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윤정모 기자]소설을 통해 역사와 민족을 말하는 것이 우스워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문학이 역사와 민족을 말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장르의 예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소설가 윤정모는 최근 장편 <수메리안>을 통해 역사와 민족이라는 문제에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11월 18일부터 그의 작품을 연재한다. 출판 전 귀한 원고의 게재를 흔쾌히 수락한 작가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편집자 주>
연재를 시작하며 독자들에게
고대사를 여행하다보면 세 가지의 공통점을 만나게 된다. 첫째는 왕이나 영웅들의 정복기가 너나없이 아주 잔인했다는 것, 둘째는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하거나 신격화를 원했고, 셋째로는 어느 국가이던지 가장 화려한 르네상스를 꽃피운 뒤 멸망했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것을 예로 든다면 이집트 문명은 물론 인더스, 황하, 그 훨씬 이후이지만 로마 역시 거대한 문명을 이룩한 뒤 거의 원시인과 다름없던 튜턴인들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5천여 년 전에 탄생한 수메르라는 국가도 그랬다. 인류사상 최초로 역사시대를 열었고, 쐐기문자 발명과 도시국가건설, 각 도시간의 연방제, 민회와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왕을 선출하기도 했으며, 문학, 신학, 수학, 천문학, 12진법은 물론, 역사상 최초로 법전까지 만든 나라였다.
거대한 신전 건축도,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벽화양식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메소포타미아 건축예술의 원류가 되었고, 그 영향이 지중해 연안과 인더스까지 미쳤는가 하면 멀리 동방까지 교역을 했던 찬란한 문명 국가였다.
그러나 그런 수메르도 결국은 사직의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거의 1천년이 넘도록 근동의 등불로 타오르다가 갑자기 소멸한 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단 한 가닥의 집단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증발해버렸다.
고대의 모든 종족은 그 부침이 극심했고 이동 또한 잦아 비록 근거지에서 멀리 이탈했다 해도 지금껏 그 집단들은 현존하고 있다. 특히 인도유럽인, 아리아인과 셈어족들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데도 그들과 이웃하고 살았던 수메르 민족만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다는 흔적이 없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몇몇 서양의 고고학자들은 그 주변국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이유는 아카드인의 침략 때부터 두 종족은 융합했고, 그 뒤 점차 셈족화되어 바빌로니아 문명의 기초가 된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밖에 되지 않았을까? 본래 아카드와 바빌로니아 등은 일찍부터 수메르의 문명을 차용해간 나라들이었다. 종교를 가져가 신(神)의 이름만 바꾼 뒤 자기네들 것으로 활용했는가 하면, 신화, 신화 속 인물, 함무라비 법전까지도 수메르의 것이며 성경 이야기 역시 많은 부분 수메르에서 가져갔다는 것은 이제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수메르인들 스스로 자신들은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며 따라서 주변 종족과 다르다는 것을 늘 강조해왔다. 또한 인구도 많았다.
인구가 많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수메르는 처음부터 여러 도시국가로 형성되어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초창기 수도였던 우루크(BC 3000년경)의 인구만도 4만5000여 명이었고, 천년 후 멸망 당시, 그러니까 BC 2000년경의 수도였던 '우르' 역시 극도로 번창했던 걸 감안한다면 그간의 인구증가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데도 이처럼 주변과 다른 종족, 그 많은 인구가 깡그리 그렇게 타민족으로 흡수될 수도 있는 일이었을까?
이 궁금증은 우선 접어두고,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애초 어느 민족에 속했기에 자꾸만 '검은 머리의 사람들'임을 강조했는가?
지금까지 고고학자들이 알아낸 인종적 특징은, 1)머리카락이 검고, 2)후두부가 편편하고, 3)몸이 작달막하고, 4)근동언어와는 전혀 다른 교착 언어를 사용했으며, 5)회도(灰陶)문화와 6)순장이 강요되었다는 것 등이다.
그러니까 셈어족이나 기타 근방의 민족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어디서 온 종족인지는 알 수가 없으며, 다만 추정컨대 '민족 이동기에 북방에서 침략해 왔다', '어쩌면 스키타이 혹은 우랄알타이어 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좀더 근거리 추정자로는 C.H 고든(英)이 '수메르 인은 동방에서 왔다, 그들이 중·근동에 들어서기 전에 무슨 고대문자식 기호를 가지고 온 듯하다'라고 했지만 그 동방이 어딘지, 고대 기호란 또 어떤 것인지 까지는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자,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우랄알타이어? 동방? 교착어? 그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인데?' 라고 곱새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이는 '교착어는 일본과 한국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가?' 하고 자문하기도 할 것이다.
