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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도 주교
프란치스꼬는 형제들이 맨 처음의 꿈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구이도 주교의 일이 그리운 회상으로 자주 떠올랐다. 아씨시 마을에 살고 있던 이 위대한 성직자는, 누구 한 사람도 프란치스꼬를 웃어넘기고 상대해주지 않았던 시절에 성령이 그를 통해서 일하고 있는 것을 믿어준 단 한 사람이었다. 프란치스꼬와 그의 아버지와의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해결해준 것도 이 주교였고, 아버지를 위시해서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상속권을 포기하고 옷까지 벗어버리며 그 결심을 보였을 때도 입회인이 되어주었다. 주교는 알몸이 된 프란치스꼬를 껴안아주었다. 그때 그의 옷자락에 감싸였던 그는 하느님 그분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듯한 안도감을 맛보았다. 그는 또 그 극적인 아버지와의 이별의 날에 앞서서 행하여진 주교와의 회견을 회상해 본다. 프란치스꼬는 이 회견을 극중의 한 장면처럼 세세한 데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등장인물은 하느님의 현자와 가난한 도화사(道化師)이다. 요셉(주교의 비서) : 아씨시의 주교 구이도 스승님, 프란치스꼬 베르나르도오네님이 오셨습니다. 주교 : 자, 프란치스꼬 베르나르도오네여, 자네에 대해서는 자주 듣고 있네, 내 잠을 여러 번 방해한 것은 자네와 자네 친구들이었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일찍부터 또 무슨 일인가? 프란치스꼬 : 주교님의 잠을 방해한 일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저희들은 아직 젊어서 행복에 차 있습니다. 아씨시 마을에서 밤에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마을을 헤매는 정도가 아닙니까? 주교 : 잠도 자야 할 텐데, 하느님이 정해주신 대로 말일세. 프란치스꼬 :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교님, 불타고 있는 젊은이의 마음은 여간해서 잠들지 못합니다. 주교 : 분명 그럴 거야. 잘 알 수 있지. 그래 나에게 무얼 해달라는 건가? 프란치스꼬 : 주교님, 아버지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주교 : 베드로 베르나르도오네는 모범적인 시민이고 훌륭한 신자가 아닌가? 아무것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프란치스꼬 :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떻다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저 사이의 문제입니다. 주교 :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프란치스꼬 : 아름다운 부인 때문입니다. 주교님. 주교 : 생각했던 대로군. 잠이 안 온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마을을 헤매고 다닐 사람은 없어, 적어도 이 아씨시에는 아들이여,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되겠네. 품행이 좋지 못한 여자의 입술은 꿀처럼 달고 혀는 기름보다 매끄러운 법이야. 아버지께서 반대하신다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에 틀림없겠지. 나 자신도 요즈음 젊은이들의 방종에는 어느 것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네. 이런 식이라면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 … 염려스럽겠지만 … 얘기를 계속해 봐.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꼬 : 제가 얘기하는 여성은 현실의 여성이 아닙니다. 주교 : 알고 있네. 그 여성은 완벽한 여성이지. 샛별처럼 아름답고 그 생각도 세상의 보통 여성과는 전혀 다르지. 그녀는 자네 마음속에서 살며 유혹 따위에는 손도 미치지 않으며 오직 찬미받기에만 어울리는 그런 여성이겠지. 뭐, 다른 할 말이 더 있나? 나는 지금 몹시 바쁘다네. 프란치스꼬 :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청빈의 귀부인에 관한 것입니다. 주교 : 자네가 나를 놀리는 건가? 프란치스꼬 : 아닙니다, 천만에요, 주교님. 저는 아름다운 이상으로서의 복음적 가난과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청빈은 저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이 빼어난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 여성은 저의 여왕이고 꿈의 여성입니다. 주교 : 야단났구나. 프란치스꼬. 나는 극히 실제적인 인간이어서 감상적인 백일몽에 함께 빠질 수는 없는데… 요컨대 뭘 말하고 싶은 건가? 프란치스꼬 : 저도 실체적인 인간입니다. 주교님, 저는 완전한 가난 속에서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 위의 주님의 가난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주교 : 살아 있는 여성을 사랑했더라면 결과가 훨씬 좋았을 텐데, 하지만 프란치스꼬 정신을 차려야겠네. 주님의 말씀을 그런 식으로 경솔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해. 자네는 꿈을 좇고 있는 데 불과해. 복음적 청빈은 자네가 말하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 따윈 아니야. 영웅적인 덕의 행함과 자제심을 쥐어 짜내는 폭군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어울리지. 마을을 주름잡고 걸어다니며 사랑의 노래 따위를 부르는 젊은이가 사랑이 무엇인가를 안다니 당치도 않아. 자기 단련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인도해주는 거야. 주님은 젊은 여성 따위를 꿈꾸라고 하신 게 아니야. 주님은 가난을 그대로 살으셨다네. 프란치스꼬 ; 그러기 때문에 저도 그 가난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교 : 하고 싶다는 바람과 실제로 행하는 일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란치스꼬. 더욱이…자네같은 사람이 복음을 살겠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예의에 벗어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어쨌든 오늘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죄를 참회하고 거리를 헤매는 일 따위도 그만두도록 하게. 그것이 되거든 다시 한번 찾아오게. 불과 일주일도 못 돼서 이상(理想)의 여성이 자기 성질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겠지.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날 약속이 돼 있어서 이만 실례해야겠네. 부모님께 안부나 전하게. 프란치스꼬 : 알겠습니다, 주교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 장면을 생각할 때 그 몇 주간 뒤에 일어났던 또 다른 장면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주교님과 아버지 사이에 오고간 그 대화는 주교님이 옷으로 감싸주던 그날 이야기해주는 것을 들었을 뿐이건만. 주교님의 저택. 주교님과 베드로가 호화로운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있다. 주교 : 베드로여, 아무래도 당신께선 이제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군요. 그러니까 당신은 하느님 없이도 잘 해나갈 수 있다 그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하느님도 뒤로 물러서서 당신이 비참한 생활을 보내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십니다. 