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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舊約) ☆ (大先知書)
겔2:1-3:11절) 에스겔의 소명(召命)
우리 젊은이들은 모두 앞으로 어떤 사람과 결혼(結婚)을 하며, 어떤 작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하는 소박(素朴)한 꿈들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어떤 불행(不倖)한 일을 당해서 신체(身體)의 손상(損傷)을 입는 바람에 결혼(結婚)을 하거나, 아니면 사회생황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굉장히 절망(切望)을 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라 자체가 망(亡)해버려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거나,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더욱 많이 절망(切望)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여대생이 작은 책을 하나 내었습니다. 그 책에는 자동차 화재로 예쁜 얼굴을 다 망쳐버린 한 여대생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용기를 내어서 자신 있게 다시 재기(再起)해서 사는 감동적인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외모(外貌)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큰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조금이라도 더 날씬해지기를 원하고, 조금 더 오뚝한 코를 가지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때에 얼굴이 심한 화상(火傷)으로 다 망가져버렸는데도 감사(感謝)하면서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위대(偉大)한 모습인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온갖 자유(自由)를 다 누리면서도 불만(不滿)을 쏟아내고 있지만. 과거 군사정권(軍事政權) 하(下)에서는 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知識人)들이 나라의 미래(未來)에 대하여 절망(切望)을 했습니다.
어떤 한 여학생은 광주의 시위대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끌려가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풀려 난후 너무나도 나라에 대하여 좌절하고, 절망(切望)한 나머지 외국에 이민(移民)을 가서 외국인과 결혼(結婚)을 하고, 한국말도 쓰지 않고,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절대로 말도 하지 않고, 살다가 그래도 조국(祖國)이라고 한국을 찾았던 여성의 기사(記事)를 신문(新聞)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말을 하기를 자기가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두들겨 맞는 중에도 자기를 돌보아주고, 자기에게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자기에게 준 어떤 언니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잊혀지지 않아서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대단히 미래(未來)가 불안하고, 불투명하지만, 아직은 에스겔 시대처럼 어둡게 만드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感謝)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도 전혀 감사(感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불만(不滿)을 터트리고, 더 자기 탐욕(貪慾) 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 집단적(集團的)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즉 너무나 뻔뻔스럽고, 마음이 비양심적(非良心的)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른들이나, 청소년들이나, 심지어는 어린이들까지도 아무 것도 다른 점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옳은 것을 가르쳐주면, 반발(反撥)하고, 집단(集團)의 힘을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生角)을 밀어붙이고, 모든 가치관(價値觀)을 뒤집어야 직성(直星)이 풀리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의 핵무기(核武器)보다 더 위험(危險)한 것은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支配) 하고 있는 반항적(反抗的)인 성향(性向)이라고 생각(生角)합니다. 사실 그 반발(反撥)은 하나님께 대한 반발(反撥)이요, 성경(聖經)은 ‘패역(悖逆)한 족속(族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제사장(祭司長)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많은 사람들이 포로(捕虜)가 되어서 바벨론에 끌려가는 바람에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꿈은 이룰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자신이나, 끌려온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들만 끌려 왔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반항적(反抗的)이고, 비관적인(悲觀的)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스겔과 그의 동료(同僚)들은 *이 보다 더 나뿔 순 없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점이 최악(最惡)의 상태였습니다. 즉 그들의 환경(環境)은 바벨론에 포로(捕虜)되어 와서 집단 수용소 (收容所)에서 강제노동(强制勞動)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기에다가 끌려온 사람들의 마음 자체도 희망(希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모두가 반항적(反抗的)이고, 비양심적(非良心的)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포로(捕虜)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傳) 할 수 있는 사명(師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捕虜)로 붙들려온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거칠고, 반항적(反抗的)이어서 결코 에스겔의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욕을 하고, 반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 사람들이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傳)하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능력 (能力)만 믿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하마스와 전쟁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희망(希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는 유일한 희망(希望)은 에스겔 선지자의 믿음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만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최악(最惡)의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아름답게 꽃피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누구와 결혼(結婚)을 해서 행복하게 살며, 혹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직장에 취직할 것인가? 