그랬다. 그 민족이 어디서 왔는지의 대답은 뜻밖에도 한국에 있었다. 즉 그들은 동이족이나 혹은 환인의 자손이었고, 민족 이동기에 그렇게 내려갔다는 것이다. 또한 '수메르'라는 그 국호 역시 '소머리'에서 변형되었으며 그 어원은 동이족이 태동했던 성스러운 하늘의 강(송하강)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밖에도 여러 갈래의 민족이동 설 혹은 사상유통설이 있다. 첫째는 서에서 동으로 유통되었다는 조지훈설이 있고 둘째는 동에서 서로 유통되었다는 문정창, 김은수, 송호수의 주장, 또 근래에 와서는 환웅족이 그리스로 건너가 황금가지 시대를 열었다는 박용숙의 저술까지 있다.
그중에도 문정창씨는 수메르의 개국영웅 엔릴(릴은 신이라는 뜻)조차도 동이, 즉 소호족이었다고 주장했으며 그 예증까지 들어가며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의 주장들이 독특하고 또 흡인력을 가진 것은 우리의 고기(古記)에도 분명히 수밀국과 우르국이 명시되어 있었던 때문이다.
고기에 이르기를 '환국은 12개국(민족분포도?)으로 동서가 2만리고 남북이 5만리며, 그중엔 수밀이국도 있다'고 했으니 페르시아 만 근처에 있었던 수메르가 수밀이국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 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지금부터 나는 수메르 이야기를 펼칠 것이다. 그것도 동이족이 건너가서 이룩한 고대사 이야기를. 그들의 역사와 영웅들의 삶, 영생을 바랐던 영웅호걸 길가메시, 진시황제보다 훨씬 먼저 불로초를 구하러 다니는 둥, 너무 많이 가진 탓으로 넘치게만 살다간 그 영웅과 백성의 풍요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목부 왕 두무지,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우루카기나, 하지만 그는 너무 조금 가지고 너무 늦게 왔고 그러므로 10년을 채우지 못한 채 결국 아카드의 침략에 빌미가 되고 말았던 비애, 그러한 역사 속에서도 교착어를 고스란히 지켜온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져간 표의문자(일본학자 우에노-上野景福-씨는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문자는 동이족이 사용하던 팔괘부호와 흡사하다고 증언했다.=출처 '한민족의 뿌리사상')를 소리 설형문자로 바꾸고 가다듬었으며, 1천여 년간 한 가지 언어를 지켜왔다.
물론 아카드의 사르곤 왕에게 지배되면서 말이 혼합되긴 했어도 그들은 다시 일어나 검은 머리 사람들의 나라, 그 언어를 부활시켰고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지구라트, 그 성탑을 세웠다.
신들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높은 성탑을 세우고, 그 품 아래서 영원한 보호를 받기 위해 날마다 기도를 올렸던 그들, 그럼에도 끝내는 야만인 아모리족(엘람과 수사의 침략으로 멸망했다는 주장도 많다)의 침략으로 그 고도의 문명국가도 종국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필자는 여기까지, 그러니까 우르 3왕조의 마지막 왕, 그 시대까지의 이야기만 들려주겠다.
한데 이 무슨 우연인가. 그 성탑이 세워졌던 우르, 걸프 만 근처의 고대국가 그'우르'가 지금 다시 폭격을 당하고 있다. 4천여 년 전 그날처럼 울음이 진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십 만 점의 점토와 도자기 등 그들의 유품들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유품까지도 사라져야 했던 운명이었을까? 아, 잊을 뻔했다. 우리의 고기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7월에 우르인들이 투항해왔다(돌아왔다?). 그들에게 염수 근처 땅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자, 이제 출발을 서두르자. 갈 길이 멀지 않은가. 단번에 5천 년 전으로 달려가기가 너무 벅차다면 까짓 것 1천 년쯤 줄여버리고 거기서 잠깐 발길을 멈추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다시 보게 될 것이다. 4천여 년 전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양으로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음을.
