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마을 / 임정자
무안군 삼향읍 초의선사 지나 왕산로 위치한 노을 마을이 있다. 동해 쪽빛 물결이 맞닿은 하늘 모습은 아니어도 무엇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갯벌 바다가 보인다. 바다에 물이 빠지면 갯벌에 사는 생물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뻘 속에 몸을 파묻고 사는 칠게나 조개 등 이름 모른 생물들이 살아있다. 물이 들거나 빠지거나 김 양식장 인근 붉은 노을빛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순간 아! 짧은 탄성이 터진다.
이곳 마을은 2007년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현재 23가구가 살고 있다. 행정상 무안군이라지만 목포시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택시를 타고 왕산 노을 마을 가자고 하면 이 마을을 모른다. 그래서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거나 아름아름 말로 마을 위치를 알려주면 택시 기사는 이런 마을이 있었냐고 내게 되려 묻는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나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시시때때로 본다.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면 눈앞에 잔잔한 물결이, 열 길 물속을 보여주는 갯벌 장면이 반겨준다. 어떤 금은보석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시간이 혼자 보기 너무나 아까운 순간들이다. 어둠속에서도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 엷은 안개에서도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공기, 살짝살짝 일렁이는 물결, 동쪽에서 올라오는 빛의 파장으로 느껴지는 분홍빛 하늘,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의 변화들이 나를 살게 한다.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마을 사람이다. 검은 봉지를 담장에 걸쳐 놓고 아무 말 없어도 어느 집에서 맛있는 것을 갖다 놓았다. 펼쳐보면 호두 파이다. 고소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고 정 많은 이웃의 향기를 느끼는 순간이다. 이런 날이면 마을 카톡에서는 갯벌 바다에 물 들어오는 것처럼 고맙다는 표현이 쏟아진다.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다음 달 우리 집에서 된장 담가요. 그 한마디에 다음 달 모임은 된장 담그는 집에서 한상차림이다. 고향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하다.
누가 나를 이곳으로 보냈는가 해명해보자면 그것은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 우울이었다. 아이들의 독립으로 공허한 느낌에 무엇을 하든 즐겁지 않았고 귀찮았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병원 저 병원 산책하듯 다녔다. 뚜렷한 진단은 없으면서 여기저기 아픈 몸 때문에 무기력했다. 우연히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이러한 내 상태가 중년에 올 수 있는 우울증에 가깝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부정했다. 상처를 잘 받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는 내 성격은 우울함이 올 수 없다. 그래서 친구의 말에 반격했고 낯선 곳에 적응하려니 잠시 슬픈 마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게 외로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었다. 우울증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우울증 초기증상의 질문 열 개 중 일곱 개 증상이 나왔다. 나는 다소 놀라웠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걱정된다며 친구가 전화했다. 많은 사람을 대면하다 보니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며 분명 나는 우울증 초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대뜸 일해보면 어떻겠느냐. 일하다 보면 시간은 빨리 가고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니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하자고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다. 친구는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내 경력으로 충분히 일할 수 있으니 병원에서 일해보라는 친구의 배려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 노을 마을에 터를 만들어 살게 되었다.
저녁밥 먹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경이로운 노을 풍경이 하루 피로를 잊게 해 준다. 어떤 달콤한 음식과도 바꿀 의사가 없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를 시시때때로 내준다. 낮에서 저녁으로 가는 시간의 노을, 밥 먹다 말고 보는 풍경 중에 최고는 아름다운 노을이다. 찰나에 떨어지는 노을을 봐야지, 밥 먹는 게 대순가 하면서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늘 밥 먹는 시간에 변화무쌍한 장면으로 나를 유혹한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무리 생각해도 노을밖에 없다. 가끔은 갈등한다. 노을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밥은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창밖 풍경과 밥 사이에서 아줌마가 딱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노을 마을은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자연에서 보상받는 느낌이다.
첫댓글 선생님 좋은 곳에 사시네요. 글 같이 쓰게 되어서 기쁩니다.
볼 때마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놀랍고 고맙다는 생각을합니다
@메릴 왕산마을 드라이브로 가본 적 있어요. 집들도 다 예쁘구요.
마을 이름이 이쁘네요. 밥을 안먹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한번쯤 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일몰인데 제가 좀 너스레를 떨었나봅니다.
기회되면 초대할게요.
맘에 드는 곳에 사신다니 다행입니다.
목포 어드메쯤일까?
글로 그려봅니다.
언제쯤에나 선생님처럼 글이 세밀하게 그려질까요? 마을풍경이 제대로 그려지지않아 속상했거든요.
@메릴 선생님 글 읽고 세밀하게 그려진 걸요.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