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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여호수아 7장16~26절
제목 : 스스로 거룩하게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제비를 뽑아 아간의 범죄 사실을 밝혀내고,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진멸하여 이스라엘의 부정을 씻어냅니다.
1. 아간이 뽑히다(16~18절)
1) 제비뽑기의 결과 유다 지파가 뽑혔다(16절)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지파 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도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지파로,
-그 수효도 많았을 뿐 아니라(민1:27)
-세력도 강하여 항상 선봉에서 활약하던 귀한 지파였습니다(민 2:9).
그런데 바로 이 유다 지파가 첫 번째 제비뽑기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유다 지파의 모든 용사들이 분노의 칼을 뽑아든 채 유다 지파를 더럽힌 그 범죄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함으로써 유다 지파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는 결코 칼을 칼집에 도로 꽃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고 합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2) 유다 족속 세라 족속 삽디 족장이 뽑혔다(17절)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 - 여기서 '각 남자'는 각 '족속(미쉬파하)을 대표하여 제비뽑은 각 족속의 족장(族長)들을 가리킵니다(Keil).
3) 삽디의 가족 중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다(18절)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아간이 뽑혔더라. -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성결하게 하도록 하루의 여유를 주고(13절), 그 다음날 지파 -> 족속 -> 가족 -> 남자에 이르는 제비뽑기를 순서대로 한 것은 달리 생각하면 범죄자에게 자발적인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아간(Achan)의 무서운 무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범죄자가 멸망당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긍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패역무도함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2. 아간의 재판(19~21절)
1)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자복하고 행한 일을 숨기지 말고 알리라 한다(19절)
“[1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내 아들아 청하노니. - 여호수아가 아간을 '내 아들아'라고 부른 것은 유대 랍비 및 몇몇 학자들의 상상처럼 비웃거나 간사하게 위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긍휼을 내포한 진실 된 부성애(父性愛)의 입장에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Calvin, Keil).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시된 제비뽑기에 의해 색출된 아간이 자신의 모든 범죄 사실을 솔직히 자백 할 경우, 나머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에 영광을 돌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간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우길 경우 아간은 아간대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몰아세우는 참람한 죄악을 더할뿐더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의 결과에 일말의 의혹을 품게 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전지성에 순복할 것을 종용하였던 것입니다.
자복하고. - '고백하다'(confess) 란 뜻으로, 개인적으로든지 국가적으로든지 하나님께 대한 죄의 시인, 혹은 고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시 32:5; Alexander).
여기서는 뒤따라 나오는 동사 '고하다'와 '숨기지 말라'가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2)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범죄 하였음을 고백한다(20절)
“[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 '이처럼 이처럼'(thus and thus)을 뜻하는 말로서, 곧 21절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아간의 이러한 죄의 자복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비가 뽑히자 공포심에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시인한 것에 불과합니다(Calvin).
3) 아간의 고백 내용이다(21절)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노략한 물건 - 여리고 성에서 탈취한 전리품을 뜻합니다.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 여기서 '시날'은 '두강 사이의 땅'이란 뜻인데, 두 강은 곧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말합니다.
따라서 '시날' 땅은, 일찍이 니므롯 왕국이 세워지기도 했으며(창 10:10), 바벨 탑이 건축되려고도 했던(창 11:2) '바벨론' 지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기 '외투'(아데레트)는 갖가지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값지고 귀할 뿐 아니라 예술 적인 베벨론산(産) 외투를 가리킵니다.
당시 이 바벨론산 외투는 왕족이나 방백들, 또는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귀한 것으로 매우 값진 교역 품목이었습니다.
세겔 - '세겔'(Shekel)은 무게를 축정하는 히브리인들의 기본 단위로 1세겔은 대략 11.4g 가량입니다.
따라서 아간이 훔친 금은의 중량은 은(銀)이 약 80온스(1온스는 약 28.5g), 금(金)이 약 20온스였습니다.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 '보다', '탐내다', ‘가졌다’('취하다')란 말에 각각 '라아', '하마드', '라카'라는 동사가 사용 되었는데, 이는 창 3:6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기사와 흡사합니다.
즉 하와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탐스럽기도'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죄는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이지 않는 탐심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사망 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깨닫게 해줍니다(약 1:15; 요일 2:16).
