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요약 중국 선종(禪宗)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璨)이 지은 글로 선(禪)과 중도(中道) 사상의 요체를 사언절구(四言絶句)의 게송(偈頌)으로 간명하게 나타내고 있어 선종(禪宗) 불교의 보전(寶典)으로 여겨진다.
본문 중국 선종(禪宗)의 제3대 조사(祖師)인 감지선사(鑑智禪師) 승찬(僧璨, ?~606)이 지은 글로 146구(句) 584자(字)로 되어 있다.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으로 73개의 대구(對句), 36게송(偈頌) 2구(句)로 구성된 이 글은 선(禪)의 요체(要諦)가 잘 나타나 있어 중국에 불법(佛法)이 전래된 이후 나타난 경문(經文) 가운데 ‘최고의 문자(文字)’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선종(禪宗) 불교(佛敎)에서는 제6대 조사(祖師)인 혜능(慧能, 638~713)이 남긴 <육조단경(六祖壇經)>과 함께 중요한 보전(寶典)으로 여겨왔다.
승찬은 달마(達摩, ?~532)와 혜가(慧可, 487~593)의 뒤를 이어 중국 선종(禪宗)의 조사(祖師)가 된 인물이다. 그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420~589) 북주(北周,556~581)의 무제(武帝, 재위 560~578)가 전국의 불탑(佛塔)과 불상(佛像)을 파괴하며 불교(佛敎)를 억압하자, 스승인 혜가의 명(命)에 따라 10여년 동안 서주(舒州, 지금의 安徽省 潛山) 환공산(皖公山, 지금의 天柱山)에 은거(隱居)하였다. 그러다 남북조(南北朝)를 통일한 수(隋, 581~618) 문제(文帝, 재위 581~604)가 불교를 장려하자, 590년(開皇 10년) 무렵부터 산곡사(山谷寺, 지금의 天柱山 三祖寺)에 머무르며 불법(佛法)을 전했다. <신심명(信心銘)>은 이 시기에 선(禪)의 요체(要諦)를 대중들에게 쉽게 풀이하여 이해시키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명(銘)’은 금석(金石) 등에 새긴 글귀를 뜻하는데, ‘명심(銘心)’이라는 말처럼 잊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는 뜻도 나타낸다. <신심명(信心銘)>은 ‘신심(信心)에 대해 명심(銘心)해야 할 글’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글은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으로 되어 있는데,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 오직 가리고 선택함을 꺼릴 뿐이니 /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 확 트여 명백하리라(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는 게송(偈頌)에서 시작하여,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 둘이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로다(信心不二 不二信心 言語道斷 非去來今)”라는 게송(偈頌)으로 끝마친다. 이는 편견과 집착, 미워함[憎]과 사랑함[愛]과 같은 차별을 벗어나야 불도(佛道)를 깨우칠 수 있으며, 언어(言語)와 지적인 분별(分別)에서 벗어나 모든 차별이 사라진 불이(不二)의 세계, 곧 인간 본연의 마음을 향해야 신심(信心)을 키울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신심명(信心銘)>은 나와 남[自他], 미워함과 사랑함[憎愛], 거슬림과 따름[逆順], 있음과 없음[有無], 옳고 그름[是非] 등의 분별과 집착을 벗어난 ‘중도(中道)’ 사상을 사언절구(四言絶句)의 게송(偈頌)으로 간명하게 잘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선종(禪宗)에서는 이 글이 146구 584자밖에 되지 않지만, 팔만대장경의 요체(要諦)와 깨달음을 얻기 위한 1,700개의 화두(話頭)의 본질이 모두 이 글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높게 평가해왔다.
“지도무란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이 구절에 팔만사천법문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지도무란(至道無難) 지극한 도, 지극한 진리는 어려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혐간택(唯嫌揀擇) 오직 꺼려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실상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고로 취사선택하는 것입니다, 손등과 손바닥이 분리할 수 없듯이 이름은 다르지만,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인데도 무지하여 착각으로 취하고 버리려는(간택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단막증애(但莫憎愛) 다만 좋아하고 싫어함을 멈추면 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함을 배운적 없이도 절로절로 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함에서 갈등과 대립, 반목과 불화가 나옵니다. 반목과 불화가 반복되면 어찌 그 삶이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통연명백(洞然明白) 그렇게 되면 환하게 명백하리라는 뜻입니다. 앉아서도 일어서도 말할때도 침묵할 때도 움직이거나 밥먹거나 똥을 눌때도 무엇을 하던 그 삶이 당당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