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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인터넷공개강좌 2022년 12월 14일(수)
수필공개강좌 (11회)
월간좋은수필 주간
1, 나의 수필 쓰기
1970년대 초, 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매일 서울에서 군산을 왕복해야하는 장사를 시작했다.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된 직후여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고속버스를 타도 왕복 일곱 시간이 걸리는 강행군이었다.
고단한 일이라 피곤했지만 그렇다고 버스를 타는 일곱 시간 내내 잠만 잘 수도 없어, 신문이나 주간지 따위를 닥치는 대로 사서 읽으며 무료를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隨筆文學이라는 작은 판형의 얄팍한 잡지가 눈에 띄었다. 한 권 사서 읽어보니 이제까지 읽던 읽을거리들과는 그 격조와 재미가 사뭇 다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책이 작고 얇아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 좋을뿐더러 글이 짧으면서도 격조 높고 깊은 맛이 있어 단박에 단골독자가 되었다. 그 책에는 ‘독자란’이란 게 있었는데 거기 실리는 글들을 보니,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첫딸아이가 고열로 사경을 헤매는 바람에 아내와 함께 밤을 새우며 애를 태운 일이 떠올라 그 이야기를 써 보냈더니 그 글이 실린 책과 함께 6개월 정기구독권이 배달돼 왔다. 재미가 나서 몇 달 후에 또 한 편 보냈더니 역시 글이 실리고 6개월 구독권이 왔다. 이렇게 수필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 잡지가 폐간되고 말았다. 뒤 미쳐 나도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 한 동안 수필을 멀리하고 지냈다.
그러던 내가 수필을 쓰게 된 것은 미당 서정주 선생께서 《文學精神》’을 창간하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친구의 도자기 요에 오신 선생을 처음 뵙게 된 인연으로 해마다 세배를 다닐 만큼 존경하며 따르던 터였다. 잡지를 창간하신 선생은 내게서 무슨 싹수라도 보셨던지 시를 써보라고 권하셨지만 나는 수필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 1987년 한 해 동안 혼자 끙끙대며 수필 세 편을 만들어 응모한 것이 이듬해 2월호에 발표되어 등단했다.
등단을 하고 나니 글 쓰는 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수필 공부라고는 윤 오영 선생의 《수필문학 입문》 한 권을 읽은 것이 전부인데다가, 면식 있는 수필가가 한 분도 없어 지도를 받을 길도 없었다.
배울 데가 없으면 선배를 모방하는 것도 공부가 될 것 같아, 피천득 선생의 글을 흉내 내 보기로 했다.(수필, 오월, 인연--) 그러나 그 간결한 문체에 산뜻한 감각을 흉내 내기란 당초에 불가능 했다. 다음으로 윤오영 선생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어려서 글방에 다녀본 경험을 살린다면 선생의 그 글방 냄새 나는 글의 아취를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이 또한 가당치 않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방망이 깎던 노인, 달밤) 그 다음으로 생각해낸 분은 김소운 선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선 굵은 남성적 수필을 쓰는 분으로 여기고 있던 터라, 서정성 짙은 부드러운 수필이 대종을 이루는 우리 수필 풍토에서 시도해볼만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또한 마음 같지 않았다.(목근통신, 외투, 가난한 날의 행복) 좀처럼 흉내 내기가 어려울뿐더러, 어찌어찌해서 비슷하게 써놓고 보면 선생의 글을 베낀 것 같아 찜찜했다. 나는 거기서 수필은 인품에서 울어 나오는 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경륜과 인품이 그 분들에 미치지 못하면서 흉내를 내려한 것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고려자기나 조선 백자를 왜 재현하지 못하나--)
이런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수필 관을 훗날 첫 수필집《돼지가 웃은 이야기》와, 잇달아 펴낸 수필 선집 《바다의 묵시록》 서문에 각각 다음과 같이 썼다
–좋은 약은 대개 맛이 없다. 더러는 먹기에 역겹기까지 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약도 먹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를 거부감 없이 먹게 하는 방편으로 당의를 입힌다. 수필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수필은 술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술은 원료도 좋아야하지만 발효와 숙성 과정을 제대로 거친 것일수록 맛이 좋고 향도 그윽하다.
