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자아와 사회적 자아 그리고 진영논리
인생을 살아갈 때, 나의 판단과 행동의 원리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 즉 나의 자아로부터 발생한다.
그런데 자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심오한 자아(moi prfonde)와 사회적 자아(moi sociale)이다. 심오한 자아란 어릴적부터 현재까지 ‘내가 누구인 것’을 규정하는 외부로 들어나지 않는 나의 내적인 자아이다. 우리는 이를 또한 ‘개별적인 자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인데, 사회적 자아가 일종의 ‘집단적 자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를 때, 혹은 ‘영적인 자아(moi spirituel)’라고 부를 때,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 ‘심오한 자아’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삶의 내적인 원리’라고 한다. 반면 사회적 자아는 일종의 ‘삶의 외적인 원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구체적인 예를 들면 ‘소명 의식’이라는 것은 심오한 자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반면 ‘좌파와 우파’는 사회적 자아에 비롯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참교사가 되어야 한다 혹은 진정한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라는 깊은 개인적인 이유를 가진 사람은 ‘심오한 자아’에 바탕한 것이다. 반면 투표할 때, ‘우리편에게 힘을 싫어주어야 겠다’라는 것은 사회적 자아의 발로이다.
인간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심오한 자아’에서 비롯하거나, 혹은 ‘사회적 자아’에 비롯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후자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고 우선적인 것이다. 따라서 후자가 잘못할 때, 그 판단의 기준은 전자가 되어야지, 그 반대가 아니다. 사회적 자아는 때로 심오한 자아가 자신의 행동의 방식을 결정하는 일종의 수단이 된다.
따라서 만일 누군가 자신이 우파이거나 좌파의 행동양식을 취할 때,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나의 심오한 자아로부터 파생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심오한 자아는 윤리 도덕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며, 정치적 행동양식은 이러한 나의 판단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방편으로 취해야 한다.
따라서 나의 심오한 자아에 근거한 판단이나 행동을 ‘좌파니 우파니’ 하는 사회적 자아의 틀에 가두어서는 안된다. 누구도 한 개인의 심오한 자아(삶의 내적인 원리)로부터 파생된 행동을 정치적 프레힘(사회적 자아의 형식)으로 비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행동의 원인은 사회적 자아보다 앞서며, 더 심오한 ‘영혼의 자아’로부터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진영논리’란 바로 이렇게 심오한 자아(개인적 자아)로부터 발생한 모든 행동을 정치적 틀(좌파 우파)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일한 행동이나 말도, 심오한 자아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고, 또 사회적 자아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거나 판단할 때, 그것이 심오한 자아에서 기인한 것인지, 사회적 자아에게 기인한 것인지를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턴가 진영논리에 갖혀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해도 그 행위를 마치 정치적 동기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그 행동에 좌파 혹은 우파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이렇게 되면, 한 개인의 자발적이고 양심적인 모든 선량한 행동들이 부담을 가지게 되고, 억압을 받게 된다. 개인적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의 내적인 원리에 따라 사는 사람을 철학에서는 ‘주체적인 사람’ 혹은 ‘자주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주권’이란 말에는 이렇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 자기 행동의 주인이 될 권리”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한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사회적 자아의 정립’이전에, 이렇게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이 많아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깨어있는 시민 혹은 국민’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