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조선궁술연구회에서 펴낸 책 「조선의 궁술」은 撇絶별절사법서이기는 해도 당대에 궁사들은 撇絶별절로 쏘지 않았다.
책 「조선의 궁술」이 말하는 유엽전 사법의 대개는 정사론에서 말하는 오호 무른 활로 3년을 습사를 시켜서 근골이 갖추어진 장사는 무과시험을 보아 장수가 되게 육량을 쏘러 보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급무관이 되게 유엽전을 쏘러 보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전사법 撇絶별절궁체로 쏜 유엽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과가 폐지되고 활쏘기가 유명무실해지자 撇絶별절이 잊혀지고 퇴보한 궁체가 전해지게 되었고 그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세상을 희롱하는 무리들이 생기고, 또 그보다 못한 양궁에서 차용한 턱밑살대 게발각지가 한 패거리를 지어서 세상을 억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쪽에서는 책 「조선의 궁술」 사법편이 운로 성문영공의 소작이라 주장하지만, 실상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당대 쟁쟁하던 여러 궁사의 이야기를 이중화선생이 정리한 것으로 봐야하는 게 학문하는 입장에서 정론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책 「조선의 궁술」은 철전사법에서 나온 유엽전 사법이고, 신사입문지계에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지는 활이 제일 잘 쏜 활”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 撇絶별절사법서가 분명한데, 일각에서는 사법편을 성문영공이 썼다고 주장하지만 성문영공은 撇絶별절로 쏘지 않았고, 그의 아들 성낙인도 撇絶별절로 쏘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 「조선의 궁술」 사법편은 여러 사람의 구술을 이중화선생이 정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책 「조선의 궁술」보다 앞선 세대에 지어진 청교 장언식공의 정사론을 볼 것 같으면 명백한 撇絶별절사법서이고, 정사론보다 앞선 영조임금때 지어진 웅천 이춘기공의 사예결해 또한 명백한 撇絶별절사법서이다.
이춘기공의 사예결해에 대하여 41세 무장 이춘기가 구술한 것을 19세 어린 서영보가 잘못 받아 적어서 오류가 있다고, 이춘기공 당대 너무나도 당연했던 撇絶별절궁체를 설명하는 前手撇而後手絶전수별이후수절이라는 대목이 들어가서 잘못되었다고 지적질을 하는 무리들이 있다.
책 「조선의 궁술」이 撇絶별절사법서인줄 모르고 저거들이 撇絶별절로 쏠 줄 모르면서 전통궁술을 주장하려니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조선시대를 통털어 전통 정통궁술은 撇絶별절로 쏜 활이 맞으며, 무과가 폐지되고 撇絶별절이 쓸모가 없어지자 잊혀진 것이다. 우리가 전통 궁술을 이야기 하자면 잊혀진 撇絶별절을 이야기하고 撇絶별절을 복원하는 것이 맞지, 족보에 없는 턱밑살대 게발각지가 전통궁술이 될 수 없으며, 퇴보한 궁술을 전통으로 이야기 하면 안된다.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 국풍의 전통인 궁술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결과 사예결해와 정사론이 엄연히 전해졌는데 활쏘는 사람이 撇絶별절을 복원해서 전승할 생각은 안하고 엉터리 궁술을 전통이라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 반하고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긴 역사를 굽어보며 나는 회음후 한신과 사육신 성삼문을 좋아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신과 성삼문같이 살아야 제대로 똑바로 사는 것이다.
100만 대군을 가졌던 한신이 10만을 가졌던 한고조 유방을 일거에 제압하지 못해서 사로잡혀 권력욕에 눈먼 아녀자 여치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다. 한신이 바라보았던 지점은 오랜 전란으로 수많은 민중들이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지금 한신 자신이 욕심을 부려 한고조 유방을 쳐 없애면, 한신 자신은 세상을 경략할만한 그릇이 못되니 또 군웅할거로 세상이 환란에 빠지게 되고 백성들이 도탄에 허덕이기 때문에 자기가 잡혀 죽음으로서 세상에 평화를 구한 것이다. 살신성인한 회음후 한신이 큰 인물이지 토사구팽한 한고조 유방이 잘난놈이 아니다.
성삼문이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숙제를 꾸짖었으니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주나라의 고사리를 캐 쳐먹냐? 라고 힐난 했는데, 예기 사의에 활은 남자의 일이다 봉호육시로 천지사방에 활을 쏘았다. 라는 대목에서 세상에 태어나 천지간의 기운으로 호흡하고 살았으면 그 기개가 천도에 부합하는 게 정히 옳다.
사나이 대장부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고 생각할 머리가 있다면 어디를 봐서 턱밑살대 게발각지가 전통궁술이며 撇絶별절 아닌 활쏘기가 정통궁술이라 주장하나? 사람이 사람땅에 나서 사람이 사람일을 하는데 사람이 사람일 못하면 어느 사람이 그를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활 있고 사람 있고 撇絶별절사법서까지 있는데 撇絶별절궁체를 복원하지 못한다고? 밥이 쌀이 삶았기에 아야! 소리 안하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소장은 자발적 친일과 생계형 친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성삼문을 들어 생계형 친일을 넘어 불의에 침묵했던 무리들도 비판받아 마땅하고 대오각성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친일역적놈들이 변신하여 친미파가 되고 기득권을 유지하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침묵했던 무리들이 불의에 또 침묵하듯이, 잘못된 활쏘기를 전통이라 주장하고 참말로 전통 정통궁술인 별절을 억압하고 배척하는 행위야 말로 또 다른 친일이고 반민족 반문화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고 진리와 도덕을 외면하고 관망하는 불의자들이 이 시대에 너무 많다. 그래서 박한용소장의 생계형 친일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 옳지 않다.
23세의 석정 윤세주의사가 의열단 조선혁명간부학교 제2기 졸업식(1934. 4. 23) 훈화에서 말하길,
“제군의 선배들은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이 적지 않았고, 이들 선각자들은 우리민족운동의 존귀한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의미에서도 몸을 던져 혁명운동에 매진할 각오와 신중한 수단이 요구되니 제군은 동지를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죽었다고 말해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주벌판에서 태항산에서 목숨을 잃어가며 독립투쟁을 했던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에 면목이 서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로 성문영공이 撇絶별절로 안쏘았다는 것은 명백하고, 우리의 전통 정통궁술 조선철전사법은 撇絶별절궁체가 명백하니 撇絶별절로 쏘지 못할 거 같으면 궁술에 대하여 그 입을 다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