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유혹
이영호
오랜만에 이종사촌 동생을 만나 맛집에 가기로 약속했다.
집을 나서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가뭄으로 기다렸던 비라 일부러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약속 시간 십 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종이 도착했다.
경동시장 지하상가에 있는 손칼국수 집인데, 옛날 시골에서 어머니가 손수 끓여주시던 추억이 있어 객지에 살면서 고향 생각이 나면 가끔 찾는 곳이다.
그동안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로 일상생활의 통제를 받아오다가 이제 확진자도 줄어들고 큰 위기는 넘겼다는 방역 당국의 판단에 일부 해제하는 상태에서, 거리마다 활기차고 상점마다 상권이 되살아 나는 느낌이다.
배추전과 수육을 주문해서 막걸리 한 사발 하고 칼국수를 주문했다. 나는 몇 번 와 봤고 이종은 처음이다.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과연 소문대로라며 엄지손가락을 추겨 든다.
점심 식사 후, 옛날식 다방에 들러 커피를 한잔하고 난 뒤, 이종이 경동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자고 한다.
경동시장은 약령시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각종 약재와 농산물, 해산물 등이 골목마다, 상점마다 가득 진열되어 있고, 상인들의 호객 소리에 눈이 왔다 갔다 한다. 시장 안을 이곳저곳 돌아보며 땀 흘리며 열심히들 일하고 있는 모습에서 삶의 향기 물씬 풍기는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필요한 물건을 몇 가지 샀다.
이종이 대구 있을 때 장사하는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세 가지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내가 무엇이냐고 묻자, 도박과 주색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부지런히 일하면, 먹고 살기에는 지장이 없는데, 도박과 주색에 빠져서 망하고 난 뒤 ‘이 짓만 안 하고 살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상인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돈을 모으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다.
인생삼락(人生三樂)은 주색잡기(酒色雜技)라는 속담이 있듯이, 알맞은 음주,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성생활, 도박성이 없는 잡기는 인생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중에서 어느 것이나 금지된 유혹(誘惑)에 빠지게 되면 패가망신하고 만다. 주색잡기뿐만 아니라 세상만사 모두가 지나치면 폐해가 따르게 마련이다.
나는 친목 모임에서 먹기 내기 고스톱, 화투를 할 때는 있었으나 돈을 걸고 도박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고스톱과 카드로 밤새워 가면서 도박하다가 부부가 이혼하고. 심지어 가산을 탕진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간혹 보았다.
술은 젊은 시절 분위기와 친구 좋아 과음하기도 했지만, 건강이 따라 주지를 않아 지금은 적당히 즐기는 편이다.
부모님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도박과 주색을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세상살이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중용(中庸)이 필요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와서 저세상으로 갈 때까지 인생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공동체 속에서 공존공영(共存共榮), 상사상애(相思相愛)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과학이 발전하고 삶이 점점 편리해지고 있지만, 현재 느끼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꿈꾸는 행복과 평화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 AI 인공지능과 삶의 경쟁력, 문명의 이기 속에 내일의 삶이 두렵다. 어려운 환경과 고난 속에서도 항상 삶에 감사하며 꿈을 향해 살다 보면 행복이 찾아오듯이,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불안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스쳐 가는 바람은 다시 돌아오지만, 지나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연인, 친구, 가족들이 곁에 있을 때 잘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떠나가고 나면 후회하고 그리워하듯, 인생길은 물 흘러가듯 쉬지 않고 흘러간다.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인생을 즐기며, 여유가 있으면 베풀고 사는 것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마지막 남은 할 일이 아닌가?
삶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에는 슬픔도 기쁨도 다 허무함이여!
2024.6.1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