–졸저 돼지가 웃은 이야기 서문 일부
–수필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짧은 것이 특성인 수필 한 편에서 무슨 전문 지식이나 심오한 철학을 배우려고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을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필에는 아무 알맹이 없이 잔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틈나는 시간에 재미로 읽되, 읽고 나서 뭔가 느끼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졸저 바다의 묵시록 서문 일부
그 동안 나는 대략 이런 생각으로 수필을 써온 셈이다. 모방에 실패하고 나니 내 분수대로 쓸 수밖에 없었고, 재미를 추구하려다 보니 서사에 치우치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수필을 쓰지 말고 소설을 써보라고 권하는 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 수필이 모두 소설 같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종래의 우리 수필이 선비의식에 발목을 잡혀 매너리즘에 빠진 나머지 문학의 서자 취급을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인식을 같이하는 문우 열 명이 모여 2006년 봄 ‘양재회’란 동인회를 결성하고 이듬해에 동인지《수필 실험》을 창간하여 부정기적으로 5집까지 내고 요즘 6집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그 동인지 창간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 우리 수필이 국제적으로는 물론 국내의 비중 있는 문예지나 신춘문예 등에서 마저 외면당하고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간밤에 마시다가 흘린 주흔이다’ 하는 식의 선비의식이 거역할 수 없는 전통처럼 우리 수필 계를 지배해오는 동안 대다수의 수필가들이 수필을 한낱 파한破閑의 여기餘技 쯤으로 여겨온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어느 분야에서나 선비연하고 똬리를 틀고 안주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수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제는 수필도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나뒹굴고 있는 녹슨 철모이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달리는 전동차에 몸을 던진 어느 가장의 혈흔, 또는 침대시트에 얼룩진 불륜의 흔적일 수도 있어야 한다. -《수필 실험》창간사 일부
나는 이런 생각으로 수필을 쓰고 있다.
2,나의 수필작법
가, 물속에 뛰어들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듯이 수영을 배우려면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안방에서 수영 이론을 십 년 배우는 것보다 직접 물속에 뛰어들어 일 년 텀벙거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그 속에 뛰어들어 수필과 친해져서 자꾸 읽고 쓰고, 쓰고 읽고 하다 보면 작법은 저절로 터득되는 것으로 믿고 실천하고 있다. (평소에도 늘 구상 메모--)
나. 당의(糖衣) 입히기
나는 어렸을 때 몸이 약했기 때문에 약을 많이 먹었다. 대개가 탕관에 달인 한약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날 만큼 써서 안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면 엄마는 코를 잡고 할머니는 퍼 넣는데 억지로 먹이는 게 분해서 마지막 한 모금이라도 뱉어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무리 좋은 약도 맛이 고약해서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수필도 마찬가지. 내용이 아무리 좋은 마음의 양식이라도 재미가 없어서 읽지 않으면 인력 손실, 지면 낭비일 뿐이다.
(철학이나 지식은 논문이나 전문서적에서-- 설명하지말고 보여줘라)
요즘은 당의를 입힌 약들이 나와서 아이들도 잘 먹는다. 그렇다고 약효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착안해서 수필에도 당의를 입히자는 것이 나의 작법이다.
(더 좋은 비법은 술 빚기, 찹쌀+물 +누룩, 평범한 소재에서 비범한 맛과 향기를--)
다. 감정 잡기
노래를 감칠맛 나게 부르려면 감정부터 잡아야 한다. 슬픈 노래는 슬픈 감정, 기쁜 노래는 즐거운 감정을 잡은 다음에 불러야 그 정서가 제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내 자신이 먼저, 내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에 젖도록 감정을 조절한다. 담배도 피우고 차도 마시고 그래도 안 되면 팽개치고 나가 술을 곤드레가 되도록 마실 때도 있다.
