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
현대 한국 교회는 한민족의 보편적 구원에 제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기본적으로 선교하는 교회였다. 한국 교회 200여 년의 전통을 확인할 때 선교는 한국 교회의 본질을 이루고 있었다. 이 전통에 따라 현대 한국 교회도 민족의 복음화, 한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는 신자 개개인의 새로운 각오, 우수한 사목자의 양성, 신자들의 선교를 뒷받침하려는 교육과 격려를 위한 제도의 개선과 정책, 이러한 일들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 요청된다.
곧 현대의 한국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친교와 일치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신앙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본당 단위뿐만 아니라, 교구의 조직과 운영에서도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두루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 일에 종사하며 투신할 수 있는 유능한 평신도들이 양성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한편, 교회의 특수 논리가 보편적 논리로 대체 발전되는 과정에서 성직자의 권위주의에 대한 지적이 나타났다. 현대 교회의 취약점으로 지적되어 오던 이 문제점에 대한 본격적 반성과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 교회는 민족 사회에 대한 지속적 봉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복음의 정신에 입각하여 각종 사회 복지와 사회 개발 사업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민족 사회를 위한 자기희생과 봉사가 단순히 자선이 아니라 사회 정의의 요구임을 하느님 백성 모두가 좀 더 철저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이래 한국 교회는 서구 문화의 전파자로 자임하며 민중에 대한 구원에 강한 책임감을 갖고 그들을 계몽하려 하였다. 또한 1970년대 이후의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사명감으로 책임을 자임하거나 해결사의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한국 교회가 계속 이와 같은 과거의 역할에만 도취되어 있다면, 이는 한국 사회와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하여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를 스스로 배우려는 진지한 학생의 자세를 요청받고 있다. ‘어머니와 교사’로 태어나기 위하여 교회는 먼저 학생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에 필요한 이 겸허하고 자기희생적 자세는 비그리스도교적인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다.
현대 한국 교회는 선교 활동의 기반으로 문화의 복음화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학문으로써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발전을 이룩해 나감으로써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민족 문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민족 문화와 진정으로 화해하여 그리스도교 문화가 민족 문화의 일부로 뿌리내리는 데에 더 큰 진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문화 선교의 중요성이 더욱 강화되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민족 문화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 교회에서는 사목자뿐만 아니라 신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본격적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수도 생활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수도 신학 연구의 심화가 요청되며, 수도자는 기능인의 일종에 머무는 수도자가 아니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존재 자체로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가치를 증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복음화와 수도 생활의 발전 등을 통해서 현대 교회의 영성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은 단순히 양적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 신앙의 질적인 성숙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은 대표적 다종교 국가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 간의 화해와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은 모든 종교의 의무다. 이웃 종교와 대화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다지는 차원에서도 요청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한국 교회는 전통 종교와 개신교 등 타 종교와의 대화에 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 교회도 타 종교와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대화를 주관하는 상급 기관의 움직임은 있으나, 그 대화의 정신이 교회 구성원 전반에 파급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화는 현대 교회의 본질과 관련되므로 이를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대화를 통해서 한국 천주교회는 자신의 활동 영역과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