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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8일(일) 10시, 8호선 산성역에서 1번출구에서 '2720산악회' 산우들과 함께 만났다. 남한산성 까지는 9번뻐스로 올라가 성남누비길이나 위례둘레길을 걷기로 하였다. 결정은 종로(뻐스종점)에서 그냥 위례둘레길을 걷기로 하였다. 몇년전 겨울에 눈을 맞으며 걸었었지만, 북문(全勝門) 옆에서 부터 하남시 샘재쪽으로 걷기로 하였다.
남한산성 성곽길을 돌때마다 갔었던 봉암성을 지나 벌봉의 옆을 지나 위례둘레길을 걸었다. 산악자전거를 이용하는 산객들이 지나갔는지, 자전거 바퀴의 길자욱이 보인다. 법화골갈림길(제3암문)을 지나 전망바위갈림길쪽으로 가 쉼터에서 가지고 온 간식과 막걸리를 한 잔씩 먹었다. 쉼터에서 산행을 많이 다니는 다른 산객(고향이 남원인 1945년생 노인)을 만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미고개를 올라 잠시 전주이씨(효령대군파) 손들의 묘소가 둘러봤다. 멀리 남쪽의 남한산성을 바라볼 수가 있고, 아담하여 명당지역임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효령대군은 1396년(태조5)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둘째 왕자로 태어났다. 12세에 효령군으로 봉군되고,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인 해주정씨와 혼인을 하였으며, 17세에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었다.
바로 밑에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사양한 효령대군은 개국 초기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 입각한 왕권 확립에 노력했다. 특히 백성들의 민심 이반을 총화로 이끌기 위해 유ㆍ불조화론을 주창했었다고 한다. 태조부터 9대 성종에 이르기까지 9대에 걸쳐 임금을 보필한 그는 오로지 왕실의 번영과 나라 발전에 공헌과 충성을 다했었다.
왕실의 큰 어른으로서 예우를 받으며 살다가 1486년(성종17년) 5월 11일 91세를 일기로 옛 사람치고 제법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효령대군은 7남을 두었다.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은 아우인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켰다. 손자 33인과 증손자 109인을 두었다. 부인 해주정씨는 1394년 태어나 14세에 대군의 배필이 되었으며, 1470년(성종1)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되어있다.
객산(301m)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내려다 보니 제법 아름다운 곳이었다. 객산은 남한산 줄기에 속하며, 동쪽에 천현동과 상산곡동, 서쪽에 상사창동과 교산동을 끼고 있다. 산의 북단 바로 아래에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이 있었다. 옛날 마귀할멈이 한양의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을 떠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다가 힘이 들어 이곳에 놓고 그냥 가버렸다는 설화와 관련해 객지에서 온 산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해서 객산이라는 전설이 있단다.
샘재는 객산(客山)자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샘이 있는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참고로 안 샘재마을과 바깥 샘재마을이 있는데, 동경주 고개를 넘어오면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을 바깥샘재 마을이라 하고, 안샘재 마을은 샘재 안쪽에 있는 마을로서 교산동을 가리킨다. 안샘재 교산동으로 하산하여 오리고기집을 찾아 뒤풀이는 친구의 협찬으로 맛있게 하였다.
◈ 산행일/집결장소 : 2019년 4월 28일(일) / 산성역2번출구 (10시)
◈ 참석자 : 4명
◈ 산행코스 : 산성역-남한산성 종로(버스종점)-북문-봉암성(암문)-벌봉옆-바람재-위례둘레길-객산-교산동-뒤풀이집
◈ 뒤풀이 : 오리구이 안주에 소·맥주 / "옛맛 오리돌구이"식당 < 하남시 춘궁동, (031) 793-5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