신약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고 하여 모든 족속, 즉, 한국인 뿐 아니라 흑인, 백인 모든 사람이 한 혈통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보는,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 전반의 일관된 지식입니다
* 목차
1. 서론
2. 기원 추정의 근거(증거)들
3. 한민족의 이동 원인과 이동 경로
4. 고대 한민족의 신앙과 번영
5. 고대 중국에 끼친 영향
6. 소호 금천씨의 후손들
7. 고대 한국인이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 고대 일본에 끼친 영향
8. 현대 한민족의 사명과 기독교
1. 서론
한국인의 기원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고 하여 모든 족속, 즉, 한국인 뿐 아니라 흑인, 백인 모든 사람이 한 혈통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보는,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 전반의 일관된 지식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많은 과학적인 지식으로 볼 때 과연 한국인의 기원은 이러한 성경의 지식과 어떻게 연결될 것이며, 한국인의 기원의 현실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과학적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증거는 크게 여섯 가지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 즉 말입니다. 왜냐하면 민족은 곧 어족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고대인이 쓰던 아주 중요한 도구가 한국인의 기원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세 번째로 장사지내는 매장문화인데, 그때 사용하는 붉은 흙을 우리는 황토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오클라' 하고 부릅니다. 지금도 물감에서 사용되는 붉은 색을 '오클라' 라고 부릅니다.
네 번째로 날개, 즉 깃털이나 새를 숭상하는 문화, 이것이 한국인의 기원을 추정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증거를 줍니다.
다섯 번째로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 이 무궁화라는 것이 신통하게도 한국인의 기원에 아주 깊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또 여섯 번째는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인데요, 아시아 북방계 지역에 있는 유적의 분포.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의상, 곧 핫바지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인의 기원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2. 기원 추정의 근거(증거)들
1. 언어학적 증거
그럼 먼저 언어, 곧 말에 대해서 보시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민족의 기원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바로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민족(民族)이라는 것은 어족(語族)으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는 알타이어에 속하고, 알타이어라고 하는 것은 터키 아라랏산 근처가 발원지입니다. 또 현재 알타이어에 속하는 말은 터키어, 몽골어, 만주어, 그리고 우리 한국어 등등입니다.
이러한 언어들에는 유사한 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한 예로 중앙아시아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등 '----스탄(stan)' 이라는 나라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 스탄이라는 뜻이 사전에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영어의 'Land' 곧 '땅'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민족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땅이라는 글자를 'ㅅ당' 으로 표현을 해 왔습니다. 발음대로 읽으면 '스땅' 입니다. 그러다 이제 쌍 디귿으로 통일해서 '땅' 으로 발음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의 연구는 한국인의 조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시베리아와 몽골을 지나 만주 땅에 정착했으며, 그 후 한반도, 일본까지 뻗어갔다고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위 그림은 바로 알타이어의 발원지인 터키의 아라랏산 근처의 마을입니다. 과거의 어느 때인가 우리 조상들이 이 근처 어딘가에 살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2. 흑요석의 분포
두 번째 한국인의 기원의 대단히 중요한 증거는 흑요석이라는 특수한 돌의 분포입니다. 화살이나 칼 등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이 흑요석이라는 새카만 돌입니다(왼쪽). 그것을 깨어 가지고 그 파편을 이용해서 도루코 칼처럼 사용하는데요, 갈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깨면 생선비늘처럼 납작하게 벗겨지듯 깨어집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바드 대학같은 최고의 대학병원 외과의사들이 스텐레스로 된 수술셋트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고 흑요석 수술세트를 더 선호합니다. 그러면은 더 정확히 되고, 수술 후 회복에도 훨씬 더 요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이 흑요석으로 만든 화살 촉, 칼 등등이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그리고 미국 인디언 주거지역까지 그대로 연결되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데 이 흑요석이라는 것이 전세계 아무데서나 생산된다면 이것은 어떤 민족의 기원을 찾아가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땅에 다 난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흑요석이라는 돌은 터키의 아라랏산 근처에서만 생산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었던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 발견되었건 터키에서 돌을 가지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요즘 같으면 터키에서 흑요석을 수입해 가지고 한국에서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입, 수출이라는 형태가 아닌 까마득한 고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몽골, 만주, 한반도의 주민들이 흑요석을 썼다는 사실은 바로 과거 어느 때인가 아라랏산 근처에서부터 민족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먼 여행을 떠나면서 흑요석을 잔뜩 등에 짊어지고 가면서 조금씩 사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흑요석으로 만든 연장들입니다. 이와 같이 갈지 않아도 옆으로 탁 치면 벗겨지듯 나오는 비늘 모양의 파편을 조심스럽게 쥐고 가죽 같은 것들을 자르면 면도 칼 보다 더 잘 잘립니다. 바로 아주 날카로운 연장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오른 편 그림은 아라랏 산인데 이 아라랏 산 근처에서만 흑요석 돌이 나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 쓰고 있건 여기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속에 서있는 돌은 흑요석은 아님)
3. 황토 매장 문화
세 번째로 우리 민족이 장례 시에 시신을 묻었던 매장문화가 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황토로 덮어서 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황토를 구하기 힘들어서 유족들이 관의 일부만 황토를 뿌리고 나머지는 주변에 있는 보통 흙으로 덮어버립니다. 그러나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황토로 덮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인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붉은 흙 곧 오클라(okla)로 사람을 매장하는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 이러한 풍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부터 대륙을 건너서 인디언까지 아직도 이 붉은 흙을 오클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예로 미국의 '오클라호마' 라고 하는 주 이름도 인디언 말로서 '붉다' 혹은 '붉은 땅이다', '붉은 땅에 사는 사람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오클라' 라고 하는 흙의 사용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메리카까지 넘어갔고, 말까지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물감 중에 황토색을 오컬, 오클러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말입니다.