라. 목청 가다듬기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대개 목청이 좋다. 미성이면 미성인대로, 허스키면 허스키로서 듣기에 편하고 아름답다. 다만 그 목소리가 그에 적합한 노래를 만났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동백 아가씨」는 역시 이미자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 나고, 「돌아가는 삼각지」는 배호의 음성으로 들어야 제격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문체를 클래식 톤으로 할 것이냐, 육자배기가락으로 할 것이냐를 생각한다. 글쟁이에게 있어서의 문체는 가수의 목소리에 해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피천득의 「오월」과 김소운의 「목근통신」류의 수필이 문체가 서로 바뀌었을 때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마. 어깨 힘 빼기
권투나 야구 코치가 선수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어깨에 힘을 빼라는 것이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 KO나 홈런은커녕 헛손질이나 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그 강박관념에 짓눌려 제 실력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중들에게 멋진 폼을 보여 주겠다는 생각도 마찬가지. 그래서 큰 게임에서는 잘 나가는 신인보다 한물 간 백전노장이 오히려 제 몫을 해 낸다는 말도 있다. 산전수전 다 겪는 동안 욕심은 금물이라는 진리를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깨의 힘부터 빼자고 다짐한다. 아는 만큼만 쓰자, 능력대로만 쓰자, 겉멋 부리지 말자….
바. 외통수 찾기
장기를 두다 보면 외통수에 걸려 지는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물론 졌을 때는 억울하고 이기면 통쾌하다.
‘강호형의 수필은 마지막 한 줄로 외통수를 둔 것이 많다….독자는 여기서 꼼짝할 수 없다….’
황필호 교수가 내 첫 수필집 발문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외통수란 본래 수가 달리는 쪽에서 더 밝히기 마련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15장 원고에 14장을 단숨에 써 놓고도 마지막 한 장을 쓰는 데는 2, 3일이 걸리는 수가 있다. 패색이 짙은 장기꾼이 외통수나 찾는 꼴이다. 그러나 외통수도 수는 엄연한 수다. 수필에도 외통수가 있어 마지막 한 줄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황 교수의 말이 과찬인 줄은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상당히 고무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도 마무리가 좋아서 긴 여운을 남기는 수필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수필을 쓰고 있다.
(일상적인 일 평범한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
부록; 강호형의 수필 세 편
1, 돼지가 웃은 이야기
청계로 변 Y동 어구에 오래된 순대 국 집이 있었다. 허름한 유리 문짝에 붉은 페인트로 ‘순대국 전문'이란 간판 겸 안내문이 씌어 있기도 하지만, 출입구 옆에 놓인 연탄 화덕 위에서 더운 김과 구수한 냄새를 내뿜고 있는 큼직한 국솥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간판 구실을 하는 집이었다.
손잡이에 기름때가 번질거리는 미닫이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역시 기름때가 밴 나무 탁자 두 개와, 구멍 뚫린 드럼통 두 개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동그란 의자들이 시설의 전부인데, 한쪽 벽면에 걸린 선반 위에는 상처 난 뚝배기들이 엎어져 있고, 그 옆 채반에는 이 집의 전문 메뉴인 순대와 내장과 돼지머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돼지머리는 간단없는 식칼의 공격을 받아 참혹한 형상일 때도 있지만, 아직 손을 타지 않아 온전할 때에는 방금 세수라도 한 듯 멀끔한 얼굴에 살짝 눈웃음까지 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덩달아 미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주모는 환갑 진갑을 훨씬 넘긴 노파였다. 이십여 년 동안 줄곧 그 자리를 지키며 순대 국 만을 팔았다는 주모는 알맞게 뚱뚱한 몸매에 후덕하고 수더분한 인상이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다. 한 우물만 판 덕에 손님의 대부분이 단골이었는데, 단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는 몇 분의 바깥노인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정의가 두터워 손님이라기보다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내는 터였다. 내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집을 드나들게 된 것도 실은 이 노인들의 무사무욕(無邪無慾)한 우정을 엿보는 데 더 재미를 붙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정이 그렇고 보니 노인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날은 모처럼 들른 것이 헛걸음이 된 기분이기도 했다.