베드로 : 제 쪽에서 하느님이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웬일인지 하느님 쪽에서 저를 필요없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흥미있는 일에만 상관하시려고 하는 듯한데 저에겐 그 계획이란 것이 도무지 성격에 맞지 않아서 말입니다. 주교 : 베드로여, 그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언사입니다! 베드로 : 그래서 주교님의 말씀은 당연히 신학적으로 옳다는 거군요.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생각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주교님은 제가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어느 쪽도 욕구불만에 빠진 인간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만. 주교 : 자, 포도주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마시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베드로 : 하아, 그렇다면 교회가 채택한 새로운 문제 해결법은 결국 포도주란 말입니까? 그러면 저 거리의 술주정군 안셀모도 차기 교황이 될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주교 : 안셀모는 바보입니다. 베드로 : 하지만 그는 지혜를 몇 말이나 술통에 가득 채워 창고에다 저장해 두고 있답니다. 술통의 마개만 따면 즉석에서 한 건(件)씩 낙착시켜버릴 겁니다. 주교 : 안 좋은 농담이군요. 베드로 : 실은 내 아들 프란치스꼬에 관한 일입니다. 그놈에게 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주교 : 소용없는 일입니다. 베드로 : 왜 그렇습니까? 주교 : 그 얘기라면 벌써 했으니까요. 베드로 : 언제요? 주교 : 오늘 아침. 베드로 : 오늘 아침? 주교 : 자기의 결심에 대해서 말하러 왔었습니다. 베드로 : 무슨 결심을요? 주교 : 베드로여, 아들은 집을 나갑니다. 될 수 있는 한 충실하게 복음에 따라 살기 위해서. 베드로 : 그러면… 그러면 당신은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인정하셨단 말입니까? 주교 : 맞습니다. 그대롭니다. 베드로 : 이건 정말 놀랐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이 어리석은 행동에 한몫 끼었단 말입니까? 주교 : 나는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간지(奸智)로 가득찬 게으름뱅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나도 주교이니 성령이 누군가의 속에서 움직이고 계신 것을 안다면 그것을 꺼버릴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 : 그렇다면 그 바보스러운 계획을 참으로 받아들이셨단 말씀이군요. 그 녀석을 자기도 속이고 게다가 주교님까지 말려들게 해버렸군요. 도대체 그놈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침착하게 올바른 일을 한 적이 없다니까요. 이번 일만 하더라도 금세 열이 식어버리고 말 겁니다. 주교 : 그럼 어디 시간을 걸고 이것이 단지 일시적인 기분인가 아니면 성령의 작용인가를 두고 보지 않으시렵니까? 베드로 : 주교님은 아들 녀석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으시겠지만 나는 그놈을 잘 압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일 년도 못가서 그런 어리석은 꿈은 보기 좋게 싹 잊어버리고 말 겁니다. 주교님, 그렇게 되면 피해를 입는 것은 다름 아닌 주교님이실 거다, 이 말입니다. 주교 : 베드로여, 그럼 내가 내기를 걸지요. 물론 내기를 건댔자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격일 뿐이지만요. 어떤 결과가 되든간에 내 역할은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아버지라는 유리한 역할입니다. 베드로 : 구이도 주교님! 프란치스꼬 내 아들입니다! 말하자면 내 일부란 말이예요! 그런데 나에겐 지금 그놈이 전혀 알 수 없게 돼버렸어요. 그 아이는 마치 지금까지 한번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것처럼,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주교 : 자식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닐는지… 베드로 :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버리려 하고 있어요. 이것은 자식이 할 도리가 아니지요. 내게서 떠나가는 것은 좋아요.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떠나가는 것을 기뻐한다든가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어요. 이해하십니까? 주교님. 주교 : 이해합니다, 안타깝게도. 차라리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하겠는데, 베드로여,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결단이 이처럼 아버지가 아들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립하는 결과를 초래한 일이 솔직히 말해서 적지 않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께서 벌써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별을 피할 수 없는 것은 하느님이 '시샘할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적어도 처음부터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전부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프란치스꼬를 북돋아 줄 거 같으면,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길 건가 어떤가를 별도로 하고라도 당신은 새로 아들 하나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편에서 프란치스꼬를 가망 없다고 단념한다면 필시 그는 이제 두 번 다시 당신 곁으로 돌아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드님은 지금 아버지인 당신에게 원하고 있는 것은 '자기를 믿어주었으면' 하는 것 뿐입니다. 베드로 : 하지만 미치광이를 잃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주교 : 그러면 아드님을 잃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베드로 : 그 아이가 저 신비의 나비인지 뭔지를 좇아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내 쪽에서 그놈과 인연을 끊겠습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두 번 다시 말도 붙이지 않을 작정입니다. 주교 : 베드로여, 그것은 좀 경솔한 일이 아닐까요? 정말로 그렇게 하신다면 틀림업이 언제까지나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 후회하는 쪽은 프란치스꼬입니다. 나는 후회 따위는 안해요. 아들 편에서 꺾이어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만약 지금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물에 흘려버리고 말겠지만 돌아올 생각이 없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예요. 자, 그럼 나는 급한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주교님, 참 잘 먹었습니다. 주교 : 안녕히 가십시오. 베드로여.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인해와 지혜를 내려주시도록. 베드로 : 그런 것보다 아들을 돌려받고 싶군요! 프란치스꼬는 아버지의 이 최후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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