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십자가 복음을 사수하라
26.04.21화(火)롬 6:12-14
▣오늘의 고백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십자가 복음이란 단순히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넘어 “나도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던 나는 끝났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가 노력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이미 죽은 내가 주님으로 사는 삶”입니다. 율법은 “내가 한다.”이지만 은혜는 “주님이 하신다.”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을 사수해야 하는 이유는 십자가 복음을 놓치면 다시 “율법 신앙”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해야 한다.’ ‘내가 잘해야 한다’. ‘내가 무너진다.’ 모든 주체가 ‘나’입니다. 이런 삶은 결국 지치고, 시험 들고, 정죄에 빠집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고전 2:2). 복음 하나 붙잡으면 삶이 쉬워지고 자유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사수하는 방법
☆죄의 욕망을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롬 6:12). 죄는 여전히 유혹하지만,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혈기야 떠나라, 너에게 붙들린 나는 죽었다”라고 선포합니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는 믿음으로 혈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몸을 의의 도구로 드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롬 6:13). 손, 입, 생각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일은 누구를 살리는가?’ ‘이 몸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우리는 죄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사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 안에 거합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롬 6:14).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내 힘으로 하지만, 은혜는 주님의 능력이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뜻이 죽어야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점검
1. 나는 지금 신앙생활을 내 힘으로 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은혜로 하는가?
2. 불쑥 튀어나오는 혈기나 나쁜 습관 앞에서 “이것에 붙들린 나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라고 선포하는가?
3. 오늘 나의 입술과 손과 발은 누구를 위해 사용되었는가? 나를 드러내는 도구였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나타내는 의의 병기였는가?
4. 신앙생활이 점점 쉬워지는가, 아니면 점점 힘들어지는가?
(힘들다면 복음을 놓친 신호입니다)
▣삶의 적용
1. 유혹이나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나는 죄에 대해 죽은 자다”라고 선포하며 죄의 지배를 거절한다.
2. 아침에 눈을 뜰 때 “주님, 오늘 제 몸을 주님의 의의 병기로 드립니다. 저를 통해 주님만 나타나게 하소서”라고 고백하기
3. 내가 가진 장점이나 성과를 자랑하고 싶을 때 “배설물”로 여기고 내 안의 그리스도만 자랑하겠습니다. 고백하기
And...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살아야지요. 예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라고 하셨는데, 이런 병도 십자가로 생각하고 견뎌야죠.” “남편이 나를 핍박하는 것도 십자가로 생각해야 지요.” 이것이 맞는 말일까요?
먼저 내게 온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평소 불규칙한 식사, 식탐으로 생긴 위장병을, 교회를 핑계로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온 핍박을 십자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것도 십자가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난이 한때 방탕하고 사치해서 생긴 것인데, 그렇게 해서 생긴 가난을 십자가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물론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이 다 십자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분명한 잘못과 실수로 야기되는 고난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는 두 개의 십자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착각의 십자가’와 ‘복음의 십자가’입니다. ‘착각의 십자가’는 신앙 때문에 얻게 된 고난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죄로 인해 생긴 고난입니다.
반면 ‘복음의 십자가’는 신앙을 버리면 겪지 않아도 될 불이익과 고난이지만, 순전히 예수를 믿기 때문에 맞게 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복음의 십자가’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생긴 문제를 무조건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집니다. 자기 잘못으로 생긴 문제는 회개해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의 자극 앞에 반응하지 않는 것, 주님만 바라볼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마카리우스가 꿈을 꾸는데 주님이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마카리우스는 주님께 자신이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고 합니다. 주님은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마카리우스는 또다시 주님께 달려가 “주님, 제발 저에게 십자가를 넘겨주세요.”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또다시 모른 체하며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마카리우스는 가슴이 아프고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주님 곁에 따라붙으며 십자가를 넘겨 달라고 다시 한번 애원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십자가를 양어깨에 둘러맨 채 발걸음을 멈추더니 “아들아, 이것은 내 십자가란다. 네가 조금 전에 내려놓은 네 십자가는 저기 있지 않니? 내 십자가를 져 주려고 하기 전에 네 십자가부터 지려무나.”
마카리우스가 뒤돌아 주님이 가리킨 곳을 보니 자신의 십자가가 모랫바닥 위에 뒹굴고 있습니다. 그는 얼른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기다리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놀랍게도 주님의 어깨에 있던 십자가가 안 보입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어디로 갔습니까?” 주님은 빙긋이 웃으며 “아들아, 네가 사랑의 마음으로 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바로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란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십니다. 내가 만난 그 십자가는 나에게 가장 맞춤형 십자가입니다. 고난을 불평하지 않고 감사로 받아들일 때 십자가는 내게 능력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죽을 때 나를 통해 주님이 나타납니다. 십자가 복음은 새사람으로 변화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내게 맞춤형 십자가입니다. 복음의 십자가를 짐으로 환경에서 자유한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전히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다 지치고 작심했던 율법적인 모습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죄의 정욕에 굴복하는 삶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나의 옛사람이 죽었음을 선포하며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나의 손과 발, 나의 언어와 생각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합니다. 저를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사용하여 주소서.
나이 들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고집은 죽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저를 다스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나타내는 귀한 그릇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십자가로
https://youtu.be/u-gmK605e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