그날은 마침 드럼통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노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한쪽 자리에 순대국 한 뚝배기에 소주 한 병을 받아 놓고 노인들의 화제에 귀를 기울인다.
"저 돼지 눈웃음치는 상판 좀 보게. 꼭 쥔(주인)마누라 소싯적 같으네 그랴."
부실한 치아 때문에 입에 든 머리고기가 부담스러워 공들여 우물거리는 다른 노인들과는 달리, 가장 기력이 있어 보이는 충청도 말씨의 노인이다. 말이야 짐짓 좌중에게 동의를 구하는 척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걸려온 농지거리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주모다.
"앗다, 왜 조용한가 했더니 인제야 시작이구먼? 저 웬수……."
그러나 말과는 달리 주모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저걸 좀 보라니께? 닮아두 쬐끔만 닮은 게 아니구 아주 판에다 박았다니께."
다른 노인들의 얼굴에도 장난스러운 웃음기가 번진다.
"저 돼지가 어떤 돼진 줄이나 알구 하는 소리유?"
"어떤 돼진 어떤 돼지여, 홀애비돼지길래 과부 집에 와서 선웃음을 치고 있지……."
"돼지두 당신처럼 과부라면 사죽을 못 쓰는 줄 아는가베? 저게 처녀 돼지라우, 처녀두 보 통 처년가? 꼭 가둬 기른 숫처녀지……."
노인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럴 듯도 하다고 동의하는 노인도 있었다. 또 다른 노인이 어조를 사뭇 누그려, 허긴 저 마누라도 젊어서는 꽤 쓸만한 얼굴이었다고 회고하자 노인들은 웃음을 거두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어디선가 확성기 소리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내용인즉, 김○○ 선생의 연설회가 있으니 애국시민들은 모두 모이라는 것이었다. 마침 대권을 목전에 두고 노 씨 한 분과 김 씨 세 분이 모두 목이 쉬고 안구가 충혈 되었을 때였던 것이다. 가두방송이 멀어져 가자 자연 화제는 '누구를 찍느냐'로 번지고 있었다.
"오번(이번)에는 '영샘이'가 될 기라."
하고 자신의 의중을 제일 먼저 내보인 것은 한복바지에 양복저고리를 입은 노인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일 먼저 농을 걸었던 노인이 나섰다.
"나는 누가 뭐래도 '죙필'일 찍을 테요. 여태껏 경상도 사람이 해먹었으니 충청도서두 대통령 한 번 나얄 것 아닌감?"
다음에는 말쑥한 양복 차림의 노인이 점잖게 나섰다.
"어쩌니 저쩌니 해두 될 사람을 찍어야지 무슨 소리들을 허는 거요. 누구니 누구니 허구 떠들어들 대지만 그 사람들 돼 봐야 허구헌 날 싸움질들이나 허지 뭐가 제대로 될 것 같아?"
그 노인은 그곳 토박이로서 과거 여러 해 동안 통장을 지낸 일도 있는 유지라고 했다. 이리하여 갑론을박이 한창일 때, 이제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단정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밭은기침을 하며 나섰다. 좌중에서는 가장 연장일 뿐 아니라, 허리춤에 달린 황소 부랄 모양의 안경집이며 코에 걸린 안경알 속의 노안에서 풍기는 위엄이 출신 가통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시방 자네들 뭔 야기들 허고 있는가? 누가 될 사람이고, 누굴 찍는다고? 선거는 허도 않고 어떡해서 될 사람은 발써 정해졌당가?"
이제까지의 선비적 침묵과는 달리 노인의 음성에는 노기마저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일장의 훈시(?) 끝에 내려진 결론은 '대중이 선상‘이 대통령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결론이 도출되기까지 노인의 논리와 표정이 너무나도 정연, 진지하였으므로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뜻밖에도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주모였다.
"그냥반두 잘한 건 읍지 뭘, 양보하기 싫다고 딴살림 차려 나간 건 잘한 건가?"
그리고는 자신도 '될 사람'을 찍겠노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노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니 결판은 이미 난 셈이었다.