하는 단꿈에 빠져있지 말고, 나의 믿음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다시 이 민족에게 생명의 말씀을 불어 넣는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Ⅰ.일어서라는 말씀(상)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인자야 일어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2:1절)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여기서"인자(人子)"라고 하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신약 성경(聖經)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칭(指稱)하는 칭호(稱號)로 사용하셨지만, 여기서는 그야말로 연약(軟弱)한 인생(人生)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자(人子)’라고 하는 것은 결코 슈퍼맨이 아닙니다. 즉 공중(空中)을 날아다닐 수도 없고, 삼손 같이 괴력(怪力)이 있어서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혼자 힘으로 무찌를 수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한 인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은 어떤 의미에서‘권력(權力)’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권력 (權力)’이란 인간들이 모여서 어떤 조직(組織)을 만든 후, 일정한 어떤 "룰(rule)"을 적용(適用)하여 그 룰(rule)에 상대방 모두 복종(服從)하도록 강제(强制)한 사회적(社會的) 약속(約束) 개념(槪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군대(軍隊) 조직(組織)같은 경우에는 최고(最高) 사령관(司令官)의 말 한마디로 수십만 명의 군인(軍人)들이 전쟁(戰爭)터에 투입(投入)이 되어서 사람들을 죽이고, 죽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권력(權力)이 있는 자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서 한 개인(個人)이 되어버렸을 때는 그야말로 *동네 아저씨' 즉 "인자(人子)"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그 자리에서 물러나버리면, 아무 힘도 없고,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에스겔처럼 강대국(强大國)에 붙들려서 포로(捕虜)가 된 사람은 완전히 바벨론 군인(軍人)들의 말 한마디에 죽기도하고, 살기도하는 *파리* 목숨 같은 존재(存在)입니다. 에스겔은 결코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때로 슈퍼맨이 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자신의 천재적(天才的)인 능력(能力)으로 해결(解決)해버리고, 국민(國民)들의 어려움도 단 한 번의 지혜(智惠)로 한꺼번에 해결(解決)해버리는 슈퍼맨이 되기를 바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대개 현실(現實)이 절망적(絶望的)이면, 절망적(絶望的)일 수록 또 자신의 힘이 보잘 것 없으면, 없을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이런 말도 되지도 않는 슈퍼맨의 공상(空想)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상은 그런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능력(能力)을 가진 슈퍼맨 에스겔이 아니라, 포로(捕虜)가 되어온 곳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인자(人子)’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은 *일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일어서라’고 하는 것은 물론 에스겔이 앞에 나타난 환란(患亂)을 보고 압도(壓倒)가 되어서 엎드려 있는 상황에서 말씀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지만, 전반적(全般的)인 에스겔의 마음 자세를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이 됩니다. 즉 에스겔도 바벨론에 포로(捕虜)되어 와서 좌절(挫折)과 절망(切望)에 빠져서 침체(沈滯)되어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던 것입니다.
에스겔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忿怒)하고 있었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일어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는 너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태도(態度)와 상관(相關)없이 너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어야 하고, 믿음을 붙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이나, 회사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모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뒹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을 지목(指目)하시면서 *너는 일어서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려울 때, 왜 모든 사람들이 다 드러누워서 욕(辱)이나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까? 나 한 사람이 설쳐봐야 아무 것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絶望的)인 상황에서 *일어서라'고 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권력(權力)도 없고, 지혜(智惠)도 없는 인자(人子)같은 우리들에게
*일어서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에스겔을 일으킨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에스겔에게 임하자 그 자신의 의지(意志)와는 달리 하나님 앞에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생기는 의문(疑問)은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하느냐? 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平凡)하게 살고 싶은 꿈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후부터는 평범(平凡)한 삶은 불가능(不可能)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平凡)하지 않다 해서 비관(悲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대(企待)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중간(於中間)한 많은 사람들보다는 올바로 된 한 사람을 더욱 원하십니다.
