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악인에 대해서....
우리나라에 8천미터가 넘는 산을 넘은 산악인들이 많잖아여
엄청 대단한 기록인데..
세계에서는 우리나라 등산인들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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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자면 세계 등반사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해 보입니다만 여기서 등반사 강의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으니 간단히 설명합니다. 등반사에 보면 등정주의와 등로주의한 것이 있습니다. 등정주의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만 오르면 된다는 등산사조라 할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 등반 초창기에 대세를 이루던 개념이죠. 그 때는 국가적인 경쟁마저 붙어 엄청난 물량과 인원을 투입하여 어떻게든 정상만 따먹자(?)는 식으로 등반을 했었습니다. 당시는 히말라야에 대한 등반정보가 부족했고 장비, 등반기술 등도 현대에 비해 열악했으므로 등정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고봉들이 연이어 등정되고 재등, 3등을 하는 사람들은 이왕이면 초등자와는 다는 루트를 개척해보자 하여 새로운 등반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게 되고, 세월이 좀 더 지나니 그것만으로는 약하니 산소를 쓰지않고 올라보자, 셀파의 도움을 최소화하거나 고정로프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고소캠프도 줄여보자는 식으로 점차 등반인원/장비를 줄여 경량/속공등반쪽으로 등반경향이 발전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히말라야 등반형태인 극지법을 버리고 알프스에서 하던 식으로 한방에 치고 올라가는 알파인 스타일, 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남들 다 다니는 노말루트를 버리고 일부러 깎아지른 절벽쪽을, 최소한의 인원(1~2명)으로, 무산소로 오르거나, 히말라야에서 고소캠프를 설치하지 않고 마치 우리나라 설악산 등반을 하듯이 텐트를 짊어지고 하룻밤 자고 텐트를 이동하면서 벽등반을 하거나 아니면 릿지등반을 하듯이 고산연봉을 연이어 등반하는 등의 상상을 초월하는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히말라야 등반을 하는 사람의 95% 이상은 극지법에다 셀파를 고용하고 당연히 산소를 사용하면서 등반을 하고있다 합니다. 나머지 1~5% 정도의 극소수 사람들만 앞에서 설명한 알파인 스타일에다 무산소, 고산거벽 등반을 한다는 것이죠.
예컨대 몇 년 전만 해도 에베레스트의 경우 상업등반대에 1인당 5천만원 정도 내면 정상에 올려주었다 했지만 최근에는 그 가격이 올라 2억원 정도 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원자가 줄을 선다고 하네요. 이런 상업등반대를 통해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고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체력만 있으면 나머지는 상업등반대에서 등반루트를 다 닦아주고, 고소캠프를 다 설치해주고, 무거운 짐도 다 날라주고 하여 본인은 최소한의 자기짐만 가지고 산소를 열심히 마시면서 가이드가 이끄는대로 졸졸 따라 오르면 된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사람과 등반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기획/준비해서 루트도 직접 다 개척하고(그것도 남들이 오른 적이 없는 고난도 루트를 말이죠) 짐도 스스로 다 져서 날라가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의 등반가치가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전자는 가이드 꽁무니 졸졸 따라서 안내산행을 다녀온 것이고, 후자는 그야말로 등반사에 날을만한, 창조적인 등반을 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원수로는 이런 전위적인 등반가가 극소수이지만 뉴스의 초점은 당연히 이런 사람에게 비춰지는 것이고요.
오늘날 지구상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는 상업성에 얼룩진 장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자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수천명에 이르렀고 매년 수십~수백명이 등정한다고 하니까요. 마찬가지로 8천m 이상 14봉을 완등하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뉴스감이 될 가치를 상실한지가 오래되었다 합니다.
외국까지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 내에서도 정상급의 체력과 등반능력을 갖춘 산악인에게 빵빵한 스폰서가 돈만 팍팍 대준다면 그깟 14좌 노말루트로야 못 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산악계의 중론이라 봅니다. 하지만 8천m급 고산원정대를 한번 꾸리는데 최소 2억원 정도의 돈이 든다고 하니 스폰서(대부분 기업체죠)가 머리에 총맞지 않은 이상 공짜로 그 돈을 대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산등반이란 것이 한두번 간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스폰서 입장에서는 어떤 싹수있는 산악인을 밀어주기로 했다면 최소한 20~30억 정도는 쓸 각오를 해야할 것입니다. 기업체 입장에서 이 정도 돈을 쓰려면 당연히 반대급부를 계산할 것이고 그것은 바로 기업체의 홍보 내지 마케팅 효과를 노릴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산악인들도 이처럼 돈이 많이 드는 고산등반을 꾸준히 다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기업체의 스폰을 따내야 했을 것이고 돈을 대는 기업체의 요구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니 당연히 무식한(?) 일반 대중에게 먹힐만한 '이벤트'를 내세운 등반 퍼레이드를 벌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14좌니 16좌니 산악 그랜드슬램이니 아시아 최초니 세계 몇번째니 한국최초니 하는 타이틀을 달았을 것이고요. 하지만 이런 타이틀을 달고 고산원정을 다닌 산악인을 비난하는 것도 적합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제가 전에 다른 답변글에서도 말했듯이 고산등반을 위한 경비조달에 있어서 경제적 독립이 되지못하는 우리나라 산악계와 산악인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등반사에 남을만한, 창조적인 등반을 하고싶어도 이런 등반은 스폰서가 보기에 홍보/마케팅효과가 떨어지므로 등반성이 떨어지더라도 뭔가 이벤트화 하기 쉬운 쪽으로 몰아가다보니 지금껏 우리나라 산악계의 일반적인 고산등반 형태가 아직 한 세대 전의 낡은 방식을 못 벗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외형적으로는 14좌 완등자가 무려 3~4명이나 있지만 세계 산악계에서는 한국을 우습게 본다는 말이 생기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0.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