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 수필>
아리랑
도창회(본회 고문)
거나하게 막걸리 한잔 걸치고, 갈지 之 자 걸음을 걸으며 입속에 옹알옹알 흥얼거리며 씨부렁대는 노래, 그건 응당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날 버리고 갈라거든 썩 꺼져버려라 / 십 리는커녕 열 발짝도 못가 발목이나 똑 부러져라.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떠듬떠듬 노랫말을 주워 맞추는 주정꾼의 목소리는 어느새 쉬어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가장 만만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리랑이요, 우리가 가장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노래가 또한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 정서를 닮아있어 우리 모두의 푸념이고 타령이다.
아녀자가 모처럼 속앓이로 쇠주 몇 잔 거우르고 삐딱하게 게걸음으로 걸으며 꽥꽥 목청을 돋운다. 가난한 살림에 골몰스런 생활이 오죽했으랴. 간밤에 사사로운 일로 부부싸움이라도 한바탕 벌이고 눈두덩이 퉁퉁 붓도록 실컷 울고나서 그 속풀이로 부르는 노래는 응당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네 놈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냐 / 날 애먹이고 집 나간 놈 / 한 발짝도 못가 모가지나 똑 부러져라.
콧구멍 한쪽을 막아 코를 팽 풀고, 가래침을 택 뱉아내고
“어허 더럽다 더러워,” 목대를 한껏 높여 한 말은 고작 그것뿐이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술을 핑계삼아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아리랑 한 소절을 더 읊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네 놈이 가면 얼마나 갈까부냐 / 날 버리고 도망친 놈 벼락 맞아 죽을 거다 /
그제서야 콧구멍이 펑 뚫리고 속이 시원한가 보다.
그렇다, 아리랑은 답답할 때 목대 울리는 흥분제요, 그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먹는 진정제다. 아니 속이 아니꼬워서 소화가 안 될 때 먹는 소화제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슬플 때도 부르지만 기쁠 때도 부른다. 기쁠 때 부르면 연가戀歌가 되고, 슬플 때 부르면 비가悲歌가 된다. 아리랑은 성인聖人의 거룩한 말씀이 아니라 한 질박한 소시민의 애소哀訴다. 항용 우리는 정이 많아 서러운 민족이라고 일컫는다. 정情이 변하면 한限이 되고, 한이 서리면 분憤이 된다. 사실 더럽고 치사한 게 정이라더니, 정을 너무 많이 주면 왜 한이 쌓이는 줄을 모르나? 다정多情이면 다한多恨이라, 정 주어 속 끓일 줄 알았다면 주지나 말을 것을.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 아리랑의 노랫말은 거지반 다 정에 연유한 한을 읊고 있다. 사실 아리랑의 가사歌詞는 한풀이의 내용이 많지만, 그러나 그 한풀이는 시종 비극의 종말로 치닫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정 情으로 환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망이사, 할 때 그때뿐이지 술이 깨면 말짱하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본색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밉던 지아비를 만나면 금세 “요보” “조보”하며 간사를 떤다. 간사를 떠는 양이 좀 치사한 데가 없지 않지만, 그러나 술이 지킨 짓이지, 절대로 사람이 시킨 짓이 아니라고 술 핑계를 대며 능청을 떤다. 바로 그렇다. 우리는 아리랑이 있어 한을 삭이고, 분을 뭉갠다. 핑계야 한낱 빌미일 뿐,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는 말이 있듯, 핑계가 잦으면 언젠가는 된 변을 보게 마련이다. 좋을 때 버릇 고치는 게 상책이다.