오른 쪽 그림은 죽은 사람을 오클라, 곧 황토로 매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우리나라 옛날 그림이 아니고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매장 풍습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와 같이 똑같은 매장문화가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새, 깃털 숭배문화
또 하나의 한국인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증거는 날개 혹은 새(鳥) 숭배문화입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새와 날개를 매우 숭상했기 때문에 족장이 죽을 때는 깃털로 싸서 붉은 흙으로 매장을 했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깃발도, 지금은 태극기입니다만, 원래 우리 민족 고대의 깃발은 신성한 새 (봉황[鳳凰]새)를 그린 '봉도등(鳳圖騰)'을 사용하였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장관들, 관료들은 그 계급을 새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 그 이름을 작위라고 해서, 공작, 후작, 자작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새의 이름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관료의 이름에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국인이나 다른 민족이 배워 간 것이지요.
그리고 이 깃털 숭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를 거쳐 미국 인디언들까지도 관찰됩니다. 특히 미국 인디언들이 깃털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서부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완전히 깃털로 뒤덮여서 나오는 것이 인디언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날개나 깃털, 새를 숭상했을까요? 그 이유는 날개라는 것은 바로 천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간단하게 표현하다 보니까 천사의 몸체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날개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날개는 바로 천사의 날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를 숭상하는 것, 거기서부터 기원된 것이 날개 숭배사상인 것입니다.
왼쪽그림은 독수리의 활기찬 날개의 모습이지요. 오른 쪽 아래의 그림은 고구려(高句麗)의 고대(古代) 고분(古墳)에서 발견된 그림입니다. 우리 민족은 높은 사람들의 무덤에 반드시 신성한 새 (예를 들면 지금 이 그림과 같은 봉황(鳳凰)새...)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도 동서남북 중에서 죽은 사람이 쳐다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인 남쪽에다가 새 그림, 즉 천사의 날개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상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소망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 역시 고분(古墳)의 남쪽에 그려져 있는 신성한 새입니다. 붉은 색 때문에 붉을 주(朱) 자를 써서 주작(朱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마는 봉황에서 기원된 것입니다. 그래서 좌 청룡(靑龍), 우 백호(白虎), 남 주작(朱雀), 북 현무(玄武) 하지 않습니까?
반드시 남쪽에 새가 앉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쳐다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이 바로 남쪽입니다. 가장 중요한 곳에 천사가 지키고 서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봉황(鳳凰)새의 수컷은 봉(鳳)이고 암컷은 황(凰)입니다. 그래서 선배한테 얻어먹을 때 남자 선배를 붙들었을 때는 봉(鳳) 잡았다 라하고 여자 선배를 붙들었을 때는 황(凰) 잡았다고 해야 합니다. 봉황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수컷, 암컷 한 쌍을 말하는 것입니다.
5. 무궁화 숭배문화
다섯 번째로 한민족의 기원을 따지는 중요한 문제가 우리 민족의 국화인 무궁화, 무궁화 숭배사상에서 나옵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입니다. 여기서 보시듯이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중동에 있는 시리아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궁화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시면 'the Rose of Sharon'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샤론의 꽃'입니다. 이것은 아가서에도 나오듯이 '샤론의 꽃', '샤론의 장미' 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 과거에 급제한 어사에게 씌워주는 어사화도 바로 무궁화입니다. 그리고 화랑들이 쓰고 다니던 모자에 달려 있던 꽃 그것도 무궁화입니다. 그러니까 무궁화가 실재로 활용되고 있던 것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확실히 나와 있고, 단군의 이야기에 보면, 그 때 이미 무궁화의 한자식 표현인 목근화 씨를 가지고 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나라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을 보십시오. 대통령의 뒤쪽에 대통령을 나타내는 문장을 보시면, 중간에 무궁화가 있고, 좌우에 봉황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천사가 좌우에서 호위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무궁화가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선하고 지혜로운 분만 앉아 있다면 이 민족이 급속히 발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위 그림은 현재 우리나라 국화로 쓰이고 있는 분홍색 무궁화를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꽃잎은 분홍색이고 중간은 빨갛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수술이 달려 있는 것이지요.