-노 씨 두 표, 세 김 씨 각 한 표.
어쩔 수 없이 부동표가 된 나는 난감한 심사가 되어 문득 바라보니 선반 위의 '처녀돼지'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2, 부부
무던한 부부지간에도 가벼운 말다툼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도에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도 가벼운 입씨름이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부부간에 활력소 구실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짓도 오래 지속하다 보면 단골 ‘메뉴’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이 자존심에 저촉(?)되는 사안일 경우 잘못하면 위험 수위로까지 치닫는 수도 있다. 자식에 관한 문제가 그 중의 하나다.
자식은 어디까지나 부부의 합작품이니만큼,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을 닮거나 두 사람의 특성을 적당히 섞어서 닮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럴 경우 부모 모두가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완전한 인간이고, 자식들 또한 그런 부모를 완벽하게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은 한낱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 욕심일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남매를 둔 우리 부부의 경우가 그렇다. 외모로만 보면 딸은 나를 닮았고, 세 살 아래인 아들은 아내를 닮았다는 것이 중평인데 외모가 반드시 성격까지 결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비교적 활달한 편인 아내의 성격이 딸아이에게 더 많이 유전된 듯한 반면, 그렇지 못한 내 성격은 아들아이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외모나 성격이 이처럼 공평하게(?) 교차하여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발견될 때마다 원망의 화살은 내게로만 날아드니 딱한 노릇이다. 그 첫째는 고집이 세다는 점인데, 여기서 안 씨와 최 씨 제현께는 양해를 구하는 바이거니와, 고집이 세기로는 ‘안 · 강 · 최’라는 말을 진작 들었더라면 인생행로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푸념이 나오는가 하면, 고집불통의 세 강가들 틈에 어쩌다 선량한 오 씨 하나가 끼이게 된 것은 순전히 팔자소관이라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예외가 인정되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 관습상 자식의 성씨는 아버지를 따르도록 규정한 민법의 오류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내는 언필칭 안 · 강 · 최를 내세우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 씨 고집 또한 이에 뒤질 것이 없어 보이니 하는 말이다.
둘째는 씀씀이에 관한 문제다. 아이들 용돈을 월급제로 하고 있는데, 나이 차이만큼 액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딸아이는 그 중의 일부를 떼어 적금을 넣는 반면 아들 녀석은 보름을 못 넘기고 가불 신청서를 내밀기가 예사인 것이다. 물론 가불이 쉬울 리 없다. 그러니 정 급해지면 제 누나에게 꾸어 쓰기도 하는 눈치인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던지 어느 날인가는 무슨 쪽지를 내밀면서 서명을 해달라기에 보니 보증서였다. 저 아무개는 누나에게 일금 얼마를 차용하는 바, 모월 모일까지 갚을 것이며, 그 보증인으로 나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어 두 놈을 싸잡아 야단을 치려니까 딸아이가 해명을 하고 나선다. 녀석의 신용도가 엉망이라 그렇게라도 해서 버릇을 고칠 작정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이들이 혼쭐이 난 것은 물론 그날 저녁에는 애꿎은 나까지 공격을 당했다. 녀석의 하는 짓이 나를 닮았다고……. 대들어 봐야 과거지사를 들먹일 것이 뻔하니 국으로 잠이나 청할밖에.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올라가는 건 오 씨 덕, 떨어지는 건 강 가 탓이다. 그러나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내가 여사여사한 과거의 실적을 열거해 가며 반론을 제기하면 아내는 더 큰 실적을 들고 나온다. 차츰 언성이 높아지고 목에 핏대가 설 때쯤 되면 어김없이 결정타가 날아온다. 게으르다는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도외시하고 게으름을 피운데서 오는 필연의 결과이며, 그 책임 역시 못된 유전인자를 물려준 내게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사십대의 만학으로 나로서는 엄두도 내본 일이 없는 학위까지 취득한 ‘오 씨’인 만큼 이 대목에서도 대세를 뒤집기는 불가능이다.