다음으로 아리랑은 팔자타령八字打令으로 이어진다. 팔자소관을 따지자면 어미의 배속에서부터 타고난 운명이 아니더냐. 늘어진 팔자가 따로 있나, 하루 밥 세끼 챙기면 됐지. 어느 누군 개 팔자라고 했나, 살다 보면 음지가 양지 되고 또 양지가 음지 된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남자 팔자 개밥 팔자. 여자는 잘난 남자 만나면 호강한다지만, 그러나 남자는 잘난 여편네 만나면 개밥에 도토리밖에 더 되나. 사람의 한 생 팔자가 왜 이리 불공평한지 모르겠다. 팔자 고쳐 개 줄까만 팔자에 없는 분수 찾다 안 망하는 놈 못 봤다. 물려받은 개똥 논마지기 투전 놀아, 다 까먹고 급기야 제 여자 술장사로 내몰았으니 여자 팔자 한번 더럽다. 막걸리 몇 잔 팔면서 긴소리 짧은소리, 신소리 떫은 소리, 싱거운 소리, 짠소리, 개소리, 닭 소리, 갖은 궂은소리란 소리는 다 들으면서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 참 팔자 한번 거세다. 손님이 따라주는 개평술 몇 잔 얻어 마시고 나면 하늘이 돈짝만 하고, 술김에 똥창이 늘늘해 져 부르는 노래는 역시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네 놈의 팔자는 개새끼 팔자 / 내년의 팔자는 뒤웅박 팔자 / 어디 할 짓 없어 술장사가 웬 말이냐 / 아니 좀 더 밸이 꼴리게 되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네놈이 언제 날 봐준 적 있나 / 네놈 천벌 받아 죽게 되면 / 얼씨구나 신발 거꾸로 신을란다.
맛 좀 보란 듯이 제 똥배짱 껏 부른 노래지만 기실은 남편이 들었으면 매맞아 죽을 사설辭說이다. 그러나 뭣하면 대들 기세다. “사내면 대가리 뿔이 둘이람.” 죽어 다시 태어나도 물장사는 안할 거라고 울먹인다.
그러니까 아리랑은 우리 아낙네들이 제 못난 팔자소관을 자탄하고 억울해 하는 애닯은 하소다. 사실 노래 가사야 어떻게 지어 부른들 어떠리, 제 삶이 힘겨워 뱉는 넋두리인 것을, 차라리 귀엽다면 귀여운 투정 아닌가. 아니 그러한가. 하긴 술이 잘 팔려 몇 푼 호주머니에 챙기게 되면 노래 가사는 금세 달라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저 건너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요 / 우리 집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돈다 /얼씨구 좋아라, 오늘 밤은 일찌감치 잠자리 봐야제 /
엉덩이를 틀면서 얄얄이를 떤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그래서 아녀자는 턱에 수염이 없다 하지 않던가
아리랑은 기쁠 때 부르면 입이 벌어지고, 슬플 때 부르면 속이 터진다. 그렇다. 우리는 좋아도 아리랑, 미워도 아리랑, 싫어도 아리랑, 고와도 아리랑, 노여워도 아리랑, 더러워도 아리랑, 실로 아리랑 민족이다.
가난이 무슨 죄가 되리오만, 배곯으며 살아온 민족이길래 우리는 배고픔을 아리랑을 불러 달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아가야 배고프걸랑 젖 달라 해라. / 네 어미 찬물 먹고 젖 만들 거다 / 하나님도 무심하지! 저, 어린 것이 무슨 죄요? /
가난의 설움은 가난한 자만이 안다. 배부른 자는 가난한 처지를 알 턱이 없다. 우리가 조국을 왜놈들에게 빼앗기고 얼마나 핍박을 받았던가. 당시 죽었으면 죽었지, 항복 못 하는 사람들은 북 만주행 기차나 시베리아행 열차를, 탔다. 조국을 잃은 설움을 가눌 길 없어 죽음을 택한 자가 한둘이었던가? 정든 조국을 등지고 망명의 길에 오른 그네들의 아픔을 오늘날 2, 3세들은 모르리라. 이국땅 밟는 발길에 왜 눈물이 없겠는가. 그 설움 어떻게 다 말하랴. 부모 형제가 그리울 때는 제 살을 꼬집어 참지 않았던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고향의 부모님 안녕하세요 / 조국 잃어 떠나온 자식 용서하소서 / 혹시나 객사하게 되면 천당에 가서 편히 뫼시리다. /
오매불망 고향을 그리며, 부모님께 눈물로 불효를 사죄하는 갸륵한 충효의 얼이 아리랑이다. 서러움에 북받치면 아리랑을 부르고 나서 ‘자주독립만세’를 외쳤다. 세월이 무정해서 서러운 게 아니라 우리의 앞날이 안 보일 때 눈앞이 캄캄하다. 암흑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애국지사들은 분연히 궐기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삶을 죽음으로 바꾸는데 서슴지 않았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버릴 수 있음은 나의 존재도 조국의 다음이란 생각 때문이었고, 조국이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을진대 어떻게 발을 뻗어 편히 잠을 잘 수 있으랴. 그들은 송두리째 행복을 구국救國에다 반납하고 분연히 일어나 총칼을 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리랑 민족은 불굴不屈의 의지를 자랑삼았고, 무퇴無退의 용기를 가상히 여겼다.
