시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라는 레 19:18을 인용한 것이다. 이는 경천애인 중 ‘애인’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즉 경천과 애인을 통해 비로소 기독교의 사랑(agape)가 완성될 수 있다.
* 공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學而編)”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근본이 되는 일에 힘써야하며, 모든 일에 근본이 서야만 도가 생겨난다. 효성과 우애는 바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인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이 사랑이듯, 유교의 근본은 인(仁)인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효성과 우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효성은 경천이고 우애는 애인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온전한 유교, 온전한 기독교가 된다.
* 유교의 효성이 자기 부모에 대한 효만으로 끝나면 허례허식이 되고 말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공경도 율법주의가 되고 말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효는 육신의 부모를 넘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할 때 완성된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애와 이웃사랑이 실천된다. 어버이주일을 맞아 진정한 효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 효를 실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