무궁화 장식은 우리 민족이 고대 때부터 여러 군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민족의 높은 지위에 있던 여인들이 사용하던 고급 거울 (동경; 銅鏡)로 이 거울 전체가 무궁화 모양을 본 따서 만들어 놓았습니다(오른 편 그림).
또 우리나라의 훈장 중에 최고의 훈장, 그것은 무궁화 대훈장입니다. 이것은 대통령급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주는 최고의 훈장입니다(아래 왼쪽). 그런데 이 무궁화 대훈장을 오른쪽에 확대해 놓은 것을 보십시오(아래 중간), 노란 부분이 꽃입니다. 그리고 붉은 부분은 형상화해서 크게 빼낸 것이지요. 그리고 중간에 보시면 화랑들이 쓰는 모자가 있습니다. 모자에 장식된 것이 무궁화입니다. 전체도 무궁화고 장식도 무궁화여서, 무궁화로 뒤덮인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인 것입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이 말하듯이 무궁화는 중동에 대 제국을 이루었던 시리아, 인류 최초의 문명인 에블라 문명의 발상지, 그 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오른쪽)
위 왼쪽 그림은 시리아의 정궁(正宮), 가장 큰 궁전의 장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기둥들이 있고, 전체를 무궁화 장식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확대를 해 보면 위 오른 쪽 그림과 같습니다. 군(軍)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부대대장쯤 되면은 소령이지요? 소령이 무궁화 꽃입니다. 무궁화가 소령 무늬하고 같습니다.
위 왼쪽 그림은 시리아 정궁을 멀리서 본 것입니다. 이렇게 기둥들이 있고, 그 기둥 밑에 무궁화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코니같이 생긴 난관, 이것도 무궁화 잎으로 장식해 두었습니다. 또한 외성 (바깥성벽)도 무궁화 잎으로 장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위 중간)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도 흑해연안 곧 한민족이 이동해 왔을법한 이동경로를 따라 살펴보면 무궁화들이 끊임없이 피어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위 오른 쪽).
6. 복식, 의상의 분포
기타 우리 민족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기 등의 유적 분포는 생략하고 의상의 분포를 살펴보겠습니다. 위 왼쪽 그림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그려놓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의 기상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말 타고 다니던 민족들이지요. 흔히 우리민족을 농사를 짓던 농경민족으로 역사학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위 가운데 그림은 몽골사람들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의 위상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중앙아시아 그리고 몽골에 이르기까지 기마민족들이 지배를 해 온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 몽골의 말타기 좋은 핫바지, 승마바지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위 오른 쪽 그림은 우리 민족의 고대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이 승마바지, 핫바지의 그림을 볼 수 있고, 또한 신라에까지도 연결됩니다. 곧, 신라 경주의 천마총에 보시면 천마가 그려있는 말안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임금의 무덤인데요, 천마가 그려진 말안장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자작나무는 북방 시베리아쪽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것은 곧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몽골 만주 한반도를 거쳐오면서 기마민족(騎馬民族)들이 북방 아시아를 지배하고 다스려 온 것이고 그 후예가 신라에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북방에서부터 내려온 기마민족(騎馬民族)이었던 것입니다.
3. 한민족의 이동 원인과 이동 경로
그럼, 한민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머나먼 극동(極東), 영어로 'Far East' 라고 하는 한반도까지 왜 왔을까? 에 대한 원인과, 어느 길로 왔을까? 하는 이동경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왼쪽 그림은 알타이어의 발원지인 터키의 아라랏산이고, 오른 쪽 아래 그림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백두산 천지입니다. 아라랏산에서 천지까지 머나먼 길을 우리조상들은 왜 이주해 왔을까요? 그리고 어떤 경로로 이동했을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은 세상 어디를 가도 대답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문서로 기록된 증거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보면, 잘 아시듯이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 사건 때 말이 갈리면서 온 지면에 흩으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말이 갈리면서 극동까지 온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성경 외에는 어디에도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 말해주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왼쪽 그림은 바벨탑과 유사한 지구라트의 모양입니다.