그들의 그 의지와 그들의 그 용기로 인하여 조국의 광복은 어김없이 왔건만, 맑은 하늘에 벼락이라니 삼팔선이 왠 말인가. 이 지구상에 둘도 없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애꿎음이 하필이면 왜 우리란 말인가! 삼팔선 베고 누워 죽는 한이있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던 김구金九 선생의 그 한 맺힌 포원抱寃도 간곳없이 우리는 이렇게 반백 년을 살아왔다. 이산의 아픔으로 퍼렇게 멍든 자국이 응어리져 굳어갈 적 그 정 많은 우리 아리랑 민족의 가슴팍에 한 골인들 또 얼마나 깊이 팠으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세월이 무정해 고향에 못 가나 / 그 세월 다 가려면 얼마나 남았나 부모님 돌아가시면 그 한을 어찌할꼬 /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지만, 이제라도 엇가슴 열고 꿈에라도 그리던 고향 산천 찾아가 이산 식구 만나야 제.
하늘이 무심치 않아 뒤늦게나마 큰 만남이 있어, 꿈인가 생시인가, 이산의 벽이 무너져 내리고 만남의 물꼬가 트이던 날, 우리 칠천만 겨레는 함께 울고 웃었다. 아니 이 지구 땅덩이도 함께 울었다. 철천지원徹天之寃의 통곡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형님, 동생아!” 부르며 몸부림치던 그 광경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우리는 주체할 길 없는 눈물을 곱씹으며 속으로 소리 낮춰 아리랑을 서럽디, 서럽게 뽑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어쩌다 이렇게 늦었단 말인가 / 형님, 동생아, 아버지, 아들아, 나 여기 왔소 / 이제는 다시 찢어지지 맙시다 /
이로, 인하여 우리 아리랑 민족은 절대로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단코 분단 되어 ‘너는 너, 나는 나’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 크지 않은 국토가 반 쪼가리씩 나뉘었을 때 우리의 설움은 긴 강줄기가 되어 가슴 한복판에 흘렀다. 우리가 누구던가, 의리義理 빼면 재가 되는 국민이 아니던가. 도리道理 빼면 시체가 되는 민족이 아니던가. 어찌 부모, 자식 간, 형제, 자매간에 도리와 의리를 저버리고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리랑은 그 의리와 도리가 무너졌을 때 가장 서러운 노래다. 배달倍達의 얼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동족끼리 나 몰라라 할 수 있는가. 굶어도 같이 굶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 숙명이 아니던가. 남북 연예인들이 무대 위에서, 남북 선수들이 스타디움에서, 남북 방송인들이 산꼭대기에서, 함께 손잡고 아리랑을 부를 때 우리의 가슴은 뻐개지는 듯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렇다. 아리랑은 곧 우리 한민족의 기나긴 한세월恨歲月을 연장해 온 역사요, 한겨레가 지니고 온 뜨거운 얼을 표방標榜함이요, 불의不義에 대한 배척이요, 선의善意에 대한 옹호이다. 아니 자손만대에 이어갈 참(眞)의 본바탕을 이룸이다. 그 속에 우리가 생존할 이유가 들어있어, 누가 뭐래도 우리는 아리랑 가락이 주는 숨결을 받아마셔야지 살 수 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생명의 진수眞髓가 미리내(銀河水)되어 우리의 가슴천에 길이길이 흐르리라, 영원히 도도히.
도창회 프로필: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졸업, 동국대학원 영문과 졸업(석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역임, 문단활동:시인, 수필가
세계시인협회(인도)명예철학박사 학위취득, 세계시인대회(몽골)문학박사 학위취득
(현)한국문인협회, 국제문단, 불교문학회 고문, 한국신문예협회 회장
국제PEN클럽 자문위원 역임,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역임.
시집: 무영탑 외 9권, 수필집; 밤별 외 7권
수상:한국민족문학상 대상 외 22개 대상 수상
프로필 사진 겨을호 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