*약1: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요일2: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아간을 처벌하다(22~26절)
1)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 현장을 확인한다(22절)
“[22]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 아간의 자백으로 말미암아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자 여호수아는 그 뒷수습을 하는 데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사신을 급히 아간의 장막으로 보냈고, 또한 사신은 급히 달려가 그 '바친 물건'(시날산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을 찾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모두 신속히 행동한 이유는 어서 빨리 그 바친 물건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 위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저주가 거두어 지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이 그것을 취하여 가지고 와서 쏟아 놓는다(23절)
“[23]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 앞에'가져다 놓은 것을 뜻합니다(Keil).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할 물건들이 이제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Goslinga, Bright).
3) 여호수아가 아간과 훔친 물건과 그의 아들과 딸, 그의 가축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갑니다(24절)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아간을 잡고...그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그에게 속한 모든 것. - 아간의 범죄 때문에 '그에게 속한 모든 것'(가축, 장막, 재산 등), 특히'아간의 자녀들'까지 함께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 신 24:16의 규정에 의하면, 아비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까지 전가(轉嫁)시켜서는 안된 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자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합니다.
즉 (1) 당시 극도로 흥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분별한 군중 심리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견해,
(2) 아간의 자녀들은 실제 처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비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보고 심각한 경고를 받도록 골짜기까지 함께 끌려갔다는 견해(Grotius, 1538-1645) 등 입니다.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특히 두 번째 견해는 문법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3) 아간의 범죄에 그의 가족이 동참했거나 아니면 묵인했을 것이라는 견해(Keil, Matthew Henry)로서, 즉 아간이 '바친 물건'을 장막 안에다 감추는 과정에서, 그 무서운 범죄 사실을 알고도 동조, 묵인 내지는 방조한 그의 가족 또한 아간 못지않은 범법자였다는 견해입니다.
또한 (4) 신 24:16의 규정을 초월하여, 아간의 가족에게는 여리고 거민들에게 적용된 '헤렘'('바친 것'이란 뜻)의 원리가 적용되었다는 견해입니다(Calvin).
다시 말하면 우상 숭배에 빠진 성읍(신 13:15-17)이나 가나안 족속들의 경우처럼, 아간 및 그 가족은 그 가증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직 모두 진멸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만족시키는 '바친 것'이 되었다는 견해이다(12절).
즉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취함으로써 아간 자신 및 그 가족이 오히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되었다는 견해입니다.
이상의 견해 중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시키는 성전(聖戰)이며, 따라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 무엇보다 '성결'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칼빈(Calvin)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 견해로 보입니다.
아골 골짜기 - 여리고 근방에 있는 골짜기로 후일 유다와 베냐민 자파의 지경이 되었습니다(15:7).
한편 여기서 '아골'은 '괴롭다', '슬프다'란 뜻의 동사 '아칼'에서 파생된 명사로, 곧 '괴로움', '슬픔', '고통'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아골 골짜기'(the Valley of Achor)란 '괴로움의 골짜기' 또는 '고통의 골짜기'란 뜻으로, 이는 25절로부터 유래되었는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의 죄와 그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해 명명한 명칭입니다.
이처럼 본래 아골 골짜기는 '심판'과 '고통' 및 '저주'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종말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치유'와 '회복'을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사 65:10; 호 2:15).
한편 아간의 처형 장소로 이처럼 이스라엘 진영 바깥을 택한 이유는 가증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Calvin, Matthew Henry).
즉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부패시킨 암적 요인을 '멀리 그리고 단호히' 제거시켜 이스라엘 진영을 거룩히 보존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4) 아간과 물건들을 돌로 치고 불사릅니다(25절)
“[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 여호수아가 절망에 빠진 아간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잔인한 말처럼 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타락시키고 어지럽히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보여주려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시작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그 전쟁의 언약적 의의보다는 전쟁의 노획물에 더 마음을 쓰고, 급기야는 아간처럼 탐욕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나머지 군사들에게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로 치고 불사르고. - '돌로 쳐죽이는 처형법'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으로서,
우상 숭배자(레 20:2-5),
신성 모독 자(레 24: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18-21),
안식일을 범한 자(민 15:32-36)등에 적용되었습니다.
이 처형법의 시행 목적은
(1) 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2) 또한 공동체의 연대 책임 의식을 강화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불사르고'에 해당하는 '사라프'는 '시체를 태워 없애다'란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모세 율법의 규정상 이러한 화형(火刑)은 아내와 장모를 아울러 취하는 자(레 20:14)와 제사장의 딸로서 행음(行淫)한 자(레 21:9)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간 및 그의 가족들도 이러한 끔찍한 형벌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한 탐욕의 죄를 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범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했기 때문이요, 그 범죄의 결과로 이스라엘 전체를 비탄 속에 빠뜨린 공동체 파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신약에서도 이 아간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행 5:1-1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가 베드로에게 발각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Cake).
