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 / 김미정
"어머나 세상에 은지야 ! 이 나무 새 순 올라오는 것 좀 봐봐 너무 신기해!" 나는 자기 방에 있는 작은 딸을 부른다.
여러 해 전 초봄 어느 날 구례 산수유 꽃을 보러 갔다가 화개장터에 들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한 화개장터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왁자지껄 생동감 있는 시골 장터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여느 상가와 다름없었다. 장날이 따로 있는 것인지 무척 한산하였다. 지리산 인근이라 산에서 나는 약초, 산나물, 어린 묘목, 싹처럼 작은 채소 모종들이 있었다. 부산스럽고 활기 넘치는 시장통을 상상했던 우리는 한 바퀴 둘러보고 실망하였다. 그냥 오기 아쉬워 기웃거리던 내게 같이 갔던 큰 딸이 천리향 어린 묘목을 사주었다. 잘 키워 꽃피우고 좋은 꽃 향기도 누리라고 말하며 그것을 건네주었다.천리향 묘목을 아파트 작은 베란다에 알로에 화분과 또 다른 화분들 사이에 두고 몇 해를 그렇게 무심히 키웠다.
최근에서야 두 가지로 나누어졌던 어린 묘목의 한 가지가 통통하게 자란 알로에 그늘에 치여 덜 자라서 나무 수형이 볼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꽃피우지 않으니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화분을 좁은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여와 너른 창가에 두었다. 거실에 있는 다른 꽃 화분들처럼 자주 보고 잎도 닦아 주고 두 가지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사이 간격을 벌려 주었다. 가지와 가지 사이의 간격이 좁아 두 가지의 잎들이 겹쳐진 상태였다. 수형을 교정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했다. 3일이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기형처럼 자라지 못하고 잎도 작았던 한쪽 가지의 잎들에서 새순이 나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 두꺼운 잎 위에 연둣빛 작은 잎들이 잎 위에 잎을 내며 켜켜이 쌓여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것은 크고 튼튼한 가지에 달린 잎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 잎을 내지않고 유지를 했고 가지 사이를 벌려준 후 키는 쑥쑥 크지 않았지만 여러 날을 쉬지 않고 잎을 내더니 반대쪽 가지처럼 풍성하고 건강해졌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알로에가 차지한 공간으로 가지를 마음껏 뻗지 못하고 순응하며 자라지 못한 나무. 가지를 벌려주자 또 새롭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새 잎을 내는 나뭇가지. 연약했던 가지에서 잎을 낼 때 건강한 가지는 기다려주는 공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감탄하여 누구라도 붙잡고 보여주고 싶었다.이 신비함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질때가 있다.혜택이든 불편이든 주어지는 대로 순응하며 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변화된 상황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어야 하는 때도 있다.순응하며 살았던 삶에서 기회가 오면 열심히 잎을 내고 또 내며 자라야 하는 때도 있음을... 일상 글쓰기를 만난 지금의 나처럼.
첫댓글 선생님도 화분 좋아하시나 봐요. 글 잘 읽었습니다.
금목서 선생님 글 읽고 저도 화분에 심어 놓았던 붉은 단풍을 마당에 옮겨 심었습니다. 우연히 밭둑에서 발견해 화분에 키워 오던건데 그동안 많이 커 뿌리가 화분안에 가득했어요. 얼마나 답답했을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옮겼는데 잘 자리를 잡을지 걱정입니다.
매전 그렇지만 자연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식물들은 바위나 시면트 사이에서도 자라는 것을 보면 그 생명력에
놀라워합니다. 아파트에서 건강하게 화분을 키우기는 건 무척 어려운
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