성경의 이야기와 여러 가지 증거들을 모아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민족을 압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자권자(長子權子)였지만 장자권(長子權) 수호에 실패한 셈의 첫째 아들 엘람 가문과 둘째아들 앗수르 가문 등은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의 통치 하에서 시달리다가 바벨탑 사건이 터지자 동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후 성경에서는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이후에 큰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자권 (長子權)을 잃게 된 것을 통탄해 하면서 이제야말로 신앙적으로 바로 살아보자는 굳은 의지로 빛 되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동방(東方)을 향해 대장정을 떠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방(東方)이라는 곳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고 해라는 것은 바로 빛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빛 되신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땅 그곳이 바로 극동(極東), 'Far East' 인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백두산 천지의 일출광경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실 때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쏠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무지개가 동방(東方)에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셈족들이 빛 되신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고자 약속의 땅(무지개 땅), 빛의 땅 동방으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족보를 잠시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보시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다'라고 해서 셈족 자손 중에서는 에벨이 가장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셈을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거꾸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셈이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성경에는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 그리고 그 이후의 자손들을 거쳐 데라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하듯이 셋째 아들의 족보가 나와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장자권자가 가장 중요한데요. 맏아들 엘람과 둘째아들 앗수르라는 가문은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그 이유는, 아우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던 정통 장자권자들이 바벨탑 사건을 계기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자 이번에야말로 신앙적으로 바로 살아보자 하는 신앙각성으로 동방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에 성경에는 사라져 버렸고, 셋째 아들 아르박삿 가문만이 남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시게 되는 히브리인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은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왔습니다. 에벨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서는 에벨이라고 되어 있지만, 신약성경에서는 헤버라고 되어 있습니다. 헤버는 헤벌로서 이것이 바로 히브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잘 모르던 시절에 일부 신학자들이 히브리라는 말은 이집트의 노예인 하피루에서 왔다고 주장하였지만, 사실은 에벨에서 온 말인 것입니다.
셈의 정통 장자권자들이 빛을 찾아 동방으로 떠났을 때 "셈의 장막에 거하면 복을 받으리라"던 노아의 명령을 따라 야벳의 일부 후예들이 셈족을 따라 나섰고, 이들은 그 후에 중국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함의 맏아들 구스 가문의 일부도 셈족을 따랐는데, 이들은 인도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 예로서 중국인의 고대 지도자들의 미이라가 발견되었는데요, KBS 특집에도 나왔었지요. 중국인들의 조상의 골격은 놀랍게도 동양인이 아니라 백인, 즉 코카시안(Cocasian)의 두개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미이라에 머리칼이 붙어 있었는데, 머리카락도 금발이었습니다. 그래서 흑발의 몽골리안을 따라오던 이들이 몽골리안의 아내들을 많이 맞아서 동양적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이나 생활문화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중국말은 영어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의자를 좋아하는 입식(立式)생활을 하는 것도 야벳의 자손임을 알 수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책인 사마천의 사기(史記), 서전 요전(書傳 堯傳)과 같은 역사책에도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史記 五帝本紀)를 보시면 '곡이 진봉의 딸을 취하여 요(堯)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요(堯)는 요(堯)임금, 순(舜)임금 할 때 요(堯) 임금을 말합니다. 요(堯)의 아버지는 곡이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곡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이 곡은 야벳의 아들입니다. 마곡이라고 부르지요.
서전 요전(書傳 堯傳)에 보시면 순(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순(舜)의 아버지는 고수였다. 그런데 그 고수는 완고하고 그 어미는 악하며 순(舜)의 아우 상은 교만하였는데, 유독 그 집안에서 순(舜)만이 효로서 화합하고 아름답고 어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堯)의 대를 이어 중국인의 지도자가 된 것이지요. 이 고수도 성경에 나옵니다. 고수는 바로 함의 아들 구스입니다.