이렇듯 신.구약에 각기 기록된 이 두 사건은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에 있어야 언약 백성의 성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5) 거기에 돌무덤을 쌓았더니 오늘날 아골 골짜기라 부른다(26절).
“[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 오고 오는 세대에 교훈 및 경고를 주기 위하여 처형당한 시체 위에 돌을 던져 돌무더기를 쌓은 것을 의미합니다(8:29; 삼하 18:17;Keil).
즉 이와 같이 한 것은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아간의 형벌 및 수치를 기념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이러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교육적 목적 때문이었습니다(Camp- bell).
오늘까지 - 곧 여호수아서에 본 장면이 기록될 당시까지를 의미합니다.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 하나님께서 진노 하신 것은 아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1절).
그런데 이제 아간이 정죄를 당해 죽임 당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결하게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으니
그 진노가 그친 것은 당연합니다(Dake).
아골 골짜기 - 24절 주석 참조.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최선의 길은 범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언약하여 범죄 할 때도 있다.
그때 정직하게 회개하고, 늦지 않게 회개하자.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도 말이다.
묵상 Point
1) 어리석은 계산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불순종한 사람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제 점점 폭이 좁혀지더니 결국 아간의 정체와 그가 훔친 것의 진상이 드러난다.
여호수아는 그가 범한 죄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설명한다.
부러움을 살 만한 것들이지만, 목숨만 바꿀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죄가 클 뿐이다.
어리석은 계산이고 무모한 용기다.
죄의 혜택을 압수하고 죄의 공법 자들을 같이 처형한다.
죄는 구체적으로 지적 받고 철저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2) 때늦은 회개
아간은 실토한다. 낱낱이 실토한다.
무엇을 훔쳤고 어디에 숨겼는지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회개의 고백이 아니라 추궁 끝에 나온 자백이다.
가나안 땅에서 행한 첫 번째 범죄였다.
이미 작은 죄악이 자신이 나라에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가나안 땅은 아름다움 땅이지만, 그만큼 죄의 유혹이 강한 곳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고 저절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3) 패배의 원인 제거
가나안에서는 철저히 진멸할 것은 진멸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희생제물이며, 따라서 그것은 거룩한 제물이어야 한다.
그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당사자가 제물이 되어야 한다.
이는 동시에 가나안 정복 전쟁이 약탈 전쟁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다.
탐욕을 충족시키는 전쟁이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수행하는 대의명분이 있을 때만 허용되는 것이 진멸전쟁이다.
명품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명분을 위한 전쟁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아간의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온 공동체가 그를 진멸하는 데 참여하게 하심으로 죄의 심각성을 알리십니다.
아간의 범죄는 소유를 판 값 일부를 감추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연상시킵니다(행 5:1-11).
이들은 아간처럼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 공동체의 순결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역시 공개적으로 심판하셔서 본보기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은 공동체가 개인의 죄를 방관하거나 죄 지은 이에게 값싼 면죄부를 남발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허무는 개인의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며 처리합니까?
26절 아골 골짜기의 희생으로 맹렬한 진노를 그치십니다.
‘아골’(괴로움)은 절망의 장소지만, 한편으로는 소망의 관문이[기도] 합니다(참조. 호 2:15).
아간을 ‘온전히 바치는 것’으로 삼아, 이스라엘에 내린 진노를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골고다’(해골)에서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아골의 돌무더기처럼 골고다의 십자가도 인류의 죄를 제거하고 자기 백성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증거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9-21절 침묵하며 버티던 아간이 모든 죄를 실토합니다.
그는 훔친 물건을 땅속에 숨기고 사람의 눈을 속였습니다.
제비를 뽑아 자기 이름이 불릴 때까지도 어쩌면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Coram Deo) 살기에, 아무 보는 이가 없을 때에도 늘 순결하고 정직하게 행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행합니까?
21절 아간은 ‘노략한 물건’(샬랄) 중에서 훔쳤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략한 전리품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헤렘)입니다.
우리가 사소하다 여기는 죄도 하나님을 속이는 ‘대죄’일 수 있습니다.
24-26절 아간의 범죄로 그의 모든 가족이 심판받습니다.
아마 그의 가족도 아간의 죄를 공모했을 것입니다.
이방 여인 라합 한 사람의 믿음으로 그의 온 가족이 구원을 얻은 것과 정반대입니다.
나의 말과 행위는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주님, 홀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과 공동체를 염두에 두며 늘 신실하고 정직하게 하소서.
열방-세계 난민 발생원인 중 하나인 박해는 그 가해자들이 수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약자들을 포용하고 존중하여 속히 사회가 안정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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