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53 – 수행은 있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하지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지도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질문 : 호흡을 알아차릴 때 일어남과 꺼짐을 한 뒤에 앉음과 닿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닿는 위치를 여러 곳으로 돌아가면서 하려니 중간에 순서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답변 : 수행자는 일어남 꺼짐 앉음을 한 뒤에 닿음을 할 때 정해진 순서를 한 번씩 돌아가면서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여러 곳을 알아차리는 것이 알아차림의 힘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 참고 >
호흡은 일어남과 꺼짐이 기본이지만 꺼짐 뒤에 짧은 순간에 호흡이 정지될 때는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리는 앉음을 합니다. 그런 뒤에 다시 정지된 짧은 순간이 생기면 닿음을 합니다. 닿음을 할 때 처음 닿음에서는 오른발 닿음을 하고 다음 닿음에서는 왼발 닿음을 합니다. 그런 뒤에 다시 닿음을 할 때는 오른손 닿음을 하고 다음에 닿음을 할 때는 왼손 닿음을 합니다. 그런 뒤에 다시 오른편 어깨 닿음을 하고 다음에 왼편 어깨 닿음을 합니다.
일어남 꺼짐 앉음 까지는 매번 같고 닿음을 할 때는 여섯 곳을 위치를 바꾸어가면서 알아차립니다. 이러한 수행은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방법입니다. 모두 이유가 있어서 만든 수행방법입니다. 수행자가 호흡을 알아차릴 때 매번 같은 호흡이라고 느끼면 싫증이 나서 마음이 달아납니다. 물론 매번의 호흡이 다른 호흡이지만 수행자가 다른 호흡이라고 무상을 알기까지는 같은 호흡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닿음에서 위치를 바꾸어 새로운 대상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은 흥미를 잃지 않고 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런 수행방법은 단순하고 무료한 시간을 채우는데도 일조합니다.
위치를 바꾸어가면서 알아차릴 때 조금만 마음이 흩어져도 다음에 알아차릴 순서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순서를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알아차림을 지속시키는데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여섯 곳의 순서를 잊어버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때 처음부터 시작되는 것이 반복되어도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알아차리는 힘이 약할 때는 약한 대로 계속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완전한 알아차림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는 만큼 반복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반복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나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은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합니다. 집중이 안 될 때는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알아차릴 대상의 하나입니다. 항상 집중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욕망입니다. 이런 욕망이 있으면 잘 안될 때 화를 냅니다. 수행 중에 탐욕과 성냄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더 좋은 대상이 없습니다. 탐욕을 알아차려서 관용이 생기면 선하지 못한 마음에서 선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성냄을 알아차려서 자애가 생기면 선하지 못한 마음에서 선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잘 안 되는 것이 매우 소중한 대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행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것이 내 아상을 깨는데 도움이 되며 지혜를 얻는데 도움이 됩니다. 잘 되는 것에서는 지혜를 얻기 어렵습니다. 수행이 잘 되기만 한다면 오히려 더 교만해져서 법을 볼 수 없습니다.
3. 질문 : 좌선을 할 때 너무 졸음이 와서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답변 : 좌선 중에 졸음이 오더라고 1시간을 채워야 한다. 졸음이 온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졸음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너무 졸릴 때는 눈을 크게 떠서 졸음을 쫓고 좌선을 해라.
< 참고 >
좌선과 졸음을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있습니다. 완전한 집중이 아니고 약간의 집중이 되면 더 졸릴 수 있습니다. 좌선 중에 졸음이 오면 눈을 크게 뜨고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너무 졸리면 일어서서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그래도 졸리면 경행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주석서에는 졸음을 쫓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귀를 잡아 다니기도 하고 찬물로 세수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앉은 자세에서 졸음을 알아차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졸음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잠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아예 잠을 자자고 청해서도 안 됩니다. 수행은 투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행은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투쟁을 하는 것은 극단입니다. 아예 잠을 자자고 작정하는 것은 본능에 충실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직 졸음이 오는 상태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졸음의 실재는 희미한 마음과 나른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나른한 몸을 전체로 알아차려도 좋고 마음이 희미해서 가물가물해가는 것을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이것이 졸음의 특성입니다. 이렇게 졸음의 특성을 알아차리면 어느 순간에 정신이 맑게 개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졸음이 올 때 졸음이 오는 상태를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4. 질문 : 좌선 중에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한 번씩 전율과 함께 몸의 상태가 확연하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뀝니다. 이럴 때는 그냥 이런 현상을 무시하고 호흡만 알아차려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답변 : 알아차려야할 정도로 심한 것이 아니면 그냥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계속 알아차려라. 이런 현상은 희열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 참고 >
희열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순식간에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충만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에 수행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런 현상이 일어난 뒤에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고 일어난 사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처음에 희열의 단계에서는 무엇인지 모르고 경험합니다. 하지만 오래 수행을 하면 이런 희열의 현상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때는 이런 현상을 바라거나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희열의 단계가 왔을 때 자신의 수행이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희열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희열을 경험하고 난 뒤에 몸과 마음의 상태입니다. 희열은 집중에 의해 몸과 마음이 기쁨을 경험하는 새로운 단계라서 경험 이전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점입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다면 수행자의 집중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혜수행이라서 가시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몸의 현상도 확연하게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경험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것을 느낍니다. 수행을 하면서 집중이 되면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흥미를 느껴 열심히 하게 되어 수행이 발전합니다.
이때 이런 현상과 호흡 중에서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고민할 것 없습니다. 수행은 언제나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수행이 향상된 특별한 경우에 오히려 미세한 대상을 알아차려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항상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도 적절하게 희열에서 나타난 현상을 알아차린 뒤에 자연스럽게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알아차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이미 두드러진 현상을 가기 마련입니다. 이때 이것을 거부하고 호흡만 알아차리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음이 흥미를 느껴서 갔을 경우에는 그곳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일하는 마음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상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할 때는 ‘지금 어떤 것을 알아차릴까 고민하고 있네.’ 하고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알아차리고 싶은 대상을 선택하면 됩니다. 수행자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면 어느 현상이나 알아차려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대상이나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지 반드시 어느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호흡은 수행의 주 대상일 뿐이지 반드시 모든 경우에 호흡을 알아차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