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88서울올림픽 동구권 참가성사 역할-박영한
이 회고는 대열임관50주년 기념책자 (가칭: 대열 반세기 여정) 1부에 편성할 동기생 현역시절의 자부, 즉 시대별 국가적 국방이슈와 관련해, 각자 어떤 역할과 공헌을 했었던 지에 대한 회고를 수록하는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래 글은 박영한 동기의 회고담입니다. 원래는 박승춘 동기가 정보병과 동기생들의 현역복무 약사를 대표 집필한 내용에 있던 것인데, 정보병과 약사와는 다소 뉴앙스가 달라 병과약사에서 드러내 회고담으로 옮겨 편집한 것입니다. 양해 속에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위원 김명수 주(註)-
♣ 1988 동진활동 성공의 추억
박영한
1986년 9월 말 경 주독일 국방무관으로 당시 서독의 임시수도였던 본에 부임했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활동지침이 내려왔다. 이름 하여 ‘동진활동’이었다. 88올림픽이 동서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서울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한 특별외교활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서독에는 모든 동구 공산권국가에서 무관을 파견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접근해서 한국의 발전상과 서울올림픽 준비의 완벽함을 알려 반드시 참가하도록 설득했다. 각국 무관들을 개별적으로 식사에 초대하여 담소하면서 홍보물도 건네주고 국산품 선물을 주고 개인 친분도 쌓으면서 공을 들였다.
처음 만났을 때 보인 동구권 무관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북한의 선전물 수준이었다. 서울 다리 밑에는 아직도 깡통을 들고 구걸하는 어린이들이 우글거리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비참한 나라였다. 올림픽 경기장 시설에 대한 홍보자료를 보여주고 우리나라 발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북한의 선전물은 모두 한국전쟁 직후 한국이 못 살 때의 이야기라며 이제는 한국이 잘 산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안 믿는 눈치였다. 한 마디로 선전하는 것으로 여겼다. 식사 약속 한 번 하는 것도 여러 번 시도하여 겨우 성사되는 식이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첩보 수집 차원에서 만나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국방무관은 존재감이 없는 어느 후진국 무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독일어가 자유롭다 보니 일단 만났을 때는 무시하지 못했다. 1987년 초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한국 정부를 군사 독재정권으로 폄하하고 서울에서 학생데모가 연일 보도되고 서울 올림픽 개최는 불가능하니 베를린이나 파리에서 열자고 떠드는 판이었다. 대사관에서 매 년마다 개최하는 10월3일 국경일 행사에 외국 외교관들을 초대하는 것이 관례인데 1987년 국경일 행사 때 나는 무관으로서 모든 독일 주재 무관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공산권 국가에서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선물도 하고 식사도 같이 했으면서도 공식행사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국교관계가 없어서 라고 변명했다. 자유 우방국과 기타 친 서방 진영 국가의 무관들은 거의 다 참석했다.
거국적인 차원에서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서 단합하여 홍보한 결과 1987년 말부터 한국의 정정이 안정되고 국제적인 인식도 개선되어 88올림픽은 동서 양진영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성대한 축제가 되었다. 올림픽을 치르는 기간을 전후 하여 올림픽 개최국 한국에 대한 소개 프로그램이 동구권 국가에서도 방영되었다.
88서울 올림픽이 끝나가면서 동구권에서 갑자기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지지리 못사는 줄 알았던 한국이 직접 가서 보니 거의 서독만큼 잘사는 것 같다는 인식이 동구권 주민들에게 쫙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기네들과 같은 공산주의를 하는 북한은 자기네들 보다 훨씬 못 살아서 매년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인데 한국은 가보니 물자가 넘쳐나고 자기네들 보다 훨씬 잘사는 것이 확연히 보였던 것이다.
동구권 사람들은 서독이 잘사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나 그것은 독일이니까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인데 이제 보니 한국도 독일처럼 잘 산다는 것을 알고는 공산주의 미몽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한국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면 별 볼일 없던 한국 같은 나라도 서독처럼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공산당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구권 국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제는 한국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은 것 같이 보였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10.3 개천절 국경일 행사가 주독 한국 대사관서에서 예년처럼 개최되었다. 나는 지난해 1987년처럼 모든 독일 주재 무관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국교가 없는 국가는 안 올 테지만 평소에 안면을 닦아 둔 것을 감안해 호의를 보인 것이다. 시간이 되어 나는 대사와 같이 리셉션 라인에 서 있었다. 작년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민간 인이든 군인이든 할 것 없이 초청 받은 인사들이 다 오는 것 같았다.
특히 동구권 무관들도 거의 다 초청에 응해 행사에 나타났다. 멋있는 제복을 차려 입고 줄줄이 들어오는 무관 부 축하객들을 보니 대한민국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땅에서 하늘로 솟은 것 같았다.
한국이 최고라며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특히 동구권 무관들의 인사가 인상 깊었다. ‘박 대령 말이 맞았다’라는 것이다. 즉 한국이 잘 살고 발전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많은 축하객들이 들이 닥쳤는지 그 넓은 대사관저가 사람들로 빽빽했다. 리셉션 라인에서 악수하느라 손이 아팠다. 동구권 인사들 뿐 만 아니라 우방국 인사들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국을 칭찬했다. 독일 친구들도 그전에는 한국에 대해서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인지 새삼스럽게 한국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88서울올림픽이 있고 나서 1년 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이듬해 독일이 통일 되고 이어서 동구권 공산정권들이 무너져 내렸다. 한국처럼 되기 위해서였다. 한국이 동서 냉전에서 서방의 대표 챔피언이었던 것이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주독 국방무관 근무 경험은 동서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국제무대 현장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람을 한꺼번에 느꼈던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새로운 미중 간 냉전에서도 한국은 대표 챔피언이 될 것이다.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국가가 어떤 모습인가를 똑똑히 보여줄 때 공산국가 중국은 저절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중공이 무너져야 북한도 해방될 수 있다.
그 때는 대한민국에 대한 온 국민의 긍지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 때가 반드시 곳 올 것이라고 믿는다. §
2021년 7월 박영한
첫댓글 88올림픽 때 독일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큰 일 하셨네요.
이 내용은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얘기할 기회가 있다면 그대로 인용했으면 좋을 만큼 실감이 납니다.
88올림픽 때 특전사에 근무하면서 올림픽 경기장 안전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때를 생각하니 이 내용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한 국가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데 큰 일 했어요. 국격을 알리는 홍보의 중요성과 다수국가가 참가하는 국제행사는 정말 중요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