셈의 아들인 엘람과 앗수르 중에서 엘람은 성직자적인 분위기였고, 앗수르는 행정, 군사를 담당한 기마민족, 곧 고구려 , 신라까지 연결되는 집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야벳 가문의 일부와 구스 가문의 일부를 데리고 아라랏 산을 넘어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골을 거쳐 만주 땅에 이르는 대장정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명에 우스 라는 이름을 가진, 즉 우스토브, 우스벤스키, 우즈베키스탄 등 의 지역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 우스라는 말의 성경적인 뜻은 천사가 인도해준 땅, 약속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라랏산에서부터 만주까지 오는 길이 너무 머니까 좋은 땅이 나타나면 "아이고 여기가 바로 '우스'다." 하며 의지가 약한 순서대로 주저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가까이에서부터 만주 근처까지 우스 라는 말이 붙은 지명이 대단히 많은 것이지요. 이렇게 중간중간 주저앉을 때 "아니다." 하며 계속 나아가고 "아직도 저렇게 해가 뜨고 있잖니?" 하며 끝까지 나아가서, 마치 월드컵때의 투지와 같이 민족의 이동시에도 16강, 8강, 4강에 드는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서 한국인의 이동경로를 지도로 나타내면 왼쪽 그림과 같습니다. 터키의 동쪽 아라랏. 알타이어의 발원지이자, 흑요석의 발원지이고, 오클라의 발원지, 여기서부터 우리 민족이 대장정을 거쳐 중앙아시아 무슨 스땅을 거쳐 몽골리아, 만추리아 그리고 한반도까지 오게 된 경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바다를 거쳐 일본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또 일부의 사람들이 북동쪽까지 가다가 그 당시 빙하기의 영향으로 얼어붙어 있던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에스키모가 되었고, 거기서부터 일부는 빙하의 계곡을 따라 캘리포니아 쪽으로, 그리고 미국의 동부 쪽으로 뻗어 가서 오늘날의 아메리카 인디언, 남미의 인디오가 되게 된 것입니다.
셈족을 주축으로 한 일부 야벳과 구스족은 시베리아를 거쳐 바이칼 호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큰 강변의 넓은 땅을 보고, 좌 청룡 우 백호도 아라랏산 근처와 비슷한 곳에 정착하였는데, 이 큰 강을 보니까 수많은 오리, 기러기가 내려앉는 강(오리라, 아리라)이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송화강(松花江)입니다. '아리라' 라고 강을 부르게 되었고, 그 강변의 넓은 땅의 이름을 아사달, 즉 우스달, 아스달 하여 약속의 땅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스달이죠. 아사달이란 말은 한자(漢字)식 표현이고, 우리 조상은 우스달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곳은 지금의 지명의 보면 '하얼빈' 지역입니다. 이곳이 바로 약속의 땅, 빛나는 아침의 땅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이름을 '아침의 나라' 곧 '조선(朝鮮)'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빛나는 아침의 나라, 그것은 바로 고대 우리 조상들이 세운 고조선(古朝鮮)입니다.
그곳을 지도로 보시면 위 왼쪽의 그림과 같습니다. 만주 땅 한가운데 하얼빈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 장소지요), 이곳이 바로 아사달 지역인 것입니다.
위 가운데 그림은 하얼빈 지역의 넓은 들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아사달 땅이고요. 그리고 이곳은 그 이후에도 고조선의 대를 잇는다고 주장하는 아골타가 중국에 금(金)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아골타는 놀랍게도 고려사람 김함보의 자손으로서 한국사람임이 밝혀졌습니다. 즉 아골타는 금(金)씨(김씨의 고대발음)로서, 자신의 성을 따서 나라 이름을 금(金) 나라, 곧 금(金)제국을 지은 것입니다.
위 오른쪽 그림과 같은 비석이 서 있습니다. 금나라의 수도 상경 회령부 의 유적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 고대 한민족의 신앙과 번영
다음으로, 아사달에 정착한 고대의 한민족은 어떠한 신앙을 가졌으며, 어떻게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왼쪽 사진은 환웅천강도라는 중국에서 발견된 그림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단군신화를 중국인마저도 그대로 믿고 그려놓은 것이지요.
동방에 정착한 셈계의 장자의 백성들은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사달의 넓은 들판과 한반도에 퍼져 나가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으나 임금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들에게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신앙이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규원사화 단군기라는 고대 역사책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신으로 가장 높은 으뜸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고 전 세계를 주관하고, 수 없이 많은 사물을 만드시니 넓고 넓게 둘러싸므로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아주 밝고 밝아 작은 티끌하나 새지 않도록 하시었다" 이 단군기에 보는 바와 같이 우리민족의 신에 대한 정의가 확실히 보여지고 있습니다. 유일신이요, 창조의 신이요, 빛과 같이 밝은 신이다.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을 정도로 유대인의 야훼 하나님하고 정의가 똑 같습니다.