왜냐면 그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능력(能力)이 제대로 공급(供給)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을 다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마치 로데오 말(馬)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로데오 말(馬)은 길길이 날뛰면서 우리를 떨어트리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로데오 말(馬)이 길이 들면서 우리는 잘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2:3-5절)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 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오늘날 하마스와 전쟁(戰爭)하는 유다가 망한 이유는 바벨론이 너무나 강해서 그런 것보다는 유다 백성들의 성향(性向) 자체가 너무나 강하고 반항적(反抗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조상(祖上)때부터 그렇게 하더니,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다 백성들이 다른 모든 것에 반발(反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다 백성들은 외국(外國)의 문화(文化)나, 종교(宗敎)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肯定的)이었습니다. 오직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은 *케케묵었느니, *독선적(獨善的)이라니, 하면서 지독(至毒)하게 반발(反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 중 일부가 바벨론에 포로(捕虜) 되어 온 후에 이것이 더 심해졌습니다. 즉 우리만 포로로 잡혀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고, 능력이 없는 증거라는 식으로 반발했던 것입니다.
사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지은 죄에 비교하면, 바벨론에 포로로 붙들려온 것은 엄청난 은혜(恩惠)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포로로 붙들려 왔지만, 감사(感謝)하려고 하면, 감사(感謝)할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아직 포로로 붙들려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자기들도 건강(健康)하게 잘 있으며, 비록 포로 되어왔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 자세가 워낙 부정적(否定的)으로 나뿐 심보(nature)가 굳어 있어서 무조건 기분이 나쁘고, 무조건 광적(狂的)으로 미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마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아주 반발심(反撥心)이 심(甚)한 아이는 서로 맡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맡아놓으면, 너무나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지금 에스겔이 원하는 것은 빨리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멋진 제사장 옷을 입고, 성전에서 제사(祭祀)를 드리는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포로(捕虜)중에 남아서 이 죄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傳)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가장 거칠고 가장 부정적(否定的)인 사람들과 한 평생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傳)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5절)...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선‘듣든지 아니 듣든지’라는 말은 듣든지 안 듣든지 혼자서 떠들고, 치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반응에 너무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자체(自體)의 능력(能力)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서든지 능력(能力)은 나타나게 되니까 너무 조급(躁急)하지 말고, 또 자신의 기교(技巧)나 재주를 의지(依支)하지 말고, 말씀 자체(自體)의 능력(能力)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감사(感謝)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는 사람을 설득(說得)시킬 능력(能力)이나 재주가 없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신실(信實)하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傳)하고 가르치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사람을 변화(變化)시키고, 심령부흥(心靈復興)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선지자(先知者)’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傳)하고, 그 말씀의 능력(能力)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膳物)중에서 최고(膳物)의 선물(膳物)이 선지자(先知者) 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의 선지자(先知者)는 모세를 두고 말(語)을 했습니다. 모세는 수많은 기적(奇蹟)과 능력(能力)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引導)하여 내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先知者)가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2:6-7절)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거부(拒否)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것은 가시와 찔레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모든 것을 가지고 반발(反撥)하고, ㅋㅋㅋ 비난(非難)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전갈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전갈에 한번 쏘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럴 정도로 에스겔을 미워하며, 분노(忿怒)를 퍼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나 그 말(語)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생명의 말씀이 어마어마한 능력(能力)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이 생명의 말씀은 핵무기(核武器)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선포(宣布)되기만 하면, 공증(空中) 권세(權勢)잡은 사탄(詐誕)이 두려워 떨게 되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불이 우리를 보호(保護)해 주기 때문에 *머리 털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느 순간에 느끼게 될 것입니다. 즉 악(惡)한 자들이 공격(攻擊)하기는 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없고, 비실비실 도망(逃亡)치면서 공격(攻擊)하는 것 같을 때, 이미 그들(똥파리)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능력(能力)에 패(敗)하고 있는 것입니다.아-멘
복음송 1081장 *일어나 걸어라*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겸손한 자의 진실과 정직한 아멘, 축복⟺교만한 자의 숨김과 불통은 (假裝)된 좀비.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