그러나 이런 오 씨에게도 약점은 있다. 운동신경이 평균치 이하로 둔하다는 사실이 그것인데, 여학교 때 조별로 달리기를 하면 다음 조의 선두와 경쟁을 벌였노라고 고백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마침 딸아이가 달리기에 일등을 한 일이 있었다. 아내의 약점을 알고 있는 나로서야 더 좋은 기회가 없다. 항복을 받아낸 것은 물론이었다. 아들아이가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김에 내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내 말에 과장이 있었다 해도 나의 2세들이 현실로 그것을 입증한 이상, 그 방면에 관한 한 열성인자의 보유자인 아내로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단거리 경주며, 평행봉, 철봉 등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노라고 떠벌인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니기도 하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모처럼 아내와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뒷동산에는 여러 개의 그만그만한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라 늦잠들을 즐기는지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대여섯 분의 남녀 노인들만 배드민턴을 치거나 맨손체조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둘러보다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평행봉과 철봉틀이었다.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실력(?)을 과시할 기회다 싶어 평행봉에 뛰어올랐다. ‘배 튀기기부터 시작해서 물구나무서기까지 보여 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구나무서기는 고사하고 첫 동작부터 실패였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데 팔에는 힘이 붙지를 않아 후들거리는 것이다. 몇 번을 더 시도해 봤지만 참담한 실패였다. 망신은 이렇게 시작되어, 철봉에서 턱걸이 세 번을 채우지 못해 발버둥을 치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끝났다.
벤치에 앉아 있은 아내 곁으로 갔다. 변명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뭐라고 놀리든 다 받아 줄 참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아내는 말이 없다. 웬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3 운수 좋은 날
강 호형
사무실에 나가려고 버스를 탔다. 늘 출근시간을 조금 비켜 다니는 터라 빈자리가 많았다. 승강구에 비치된 일간지 한 부를 뽑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요즘 신문들은 스마트 폰에 밀려 이렇게 공짜로 줘도 읽어주는 사람을 못 만나 하루 종일 실려 다닌다.
집에서 이미 다른 조간신문을 보고 온 터라 대강 훑어나가다가 오늘의 운세를 보니 가정에 기쁜 일이 있고 애정 운도 좋다고 한다. 돈벌이를 하는 처지도 아니고 승진 같은 걸 바랄 일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운세가 어디 있으랴. 버스 안을 둘러보니 그 새 빈자리가 다 차고 신기하게도 내 옆자리만 비어 있었다. 하긴 신기할 것도 없다. 전에도 대개 만원을 이루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옆자리는 비어있기가 예사였고 더러는 내릴 때까지 비어있기도 했다.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늙은이 옆은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이쯤 되면 슬그머니 긴장하게 된다. 빈자리가 하나뿐이니 싫어도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을 동행이 어떤 사람일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비록 만인의 기피 대상이 된 처지이지만, 동행만은 젊은 여성이면 좋고 그 중에서도 미인이면 더 바랄게 없다. 젊고 예쁜 여성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공부든 일이든 뭐든지 다 잘할 것 같고, 마음씨가 곱고 이해심도 깊어서 어쩌면 내게 호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여성의 외모와 성품은 내 생각처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망하기 한두 번이 아니면서도 엉큼한 속내가 부끄러워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오늘의 운세는 신통하게 적중했다.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멈추고 문이 열리자 나는 하마터면 탄성이라도 지를 뻔했다. 검은 외투에 꽃무늬 스카프로 멋을 낸 눈부신 미인이 성큼 올라서더니 단말기에 카드를 찍으면서 내 옆 빈자리에 시선을 꽂은 것이다. 미인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안내했다.
그녀는 가벼운 미소로 목례를 보내며 자리를 잡더니 핸드백에서 화장품 튜브 하나를 꺼내 손등에 바르고 있었다. 주인공은 40대쯤으로 보이는데 손은 소녀의 손처럼 작고 희고 예뻤다. 이런 장면을 그 손 임자에 걸맞은 젊은 미남이 바라본다면 보아주는 게 되지만, 나처럼 젊은이들의 기피 대상으로 밀려난 늙은이가 흘끔대는 건 영락없는 ‘훔쳐보기’가 된다.