또한 고대 한국인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겼다는 사실이 고조선의 역사학자였던 신지(臣智)의 역사책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타나 있습니다. "체일용삼(體一用三)이요 삼신일체(三神一體)요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이렇게 쓰여 있는데, 이것은 몸은 하나인데 활동만 창조의 신, 구원의 신, 역사의 신 이런 식으로 활동만 셋으로 한다. 그리고 이 세 신은 사실은 하나이다. 이 셋이 모이면 하나이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날의 삼위일체 이론하고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 까마득한 고대의 우리 조상들이 어찌하여 기독교의 신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삼위일체 신학을 정통으로 꿰뚫었을까요?
그것은 원래 우리 민족의 집안이 셈의 제사장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인 윤내헌 교수의 고조선사 연구에 보면 "이는 3.1 사상 또는 삼위일체 사상이라고 하는데 그 후에 한민족 사상의 주요한 요소를 형성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흑백논리도 아니고, 있다 없다도 아닌, 항상 세 개의 요소로 설명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임금일지라도 항상 나무로 된 집을 짓고 살았고, 돌로 된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 땅은 나그네와 같은 삶이고 돌아갈 집이 저 세상에 있다는 나그네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그네 정신과, 훗날에는 구원, 천국, 낙원이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복음의 전파가 없었을 때에도 자생적으로 메시아 신앙이 생겨나게 되었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때는 미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정도령으로 표현되기도 하였지만, 사상 자체는 메시아를 갈망하는 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유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김진홍 목사님의 강연에도 나옵니다.
그 다음으로, 고대 한국인이 지켜 오던 법으로서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은 유대인들의 십계명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히려 열 개로 늘려 있는 것을 십계명의 뜻은 다 들어 있는 일곱 가지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여덟 번째 계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너희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
2.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라.
3.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신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4.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5. 서로 시기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라.
6.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도둑당한 집의 노비로 삼는다.
7. 남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서 갚아야한다.
8.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또한 고대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왕을 세우지 않고 신정일치의 전통을 잘 이어왔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무엘이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이 그토록 원했던 그 사상을 고대 한국인들은 오래도록 잘 지켜 온 것입니다. 즉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의 인도 하에 신정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도읍의 이름도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마을로 불렀던 것입니다.
나라를 세운 목적도 특정인의 이익이나 특정 종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은 놀랍게도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사람 사회에 유익을 끼친다, 모든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뜻의 '이타주의 사상', '박애(博愛)사상', 즉 기독교로 볼 때 '아가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위해 세워진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단군(檀君)이 나라를 이끌어 왔는데요, 단군은 어떤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직책의 이름이었습니다. 단군(檀君)이란 신단수(神檀樹)라는 거룩한 나무 밑에서 제사를 인도하던 신정일치 사회에서의 천군(天君)을 뜻합니다. 즉 미스터 헤븐(Mr. Heaven)이지요. 생명나무(生命樹), 즉,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거룩한 제사를 지내던 천군(天君)을 줄여서 단군(檀君)이라고 한 것입니다. 고대 유대인들도 신이 정한 성역인 에덴동산 중앙에 서 있던 나무아래에서 신에게 경배하였는데요, 우리 민족도 신이 임하셔서 여러 가지를 듣고 지도하던 나무, 즉, 신단수(神檀樹)도 생명나무(生命樹)와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방으로 이주한 우리민족은 하나님의 규례대로 장자권자(長子權者)가 백성을 보살피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대제국(大帝國)을 형성하였건만 아무도 영웅호걸을 숭상하지 않고 대제국이라는 이름을 절대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아 그 대제국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우리민족을 격하시키기 위해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족(東夷族)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글자 속에 큰 활이 들어가 있습니다. 동방에 있는 활을 잘 쏘는 나라라는 뜻이지요. 지금도 올림픽에서 활 쏘는 종목은 항상 금메달을 따오지요. 그것은 과거부터 우리민족에 그러한 소질이, 유전자가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방족(東方族)이라 불리는 고대 한민족의 여러 나라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한 형제요 공동체의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와 우애로 살았기 때문에 전쟁이 있을 이유가 없고 자기 자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빌로니아다, 앗시리아다, 징기스칸이다 하며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지식의 부족으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약하고 부족한 민족으로 평가절하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평화를 사랑한 우리 조상들은 흰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족(白衣民族)' 이라고 불려 졌으며,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고, 작은 자는 큰 자를 공경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 중의 하나인 회남자(淮南子)는 이 동방에 있는 장자권의 나라, 곧 엘람과 앗수르의 나라를 군자의 나라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회남자 대형훈(淮南子 隊形訓)을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