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의 독립운동 시기는 한일강제합병 즈음부터 광복 직전까지로 파주 전역에서 장기간 이루어졌다. 독립운동을 하다 연행돼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는 모두 35인(연행 당시 본적지, 주소지가 파주인 인물)으로 다수의 인물이 체포되었던 1919년 3월 항쟁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황유현(黃裕顯, 당시 61세, 천현면 법원리)은 1919년 3월 1일 조선독립선언서 및 조선독립신문을 서울에서 가져와 주민에게 읽어주고 독려, 24일 *소사들을 마을에 보내 주민을 규합, 25일 천현면사무소에 모인 주민 400여 명을 지휘, 26일 700명을 이끌고 문산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 소사: 관청, 회사, 학교, 가게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하여 고용한 사람.
그해 3월 교하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때 체포된 인물은 임명애, 염규호, 김선명, 김창실, 김수덕, 김수진이다. 임명애는 3월 10일 교하공립보통학교(현 교하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100여 명의 학생을 모아 독립만세운동을 외치게 하고, 25일 염규호 집에 집결, 26일 독립만세운동을 펼치고자 결의, 출판물을 발행하고 김창실이 배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