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티 없으신 어머니 꼬미시움에서 합덕성당.솔뫼성지 .신리성지까지 한국천주교회 순교자들의 숨결이 있는 세곳에 피정 갔다온 후기글 입니다.
ㅡ 성지 소개 ㅡ
1 . 합덕성당
초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담고있는 충청 최초의 본당인 합덕성당은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세워진 양촌성당으로 출발하여 1899년현재의 위치에 120평 대지를 구입하고 이전하면서 합덕성당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뒤 1929년 페랭신부가 현재의 벽돌로 고딕성다믈 신축하였습니다. 1960년 신합덕성당이 독립함으로서 명칭이 구합덕성당으로 변경되었다가 1997년 다시 합덕성당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낮은 언덕에 위치한 이 성당은 정면의 종탑이 쌍으로 되어있는것이 특징입니다. 건물의 전면에는 3개의 출입구와 3개의 창이 있는데 그 상부는 모두 무지개 모야믜 아치로 되어 있습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의 둘레와 종탑의 가 모서리는 회색벽돌로 쌓았으며,창의 아래부분과 종탑의 각 면에는 회색벽돌로 마름모 모양의 장식을 더하였습니다. 덕분에 각종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일반이들의 사진찍가 좋은 장소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바다의별 꾸리아 4간부님과 지도신부님과 함께...
(내 생각 ~~ 대명성당 포 걸 그룹 이라 칭해본다 ㅎㅎ)
아직도 종소리가 울리고 있는 종탑아래에서...
합덕성당 뒷편 산아래 수로공원에 세워진 내포 천주교 도보 순례길 이정표
성당 뒷편
바다의별 4간부 자매님들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
꼬미시움 단원들과 함께
회색 기둥이 아치형으로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합덕성당 내부.제대 뒤에는 성가정화 가 십자고상을 대신해 걸려 있다. 제대가 현재의 제대와 방향이 다르다.예전의 제대인것 같다.
주임신부님 왈~~
합덕성당은 초기 신자수가 4천명이 넘었으며 대지가 거의 60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성당이었단다.
지금은 신자수가 290명 내외란다.
근처살던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4대째 순교하는것을보고 천주교 믿지말라고 종용 했다는 말에 ....그냥 말문이 막힘....
초기 성당 재원은 주변 농민들이 기부한 대지 전 답 으로 이루어져 거기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성당재원을 마련했단다.
후에 후손들이 토지 반환소송이 수십년간 이어져 다 패소하여 지금의 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단다.
그래도 엄청난 부지다.
내생각엔 성지라기보다 넓은 터에 아름다고 웅장한 고딕 건축물을 보유한 성당으로 느껴진다
합덕성당 순례를 마치고
20여분 정도 이동하니 삽교호 함상공원 회센터에 당도한다. 엄청난 차들이 주차해있다.
서울경기지역과 가깝고 또한 교통도 사통팔방으로 이어져 많이도 찿는 삽다리지역 (삽교)이란다
회가 나오기전 밑반찬
조금조금씩 종류가 엄청나다.
갯벌이 많이 드러내보인다. 삽교호 밖이다.
사진 우측 조금위 상류에 삽교호 방조제가 설치되있다.
고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되어 농지가 엄청나게 많이도 생겼단다.
시간만되면 낚지 쭈꾸미 조개 등등 보고 오련만....
아쉽다.
대명수산 반가운 이름이다. 대~~명
포걸 그룹
왼쪽 저멀리 행담도와 눈 내리는 날씨때 추돌사고의 대명사로 불리어 지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서해대교도 보인다.
바다위에 건설된 다리로 동절기나 눈 내리는 날에 다리 표면이 얼어 붙어서 대형사고가 자주 일어난단다. 예전 29중 추돌사고도 일어난 곳이다.
겨울철 다리위 운전시 특희 조심 또 조심...
식사마친후 솔뫼성지로 출발
세곳 합덕성당 솔뫼성지 신리성지 모두 당진 합덕읍 주위에 위치해 있어 이동시간이 많이 걸리질않아 시간절약이 많이되어서 좋다.
2. 솔뫼 성지
성당 전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연꽃잎이 피어나는 형상이라네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김대건 생가를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곳에서
ㅡ솔뫼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 '내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1821년8월21일 한국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였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사셨다.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 (1814년 순교),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 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김대건 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1845년 상해 강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 돼 그 해10월에 귀국한다.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그리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
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뫼 성지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개인과 단체 100여 명이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있다. 또 최근에 김대건 신부와 솔뫼성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념관과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기념과 성당을 신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솔뫼성지 표지석 앞에서
대덕 티 없으신 어머니 꼬미시움 단원들과 함께
바다의 별 꾸리아 회계를 맡고 있는 정재미 이냐시아 자매님
김 대건 신부님 생가앞 12제자 동상
12제자 동상 아래에서 상아탑 꾸리아 서기를 맡고 있는이 기헌 요한에우데스 형제님과...
소나무 숲이 만 천지로 널려져 있다 .그래서 솔뫼란 이름이......
소나무 아래에 십자가의 길이 ..
김 대건 신부님 생가
김대건 신부님 흉상
스테인드 글라스가 넘 인상적인 본당 내부 모습
밑에서 올려다본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에 비친 십자가위의 예수님
말로 표현할수 없는 무언의 경건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솔뫼 성지 는 산책하듯이 쉬엄 쉬엄 걸으며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평안을 얻을수 있는 성지로 느껴진다.
3. 신리 성지
성지 주변의 넓디 넓은 예당 평야
온 들판이 잘 익은 나락들이 펼쳐쳐 있다.
풍요로운 지방으로 느껴진다.
"조선의 카타콤바" 라 불리는 신리 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중의 하나로, 천주교가 조선 구석 구석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던 신부와 신자들이 순교한 유적지다.
다브뤼 주교의 은거처,성인들의 경당,순교자 기념관과 순교 미술관 등 아릅답고도 성스러운 공간이 신리성지와 그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기 ,신리 마을은 가장 먼저 그교리를 받아들였던 지역으로 이후 신리 마을은 조선에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지역으로 알려지게 된다.
상아탑 꾸리아 서기를 맡고있는 이기헌 에우데우스 형제님
상아탑 꾸리아 회계를 맡고있는 필자 박원수 미카엘
바다의별 꾸리아 4간부 자매님들
미술관 들어가는 통로에서
바다의 별 꾸리아 4간부 자매님들과 함께
미술관 옥상에 온통 철사로만 이루어진 예수님 십자가상이 세워져 있다.
피뢰침 역할을 하면 어쩌지....
미술관 옥상 전망대에서 드넓은 평야를 배경삼아
미술관 4층 에리베이터 내려서 옥상으로 오르는 좁은 통로 중앙에 철사로 만든 조형물 (유명한 예술가 작품 이라네)
오늘 성지 순례를 하는데
합덕성당에서는 대구 상동 성당에서 차 6대로 많은 신자들로 붐볐고..
신리 성지에서는 대구 범물성당에서 순례를 왔고...
대구 신자들로 세곳 성지가 붐빈 하루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좋은 자연 경관, 여러가지 건축물 , 양꾸리아 간부들간의 친교...등등
그 중에서도 다수의 순교 성인을 만난것이 향후 내 신앙생활에 많은 것을 가르치고 또 숙제를 받은것 같다.
Ps
성지 소개 글은 대덕 꼬미시움 피정 2025년 합덕성당,솔뫼성지,신리성지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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