운세가 좋아 행운을 잡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 TV에서 본 En 시인의 복면한 모습이 떠올라 처신하기가 사뭇 조심스러웠다. 미국 연예계에서 시작되어 한 때 트럼프 대통령까지 곤경에 빠뜨린 여성들의 ‘미 투’ 운동이 태평양을 건너와 정, 재계, 법조계, 교육계, 연예계 할 것 없이 전 방위로 번져 동방예의지국 사내들의 체통이 말이 아닌 터에, 급기야 문단으로까지 번져 ‘노털 상’ 후보에 오른 ‘En 시인’이 궁지에 몰린 것이다.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어느 기자가 고명한 독신주의 노 교수에게, 혼자 사시면서 여자 생각 같은 건 안 하시느냐고 짓궂게 물은 적이 있었다. 대답은, 하루도 여자 생각 안 하는 날이 없다는 게 아닌가. 날마다 여자생각을 하지만 추문을 일으킨 일은 없으니 떳떳했을 것이다. 나는 노 교수의 거리낌 없는 고백에 크게 안도했다. 그동안 섹스 스캔들이 매스컴의 특선 메뉴가 될 때마다 느끼는 막연한 공범의식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었다. 무릇 사내들이란 모두가 잠재적 성범죄자이고 나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던 것이다. 요즘은 남성이 여성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있다니 인간의 성을 남녀로 구별해서 점지한 조물주의 처사가 축복인지 형벌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어쨌거나 오늘은 운세가 좋은 김에 내쳐 좋을 모양이었다. 아침에 스캔들 뉴스를 듣던 아내가 여성들 앞에서는 아무리 예뻐도 예쁘다는 말 하지 말고 입 조심, 손 조심하라던 훈시가 떠올라 예의 크림을 바르고 있는 예쁜 손을 눈으로만 흘끔흘끔 훔쳐보며 처신을 궁리 중인데, 내 도둑 관찰을 눈치 챈 미인이 거리낌 없이 먼저 말문을 튼 것이다.
“이것 좀 발라드릴까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덥석 내 손을 끌어당겨 손등에 튜브 입을 대고 하얀 크림을 짜내는 게 아닌가!
“아이고! 그 예쁜 손에나 바르시지 이 흉한 늙은이 손에까지…”
얼떨결에 아내의 당부도 잊고 기어이 예쁘다는 말을 입에 담고 말았지만 별 탈은 없었다. 미인이 시키는 대로 손등에 얹힌 크림을 양 손에 고루 바르고 나자, 세로판지에 싸인 사탕 두 알을 꺼내 한 알을 내밀며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했다. 내가 포장지를 벗겨 사탕을 입에 넣자 냉큼 손을 내밀었다. 빈 포장지는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배려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마음씨까지 고운 미인과의 데이트는 아쉽게도 거기서 끝났다. 이야기 몇 마디 나눌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버스가 전철 환승역에 닿은 것이다. 나는 거기서 내려야 하는데 미인은 종점까지 간다고 했다.
나는 사탕을 보석처럼 물고 버스 쪽을 힐끔거리며 전철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프 로 필
강 호 형 교수
★약 력
한국수필진흥회 이사 부회장(1989)
계간(수필공원)편집위원 신인작품 심사위원(1989)
과천도서고관 문화센터 수필강사(2000)
2005년 현재수필 동인 양재희 회장으로 동인지<수필실험>창간
2011년 5집 발간 창작아카데미 수필강사
2007년~2011년 현대수필 100선인(좋은 수필 시간)책임 편집위원으로 100권 완간
한국문인협회 국제팬클럽 수필 문우회 회원
월간 좋은수필 주간 (현재)
★저 서
수필집
돼지가 웃는 이야기
행복을 디자인하는 부부
붕어빵과 잉어빵
★수필선집
바다의 묵시록
20세기의 전설
★상 훈 현대수필문학상(1997)
황의순 문학상(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