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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5:13-18(서로 기도합시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유명한 데이빗 리빙스톤이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우리가 “나는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고백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만 그 사랑을 실천히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우리는 내 옆에, 앞에, 뒤에있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아주 유익하고도 독특한 이웃 사랑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특별히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을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고통이 바로 육체의 질병입니다. 집 집마다 한 사람 이상은 몸이 아파 고통받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20:28)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자 이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를 구원하는 데 있지, 병자를 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고쳤습니다. 길을 가다가 또는 사람들을 만날 때 병자를 보시면 그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넘쳐 그들을 만지며 병을 고쳐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웃사랑의 한 방편으로 고통받는 이웃, 특별히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 안에 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본문을 주해하면서 오늘날의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치유의 권능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의 큰 손실이며 비극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은 어떻게 말합니까?
“너희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3, 14절)
여기서 장로는 교회의 목사를 말합니다. 자 이제부터 아프면 어떻게 하라고요?
교회의 지도자를 청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교회의 목사를 초청하여 기도를 받으라는 것은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목사는 양 떼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총 리더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성도에게 문제가 있을 때 리더의 지휘하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든 뭐든 영적인 리더자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면 위험합니다. 많은 경우에 한국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것이 이런 문제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이런 일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어쩐 문제를 놓고 모아서 리더를 하기 시작하면, 기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질서가 서지 않고 교회가 혼란스럽게 되기 때문에 꼭 목회자를 중심으로 기도회든 뭐든 하락할하에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도할 때 목회자를 초청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양떼들을 맡기시면서 영적 리더에게만 특별히 부여한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회자를 중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병이 났을 때 기도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지말고 약도 먹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성경 말씀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이단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병원을 찾아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병을 고치는 것을 잘못이라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플 때는 의사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치유의 방법과 원리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에도 아픈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알리지 않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아플 때 교회에 알려서 서로 기도해 주고 기도받는 가운데 치유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구원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면서 위하여 기도할 때 질병을 치유받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치유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치유의 역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약을 먹고 의사가 치료하지만 결국 병을 낫게하는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꼭 죽을 병이나 걸려야 두 손을 드는데 우리의 생명은 작은 병이라 할지라도 죽을 수 있고 큰 병이라도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질병가운데 있을 때 서로가 기도하고 서로를 세워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지 ,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지 교회 안에 중보기도의 조건과 중보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살펴봅시다.
첫 번째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15절 말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약1: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어떻게 기도합니까? “오직 믿음으로”(따라합시다)
기도할 때 “주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나를 치유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없다면 기도해도 소용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참으로 믿지 않는다면 왜 기도합니까? 적당히 형식적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 기도해서 응답받으면 믿음이 더 강건해 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에 믿음의 흔적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질 줄 믿습니다.
평신도로서 기독교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C.S루이스가 켐브릿지 대학의 교수로 제직할 당시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째서 이 세상에는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많습니까?”
그 질문을 받고 루이스는 반문합니다. “안 그래도 사람이 교만한데 고통마져 없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오만 방자해졌겠습니까?”
우리는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고통당해야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정말 믿음으로 기도하면 응답받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의 기도를 드려서 응답받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응답받을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은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고백할 때 성도들의 거룩한 삶이 이루어집니다.
16절“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자 서로 기도하라고 하기 전에 강조하 말씀이 뭐죠?
“너희 죄를 서로 고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잘병은 다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죄 때문에 그에 대한 징벌로
병에 걸리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에 걸렸을 때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혹시 나의 죄 때문에, 나를 깨닫게 하시기 함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건강한 성도입니다.
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병에 걸린 이웃들을 보면서 무슨 죄가 있어서 벌 받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들 있었죠? 욥의 세 친구들...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다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결론을 내립니까?
욥의 고통은 욥이 지은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변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의 죄는 철저히 다스려야 하지만 이웃을 정죄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혹시 교인들이 짇은 죄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본문에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라고 한 것은 교회 전체가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혹시 우리들의 부족함 때문에, 우라들의 연약함 때문에 한 형제가 고통당하는 것은 아닌지, 교회에 어려움이 닥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전체를 흔들어 깨우기 위해 공동체 안의 어떤 성도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허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교회 내의 문제도 나 자신의 일로 여겨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교인 전체가 기도할 수 있도록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도록 어려움에 처하게 하십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볼 수 있도록 고통과 역경을 허용하십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기도하라”는 것은 개인에게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교회전체, 또한 사회 전체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치고 바로잡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그와같은 고통을 사회 전체에 허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역대하7장14절“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그 땅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땅을 치유하시겠다는 말씀은 개인 뿐만 아니라 가정을 고치고 한 사회를 고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여 무릎 꿇어 기도하면 그 땅을 고친다는 것이 약속입니다.
제자들교회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무엇보다 먼저 죄를 고백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깨끗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민감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믿음을 가져야 하고, 죄를 고백해야 함을 살펴보았고 세 번째는 간절히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지금 야고보는 중보기도의 예로 엘리야의 기도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본성이 같은 사람 즉, 실수할 수 있고, 게으름 필 수 있고 연약할 수 있고 참을성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엘리야가 기도로 하늘문을 열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와같이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도전입니다.
엘리야의 기도 응답의 비결은 “간절히”라는 단어속에 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악을 써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만 높이면 무조건 간절한 기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잇습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면 속으로 속삭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에 따라 부르짖는 기도도 필요하고 속으로 속삭이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간절한 기도의 핵심은 계속적인 기도입니다. 끈질기게 메달리는 기도입니다.
응답주실 때까지 한 번도 낙심치 않고 기도하는 기도가 응답받는 비밀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무 변화 없이 모든 상황이 그대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엘리야는 응답주실 때까지 계속 기도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기도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단번에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신뢰를 높이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한 번 기도해서 이웃의 모든 문제가 풀렸다면 더 이상 관심을 쏟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교만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꾸준히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가운데 우리 이웃을 치유하고 그를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로 이웃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이웃을 고통가운데서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무너진 가정을 새롭게 할 수 도 있고 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웨슬리 듀엘은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은 중보기도를 통해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없이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도를 통해 개인을 치유하시고 가정을 바꾸시고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한 사회를 움직이고 역사를 통치하십니다.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통해 세계를 통치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그 분은 우리의 기도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통해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기도 사역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움직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개인이 살고, 무너진 가정이 일어나고,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고통중에 있는 형제가 고침받고,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리 구원 공동체, 기쁨의 공동체 제자들교회가 건강한 교회로서 이 땅에 있는 동안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